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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필 때면(최종회)
- 여강 최재효
아버지는 좀 전의 의사의 진단이 미덥지 못해 병원 관계자를 만나 다시 한번 다른
의사로 하여금 정밀하게 진찰을 부탁할 참이었다. 한참 만에 얼굴이 사색이 된
아버지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다른 의사와 간호원을 데리고 왔다. 그 의사는 실신
상태의 어머니를 보자 표정이 굳어지면서 거의 숨소리조차 없는 아이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의사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자꾸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치를 살폈다.
“선생님, 제 아이를 살려주세요. 살려만 주신다면 죽을 때 까지 은혜를 잊지 않겠
습니다. 제발이요, 선생님......”
어머니는 오열하면서 의사에게 매달렸지만 먼저 왔다간 의사와 똑같은 답변만을 할 뿐
이었다. 의사가 도망치듯 나가 버리자 아버지는 울부짖었다.
“이 놈들아, 만약 네놈들 자식이라면 그렇게 무성의하게 진료를 할 수 있어? 자식을
살리기 위해 이백리길을 달려온 사람들에게 그렇게 해도되는거야?”
아버지가 일말의 희망마저 사라지자 응급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남자 직원
세 명이 몰려들었다.
“아저씨, 여긴 병원입니다. 소란을 피우시면 곤란합니다.”
병원직원들은 아버지를 강제로 끌고 나가려고 하였지만 근력만큼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아버지를 당해내지 못했다.
“이놈들, 네놈들 의무가 환자를 돌보고 살려내는 일 아니냐. 최선을 다하고 안 된다면
모르지만 의사란 놈들이 청진기 하나 덜렁 들고 와 죽어가는 아이 이곳저곳 몇 번 만져
보더니 가망 없으니 그만 가보란 말이 네놈들이 할 짓이야?
응? 이놈들아.”
아버지는 응급실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였다. 병원 직원들도 더 어쩌지 못하고
아버지를 측은한 듯 바라만 보고 있다. 아버지의 통곡소리가 응급실 안을 숙연하게 만들
었다. 웬만큼 아픈 환자들은 쥐죽은 듯 조용히 누워 흘끔흘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응급실에 시체처럼 누워서 간신히 숨을 쉬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심정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고 누이 또한 자신의 부주의로 남동생이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제 동생을 살려주세요. 이제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동생입니다. 저와 부모님에게 너무 가혹하세요. 이렇게 두 손 모아 빌고 또 빕니다.
제 동생만 살려주신다면 주님을 위하여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아직 어린양을 불러
가지 마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하나님과 주님을 믿사옵니다. 아멘, 아멘, 아멘......"
누이는 밖으로 나와 기도를 올렸다. 올리고 또 올리면서 하나님께 간곡히 빌었다.
그러나 동생의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고 있었다. 어릴 때 성탄절 날 멀리 웅골에 있는
교회에 몇 번 나가본 것이 전부인 누이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찾았다. 병원 담장에
황홀하리만큼 피어있는 백목련꽃잎이 봄바람에 하나 둘 떨어지며 누이 마음을
달랬다.
5
“여보, 집으로 갑시다. 어차피 죽을 녀석, 객지에서 죽느니 차라리 집에서
편하게 가도록 합시다. 이렇게 큰 병원에서 가망 없다 하니 다른 병원엘 간들
무슨 수가 있을 리도 없을 거요. 이 애가 숨을 거두기 전에 어서 집으로 갑시다.”
침통한 얼굴을 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하자 어머니는 무엇인가 골몰히
생각하더니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래요, 어차피 죽을 녀석이라면 집에서......”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흐느꼈다.
“아버지, 엄마, 그럼 빨리가요. 재연이가 집에서 편히 가도록 해주세요. 잘못하면
길바닥에서......”
누이 역시 말꼬리를 흐리며 울먹였다.
“그래, 가자.”
“제가 업을게요.”
누이가 의식이 없는 남동생을 들춰 업고 응급실을 나섰다. 아버지는 계속 울고
있는 어머니를 부축하며 걸었다. 하늘이 점점 흐려지면서 곧 비가 내릴 것 같았다.
아버지는 전화국에 들려 동네 이장 집으로 시외전화를 신청했다. 아버지는 이장 정씨
에게 아들의 상태가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전했다.
집에는 능현리 할머니와 큰아버지 내외분이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전화가 있는 이장 집에는 아무 이야기가 없었다. 할머니는 뒤꼍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손자의 소생(甦生)을 위하여 빌고 또 빌고 있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이시여, 제 손자가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있습
니다. 그 손자가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렇게 빌고 빕니다. 손자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살려만 주신다면
이 늙은 목숨이라도 받치겠나이다. 제발 제 손자를 살려주소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할머니 눈가에 물기가 어리었지만 기도는 쉬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어머니, 그만 하세요. 그만하면 천지신명님께서 충분히 어머니의 소망을 들어
주실 겁니다. 몸도 성치 않으신데......”
할머니 곁에서 손자의 쾌유를 비는 노모를 지켜보던 큰아버지가 조심스레 말
했다. 평소 밤낮 술로 세월을 낚는 분이셨다. 멀리 황학산과 대포산이 먹장구름
속으로 모습을 감추더니 이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에구,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우리 손자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에 비까지 뿌리
시다니. 부디 좋은 소식이 있어야 할 텐데......”
할머니의 충혈 된 눈은 멀리 서쪽 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때 이장 정씨가
대문으로 들어서며 큰아버지의 옷소매를 잡고 밖으로 끌어냈다.
“이일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소. 방금 애 아버지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이장은 뜸을 들이며 우물쭈물 했다.
“받았는데? 받았는데? 어서 말해보슈.”
큰아버지가 이장을 다그쳤다.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준비라니, 무슨 준비를 하란 말이요?”
“병원의사가 보더니 가망이 없다고 해서 지금 여주로 오는 중이라고 합디다. 할머니에
게는 아직 말씀드리지 마시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할게요.”
“아아, 결국 조카를 잃어야 한단 말이냐.”
평소 재연이 자신을 쏙 빼 닮았다고 좋아하며 자신이 낳은 자식들보다 더 귀여워
했고 주막거리로 업고 다니며 사탕을 사주곤 했다. 큰아버지는 동네 이장을 데리고 주막
거리로 자리를 옮겼다.
“이보오, 정 이장, 이일을 어찌해야 하오? 그 애가 만약 죽기라도 하는 날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정 이장은 텁텁한 막걸리 사발을 들며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서울서 경찰생활을
오래했다 낙향한 큰 아버지는 이런 경우 어찌 처리해야 할지 막막했다.
“뭐 방법이 없지요. 어린애를 화장(火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어른들처럼 장사
(葬事)를 지낼 수도 없으니 이 노릇을 어찌한다?”
보통 한국전쟁을 이후에 베이비붐을 타고 집집마다 마치 경쟁을 하듯 아이 낳기
열풍이 불었다. 많이 낳는 만큼 많은 수의 아기들이 갑작스런 질병이나 홍역을 견디지
못해 단명(短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 마다 아이의 부모들은 거적이나 멍석에
아이를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가 조상들이 묻힌 선산이나마을 공동묘지에 슬며시
묻어버리곤 했다. 권련을 깊게 빨아대며 깊은 생각에 잠겼던 큰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천상 청마루 증조부 산소 옆에다 묻어야겠소. 이장은 준비를 해주쇼. 웬 비가 이리
장마처럼 내린담. 염병.”
창밖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주막거리를 나선 이장은 2반 반장을 불렀다.
“김반장, 최 씨네 막내가 오늘 아침 양잿물을 마시고 급히 수원 큰 병원으로 갔지만
가망이 없다고 하여 지금 집으로 돌아오고 있소. 장례치를 준비를 해주시오. 청년
두서너 명 데리고 가서 청마루 최씨 증조부 묘소 근처에 구덩이를 파놓으시오. 아이가
죽으면 오는 대로 즉시 장사 지내야겠소.”
아버지가 미동도 없는 재연이를 업고 여주읍내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8시가
넘어서 였다. 비가 더욱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종종 번개가 천둥을 동반하여
세상을 집어 삼킬 것 같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아버지는 서둘러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점봉리를 경유하여 청안리, 장호원, 안성 방면으로 가는
막차가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다. 마치 죽음의 세상으로 떠나가는 지옥행 차 같기도
했다.
‘아아, 이대로 저 생떼 같은 자식이 죽도록 내버려 둬야 한단 말인가. 조상님들께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자식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만 봐야 한단 말인가?
그래, 죽는 녀석 원이나 없게 마지막으로 가보는 거야, 마지막으로......‘
어머니는 속으로 탄식했다.
“아버지, 엄마 이대로 집으로 가는 거예요?”
누이가 무거운 버스대합실의 침묵을 깼다.
“그럼 어쩌니, 그 큰 병원에서도 고칠 수 없다는데…….”
“여보, 재연 아부지. 마지막으로 읍내 의원에게 가봅시다. 내 원 좀 풀어줘요.
재연 아부지.”
“그래요. 아버지 마지막으로 재연이 이대로 죽어가게 내버려 둘 수 없어요.
아버지 한번 가보세요.”
“지금 이 시간에 의원은 문을 닫았을 게다. 그리고 다 죽은 아이를 조그만 의원에서
어떻게......”
“아버지, 안돼요. 이대로 그냥 돌아갈 수 없어요. 제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시고
의원을 들려보세요. 재연이를 이리주세요. 제가 안을게요. ” 누이와 어머니의 간곡한
제의에 아버지는 차마 그냥 집으로 갈수 없었다.
“그래, 가보자, 이 녀석 마지막 원일지도 모르니, 가보자.”
비 내리는 칠흑 같은 어둠을 헤치고 아버지는 앞장서서 의원을 찾았다. 용하다는
B의원이 있었다. 아버지는 칠남매를 키우면서 크고 작은 질환이나 사고가 날 때마다
그 의원을 찾았다. 의원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아버지가 의원 현관문을 부서뜨릴
듯 두들기기를 이십 여분이 되자 간호원 아가씨가 문을 열면서 짜증나는 투로 쏘아
붙였다.
“진료시간 벌써 끝났어요. 저 안내푯말 안보이세요?”
“아가씨, 의사선생님을 잘 압니다. 우리애가 양잿물을 마시고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 수원 큰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지만 마지막으로 의사선생님에게 진찰을
좀 받도록 해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는 딸 같은 간호원의 손을 잡고 통사정을 했지만, 간호원 아가씨는 진료가
끝났으니 곤란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 간호원 말에 부아가
치민 아버지가 의원 현관문을 두들기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봐, 아가씨. 진료 시간이 끝났더라도 사람이 죽어 가는데 의사가 나와 봐야
하는 게 당연하거 아냐? 십년 단골을 이렇게 문전박대해도 되는 거냐고? 응?”
아버지가 간호원을 윽박지르며 큰소리를 내자 50초반의 의사인 듯한 사람이 나왔다.
아버지를 알아보고 문을 열며 들어오라고 했다. 청진기를 꽂고이리저리 아이를
진찰해보고 어머니에게 자세한 경과를 들은 의사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제 의술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이대로 가면 우리 동생은 죽어요. 다시 한번 천천히 살펴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의사 선생님. 으흐흐 흐흐”
누이는 맨바닥에 의원에게 큰절을 올리며 통곡을 하자 초로의 의사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일어나세요. 아가씨.”
“이런 말씀드려 안됐지만, 이 아이 상태가 너무 악화되있어서 아무 약물도 쓸 수 없는
상태입니다. 죄송합니다.”
한 가닥 희망도 수포로 돌아가자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혹시나 했던 기대가 한 순간에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다. 의원을 나온
아버지는 거의 실성한 사람 같았고 어머니는 말없이 길바닥만 쳐다보며 걸었다.
대부분의 읍내 상가는 문을 내린 상태여서 을씨년스러웠다. 그때 중앙통 거리를
걷던 어머니의 눈에 약국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안에 불이 켜져있었다.
어머니는 뭔가 스치는 영감(靈感)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 저 약국을 들려보자.”
어머니는 혹시 저 약국이 자식을 살릴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목숨이 질경이보다 질긴 거야. 내 자식을 쉽게 포기할 수 없어. 내 살점을
베어서라도 살릴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리할 수 있어. 얼마든지.’
어머니 역시 얼이 빠진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곁에서 울면서 따라오던
누이는 어머니가 휘청거리며 걷자 걱정되어 등에 업혀있는 동생을 꼭 붙잡았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동생의 양다리는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순화당 약국
앞에 이르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약국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 여보. 재연엄마. 병원서도 못 고치는 애를 약국에서 무슨 수로 고친다고......”
아버지는 순화당약국 안으로 들어선 어머니를 붙잡고 빨리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듣지 않았다.
“어서 오세요. 늦으셨네요. 어떻게 오셨는지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약사가 어머니에게 물으며 어머니 등에 업혀있는 아이를 쳐다
보았다. 어머니에게 사건의 전말을 들은 약사는 내실로 들어가더니 두툼한 의학전서를
꺼내왔다. 돋보기를 끼고 영어로 된 서적을 한참동안 뒤적였다.
“혹시, 내 처방이 들을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에게 마지막 처방이니 한번 써봅시다.
모든 것을 천지신명께 맡기고 말입니다.”
약사는 조제실로 들어가 한참 만에 약을 제조해 가지고 나왔다. 여러 가지 조제물이
혼합된 가루약 한 봉을 꺼내들더니 아이를 눕히라고 했다.
“오, 천지신명이시여. 어린 생명을 구하소서. 불쌍한 한 생을 구원해 주소서.”
약사는 기도를 올린 뒤 약을 수저에 묽게 개어 힘겹게 숨을 쉬고 있는 아이 입속으로
흘려보냈다. 아이는 이미 눈이 풀려있었고 전신이 매를 맞은 것처럼 푸르스름하게
멍이 들어있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밤 12시경 다시 한 봉지를 더 먹이세요. 혹, 이 아이가 살아난다면 그 것은 제가
아니고 천지신명님과 가족들의 정성이 살려낸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셔서 모든 것을
신께 맡기세요.”
약국을 나서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말갛게 개어있었다.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들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 누이는 심한 갈증과 시장기를 느꼈지만 자식이 사경을
헤매는 마당에 차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막차는 이미 떠나 버렸다.
누이가 막내 남동생을 업고 시오리길 집을 향해 신작로를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앞서고 가운데 남동생을 업은 누이가 걷고 어머니는 뒤에서 풀이 죽은 채 말없이
따랐다.
비 온 뒤라 길 중간 중간 움푹 팬 곳에 물이 고여 가끔 차가 지나갈 때면 사방으로
흙탕물이 튀었다. 남녘 하늘이 훤하게 모습을 드러내자 수많은 별들이 반짝거리며
슬픔에 찬 가족들을 다독여 주었다. 금방이라도 별똥별이 되어 떨어질 것 만 같았다.
멀리 황학산이 할아버지처럼 앉아서 손자를 내려다보듯 했다. 바람이 살짝 불 때
마다 봄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소쩍, 소쩍 -
황학산 자락에서 들려오는 소쩍새소리는 어머니 가슴을 갈가리 찢어 놓았다.
“저 놈의 새는 왜 하필 이런 때 저리 구슬피 우는 거여?”
아버지가 내뱉은 한 마디에 긴 침묵이 깨졌다. 자식이 언제 숨이 넘어갈지 모르는
상황에 산새까지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그때 교대로 아들을 업고 가던
어머니가 앞서가던 아버지를 급히 불렀다.
“재연 아부지, 애가, 애가 꿈틀대요.“
“이 녀석이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하려나 보오. 이리 줘요. 내가 업고 가리다.
얼른 갑시다. 애 숨넘어가기 전에 길바닥에서 죽게 할 수 는 없으니.....”
마음이 급해진 아버지는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진 아들을 업고 달리다 시피 했다.
아버지가 왔다는 말에 할머니는 맨발로 나오셨다.
“아이구, 얘야, 그래 어찌 된 거니? 재연이가 살 수 있는 거여, 응?”
“어머니, 죄송합니다. 재연이가, 운이 이것 밖에 안 되나 봅니다.”
할머니는 풀썩 주저앉으며 넋두리처럼 외쳤다.
“조상님들도 무심하시지. 이 늙은 것이 오래 살다 보니 못 볼 것을 보게 되었구나.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
아버지는 고개를 떨구었다.
“얘야, 아기를 이리 주렴.”
할머니는 가늘게 숨을 쉬는 손자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큰아버지 내외 사촌형님들
이웃들이 몰려들어 집안은 술렁거렸다.
6
간암 말기의 누이는 두 시간 이상 28년 전 나의 이야기를 힘겹게 이어 나갔다.
아가씨는 남편 될 남자의 과거 이야기에 계속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나는 중간 중간
먼 하늘을 보며 눈물을 삼켰다. 누이의 얼굴이 더욱 파리하게 보였다. 28년 전 나를
살려내기 위한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이제 죽음을 앞둔 누이의 처절했던 한편의 극적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가슴을 아리게 했다.
마치 28년 전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던 나와 위치가 뒤바뀐 것 같아 송구함 마저
들었다. 이미 어머니에게 종종 들어왔던 나의 전설 같은 이야기지만 누이는 마치
어제 일어 난 일처럼 생생하게 표현해 주었다. 마치 평생을 도자기 만들기에 받친
장인(匠人)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마지막 작품을 만들 듯 이야기 한마디 한마다에
누이의 한(恨)이 섞여 있는 듯 했다.
“누님, 쉬었다 하세요. 힘들어 보이세요.”
“아니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가슴에 담고 있던 이 이야기를 너에게 모두
들려줘야해. 너만 보면 나는 힘이 난단다. 그때 너는 우리 가족들에게 불사신이었어.
불사신. 이제 나의 시간도 다된 듯 하구나. 시간이 다......”
누이의 눈빛에는 비장함마저 녹아있었다. 아가씨가 누이의 촉촉해진 눈 가장자리를
닦아주었다.
“아가씨, 우리 동생 장하죠?”
“네에, 전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오늘 들은 이야기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 할 거예요”
아가씨는 차가운 링거바늘 자국으로 파랗게 물든 누이의 팔을 잡고 미소를 지어보
였다. 빨대로 주스 한 잔을 힘들게 마신 누이는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송장 같은 손자를 안방에 눕히고 할머니와 어머니 큰어머니 누이는 뒤꼍에 있는
장독대로가 정한수를 올리고 다시 천지신명께 빌기 시작했다.
“천지신명님, 어린 손자를 저리 버리실 작정이십니까? 너무 불쌍해서 그냥 보낼 수
없습니다. 차라리 이 늙은이를 먼저 데려가시고 내 남아있는 세월 만큼 이라도 손자에게
주십시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최씨 집안을 굽어 살피소서.”
할머니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지극정성으로 빌자 어머니와 누이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흐느꼈고 아버지는 신음소리를 삼키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봄바람이 한번
스치고 지나가자 장독대 옆에 있는 목련과 불두화(佛頭花) 나무가 심하게 흔들리더니
꽃잎이 날렸다. 방에는 동네사람들이 한 명 두 명씩 교대로 들어와 의식이 없이 누워있는
어린 아이를 보며 착찹해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에구, 불쌍한 것.....”
자정이 되자 어머니와 누이가 방에 들어왔다. 약국에서 조제해준 약을 먹일 시간
이었다. 어머니는 젖을 짜서 약을 개어 아이의 입을 벌리고 간신히 흘려 넣었다. 아이는
약간 움찔하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약을 먹인 어머니는 그만
정신을 놓았다.
“엄마, 엄마 정신 차려. 엄마.” 누이가 울부짖자 사람들이 안방으로 몰려들었다.
“여보, 재연 엄마, 재연 엄마, 정신 차려, 재연 엄마. 재연엄마......”
아버지가 거의 울음에 가까운 소리로 어머니를 흔들었으나 어머니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극한 긴장이 연속되자 그만 혼절을 한
것이다. 다시 집안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아들이 생사의 갈림길에서 어머니마저
정신을 잃어버리자 아버지조차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여보, 재연엄마, 정신 좀 차려보구려. 어이 으흐흐 흐흐흐...... 아버님, 조상님 제가
뭘 잘못했기에 저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네에? 말씀 좀 해보세요. 말씀을요.”
아버지는 고개를 떨어뜨리고 통곡하였다.
어머니는 건넌방으로 옮겨지고 거의 혼이 나간 누이들과 형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바로 아래 막내누이는 겁에 질려 훌쩍거렸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군대에서
의무병으로 근무한 적이 있던 유씨가 연락을 받고 달려와 어머니에게 응급처치를
했다.
“재연 아버지, 큰일은 아니니 걱정 마오. 아주머니께서 극심한 피로 때문에 잠시
혼절했으나 안정을 취하면 일어날게요.”
사랑방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이장과 반장 그리고 동네 장정들이 지게와
곡괭이 삽 횃불을 준비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한 식경 후 깨어나자 집안은
다시 안정을 찾아갔다. 할머니와 큰어머니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새벽별이
졸음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 둘 숨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누나, 누나 ......”
깊은 산속에 나는 홀로 걷고 있었다. 산은 모두 붉은 나무로 꽉차있었고 종종 집채만
한 독수리 같은 새가 날아들기도 했다. 계곡에서는 새소리 대신 사람들의 신음소리가
들렸고, 물대신 붉은 피가 흘렀다. 겁에 질려 누이와 엄마를 아무리 찾아도 어디 있는지
대답이 없었다. 까만 해가 내리쬐는 빛이 너무 뜨거웠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길이 이어졌다. 어느 산에 이르니 그 곳에는 나무 대신
온통 피 묻은 칼이 꽂혀 있었는데 멀리서 어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며 손짓을 하고
있었다. 온 몸이 피로 얼룩져있는 그 사람은 큰 소리로 울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다시 얼마쯤 더 가자 검은 물이 흐르는 강에 도착했다. 하얀 모래사장에는 빨간
모자를 쓴 수많은 아기들이 ‘엄마’, ‘엄마’ 하며 울고 있었다. 어떤 아기는 울다가
지쳐 스러져 잠이 들어 있기도 했다. 아기들은 그곳에 머문 지 오래된 듯 뼈만 앙상
하게 남아 있었다. 시커먼 강에는 악어처럼 생긴 큰 물고기가 모래사장에 있는
아기들을 노려보며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잡아먹을 기세다. 강 건너에는 온통
하얀빛이 찬란한 세상이 있었다.
그러나 그 강을 건너 갈 방법은 나뭇잎만 한 배 한척이 고작이었다. 아기가 어렵게
그 배를 타고 가면 무시무시한 물고기가 달려들어 한입에 아기를 물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아기들은 계속 손바닥만 한 작은 배를
타려고 강가로 기어나갔다.
그때 금색 옷을 입은 어떤 수염이 긴 할아버지 한분이 내게 다가와서 내 얼굴을
이리저리 천천히 뜯어보더니 묻는다.
“아가, 네 이름이 뭔고?”
“최 - 재 - 연”
“집은 어딘고?“
“여-주-군-여-주-읍-점-봉-리”
나는 또렷하게 이름과 동네 이름을 댔다.
“으음, 그래. 네가 그만 길을 잘못 들었구나. 더 있다 와도 되는 길을 너무 빨리
들어왔구나. 자 나에게 업히거라. 네 조상들의 선덕(善德)과 부모 형제들의
울부짖음이 너를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구나.”
그 할아버지 등에 업히자마자 늘 큰아버지 등에 업혀 사탕을 사먹던 눈에 익은
주막거리가 보였다. 멀리 느티나무가 보이고 집이 보였다. 사랑채 앞마당에는 여러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심각한 얼굴로 무엇인가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저기 너희 집이 보이는 구나. 이쯤이면 혼자 갈 수 있겠다. 잘 가거라. 먼 훗날
보자꾸나.”
금빛 옷을 입은 할아버지는 금방 없어졌다. 나는 엄마와 누나가 보고 싶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향해 뛰었다. 그러나 마당에 서있는 사람들은 누구도 나를
본체만체 했다. 그중에는 사촌 형님득과 외삼촌도 있었지만 누구하나 나를 알아
보는 사람이 없었다. 안방 문을 열자 엄마와 누나가 나를 보며 반겼다.
“엄마, 누나”
나는 소리를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재연 아부지, 재연 아부지. 재연이가 깨어났어요. 보세요. 애가, 정말로 깨어났다
고요.”
이불 위에 죽었다고 체념했던 어린자식이 빙긋이 웃고 있었다.
“오오, 천지신명이시여, 조상님.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형제들은 빙 둘러 앉아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이야기를 마친 누이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있었다. 나는 더 이상 병실에 있기
어려워 화장실로 뛰어갔다. 이야기를 마친 누이의 얼굴은 온화해 보였다. 늘 가슴
속에 담고 있던 이야기를 내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들려주려고 했었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없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초등학교 때 자주
놀러갔던 누이 집에 들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갔다
온 뒤로는 일년에 한번 정도 겨우 누이를 찾게 되었다. 늘 객지에 나가 있으면
서도 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해 2월 하순 누이는 46세로 세상을 마감했다. 어린 3남매를 두고 떠나는 누이는
가슴이 미어졌으리라. 차마 하얀 길을 떠나지 못했으리라. 누이가 떠나는 날 아버지
는 하루 종일 집안에서 나오지 않으셨다. 그리고 한 달 후 나는 그 아가씨와 부부가
되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처남댁이 폐백을 올리는 자리에서 큰 매형은 소리 없이
눈물을 훔쳤다. 세상여행을 마칠 때까지 나는 누이의 사랑을 잊지 못하리라. 또한
매년 목련꽃이 필 때면 나는 남모르게 속앓이를 해야 한다.
- 끝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고맙습니다~~~
어릴적 먼저간 동생 생각에
마음이 찡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