[햇빛아래얼음] 남자가 싫었습니다
#..그 첫번째 이야기
햇빛아래 얼음은 언젠가 녹겠지, 아무리 큰 얼음이여도 어느순간 사라지듯이, 나도 그렇게 사라지겠지
by. 햇빛아래얼음
'남자가 싫었다. 본능을 추구하고 덤벼드는 짐승보다 똑똑한 두뇌를 가졌지만 그들보다도 추악한 남자가 싫었다.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슬픈 날을 만들어주고 사과 한 마디없이 홀연히 사라져버린 남자가 싫었다. 그리고....
항상 쓸데없는 기억들에 매달려 한심하게 한숨이나 내쉬는 나란 존재도 싫었다...
어쩌면...없어졌으면 했다.'
가연은 오늘도 얼음장같이 차가운 얼굴을 하고 학교로 나섰다. 그녀가 나선 후 텅 빈 집안에는 사람의 온기를 찾아볼 수 없을정도로 싸늘하고 시려웠다. 사람의 손때가 타는게 정상인 듯이 보이는 하얀 색의 고급스런 벨벳 소파는 한 번도 앉은 적이 없는 것인지
사람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오직 미약한 신음소리와 함께 가는 숨소리가 흰 방문의 틈새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흐으..흐억..으윽..! 살...려줘..요..하윽!으읍...아,아아악!!"
긴 검은 머리를 가지고 있는 작은 소녀가 그녀의 몸보다 살짝 큰 분홍색의 침대위에서 이불을 꼭 끌어안은채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꾸는 꿈이 그리 행복한 꿈은 아닌 것인지 창백한 그녀의 볼 위에 힘없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늘고 야윈 흰 손가락은 부들부들 떨면서 이불의 끝자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악몽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그녀는 파리해진 입술을 꼭 깨물고 침대 속에서 몸부림쳤다. 하지만 몽마는 그녀를 꿈나라에서 내보내주기 싫은것인지, 악몽의 손결을 그녀의 가늘고
창백하기만 한 몸뚱아리로 자꾸만 뻗었다.
잠시 몸부림치던 소녀가 잠잠해졌다. 하지만 폭포수같이 맑은 눈물은 끊임없이 그녀의 눈에서 흘러나왔다. 예쁘고 긴 속눈썹에도 가롱가롱 작은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그녀의 파리한 입술이 벌리며 내뱉은 말은 단 한 마디.
"가연언니 나좀 살려줘"
끔찍하도록 괴로운 얼굴을 하고서도 잠에서 깨어날 수 없는 소녀는 처절하였다. 뻗어오는 악몽의 손결에서도 소녀는 인상을 찌푸리는 방법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게 그 소녀의 한계였다.
"가연아"
"꺼져, 신지산! 꺼지라고!"
"가연아 나 진심이야...정말 진ㅅ...!"
"내가 몇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어? 꺼지라니까? 누가 네 진심타령하라고 부추기던? 너같은 남자애 많이 봤어. 지들 반반한 얼굴만 믿고 여러 여자 찔러보고 그 여자가 좋다고 사귀어주니까 싫증내면서 버려버리고! 어차피 여자의 모든 솔직한 면을 사랑해줄 남자같은 건 없었어!! 너도 똑같은 새끼잖아! 너도 좀! 나한테서 떨어지라고!"
"가연아...."
멀어지는 가연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지산이 인상을 찌푸렸다. 몇년째 그녀를 애타게 그리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가연이 너무나도 미운 지산이었다.
"어이, 신지산!! 뭐야...또 마녀랑 사랑타령한거야? 어휴 진짜 너도 독하다 독해! 어차피 다 같은 여잔데 그냥 아무나 사귀고 싫증나면 깨지지, 잘난 놈이 뭐하러 저런 애 하나 때문에 빌빌거리냐?"
"그러니까 말이야..쯧쯧...정말 신지산 이놈도 미친놈이라니까? 한가연 쟤가 특출나게 이쁘긴 하지. 하지만 저런 독한 여자는 매력없다, 야. 그냥 너가 만나자면 네 하고 깨지자 하면 오빠 한 번만요!!하는 고분고분한애 하나 잡아.바보같이 왜그러냐?"
지산의 이마에 주름이졌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하는, 아니 하나의 인격체인 여자 자체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는 자신의 친구들이 한 순간 증오스럽고 짜증이 났다. 인상을 팍 찌푸리고 그들을 훑어보던 지산이 복도 바닥에 침을 퉤하고 뱉었다. 그리고 보는 사람이 경기를 일으킬 만한 싸늘한 얼굴을 하고 그들에게 낮게 읊조렸다.
"지금 니들 보기싫다. 꺼져라"
"야, 신지산 네가 어떻게 우리한테 그럴 ㅅ...!"
"야야, 신지산 빡돌면 알잖냐, 그냥 가자. 저새끼 개 되기 전에 피하는게 나. 그리고, 너 아까 8반의 연예림보러간다하지 않았냐?"
"아아~ 예림이?가자! 큭큭..야 신지산! 화 풀리면 좀 이따가 와라! 이쁜애 하나 있으니까! 마음에 들면 너 가져라!큭큭.."
지산은 그들을 바라보지도 않고 휙 하니 돌아서 걸어갔다. 잠시 껄렁거리던 키큰 남자애, 그의 친구 현성의 얼굴이 험악하게 구겨졌지만 그를 말리는 탈색한 머리의 선형때문에 짜증을 내며 돌아섰다. 아니, 어쩌면 지산에게 덤벼봤자 흠씬 두들겨 맞을 뿐 얻을 소득은 없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택한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한가!헤헤"
"지연아"
"히힛...뭐야,뭐야~ 왜 이렇게 우울해?응? 혹시 오늘도...그런거야?"
"응 발작 시작이야"
"이럴 땐 담담하면 안돼, 가연아...울어..너도 울어 좀! 애가 독하게 그러지만 말구!내가 남이냐?네 친구지, 친구!"
"하아...큭큭....친구라....울지도 못하는걸?"
"뭐어? 왜 못 우는데?"
창밖을 힐끗 보던 가연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감돌았다.
"없거든"
지연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눈물이"
파란하늘에 매달린 구름조각들이 어째서인지 그렇게 슬퍼보이던지 지연은 알 수가 없었다.
"자아, 오늘역사는 좀 있으면 할 중간고사로 인해 처음 페이지 부터 다시 복습하도록..."
[지이이이잉]
가연의 핸드폰이 울려댔다. 시끄러운 진동소리에 역사 선생의 안경너머 날카로운 눈이 가늘게 찌푸려졌다.
"어서 받지 않고 뭐하나요, 가연 학생?"
"실례하겠습니다"
"큼큼! 자 주목! 일단 우리나라 지도를 살펴보도록하죠. 역사부도 꺼내보세요. 은정학생, 신호 학생은 책이없는건가요?그럼 어서.."
가연이 초조한 얼굴로 뒷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예쁜 동생 가람♥]
"어,가람아 왜?"
"흐억...헉...흐읍...흐ㅇ...어,언니..쿨럭!아악!"
"가,가람아!!"
"어,언니...으윽...흑.....지,진정제가 없...ㅇ..어...허억...."
"진정제가 없다고? 화장대 위에 놓고 갔는데 없니?"
"으,응...빈 껍,..흐윽...데기 밖에...아아아악!!"
"가람아 진정해!!!!언니 금방 갈게!!!좀만 참어!!!"
가연은 반 안으로 급하게 들어왔다. 역사 선생이 그녀의 거친 행동을 보고 불쾌한 듯 무언가 말하려는 듯 하였으나 매섭고 초조하기만 한 그녀의 표정에 입을 다물었다. 가연은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가방을 챙긴 후 반을 나갔다.
"한가연 학생!!"
가연의 눈가가 어느샌가 붉어졌다.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 그녀는.....
눈물이 더이상 없는걸까? 그렇다면...어째서?
[햇빛아래얼음]의 첫번째 소설 '남자가 싫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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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왕왕 제가 일빠에요!!!!그니까 계속연재하깅~
나만을 위해서 라도도도도도♥_♥
우와 감사합니다!
으힝힁힁 화이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