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에는 먹을거리가 많다. 마산을 대표하는 아구찜, 전어회, 복요리, 미더덕, 국화주를 '마산 5미'라고 부른다. 마산하면 또 볼거리로 문신미술관을 빼놓을 수 없다. 부산의 지하철 동래역 맞은편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마산행 버스를 타니 넉넉하게 1시간이면 충분했다.
오랜만에 올라탄 시외버스에서 문신이 생전에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산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문신은 그의 작업노트에 "나는 노예처럼 작업하고, 서민과 같이 생활하며, 신처럼 창조한다"고 적었다.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신마산 통술거리'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통술집'은 1970년대 마산 오동동과 합성동 뒷골목에서 생기기 시작했다. 마산어시장이 근처이다 보니 싱싱한 해산물을 싸게 구입해 푸짐하게 음식을 내놓은 게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 오동동 통술골목에도 옛 명성을 이어가는 통술집이 남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신마산 통술거리로 이동한 모양이다. 통술거리를 알리는 입간판을 보자 마음이 설렌다. 마산 시청을 통해 소개받은 토담집(055-248-3400)으로 향했다.
통술집에는 메뉴판이 없다
통술집에는 메뉴판이 따로 없다. "어떻게 시키면 되죠?" 술을 시키면 안주가 따라 나오는 방식이다. 통술집에 가기 전에 저녁 식사는 금물이다. 이유는 통술집에서 한번 먹어 보면 알게 된다. 오후 8시 20분 맥주, 소주 각 일병씩으로 이날의 술자리를 시작했다.
밥집이 아니라 술집인 만큼 마산이 고향인 후배와 동행했다.
간장 게장, 뿔고둥, 고구마와 밤, 부침개와 물김치가 일등으로 나왔다. 종지에는 커튼 핀이 사람 수만큼 들어 있다. 짐작컨대 고둥살을 빼먹는 용도이다. 고둥도 커튼 핀이 자기 살을 파고 들어올 지 몰랐고, 커튼 핀도 자기의 운명을 몰랐을 게다.
전복, 개불, 가리비, 멍게, 새우 등 해물이 한 접시에 들어왔다. 낙지와 대구알탕이 나오며 술자리는 본격 대회전에 들어갔다. "통술집은 술을 통에 넣고 먹는 집인줄 알았어요."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여자 손님의 목소리가 옆좌석에서 들려왔다.
아니다. '통술'은 싱싱하고 푸짐한 각종 해물 안주가 한 상 통째로 나오는 술상이다. 가짓수도 많지만 특히 안줏거리의 신선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개불과 낙지는 칼질을 당했건만 끈질기게 살아서 꿈틀거린다. 개불이 초장을 만나자 더욱 힘이 세어져 딱딱해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술상에 입맛 당기는 안주가 가득한 데도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맛있는 안주들이 계속 줄을 잇는다.
제발 그만 가져오세요!
이곳에서 8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전영옥씨가 혼자서 새 안주를 들고 부지런히 들락거린다. 전씨는 "통술은 계절음식으로 계절에 따라 음식의 종류가 바뀐다. 주메뉴는 해물이고 그날그날 상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생선회만 해도 돔은 사시사철 오르지만 봄에는 도다리, 여름에는 노래미, 가을에는 전어, 겨울에는 가오리라는 식이다.
마산 통술과 비슷하게 통영에는 다찌집, 진주에는 실비집이 있다. 같이 온 후배가 "통영 사람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통영보다 음식이 낫다"고 평한다.
곧이어 갈치와 볼락 구이가 들어왔다. 알밴 갈치가 어찌나 입에 단지 모르겠다. 가만 생각해 보니 음식이 생각없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술 마시기 좋게 궁합이 다 맞는다. "맛있는 것 먹고 속 편하면 되지 인생살이 뭐 있나…." "술은 이렇게 먹어야 하는데 그동안 잘못 먹고 있었습니다." 태평한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술 마신 속을 다스리라고 영계 반마리를 넣은 뜨거운 반계 삼계탕이 나왔다. 전씨는 원래 삼계탕집을 하려고 생각했다더니 국물이 진하디 진하다. '이 삼계탕만 먹어도 얼마인데…'라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배는 이미 불러왔지만 가자미 구이가 나오니 다시 손이 갔다. 가자미는 잘 말려서 구워먹으면 정말 고소하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마산의 명물 아구찜, 넙치 육수로 만들었다는 미역국 수제비가 나왔다. 속풀이에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이제 제발 그만 가져오세요!" 일식집에서 이만큼 먹었다면 속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속도 편하고, 주머니 사정도 편했다. 2인 4만원, 3인 4만5천원. 소주 5천원, 맥주 4천원.
신마산 통술거리 통술집
택시를 탈 경우 신마산 통술거리(두월동)로 가자면 된다. 통술집은 음식이 나오는 방식이 비슷하지만 업소에 따라 가격이나 메뉴가 조금씩 다르다.
뜨락실비식당(055-222-2837) 서호식당(247-6673) 송아식당(243-6864) 예원(246-2862) 갑주(222-7400) 석민(243-5155) 담소식당(243-2062) 수국(242-6660) 한바다(223-6767) 묵도리식당(222-1132) 럭키식당(224-1145)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