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노년의 일상》은 2023년에 발간한 수필집으로써, 나의 수필집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발행했다. 지난번 수필집 을 낸 지 겨우 2년 만에 발간했다.
나의 수필 쓰기 열정이 노 년이 되어서도 줄어들지 않았음이 고마웠다. 지난 수필집에 서는 소설 쓰기 기법을 수필에도 가져오자는 주장을 하면서 펴낸 책이다. 이번 수필집에서도 그 주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전통적인 수필 쓰기 기법으로 나의 노후 생활을 쓴 글도 많이 실렸다. 노년의 시선으로 바라본 글이기도 하였 다. 사회적으로 효용 가치가 떨어진 노인들을 소재로 쓴 글 이라서 노인들이 홀대받는다는 노여움도 담았다. 노여움에 는 잘못된 사회를 바르게 바라보려는 나의 태도가 옳았다는 믿음도 실려있다.
. 머리말에서 내가 내 글을 어떻게 보았는 지를 보자. “2021년에 발간한 수필집 《우리 친구가 맞지》는 예전과는 좀 다르게 쓴답시고 소설의 기법을 도입하려 했습니다. 멀어 진 독자의 관심을 끌어오려면 재미를 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번의 수필집은 이야기 만들기를 좀 더 확장하여 거의 소설에 가깝도록 쓰려는 것이 나의 의도입니다.
그러나 수필 이니만큼 소설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지 않을까 싶어서 소설 과는 차이가 나도록 이런저런 시도를 해본 것이 이번 수필 집입니다. 특히 ‘기똥찬 방 방망이’에서는 새로운 수필이면서 소설에 가까운 글을 쓰려고 하였습니다.” -
《노년의 일상》 머리말에서 또 하나는, 나의 가치관이 사회의 흐름과는 맞지 않았다. 나이를 먹으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는 보수화가 되어서 내 게도 그렇게 나타난 일반적인 현상일 뿐인가. 정말 그런가, 라며 자책도 해보았지만, 세상을 불편한 심기로 바라보는 내 생각이 별로 변하지 않았다. 나의 불만은 나라가, 대통령이, 정치 지도자들이, 라고 하는 거창한 데서 느끼는 것이 아니 다. 나의 생활 주변에서 내가 겪은 소소한 일들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겪은 주변 이야기가 수필의 소재가 많이 되었다. 마뜩잖은 시선이니까 당연히 사회 비판적인 글이 되어 버린 284 내 글을 내가 읽다 다. 노인은 <살아 있는 한 권의 책>이라는 글을 읽었다. 노인 이 된 분을 만나 그분이 걸어온 인생사를 인터뷰하면 우리 노인들이 살았던 시대의 삶을 읽어 볼 수 있으라. 용기를 내 어 공원에 멍하니 앉아서 쉬고 있는 노인분 곁에 다가 갔다. “한 번은 성당못에서 허름한 차림으로 혼자 멍하니 앉아 계시는 분의 옆에 슬며시 앉았다. 쭈빗쭈빗하다가 ‘할아버지 는 고향이 어디세요?’ 하였더니 나를 힐끗 처다보더니 일어나 서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나는 멋쩍어서 다시는 그런 시도 를 해보지 못했다.
가까운 친구더러 그 얘기를 했더니, ‘이 친 구야, 요즘에는 노인들에게 접근하여 사기치는 자들이 있다 잖아. 아마 사기꾼으로 보았을 거야.’ 한다. 모처럼 용기를 내 서 말을 걸어 보았는데 사기꾼 취급을 받았단다. 그 후로 다 시는 노인에게 말을 걸어보지 않았다. 이것이 세상이란 거다. 나는 순진하게도 옛날이야기나 듣고 싶었는데…….
(2023, 수필과비평사) - 《노년의 일상》, <하고 싶었는데> 부분
이 수필집은 1장章은 소제목으로 <노년의 일상>으로 하여 11편을 실었다. 지금의 내 나이쯤인 노인들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는 지를 다루어 보려 하였다. 위에서 인용한 <하고 싶 었는데>의 글도 그런 취지로 쓴 글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회 의 서글픈 한 단면을 본 듯하여 쓸쓸하였다. 사회를 들여다보는 내 눈의 시력도 노화하여 형상들이 흐 릿하니 올바르게 보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찌하든 내 생 각을 쓴 글이다.한 편을 보자.
<부자 방망이 팝니다>
세상을 사노라면 바라는 일들은 꼽을 수도 없을 만큼 많지 만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일본 사람은 우리 가 사는 세상을 근심만이 떠다니는 세상 부세浮世라고 했다. 우리 모두는 근심은 저 멀리 날려버리고, 바라는 일들은 모 두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보물찾기하듯이 방법을 찾아다니 지만 절대로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얼마나 간절했으면 파우스트는 영혼까지 팔았을까. 이카 로스는 아버지가 과학적인 방법으로 날개를 만들어주었지만 이 또한 실패했다.
이도 저도 안 되니까 도깨비방망이란 이 야기를 만들어 냈다. 나는 어렸을 때 상상으로만 즐겼던 장 난감이었는데, 어른이 되니 문학이라고 하였다. 철학도, 과 학도, 문학도 해결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리라. 실망하는 나에게 유혹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허황한 도깨 비방망이가 아니고, 과학과 수학으로 계산하여 만들어낸 현 대판 부자 방망이라고 했다. 상술도 보통이 아니다. 부자 방 망이는 머리에 뿔이 난 도깨비만 만드는 것이 아니란다. 두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도 흔하디흔하게 널려 있는 것이 부자 방망이라고 했다. 목소리를 죽이더니 ‘그렇 더라도 아마 영혼은 팔아야 하리라.’는 말을 보탰다.
요즘 세 상에 영혼다운 영혼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고물이나 다름없는 그 따위 영혼이 아까울 리 없다. 사겠다 면 당장 팔아버리고말고. 나는 솔깃했다. 솔깃해하니 판매 상품을 널어놓은 좌대로 데려가서 나와 흥정하잔다. 뒤에는 매직팬으로 ‘부자 방망이를 팝니다.’라 는 글을 써서 붙여 놓았다.
쭈욱 훑어보았다. 맨 앞에는 ‘권 력’이라는 상품명이 붙어 있다. 맨 앞에 둔 것을 보면 잘 팔 리는 인기 상품인가 보다. 최근에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였던 어느 가족사진이 붙어 있었다. 내가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니 까 ‘아, 요즘 이 상품이 제일 인기가 있어요. 가짜를 만들어서 진짜라고 내세우고, 어렵다는 대학에 쑥 들어가려면 권력만 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지나쳤다. 아무래도 권 력을 휘두르기에는 그릇이 작은 나로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다음 상품은 ‘돈’이었다. ‘돈’이야말로 매력적인 상품이 분명하다. 나는 돈을 모으려 안달하면서 살아왔던 지난날을 떠올리면서 한참이나 서 있었다. 상인은 내가 관심을 보인다 싶었는지 ‘돈’이라는 상품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면서 ‘이건 알 뜰살뜰 모은 돈이 아닙니다. 그런 돈은 상품 가치가 없습니 다. 뇌물도 쓰고, 권력을 끌고 와서 압력도 넣으면서 한 번에 왕창 벌어들인 돈입니다. 개발회사를 만들어서 큰 돈 만든 성 공 사례를 아시지요. 그 바닥에서는 교과서에도 실릴 수 있는 업적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런 돈이어야 상품 가치가 높아지 는 겁니다.’
여기서도 나는 발을 옮겼다. 김영란 법의 서슬이 시퍼런데 뇌물을 바쳐야한다니, 몇 푼짜리를 다루는 김영란 법에도 겁부터 덜컥 내는 좀생이인 나로서 엄두가 나지 않는 다. 상인은 다시 한 말씀 한다. ’큰돈을 벌려면 간땡이도 부어 야 하고, 머리 굴리는 것도 뛰어나야 해요. 자신이 없겠지요.’ 약간 비웃는듯한 말투다.
다음 상품은 ‘패거리’라고 쓰여 있다. 권력과 돈은 이해가 갔지만 ‘패거리’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생각나지 않는다. 장 사꾼은 역시 눈치가 빠르다. 또 상품 설명을 한다. ‘손님, 뭉 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말을 들어보셨지요.’ ‘이승만 대 통령의 말씀이잖아요. 나만큼 나이 든 사람이라면 다 아는 말 이지요.’ ‘맞습니다. 바로 그 ‘뭉치면’입니다. 아무리 약한 꼬챙이라도 다발을 묶으면 부러지지 않잖아요. 그렇게 하자는 것입니다.’ 나는 얼른 이해가 되지 않아 ‘나쁜 말이 아니잖아요.’라 했다. ‘나는 좋은 말인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고, 상품 가치가 있으니 파는 장사꾼이잖아요. 패거리가 부자 방망이 의 일을 해내니 파는 것이지요.’ 한다.
그 외에도 구미가 당기는 상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학벌이란 것도 있고, 뒷배라는 것도 있고, ‘든든한 아바이’ 라 는 상품도 전시되어 있다. 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세뇌되어서인지 ‘뭉치면’이라는 전제를 단 상품이 제일 마음에 든다. 가게 주인이 말하기를 이 상품은 고객이 영혼을 팔아야 하는 상품인 줄도 모르니 어리석은 대중이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알 듯, 말 듯 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가게 주인 말대 로라면 이 상품을 관심 있어 하니, 나는 영혼을 파는 줄도 모 르는 왕바보라는 뜻이다.
어쨌거나 가게 주인은 상품을 팔려 고 걸쭉한 입담을 늘어놓는다. ‘아, 고객님. 괴물 시를 쓴 최영미라는 시인 알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했다. ‘최영미 시인이 그런 시를 썼다고 건장한 남자 시인이 팔을 걷어붙이고 힘자랑을 하더라는 말도 들었 지요.’ 한다. 또 고개를 끄덕였다. ‘패거리의 대장을 ‘괴물’이 라고 하니까 한껏 충성심을 보여준 것입니다. 내가 당신 ‘패’ 의 일원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기회였지요. 그렇게 하면 문학상 하나쯤은 집어줄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그제서야 패거리 상품이 무엇인지 어렴풋하나마 이해가 된다. 별 볼 일 없는 예술인은 홀로 서려 하지 않고 패거리에 기대려 한다. 많은 예술 문화 단체들은 상이라는 메달을 만들 어서 홀로서기를 못 하는 예술인을 유혹한다. 그런 메달이라도 받으려면 패의 괴수에게 충성해야 한다. 명함에 올릴 수 있는 경력도 집어 주고, 충성심이 더 깊어지면 ‘수상’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붙이도록 해준다. 나에게도 패거리가 준 메달이 있으니, 영혼을 팔아서 부자 방망이를 손에 쥐어 본 일이 있었나 보다. 돌아서는 나의 등 뒤에서 장사꾼은 한 마디 던진다. ‘앞으로 좋은 날이 오면 지금 상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받았다 는 사실이 부끄러워 질 것입니다.’ 부자 방망이를 파는 가게 가 문을 닫는 그런 날이 온다고……, 나는 중얼중얼 했다. 그 런 날이 정말 오기나 할라고
(2022). - <부자 방망이 팝니다> 전문全文
나는 우리 사회가 공정한가에 대해서는 회의하고 있었다. 그래도 정신적으로 고상하다고 하는 사람들인 문인들이 감 투에, 문학상에 우- 몰려들고, 또 시비를 걸고, 다투는 것을 보고 실망하였다. 더구나 나이 든 사람이 ‘선배님, 선배님’이 라고 하는 말에, 또 ‘원로 문인’이라고 불러주는 말에 도취하여 있는 모습도 보기 좋지 않았다. 더더군다나 문학 모임에 소속되어서, 그 모임을 이용하려는 행태에도 실망하고 있었 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꼰대’라며 나이 든 자를 치받는 것 을 보고 실망을 넘어서 분노하였지만, 나 또한 꼰대들과 한 부류라는 자괴심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심정을 글로 써 보았다. 그리고 나는 수필에도 환상적인 요소도 도입하여 좀 더 재 미있게 표현할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도 하였다. 여기서 생각 해 낸 것이 우리의 민담에서 말하는 도깨비방망이였다. 일명 ‘부자 방망이’라고 하는 그 방망이를 가져와서, 내 욕망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수필은 내면을 토로하는 독백형식이 아닌가. 도깨비방망이는 나의 내면을 나타내고, 표현은 나의 독 백이라고 상정해 보았다. 그래서 도깨비방망이를 가져와서 수필을 연작으로 쓰는 시도를 해보았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하나, 하나의 삽화가 되어서 연결되는 연작 수필을 소설의 형 식을 빌려서 써보았다. 도깨비방망이, 또는 부자 방망이라는 것은 환상이 만들어 낸 거짓이다.
수필 쓰기에서 ‘거짓’이라는 말이 어른거리기만 해도 기겁을 한다. 허구라는 말에 두드러기 반응을 일으킨다 면 도깨비방망이라는 상상력의 산물을 도입해 보자는 의도 로, ‘기똥찬 방망이’라는 이름의 연작 수필을 써 보았다. 분류 한다면 소설 쪽에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소설은 아니 다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써 본 글이다. 시비를 걸고 따진다 면 수필과 소설의 기법을 혼합한 것이라고 말하겠다. 내 글을 내가 읽기에서 소개하는 이유도, 수필의 쓰기 영역 을 확대하여 수필의 활로를 뚫어보자는 의도이다. 앞의 수필집 《우린 친구가 맞지》에서도 소설 쓰기 기법을 차용해보았다. 그러나 이번 수필집에는 조금 다른 방식이라 고 말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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