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운행하는 장갑차에 의해 한국의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이 깔려죽은 사건은
단순한 사고사가 아니라 여중생들을 닭 몰듯 장난 삼아 몰고 희롱하며 깔아 죽였다는
것이고 게다가 전후진을 반복하여 확인압살까지 한 천인공노할 만행이었다는 사실이다.
이 그림을 보자. 그림은 미군 장갑차 살인범국민대책위원회 사무실에 있는 사진을
확대하여 전문가의 눈으로 보고 그린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필자는 탱크 장갑차 교육학교인 육군 기갑 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나라의
26사단 탱크중대에서 탱크를 조종했고 71년도 베트남전에 참전해서는 백마부대 장갑차
파견대에서 밀림왕 7호라는 장갑차를 1년간 조종하며 베트남의 간선도로인 일번국도를
매일 같이 누비고 다녔고 3만Km이상의 무사고 조종경력을 갖고 있는 장갑차와 탱크 조종
전문가 출신이다. 1950년생 52세 이름은 이기환.
처음 장갑차 압살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는 그것이 주행중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믿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신문이나 방송에서 여러 사람들이 고의에 의한 압살 살인이라 했을
때도 나는 그것이 주행중에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히 방향을 틀거나 아니면 급커브를
돌다가 난 사고라고 믿었다. 사람을 그것도 둘씩이나 고의로 깔아 죽인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부딪힌 적군이라고 해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고 또한 전차병은 전차자체가
대형 무기이기 때문에 탱크나 장갑차 승무원들은 사관학교생들처럼 군기가 엄하고
특히 전차병 조종수는 정신과 몸이 강건한 자가 맡기 때문에 고의로 인한 사고는 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살인을 믿지 않고 있다가 미군 장갑차병의 진술이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부터 사고 현장에 찾아가 보게 되었고 사건현장에서 나는 고의에 의한
살인임을 직감하고 치를 떨었다. 그리고 8월 26일자로 인터넷에 글을 올렸었다.
(박동익 선생님이 대신 올려줌)
제목은 어는 장갑차의 분노라는 것이었는데 그 글은 필자가 컴퓨터에 문외한(컴맹)
이라서 사건 현장사진을 보지 못하고 현장 답사만으로 쓴 것이기에 지금과 같은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러다 8월 31일날 사건 현장사진을 20여장 보고서야 충격적인 사실에 대한 확증을
갖게 되었고 따라서 이제야 확실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고 단정짓는 근거는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사건현장 답사결과 시각장애인이 장갑차를 운행하지 않는 한 그 같은 참사가
날 자리가 아니었다고 판단했고
둘째 사건 주범들이 사고사라고 해명하며 내놓는 말들이 탱크, 장갑차 조종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모두 다 시커먼 거짓말이었고
셋째 사건 현장 사진 판독 결과 소녀들이 죽음을 맞은 자리와 시신의 상태 그리고
장갑차의 궤도 자욱의 선명한 흔적들, 거기다 멀리 뒤로 떨어져 있는 신발 짝들이
모든 상황을 명확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제 이번 사건이 사고사가 아니고 희롱 압살 후 확인 압살까지 자행한 잔인한 살인
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입증해 보이겠다.
방법은 사건현장 조사를 한 것과 20여장의 현장 사진 판독 증거와 장갑차 조종
전문가로서 견해를 가지고 살인마들의 거짓 변명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분쇄해 버리고
그 위에 내 주장의 확실함을 입증해 보이겠다.
첫째장: 살인마들의 거짓 주장에 대한 전문가로서 철퇴 반박
1. 장갑차 조종수(운전병)가 여중생들을 못 봤다고 하는 거짓말에 대한 답
시야 장애가 없이 고개까지 50m 이상 쭉 뻗은 직선 도로가 사건 지점 이전부터
펼쳐져 있었고 사건 당일 6월 13일 오전 10시경 맑은 날씨였기에 눈밝은 조종수가
못 볼 이유가 없다. 토끼 새끼 한 마리도 정확히 볼 수 있는 상황인데 두 명의
여중생을 못 봤다니 그것을 말이라고 하는가. 그것도 커브를 돌고 나서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시속20Km이하로 달리는 상황에서 15m전방의 사람들을 못 봤다니,
이 살인마들아!
장갑차나 탱크의 조종수는 시력과 정신력이 좋은자만 뽑는다는 사실.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조종수가 못 봤다면 전차장이나 전방사수가 본다는 사실.
2. 장갑차 조종수가 중대장과의 교신을 하느라 신경을 쓰다가 여중생들을 못 봤다고
하는 거짓말에 대한 답
장갑차 조종수는 오로지 전방 관찰과 운전에만 신경 쓰는 것이 주 임무지 중대장
등과의 교신은 조종수의 책무가 아니다. 중대장이나 대대장 등과의 교신은 당연히
전차장(지휘관)의 임무고 그의 권한이다. 조종수는 전차장의 명령을 따르면 되는
것이다. 단 하나 예외라면 전차장이 죽었거나 의식불명일 때 조종수가 중대장 등과의
교신을 하며 지시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조종수가 중대장과의 교신에 신경을
쓰다가 두 여중생을 못 봤다는 말은 것은 거짓말이다. 그것을 말이라고 내뱉는가.
설사 중대장과 교신을 했다해도 그것은 장갑차 조종에 별 영향을 주지않는다.
조종수는 늘상 무전교신을 하며 조종을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3. 충돌이나 추돌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급히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틀다가 사고가
났다고 하는 거짓말에 대한 답
장갑차가 오르막 10m를 남겨두고 앞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앞에서 차량이 중앙선
지점을 먹은채 달려와 충돌위험이 있었다면 장갑차 조종수는 5m정도의 짧은 거리에서
상대차량과 마주쳤기에 반사적으로 온 힘을 다해 조종간(운전대)을 우로 당겼어야
한다. 그랬다면 사건 현장도로에 오른쪽궤도(쇠바퀴)의 찍어물린 자욱이 선명하게
남아있어야 하고 또한 두 여중생들의 시신이 일렬 종대로 누워있을 수가 없다.
횡으로 흩어져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앞서가는 차량과의 추돌 위험이 있었다면 앞서의 충돌 현상시 발생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전개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사고현장은 전혀 아니다.
따라서 충돌과 추돌의 위험이 있어 사고가 났다는 말은 거짓이다.
4. 과속으로 인해 사고가 났다고 하는 거짓말에 대한 답
장갑차는 차량자체가 무거운데다 일반차량과는 달리 엔진에서 나오는 동력이
스프라겟트라는 쇠톱같은 톱니바퀴에 전달되어 그 톱니바퀴에 1톤이나 되는 쇠바퀴가
씌워져 굴러가는 것이기에 평균 시속 50Km이하 정도밖에 달릴 수 없다.
사건 지점 오르막길에서는 커브를 돌고 난 직후 바로 오르막이라서 시속 20Km정도로
달렸을 것이다. 따라서 과속으로 인해 사고가 날 일은 결코 없었다
5. 도로폭이 좁아 사고가 났다고 하는 거짓말에 대한 답.
도로는 그림에서 보다시피 대형 버스 두 대가 비켜지나갈 정도의 폭이고 큰 도로에
비해 폭이 좁은 만큼 조심하게 되고 오르막길에서 장갑차가 거의 속력이 없는
상태에서 과속이 어쩌고 도로폭이 어쩌고 하는 얘기는 쓰잘데 없는 헛소리다.
6.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범들은 앞서의 여러 가지 변명들이 통하지 않을 것 같자
마지막으로 입을 모아 통신 장애 때문에 사고가 났다고 둘러대고 있다.
통신장애 때문이란 거짓말에 대해 답을 내리기 전에 왜 범인들이 통신장애라는
변명을 늘어놓는가 라는 점에 이해가 있어야 한다
일반 차량의 경우에는 운전자가 혼자서 전방을 주시하며 차량을 운행하는 것이
상례지만, 장갑차나 탱크는 조종수가 혼자서 운전해 가는 것이 아니라 전차장이나
전방사수 등 전원이 전후방을 주시하며 보조 운전자가 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만에 하나 조종수가 사람이나 전방의 사물을 보지 못해 사고 위험에 처했을
때, 전차장 등이 곧바로 헬멧에 장착된 통신 장구를 통해 상황을 알려 사고 위험을
막게 되어있다.
이 사실로 인해 조종수가 두 여중생을 보지 못해 사고가 났다는 말이 설득력이
없자 그들 살인범들은 마지막 모의 끝에 마지막 거짓말을 꺼내놓은 것이다.
그것은 통신장비가 고장이 나서 즉 통신장애가 있어 조종수에게 알려줄 수가 없어
압살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통신 장애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거짓말에 대해 이 거짓말에 대해 답하기 전에
다시한번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사고 장갑차 조종수(운전병)가 정신 이상이나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는 한 여중생들을 못 볼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시각이 180도로 활짝 열려있고 전방시야가 곧은 도로로 50m까지 확 트인 상태에서
시속 20Km정도로 서행하는 상황에서 조종수는 장갑차 앞 15m전방 직선도로 갓길을
걷고 있는 여중생들을 반드시 보았다. 확실히 보고서 오히려 갓길 바깥쪽으로
장갑차를 붙여 소녀들을 몰아댄 것이다.
장갑차는 기동성과 통신이 생명이기 때문에 어지간한 사고로는 통신장애가 나지
않는다. 내가 월남에서 장갑차를 몰던 1년 동안 한번도 통신고장이 없었다는 사실.
통신 장애 때문에 사고가 났다는 거짓말에 대한 마지막 답
이 같은 거짓말은 유치원생이 들어도 웃을 일이다.
몇 주전까지만 해도 너희 살인범들은 조종수가 중대장과의 교신(통신)에 신경을
쓰다가 사고가 났다고 하지 않았는가?
장갑차 살인범들아! 너희들은 우리가 조삼모사에 속는 원숭이쯤으로 보이는가?
이제 우리 나라는 너희들 손아귀에서 놀아야 하는 원숭이가 아니란 말이다.
둘째장: 사건 현장에 남겨진 살해 증거들
1. 신발
우리의 소녀들인 효순이와 미선이가 깔려죽은 자리에서 아래쪽으로 5m와 7m지점에
운동화 한짝씩이 갓길과 갓길옆 풀섶위에 떨어져 있었다.
이는 소녀들이 그 지점 이전부터 깔려죽은 자리까지 무엇엔가 쫓겨와서 죽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무엇에 쫓겨와서 죽었을까?
2. 궤도 자욱
사건 현장 사진 20여장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소녀들을
궤도로 5차에 걸쳐 깔아 죽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앞으로 전진해서 압상(쓰러뜨리고), 뒤고 후진한 후 옆으로(대각선으로) 전진하여
미선이의 배 아랫부분과 다리를 깔아 뭉개고, 다시 뒤로 후진하고 다시 전진하며
정확히 정조준하여 S자로 천천히 조종해가며 미선이의 가슴과 머리, 효순이의 배와
가슴 머리를 정확히 짓이기고 지나갔다. [사진은 범대위 사무실에 있음.]
위와 같은 사실들로 인해 살인마들의 주장은 완전 거짓으로 들어 났다.
이제 사건 현장 주변과 현장 사진의 증거를 가지고 실제 상황을 말해 보겠다.
미군이 운행하는 사건 장갑차는 마을을 지난 지점의 급커브를 막 돌아서 오르막
직선도로를 들어서면서 시속 20Km 이하의 속력상태로 오르며 직선도로 옆 15 m 전방의
갓길을 걸어 가는 원색 옷차림의 소녀들을 보았다. 장갑차 조종수인 워커 마크 병장은
15m 전방의 소녀들을 보는 순간부터 광기에 사로잡힌 살인귀가 되어 장갑차를 갓길로
붙여 조종하며 소녀들을 몰아 대었고, 왼쪽 옆과 뒤를 살피며 가던 효순이와 미선이는
앞서 지나가던 장갑차들과는 달리 (앞서 지나간 장갑차들은 도로 중앙쪽으로 붙여
운행하며 갓길쪽의 여유를 남겨두고 지나갔다.) 자신들이 걷고 있는 갓길로 차를 몰아
등뒤로 무섭게 쫓아오는 살인귀의 장갑차를 보고 앞으로 뛰기 시작했다.
(사람은 등뒤에서 뭔가 쫓으면 본능적으로 앞으로 뛰게 되어있다. 그리고 갓길 바로
옆으로는 1.8m 정도 언덕이 길게 막혀 있어 옆으로는 도망칠 수가 없는 곳이다.)
워커마크라는 살인귀는 더욱 광기가 어려 속력을 내어 소녀들을 몰았고, 장갑차에
함께 탔던 놈들(전차장과 전방사수)도 야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소녀들은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 놀라며 살기 위해 정신없이 앞으로 뛰었다.
상상해 보라. 이 광경을...
외마디 소리가 나오고 신발이 벗겨져 나가도록 살기 위해 뛰었지만 끝내 살인귀들의
장갑차에 덮침을 당하고 말았다.
직선도로 오르막길 30m지점 우리의 어린 소녀들이 생을 마감하는 자리였다.
소녀들은 살기 위해 공포감으로 15m를 뛰었고 장갑차의 살인마들은 새디즘적 살인
쾌감을 즐기며 30m를 달려 덮쳤다.
소녀들이 10m만 앞으로 더 뛰었으면 살았을텐데...
그러면 높은 밭언덕이 사라지는 곳이라서 옆으로 달아나 살 수 있었는데...
직선도로 오르막길 30m지점 우리의 어린 소녀들인 효순이와 미선이는 이 자리에서
이렇게 장갑차에 덮침을 당해 쓰러졌다. 그러나, 이 때까지는 장갑차 하판 아래서
경상을 입은 채 기절해 누워있는 상태였다.
(탱크나 장갑차는 차 아래 하판이 판판하고 높게 제작되어 있어 사람이나 동물이
차 아래로 기어다닐 수 있기에 저속으로 오르막을 올라가는 장갑차에 깔렸다 해도
궤도에 깔리지 않는 한 죽지 않는다. 앞으로 뛰는 사람과 뒤쫓는 장갑차의 속력이
별 차이가 없는 상황이었다면 죽지 않는다.)
하판 아래서 살아서 누워있는 우리의 소녀들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깨어나 제 발로
일어날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광기어린 살인마들은 장갑차를 뒤로 후진하여 본 바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소녀들을 확인하고 옆으로 전진과
후진을 하여 한번 깔고 다시 전진하여 소녀들의 배와 가슴 머리를 1cm의 오차도 없이
정확히 짓이기고 나갔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시신위로 궤도 자욱이 너무도 선명하게 나와있다.
골이 터지고 창자가 터져 나오고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광경이다.
우리의 꿈 많고 어린 소녀들인 신효순과 심미선양은 이렇게 죽음을 당했다.
소녀들이 죽음을 당한 아래쪽엔 두 개의 신발이 떨어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짝은 5m아래 떨어져 궤도에 깔린 자욱으로 있었고 다른 한짝은 7m아래 갓길 풀섶에
곱게 떨어져 있었다. 미선이의 운동화였다.
소녀들이 죽음을 당한 현장 주변에는 시신과 함께 살인광란의 축제를 벌이고 간
살인마들의 발자국(궤도자욱)이 여기저기에 선명하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