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아직 시청전..
신해철 젊어서 한창 인기 있던시절 콘서트장에서 경호일 했던 여자분이 쓴글을 봤는데, 팬들이 주위에 넘쳐나고 함성소리 나고, 뭐 주위가 완전 혼잡하고 정신없던 와중에, 자기들이 앞으로 뛰자, 신해철이 자기한테 뛰지 말라고 니가 뛰어서 다치면 너희 부모님이 얼마나 아프겠냐고 뛰지 말라고 말해줘서 그때 굉장히 감동받았다는 글..
해철님 정말 소탈하셨어요
옷도 츄리닝 운동복 하나만 고집한다고 하잖아요
절대 다른거 안입는다고 부인이 얘기했던것도 봤어요
삼선 슬리퍼와 츄리닝 한벌만 있음 1년 365일 괜찮다고..
아무거나 탈게라고 했던 소박한 사람..
정말 화려하고 사치하는 연예인들과는 거리가 먼사람..
있을땐 있는대로 퍼주고..ㅠㅠ
낡은 벤츠가 심금을 울리네요..
교황같고 성자같았던 삶..이라는 글..
평론가 강헌씨가 말하던데….넥스트 투어 끝난 날 주점에 다같이 갔다고 합니다.넥스트 초기니까 한참 잘 나갈 시기…
신해철은 술은 못하지만 밴드 리더니까 가야죠…
그리고 아시겠지만 룸에는 오부리가 나옵니다. 반주해 주는 아저씨죠.
보통 반주연주해 주는 기계와 전자기타 메고 들어오는 거 보신 분들 많으실 겁니다.
말이 반주지… 사실 제정신 아닌 취객들 전부 상대하려면 어지간한 멘탈로는 버티기도 힘듭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영화에서 취객이 강요하니까 빨개벗고 기타치던 오부리 씬을 기억하시는 분들 계실 겁니다. 정말 눈물나게 인간세상이 싫어지는 씬이죠….
하여간…. 분위기 무르익고… 신해철도 노래를 하러 나왔는데…
그 반주 아저씨에게 공손하게 말하더랍니다.
“선배님….
우리가 오늘 힘들게 일을 끝내서요…
혹시 실례되더라도 좀 봐주세요…”
나중에 강헌씨가 물어 봤답니다.
“해철아, 아는 사람이냐? 선배야???”
그러자 신해철 왈…
“아뇨, 하지만…
저 분도 젊으셔서 뮤지션의 꿈을 가지고 사셨을 거 아닙니까…
지금은 이렇게 반주하시지만 음악의 꿈을 쫓던 제 선배님이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평소 소신있는 행동 때문에 트러블도 있었지만
약자들에 대한 마음이 너무나 따스했던 사람이란 걸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 주는 에피소드더군요.
비록 룸에서 오부리를 하면서 취객들이 던져주는 팁으로 살아가지만 음악에 대해 꿈이 있었던 사람을 인생의 선배로 깍듯하게 대하던 그의 진지하고 따스한 마음…이라는 글..
연예인 신변잡기용 프로는 안 보는데.. 근래 신해철씨 나온 방송은 다 다시보기로 보고 있어요.
그중에서 기억남는건 세바퀴에서 다들 김종민씨 바보취급하는데 신해철씨는 김종민씨한테 그러지 말라고 감싸더라구요.
김종민은 그 캐릭으로 먹고 살긴 하는데.. 신해철씨는 그것마저 속 상했던 것 같아요..
라디오스타에서도 노유민씨 다들 바보라고 깔아뭉갤때.. 애정한다고 하고.. 옆에서 챙겨주고..
솔직히 락부심 부리는 사람들 댄서 출신들 가수나 립싱크 하는 애들 무시하잖아요.
해철씨는 그런거 없더라구요.
그냥 착해요.. 착해..
다큐에서 보이는 모습들도 저런 남편, 아빠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고..
너무 행복해서 신이 뺏어간 것 처럼...
이제까지 음악만 들었는데 인간 신해철을 보니 너무 너무 너무 안타까워요.ㅜㅜ..라는 글..
아빠가 얼마나 좋았으면
딸이, 커서 아빠랑 결혼하고 싶어도 아니고 커서 신해철이 되고 싶어라고 했을까요.
아빠가 얼마나 좋았으면
아들이, 커서 아빠처럼 큰 신발 신고 싶어가 아니고 아빠 신발을 갖고 싶어라고 했을까요..라는 글..
집가까운 추모공원 이름이 병원이름이랑 같은 스카이라 다른 곳으로 안치했다합니다..
故신해철의 낡은 벤츠와 오래된 흔적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조우영 기자] 하늘이 울었다가 웃었다. 고(故) 신해철을 떠나보낸 두 날이 그랬다. 고인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한 시신 부검을 마치고서야 맑게 개인 파란 하늘은 유난히 시렸다.말 한 마디 못하고 떠난 아쉬움이 다소 풀렸던 것일까. 고인이 가는 길 붉게 물든 단풍은 하이파이브를 하자며 손을 벌렸고, 가로수길 은행은 그리움의 노란손수건을 매단 듯 보였다.↑ 故 신해철의 유해가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 잠들었다(사진=유용석 기자)
지난 5일, 고 신해철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먹고 살기 힘든' 탓에 앞서 10월 31일 진행됐던 고인의 발인식은 배웅하지 못했던 터다.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중립을 지키고 객관성을 담보해야하는 기자가 울면 안 됐다.원지동에 있는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된 고인의 유해는 분당 수내동 음악작업실과 경기도 광주 자택을 들러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 잠들었다. 자택에서 차량으로 이동했을 때 약 1시간 30분 떨어진 거리다. 분당스카이캐슬추모공원이 고인의 집과 가깝게 있었으나 S병원과 이름이 겹쳐 유족은 안성까지 가게 됐다.↑ 故신해철이 생전에 탔던 카니발 승합차량과 그가 머문 자리
당시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던 기자는 고 신해철 매니저의 차량을 얻어 타게 됐다. 차량에 오른 순간, 그렇게 참고 참았음에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기자가 탄 차량은 신해철이 생전 타고 다니던 중고 카니발이었기 때문이다.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는 신해철의 담배 재털이와 라이터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매니저는 한숨을 내쉬었다. "(신해철) 형님이 이 차 한 달도 못 타고 가셨네요. 회사에 돈이 없어서 벤은 못사고 이제 이 중고차로 열심히 해보자 하셨었는데…." 그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차에 욕심이 없으셨어요. '그냥 아무거나 태워주는 거 타고 다닐게'라며 해맑게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故신해철의 개인차량
고 신해철의 개인차량은 벤츠 C180 모델이다. 고급 외제차이긴 한데 연식이 오래됐다. 출고된지 10년이 훌쩍 넘은 차다. 중고차 시장에서 700여 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유명 연예인의 차임에도 번쩍번쩍 빛나는 타이어휠이나 광택은 없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히려 군데군데 생채기가 많다. 차가 주인을 닮았다. "고장이 자주 나서, 로드 친구(매니저)가 고생 좀 했죠."↑ 故신해철의 음악작업실과 인근 가로수길(사진=KCA엔터테인먼트 제공)
고 신해철이 수년 간 머무른 음악작업실도 소박했다. 오래된 빌딩 지하였다. 철문은 굳게 닫혀있었지만 낡은 소파와 책장에서 그의 온기가 느껴졌다. 책상에는 신시사이저와 모니터 하나 달랑 놓였을 뿐이다. 의자는 돌아오지 않는 주인에게 삐쳐 있었다. '천재 뮤지션' 소리를 들어온 고인의 음악은 이곳에서 나왔다.고 신해철 개인의 도의적 빚이 꽤 됐다. 한때 싸이렌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며 후배들을 이끌었던 그는 당시 빚만 졌다.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어도 그는 마음으로 진 빚까지 갚고자 했다. 정 많은 고인에게 사업이란 마이너스통장이나 다름 없었다. 그가 현 소속사 KCA엔터테인먼트에 둥지를 틀고, 올해 7월 약 6년 만에 발매했던 신곡 '아따'의 원맨쇼 뮤직비디오가 나온 이유 중 일부다.↑ 신해철 "아따" 뮤직비디오 영상 갈무리(사진=KCA엔터테인먼트 제공)
경기도 광주 자택은 1년 전 이사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이제 온가족이 함께 모여 공기 좋은 곳에서 살고자 했다. 단독주택인데 월세다. 임대료는 150만원가량으로 알려졌다. 가세가 기운 것은 아니다. 검소하다고도 할 수 없다. 다만 고 신해철은 많이 벌면 많이 쓰고, 적게 벌면 적게 쓰는 사람이었다. 그저 버는 만큼 한솥밥을 먹는 소속사 식구들과 선후배 뮤지션들에게 후했다.고인의 매니저는 빈소가 마련되자마자 영정 앞에 일명 '삼선슬리퍼'를 사다놓았다. 소탈했던 신해철은 평소 '짝퉁' 삼선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매니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다음에 정품을 사다주겠노라고 약속했었다. 그렇게나마 뒤늦게 약속을 지킨 그는 고인을 추억하며 갑자기 하늘을 올려다 봤다. "아! XX, 오늘 참 날씨 좋네. 모셔서 영광이었습니다." 이날은 비가 오지 않아 그의 흐르는 눈물은 감춰지지 않았다.
저 작업실에서 지난 6년간 140곡을 작곡..
3개월마다 앨범을 낸다고 농반진반 약속..
살려내...
첫댓글 원래도 좋아했지만.... 요사이 기사등등...알면 알수록 너무 아까운 사람...ㅠㅠ 아이들과 아내에게 더 없이 좋은 사람.... 앞으로 얼마나 더 좋은 음악을 들을수 있었는데...그런사람이 이제 없네요....너무 너무 안타깝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