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손격인 의친왕의 아들 이건씨여...
철저한 친일파라 황적인가에서도 지원졌단 그 사람여...만주 괴뢰국 황제 푸이와 지나치게 닮았습니다.
푸이의 어린시절 사진은 그 사진인물의 진위는 몰라도...일단, 사진이 좀 존재하나 ...이건황손은 흔치 않고...
푸이의 소년기 사진은 별반 없으나...이건황손은 좀 있고...
푸이의 만주국 시절 사진들은 널널하나...이건황손의 만주국 군관시절 사진은 현재까진 전무하고...
푸이의 말년 공산당에 주눅든 사진들은 많으나...이건황손의 말년 일본에서 장사꾼하던 사진들은 전무하여...
비교하기엔 ...아직까진 턱없이 내용이 부족하나...
나이에 따른 심한 얼굴변화를 감안해도...전체적 얼굴상을 보건데...
푸이와 이건은...긴 얼굴상...큰 입...특이한 윗잎슬...특히,당나귀귀...이게 아주 흡사합니다.
푸이황제는...왼쪽귀를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는 각도로 말년사진이 많으며...
어쩔수 없이 정면으로 사진을 찍은 경우도...뭔가 왼쪽귀쪽는 형태가 미완성된 형태를 보임은...
아마도 푸이의 특이하게 생긴 왼쪽귀를 캄프라치 하려한 자으반 타의반의 사진기술(리터칭)이 가미된 사진 아닐까 예상해 봅니다.
현대에나 컴퓨러 사진편집이 가능하다 생각들 하실줄 모르겠으나...
리터칭" 기술이란게...촬영된 사진 필름이나...아예 일차 인화된 인화지에 텃치를 가미해...
흉터나 곰보자국 불필요한 뒷배경 등을 없애주는 기술이니...이는 사진인화기술이 시작된 첨부터 가능한 기술였다 사료됍니다.
고로 뭔가 미완성으로 마무리됀 푸이의 왼쪽 귓바퀴 뒤의 나머지 귀 부분의 실종이나...
때마다 다른 모냥을 띄는 푸이의 귀...특히 왼쪽 귀는...다분히 리터칭(사진편집에 의한 축소)가 가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얼굴형태야 그렇다 치고...
이 둘은...그 출생연도&배경이 비슷하며...만주국에서 활약한 경력과 시기도 비슷...합니다.
비록 말년의 행적과 사망년도는 다르나...
이도 행적이 그저 원폭맞았다...로 끝나는...의친왕의 둘째인 꽃미남 이우황손의 행적과 범벅의 착각일지도 모를 일이라 하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이우황손이 원폭에 딱 맞추어 일본에 귀국하여 서거한 후...해방일인 8월 15일날 서울에서 장례를 치룰당시...
그의 부관이 할복자살 했단 정황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부관이 할복을 할 경우는,..자신이 상관과 같이 치룬 전투에서 상관을 잃었을 땝니다.
이우황손은 공식적으론 원폭으로 사망했습니다...그럼 그 부관도 같이 원폭을 맞았는데 살았어야 할복할 조금이나마의 이유가 생기는 겁니다.
원폭맞고도 살아남은게 이우황손의 부관인 일본장교고...
이우황손이 죽을 정도라면...자신도 중상였을 텐데...뭔 할복인지...?
아님...원폭맞은건 자신의 잘못도 아닌 천재지변인데...
다른 장소에 있던 이우황손의 일본부관이 책임을 지고 할복을 했단 것인지...?
이런 앞뒤가 않 맞는 기록들을 보건데...
어쩌면...원폭맞은 몸으로도...
아님...자신은 이우를 같이 모시고 있지 않아서 원폭을 맞지 않았서...
서울서 광복절날 이우황손 장례를 치루며 할복할 힘이 남았던 그 일제 장교애는...
어쩜여...만주 심양공항에서 푸이(이건??)를 탈출시키지 못한 책임을 진 관동군 부관의 할복 아니였을까도 상상을 해 봅니다.
그 정돈 돼야...할복할 명분이 좀 서지 않을까도 생각돼서여...
아주 초보적인 몇 개를 비교해 봅니다.
1.푸이는 청조선 실질적 마지막 황제 광서제의 동생인 순친왕의 아들입니다.
이건은 조선의 마지막 황제 순종황제의 동생인 의친왕의 아들입니다.
2.광서제가 죽고(독살?)...푸이가 어린 황손으로 옹립됐다 한 시기는...
고종이 아관파천후 일제와 친일개화파들의 선동질에 밀려 덕수궁으로 환궁하던 시깁니다...
고종과 순종도 늘상...일제에 의한 독살기도가 있었습니다.
3.푸이가 폐위됐단 신해혁명(토왜들의 난?)때는...
고종이 왜노들에의해 강제퇴위 당한 시기입니다...이후, 가짜 순종(환관??? ...아님, 이준용???)이 신 황제 제위식을 거행한 땝니다.
재미있게도 이때부터 일본을 그리도 싫어했단 의친왕계 황손들이 일제에의해 승승장구 합니다.
4.푸이의 첫부인 완용은...아주 자유분방한 나머지...일본장교와 사통을 하여...푸이의 첫째 딸(???)은 사생압니다.
이건의 첫부인인 일본인 처는...아주 자유분방한 나머지 일본 왕손과 사통하여...이건의 첫째아들은 사생압니다.
5. 위의 이유로 푸이 부부...이건부부 두 부부는.... 해방후 이혼합니다.
6.해방이후 푸이는 소련군 포로를 거처 중화 공산당에 수감됐다가 나중 뭔 장사를 하다...박물관 마당쇠가 됐다네여...
해방이후 이건은 일본에 귀국 뭔 장사를(일본인 마누란 유흥업소 관리인?)하다...어쨋다 했다는데...그 행적이 좀 모호합니다.
중요한 건...청나라(타타르)던 그 치하의 청조(청구조선)이던...조선이던 왜노왕실이던...
푸이의 첫부인 완용과... 이건의 첫부인 같은...황족 정부인의 사생아 출산은 역사에 전무후무한 흔찮은 사건였으니...
그것도 동시대 비슷한 지역에서 ..비슷한 패망황손들 집안에서 일어난 흔찮은 일이니...
이건황손과 푸이황손이 서로 낯설지 않은 인물일 것이란 제 초보적 예상인 겁니다.
청구조선(청조)의 핵심지인 산동과 북경 만주일대를 거래로...러시아와 중앙아 및 시베리아를 흥정한 중국 공산당...
이의 책임자들인....청구조선의 역사와 영토를 철저히 왜곡했던 섬 원숭이들...이에 개인의 영달만을 추구한 친일 대한제국인들...공히...
구한말 세계사의 최대 거래장소인 청구조선의 영토와 그 왕손들의 행적은...
철저히 공유하며 상호 호흡을 맞추어 자료들을 짜집기 중이였기에...구한말 푸이로 대변돼던 청나라 황실들과...
고종이후...친대원군계 황손들의 만주지역 활약상은...그야말로 다 뭉개고 지원진 사진원본 복원보다 어려울 것은 뻔 한 이치니...
일단, 위의 초보적인 일치점들만으로...
만주국 푸이와 이건은...후대의 행적은 지들 맘대로 꾸몄겠으나...
굵직하고 기본적인 행적들은...묘하게도 일치함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그렇다고 뭐 확실하게...충격!!! 푸이가 곧 이건이다,,,,!!! 란 말은 아니니 오해들 마십시오...
그 얼굴형이 유사하고...그 굵직한 행동반경과 역할들이 비슷했으니...일단, 용의선상에 놔 보잔 의도로 봐 주시길바랍니다.
밑에...비록 같은 나이대의 사진들이 기적적이게도 아직까진 없으나...
어쨋건 좀 많이 닮았다 생각돼는 푸이와 이건의 사진들입니다.
이건황손의 첫 일본인 처여...
한복을 벗기고...청복이나 양장을 입히고...
완용같은 야한 입술&눈화장을 시키면...둘이 닮은 편 아닌지도 싶습니다...???...두툼한 눈두덩이 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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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비(義親王妃) [1880 ~ 1964] 향년 87세
본관 : 연안
아버지 : 김사준
1893년 14세 때 의친왕(당시 의화군)과 결혼
소생없음
이건 황손 [1909 ~ 1991] 향년 83세
의친왕(義親王)의 맏아들
수관당 정씨 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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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의친왕의 맏이 이건 의친왕 우측은 둘째 이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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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와 황후 위안룽
푸이의 젊은시절 사진..요즘 꽃미남 스타일.
푸이와 완용.
이건황손의 일본인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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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만주국 황제 - 28세
위만주국 황제의 모습
위만주국 황제 집정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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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굴 갸름 한거는 같지만 눈형태 가 다릅니다
상복입은 이건황손의 얼굴은 그야말로 귀공자 꽃미남인데...일제 사관생도 옷을 입은 이건황손의 청년기 모습은 많이 처짐의 얼굴변화로 보건데...장년기로 접어 들면선 더 못해지지 않았나 보이고...특히 안경착용으로 인한 인상의 변화가 아닐지 의심해 봅니다.
홍진영 선생님, 관련 사진들을 많이 올려주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사진은 눈에 확실하게 보이므로 판독이 비교적 쉽지만, 그 나름대로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고... 저는 아리송하군요...
가끔씩 크게 찍힌 왼쪽귀...크고 두툼한 윗잎슬...긴 얼굴...큰 키...자라면서 얼굴이 점점 망가지는 사람들도 많으니...이 점 감안하면...전체적으론 좀 비슷하다 뵈는디여...ㅡ. .ㅡ
삭제된 댓글 입니다.
제가 주목한 부분도 귑니다...이건황손의 귀는 말 그대로 당나귀 귑니다...엄청 크고 뾰족합니다...사진상의 푸이의 귀와 다릅니다...문젠 사진상의 푸이 귀들은 촬영때마다 조금씩 다르단 겁니다...특히 멀리서 왼쪽 귀쪽만 찍었을 땐 큰 귀고...정면에서 가깝게 실내촬영한 사진은 작은데...특히 왼쪽귀의 경운...뭔가 모양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 귀의 형태이고...때마다 조금씩 다르게 찍혔기에...사진 편집술(리터칭)이 가해지지 않았냐 의심하는 겁니다.
출처가 믿을만한 이건황손 장년기의 사진이 아직까진 전무해서 안타갑습니다...한 두 장 어디서 나올만도 한데여...
예를 들자면...저를 보신 선생님들도 계셔서 아시겠지만...않 믿으시겠지만...저 어렸을 적엔..우리 읍내선 엄청난 꽃미남 소릴 지겹게 들었던 잡니다...허나 현잰 이렇게 망가진 것이고여...한약을 잘 못 먹어서여...비유가 적당했나 심려됍니다.
확실히 푸이황제의 귀가 이상하네요. 커졌다 작아졌다 귀위치도 오른쪽에 비해 높아졌다 낮아졌다. 왠만하면 귀는 좌우 대칭이 확실해야 정상인데 이상하군요.
역시 진영님의 직관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평소에 구한말 전후의 역사에 대해서 의문점만 줄줄이 생기고 어떤 식의 전개일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는데,
최근에 올리신 글들 덕분에 탐구해 볼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영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정말 감사 드립니다.
영화 '마지막 황제 푸이'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진영님께서는 근거자료를 찾고 기존 사서등과 비교/보완하는 일로 이론을 가다듬는 작업 보다는
이런 식으로 덜 다듬은 상태의 가설을 계속 발표하시는 편이 당연구회의 발전에 더욱 이바지하는 게 아닐까..합니다.
훌륭한 더듬이(?)에게 다리나 위장이나 심장 등의 역할을 맡기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잖아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항상 행복하시길 빕니다..~
예,저도 제 직관력에 자주 깜짝깜짝 놀라곤 한답니다...제 한계도 거기까지인가 합니다.
소중하신 격려의 댓글 달아주신 최선생님 조선생님 서선생님 권선생님...새해 더욱 건승하십시오.
닮지 않았구여~ㅋ..흠..타타르(청조선) 이면...타타르가 대륙 조선 중국인거 같은데...이씨조선은 별개이구여...ㅜㅜ..물론 이씨 조선도 대륙의 일부를 차지 하고는 있었겠지만요~
술,담배,여자...특히,객기...이런 것들로...남자는 나이들어 가면서...처절하게 얼굴이 회손됄 수 있습니다...남자를 잘 모르시는군녀...ㅡ. .ㅡ...김선생님 새해 더욱 이뻐지십시오.
모든 인간은 살아가면서 약간씩 얼굴이 변하기 마련이죠~ㅎ..군데..옷이나 머리 모양 빼구 이목구비만 가지고 다시 한번 보니 푸이와 이건..왠지 모르게 닮아보이기도 하네요~좀 신기~^^..ㅋ..
사진 편집술이 당대에도 존재했단 단적인 예로...위의 앞머릴 자른 완룽황후 사진여...어느 사진엔 부의황제가 완룽의 오른쪽 팔쪽에서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사진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