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file294.uf.daum.net/image/995439465D932434025CB2:,: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내아버지가 생전에 너무도 아끼신 귀한 동지들 중에 백산 안희제(白山 安熙濟 1885~1943))선생이 계신다.
경남 의령(宜寧)출신으로 부산 동광동에서 큰 규모의 백산 무역회사를 운영하며 비밀리에 상당금액을 독립자금
에 조달하신 기업가면서 동시에 항일운동가셨던 것이니 그 무역회사는 상해임시정부와 연결된 국내 핵심 비밀
거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비밀리에 자금을 전달한다해도 결국은 일제의 그물에 결릴수 밖에 없었으니 급기야 그분은 체포
되어 그들의 가장 악독한 고문을 받다 결국 바로 죽음직전에 석방되어 가족에게 인계되신다. 그들은 시체처리도
귀찮고 끝까지 고문으로 죽였다는 오명은 남기기 싫어 살아서 나갔다는 명분을 받기위해 특히 독립운동가들은
숨이 마지막 붙어있을 때 즉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전혀 없을 때 죽기직전 가족에게 인계된다. 살았을 때 석방된
다는 확인도장을 받고.
지금도 부산 중구 동광동 <백산길> 일대 그 회사가 있던 자리엔 이를 기념하는 백산기념관이 세워져있다.
나의 아버지는 박정희 혁명정권에 의해 사형구형 10년 선고를 받고 감옥살이를 하셨는데 같이 들어간 모든 동지
들도 일제때 감옥살이를 하다 이승만정권에서 또 박정희정권에서도 감옥살이를 계속하셨으니 일제와 같은 정권
의 연장 아닌가. 그러나 국제적으로나 엠네스티에서 박정권에 항의를 많이하여 결국 박정희는 할수 없이 도중에
그분들을 특사은혜라며 내놓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국내인들은 자신의 기반을 위한 간첩조작같은 희생물로
여겼으나 외국인들에겐 매우 약한 사람이었으니.
아버지가 감옥에서 나오시자마자 상한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찾아가신 곳은 바로 의령의 그 안희제선생 묘소
였으니 아버지는 감옥살이 내내 그 동지를 한시도 잊지 못하고 계셨던 것이다. 부산에서 의령은 경상도 최동쪽
끝에서 서쪽으로 터덜거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한참 한나절을 가야하는 먼길인데 아버지는 거의 매년 그 산소를
찾아가셨고 6년째 되던 해 드디어 얼굴이 하얘져 집에 돌아오시자마자 쓰러지셨으니 그 후 17년간이나 누워
계시다 1987년 숨을 거두셨다. 지금 천상에서 아버지는 그 귀한 동지들과 함께 계실까.. 아직도 진정한 해방을
못찾은 조국을 내려다 보며 통분해하고 계실까..
5.16이 나자 부산대에 감연히 사표를 내시고 투쟁을 위해 서울가실 때까지 계시던 부산대에서 한번은 대학입시
에서 입시생들을 면접 볼 때 의령고 출신이 있어 '자네 안희제선생을 아는가?'라 물었더니 그 학생은 모른다하여
단번에 불합격시켰다 하셨다. 그 지방출신의 위대한 독립운동 대애국자를 모르다니.. 아무리 정치과를 나온다
해도 그는 바른 애국자가 될 가망이 없다는 주장이셨는데 당시 고교생이던 나는 그 말씀을 듣고 그 학생이 참
불쌍하단 생각이들었다. 당시에도 부산대 정치과는 입시 율이 센 곳이었는데 그학생은 학교선생들이나 부모들
이나 누구에게서도 그분 말씀을 듣지 못했던 것인데 너무 억울한 것 아닌가 싶어.. 의령에서 부산까지 나와 입시
를 본다는 건 시골학교에서 꽤 상위권의 유망주였을 텐데.. 그는 의령으로 돌아가 필시 결과를 기대하고 계셨던
부모님에게나 학교선생님들에게 그 말을 했을 텐데 그를 들은 어른들은 각성을 했을까...
호 白山은 깨끗하고 굳건한 山처럼 살겠다는 의지의 뜻이고 이름 安熙濟의 빛날 희 구제할 제는 '세상을 밝히고
구제한다'는 의미였으니 그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가신 분이렷다. (그러나 세상엔 朴*熙처럼 세상을 더럽히며
산 사람도 많다)
아버지의 동지들중 의령출신엔 삼성의 창업자 이병철의 형 이병각씨도 계셨다. 1938년 이병철은 대구에서
삼성상회라는 식료품유통무역을 시작한 이후 운송업도 병행했으니 즉 무역과 물류를 출발점으로 하여 한국전쟁
이후엔 사업구조를 바꾸어 제일제당 제일모직 섬유산업제조업으로 또한 식품 의류같은 국가재건수요를 정확히
겨냥하여 확장하였다. 그러다 60년대 후반 전자산업으로 진입하여 삼성전자 삼성전기 삼성 반도체 등을 설립
하였으니 기존 상사 기업에서 기술기반 산업으로 구조 전환한 것이다.
그러나 형 이병각은 삼성라인이 아니라 무학양조장 삼강하드 등 개별기업을 운영하였으니 삼성처럼 종합재벌
이 아니라 개별기업을 운영하며 그 지역을 기반으로한 중견사업가로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고향 의령에서
주민들에게 쌀을 나누고 주민들에게 취업을 알선해주는 등 지역사회에서 덕망있는 인물로 기억되어 지방유지로
그리고 후원자성격으로 아직도 그 마을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을 정도로 존경받고 있었다.
소주 하면 중부지방에선 단연 진로이지만 경상도나 남부지방에선 무학소주가 더 많이 유통되었는데 이제
소유주는 다른사람이름으로 넘어갔지만 아직도 특히 경상도에선 무학소주가 우세이다.
당시 삼강하드가 출시되어 아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아이스크림엔 부드러운 소프트아이스크림과
가운데 나무막대기가 끼워진 딱딱한 즉 하드 hard icecream 두가지가 있었으니 뒷글자는 빼서 생략하고 하드
라고만 불리워져 지금도 그냥 하드는 보통명사로 전해지고있다.
이병철에 비해 이병각 이름이 묻힌 이유는 이병각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삼성같은 초대형 기업을 안만들었기 때문
이다. 두 형제는 같은 집안 같은 출발이지만 완전히 다른 경로를 밟은 것이니 나의 아버지가 동생보다 그 형을
동지로 삼은 것을 보아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삼성은 그 후 절대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한마디로 구분하자면 사업을 하되 얼마나 인간적이었던가하는 차이 이겠다.
그들은 우리와 같은 경주 이씨집안이라 하는데 형은 좀 그런 공통의 느낌이 있지만 동생은 좀 다른 느낌을 주어
그 집안의 주도권은 점점 변해 동생을 중심으로 넘어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이병각 형이름은 이제 기억하는 이도
거의 없을 정도이다.
삼성을 모르면 이제 지구인이 아니라할 정도로 전지구적으로 유명하지만 이병각은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거의
모를 정도이다. 미국에선 Samsung을 쌈썽 쌤썽이라 발음하고 Hyundai를 하이언다이 로 발음하는 것보면 확실히
그들은 성의부족이라할까 자기중심으로 오만하다싶다. 적지않은 규모의 회사는 당연히 그나라의 발음 그대로
써줘야 하거늘. 요즘 뉴스에 미국 정치인들의 발음을 보면 이란Iran을 이랜 아이랜 등으로 부르고 있는데 대단한
실례이다. 아무리 적이라 치더라도.
의령은 옛부터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항쟁의 지역적 전통이 내려오고 있는 지역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의령에서
홍의 紅衣장군으로 불리우던 곽재우는 스스로 붉은 비단옷 도포를 해입고 전투에 나서 용감하게 의병 지휘를
하였으니 일본군은 붉은 옷을 입은 그를 보기만 해도 두려워하여 도망갔다 하였다.
첫댓글 고대의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아메리카 등의 대륙이 이동과정을 보면 생명발달단계가 깊은 동면애 들어서 우주공간의 어느 별자리가 도래하면자기들을 찾아와 주기를 기다린답니다. 생명의 오솔길은 언제나 아리랑고개를 넘어 가는 거라서 저마다 도도한 인고의 생명줄을 놓지 못한답니다. 모진 영원의 굴레를 도는 물질은 엄청나게 긴 대형여행열차에 탑승한 거라서 누가 누군지 알려지지도 않으면서 모지리의 망각열차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공간터널을 달려간답니다. 만약에 전능한 신이라면 목적지에 내려서 세세한 구경도 잘하겠지만 그러지 못함을 자위할 줄도 모르고 무작정 팔불출로 돈키호테가 되는 거죠.한편의 다큐나소설이 버젖이 실재인양 꿈속으로 스쳐가는 삼세라지요. 꿈속으로 달려가는 열차에서 현실감각이 돌아오면 깊은 침묵으로 달려가는 잠자는 불상과 같아 보인다죠. 물질세계를 존재하게 하는 기본 원동력은 어딘지 모르는 꿈의 역사에서 꿈의 열차에 승차한 거라서 현실감은 삼세로 달려가야 체험한다죠. 언젠가 내려야할 여행목적지를 어딘지 알듯도 하다는데 글쎄 아리송한 모지리가 된다는 즐거움을 만끽하죠. 그게 감정을 가진 물질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라고 한답니다. 아니면 말고 그냥가면 돼요.
독립 운동 하면 3대가 망하고,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다 하소연 할 곳 하나도 없는 참혹란 세상이지요......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한다고 말 뿐이고......독립 운동이 아직도 죄인 세상입니다........
이재용은 노조도 외면하는 반면 이병각의 후손들은 의료계에서 제일병원 원장 이사장을 역임하며 의령의 지역사회에 기부도 많이하고 있다 하지요
사위인 동서식품의 조필제사장은 세계 최초 커피믹스를 개발하여 아직껏 전지구적 대히트로 큰 수입을 올리고 있고..
실상 나의 아버지도 이병각으로부터 독립운동자금을 제법 받으신것 같더군요. 직접 자금얘기는 안하셨지만 많은 힘이 되었다고 하셨던것보면.
나라와 민족을 위한 우리 조상들의 큰뜻을 최소한 잊지는 말아야겠지요
우리들의 몸속 dna에 조상의 혼이 새겨져 있어 큰 위기가 닥쳐 나라가 위태로울때 그 조상의 뜻이 살아나 발현 되는 것 같습니다
그 추상적으로 들리는 우리 dna 속에 흐르는
조상의 혼과 정신은 세월이 흘러도 사라지지
않고 면면히 살아있습니다.
아무리 친일 친미 무리들의 학교교육이나
사회 언론들의 세뇌작업이 철저했다해도
우리 후손들은 살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