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신사역 주변의 길 가장자리는 아예 빈택시들로 도배를 했다.
자정 무렵에도 손님이 없으니 이 시간엔 더 말해서 무엇하리. 콜도 안 터지고 손님도 안 붙으니 미터기 앞자리가 6을 가리키고 있다.
이 시간에 이걸 했으니 10만 원이나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휴~,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한 달 중 하루의 벌이를 콜센터에 갖다 주는데 이렇게 엄한 시간에 손님을 집어달라고 생때같은 돈을 들이는데 요즘 같아선 그냥 확 콜을 떼어버리고 싶다.
신사역에서 웅크려있다가 콜도 터지지 않고 길빵도 없어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어슬렁 어슬렁 을지병원으로 향했다. 학동역방향으로 우회전했더니 맞은편에서 일련의 무리가 골목길에서 나와 택시를 기다리는 게 포착되었다.
웬만해서는 불법으로 잡아 돌리지 않지만 워낙 궁했던지라 무모한 마음이 앞섰다. 오가는 차량도 없고 짭새도 없는 걸 확인하고 조심스레 중앙선을 살포시 밟아 그들의 앞에 차를 대었다.
젊은 여자가 일행에게 안녕, 하며 이내 내 차에 올랐다.
화곡동 이마트 가주세요.
친절한 기사가 못 되는 나는 그녀의 말에 예,라는 말도, 알아 들었다는 제스처도 취하지 않고 그냥 앞을 주시할 뿐이다.
을지병원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며 내 머릿속은 아우트라인을 잡고 있다. 한남대교 남단 IC에서 올림픽대로를 타서 가양대교 IC에서 빠져나온 후 강서구청을 지나고 화곡역을 지나면 되리라, 화곡 이마트까지 23분 걸릴 것이며 그동안의 부진을 어느 정도 벌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차가 올림픽대로 수산시장 앞을 지날 때 손님이 통화를 하는 것이다.
잘 들어가고 있어? 내가 탄 후 바로 택시 탔어? 그래 언니와 함께 가고 있다고.
근데 이상한 데로 가고 있어. 황학동으로 가는 게 아니고 올림픽대로로 쭉 가는 것 같은데…
여자 손님은 나에게 다이렉트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방금 헤어진 동료들에게 조심스럽게 자신이 탄 택시가 목적지인 황학동으로 가지 않는 것에 대해 내가 들으라고 얘기하는 듯했다.
제기랄!
아니 뭐야. 화곡동이 아니고 황학동이라고? 기가 막히고 황당할 뿐이었다.
손님, 화곡동이 아니고 황학동이었어요? 저는 틀림없이 화곡 이마트로 들었거든요. 그러면 올림픽대로 접어들었을 때 바로 저에게 어필을 했어야지요. 접어든지 한참이 되었는데….
나의 볼멘소리에 동료와 통화하면서도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대부분 거기서 타면 동호대교를 건너는데 한남대교 방향으로 가는 것도 이상했고 또 올림픽대로를 타니 겁이 나서요.
그 말에 더 이상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 입장에서는 택시가 자신이 말한 곳으로 가지 않고 이상한 데로 갔으니 놀랐을 것은 자명할 터.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더더욱 원래의 목적지로 가는 것이 맞느냐는 말이 입 밖으로 떨어지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속은 마뜩잖았지만 손님의 입장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인 나도 이런 경우라면 조금은 놀랐을 텐데, 겁이 났으니 운전기사인 나에게 말을 못하고 동료와 통화하면서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에둘러 말했으리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빠져나와 왔던 것보다 훨씬 더 긴 거리를 가서야 황학동 이마트 앞에 올 수 있었다.
좌회전해주세요.
U턴해서 골목길로 들어가 주세요.
손님이 타자마자 행선지를 말할 때와 같이 이 말에도 나의 반응은 묵묵부답일 뿐이다.
결국 도착한 곳은 황학동 이마트가 아닌 신설동이었다. 정확한 행정동명은 숭인동.
처음부터 신설동 로터리라고 말했으면 이런 사달은 안 생겼는데, 하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 앞에서 회차할 때 미터기는 그냥 꺼버렸다.
그때 미터기는 14,600원을 가리켰다.
미터기는 당연히 0을 가리키니 손님이 물었다. 얼마 드리면 되죠?
주고 싶은 대로 주십시오. 정말 마음속은 손님이 안 준다고 해도 아무 말 않고 보내드릴 만큼 지쳐있었다.
50,000원 드리면 돼요?
엥? 이건 뭐야. 내 속을 떠보는 거야?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손님이 나를 기만하는 듯 들려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 그렇게 파렴치범 아니거든요.
그럼 30,000원 드리면 되나요?
그 말에 내 마음이 풀렸다. 어느 누구의 실수를 떠나 운전기사의 노고를 생각하는 손님의 마음 씀씀이를 읽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이 말이 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푸는 훈풍으로 다가와 준 것이다.
을지병원 사거리에서 정석대로 왔다면 얼추 11,000원 정도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몇천 원 보태어 15,000원 받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나의 정중한 말에 2만 원을 계산하라고 그녀가 다시 말해 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원래 소신대로 15,000원을 수기입력해 결제했다.
사실 마음이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손님이 이렇게 저의 노고를 생각해 주시니 그것으로 마음의 응어리는 풀어졌어요. 그 성의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되었어요.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을 겪는데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나의 이 말에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아끼지 않고 오피스텔로 들어갔다.
차를 돌려 나오면서 금전적으로는 손실이 있지만 이 일로 또 한 번 터득하게 된다.
'확인사살'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근데 재차 물어보지 않은 나의 잘못도 있지만 '화곡동 이마트'라고 했을 때 한치의 의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말이야.
그녀가 술을 마셔서 혀가 꼬이는 바람에 황학동이 화곡동같이 들린 것은 아닐까?
첫댓글 강남 교보에서 화곡역 사거리요 하고 이내 잠든 어린놈..
화곡역 다왔어요... 엥... 학동역사거린데요....음....죽여 버리고 싶었다...
왕복 40k 쯤 될텐데 기본요금 받고 내려줬다...ㅋ
돈안들이고 드라이버 잘햇다
오먼원 준다면 받아야지 얼어죽을 자존심이요? 그러다 얼어죽어요 겨울에 그가이나 입장에서는 말도ㅜ못하고 죽을뻔 핼는데 오마넌이면 싼거지 잇는게 돈박에ㅜ없는데ㅜ그런년 돈은 받아야데
증미역 가야하는데 증산역에 도착 그나마
손님이 웃음으로 받아줌 미안해서 전 죽는줄
알았읍니다. 그후론 확인사살후 출발하죠
이런 실수는 초보때 많이 하지요. 혹인 사살을 해야합니다. 강서구 화곡동이요. 요렇개 구명을넣고 확인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