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짤은 본문과 관계가 높을 것입니다.
가너는 쿠웨이트에서 이라크를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를 가졌다. 그는 바그다드가 사상자가 널리고 전기가 끊어지고 심각하게 파괴되었을 것이라 가정, 그에 입각한 민사작전을 꾸렸다. 바그다드의 상황이 그럴 리가 없다고 반대하는 직원들도 그런 상황에 대비하는 것에는 동의하였다. 가너는 이 과정에서 미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페이스의 사보타주에 가까운 비협조에도 가너는 나름의 전후계획을 꾸리긴 했다. 이른바 '전후 이라크를 위한 통합 미션 계획'이란 것이었는데 여기엔 이라크에선 군사 작전보단 전후를 처리할 활동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간단하면서도 지극히 현명한 가너의 판단이 담겨 있었다. 가너는 이라크에 연합군이 오래 주둔하면 안되지만 최우선적으로 치안 확보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가너는 시민 행정 분야에 대해선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고 바그다드가 함락되기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이 부분을 완성하지 못했다. 가너는 자신이 시민 행정 분야에 무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분야를 지난 화에서 설명한 것처럼 페이스의 동료인 마이클 몹스에게 맡겼는데 몹스가 중동에 대해 배운 것은 불타는 유전의 화재를 진압하는 일 뿐이었고 그 밖의 것은 전혀 몰랐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고 자신이 주재한 회의에도 나타나지 않았으며 자신의 부하들에게 리더 대접을 받지도 못하고 방에만 숨어 있었다. 결국 가너는 참지 못하고 몹스를 해고했다. 그게 바그다드가 함락되고 ORHA팀이 바그다드로 옮겨온지 1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카니나 던포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자료가 없기는 마찬가지였고 우왕좌왕했다. 던포드는 4페이지짜리 메모만을 받았는데 그 정도의 자료를 받은 사람도 매우 드물었다. 그는 국무부에 더 많은 자료를 요청했지만 응답이 없었고 결국 인터넷 서핑으로 이라크에 관한 정보를 구걸하는 글을 올렸다. 카니 역시 전직 이라크 산업부 장관 전기와 이라크 시집만을 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알았으면 뒤집혀졌겠지만 미국엔 이라크의 미래를 위한 보고서가 있었다! 그것도 국무부가 200명의 이라크 망명자들을 17개 분야로 분류하여 인프라 재건, 언론 자유화, 유물 보호, 법 집행, 경제 복구, 민주정부 수립 등에 대해 2500페이지에 걸쳐 매우 자세한 보고서를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이 보고서는 구체적인 계획이 결여되었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ORHA사람들에겐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의 수장은 국제변호사 토마스 워릭이란 사람이었는데 미국국방대학교에서 그의 강연을 들은 가너는 그의 식견에 크게 놀라서 그를 즉각 스카웃했다. 하지만 딕 체니는 워릭을 싫어했고 럼즈펠드를 통해 가너에게 압력을 넣어 워릭을 해고했다. 가너는 워릭이 자신의 팀원들 중에 가장 똑똑한 사람이라고 항변했지만 체니는 워릭이 찰라비를 비판한다는 이유로 막무가내였다. 결국 가너는 워릭이 만든 값진 자료들 중에 어느 것도 얻지 못했다.
한편 가너가 통치해야 하는 바그다드의 상황은 개판이었다. 미국 탱크가 후세인의 동상을 까부수고 난지 얼마 안되어 곳곳에서 폭도로 돌변한 시민들이 정부청사들을 닥치는대로 약탈하고 귀중한 정부 문서들을 털어갔다. ORHA 직원들은 CNN을 통해 자신의 부서들이 불타오르는 광경을 허탈하게 쳐다보았다. 그들은 자신이 관리해야 할 부서들의 문서와 관청들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고 엄습하는 두통에 괴로워했다. 결국 해탈하고 만 ORHA 직원들은 불타오르는 바그다드를 보며 자신의 부서를 알아맞추는 게임을 했다.
"저기 자네 건물 나온다!"
"저기 내 건물 나온다!"
그래도 그들은 미군이 개입하여 이 난동을 막을 것이라고 희망했다. 하지만 그들의 당연해보이는 희망은 허상이었다. 미군은 후세인궁을 빼면 석유부 건물만 지키고 나머지 정부 청사들은 불타게 놔두었다. ORHA는 미군에게 필수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이라크 관청들에 대해 보고했다. 중앙은행을 시작으로 국립박물관을 비롯하여 모두 값진 부서들이었고 석유부는 우선순위에서 제일 밑이었다. 몇주가 지나고 나서야 이 보고서가 바그다드의 육군 사령관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 드러났다.(...) ORHA는 뒤늦게라도 약탈의 피해를 늦추기 위해 애썼다. 외교관 출신의 이라크 임시 시장 바바라 보딘은 미군 중앙사령부에 중앙은행에 보관된 아시리아 제국의 유물들을 보호해달라고 애걸했지만 중앙사령부는 그게 뭐죠?란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럼즈펠드는 이런 시설과 유물들을 보호해야 할 인력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라크 군대만 두들겨 부수면 되는데 치안 유지 병력이 무엇에 필요하단 말인가? 곳곳에서 약탈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럼즈펠드는 짜증을 냈다.
"자유는 원래 어수선한거에요."
중요한 발언이니 강조합니다.
이 난장판 덕분에 가너의 팀은 바그다드가 함락되고도 8일이 지난 상태에서도 바그다드에 들어갈 수 없었다. 가너는 미군 최고 사령관 토미 프랭크스를 찾아 카타르까지 가서 무정부 상태에 협잡꾼들이 득세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했지만 프랭크스 장군은 너무 위험해서 들여보내 줄 수 없다는 반응을 반복했다. 결국 바그다드가 함락된지 12일이 지난 2003년 4월 21일에야 가너와 ORHA팀은 바그다드에 올 수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라이스의 회고가 있다.
"해방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라 전역에 약탈자들이 난무했다. (...) 이라크의 주요 문화재가 보관된 박물관과 주요 건물이 치밀하게 계획된 공격을 받았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자가 무기고를 습격했다.
(...)
사담 후세인에게 충성을 맹세한 바트당원들이 일반 시민들과 달리 우리 정부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고 언제든 돌아올 구실을 남긴다고 생각했다.
(...)
기존 공무원들이 남아서 정부 업무를 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대다수 공무원들은 자취를 감추었다., (...) 지상군과 경찰은 물론이고 유전 노동자들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안전 문제 때문에 제이 가너가 이끄는 팀이 이라크에 진입할 수도 없었다. 불과 얼마 전 20만 대군을 이라크에 파병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펜타곤은 현지 상황이 너무 위험해서 제이 가너를 보낼 수 없다고 팽팽하게 맞섰다. 결국 제이 가너는 침공한지 3주 후에야 현지에 도착했다. 그는 현지 상황을 보자마자 아연실색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회고록, 최고의 영예 292페이지.
당시 대통령 조지 워커 부시는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다만 우리가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심각한 사태가 하나 있었다. 이라크가 해방되고 나서 몇주간 바그다드는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 나는 약탈자들이 이라크 국립 미술관에서 귀중한 유물을 훔쳐나오는 광경을 보거나, 납치, 살해, 강간에 대한 보고서를 읽으며 경악했다.
(...)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나는 4월에 열린 NSC 회의에서 물었다.
"왜 아무도 이 약탈자들을 막지 않는 겁니까?"
돌아온 짤막한 답변은 바그다드에 인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이라크 경찰은 정권이 무너질 때 함께 뿔뿔이 흩어졌다. 이라크 군대는 해산되었다.(필자 주:이 해산은 브리머의 해산의 이전 시점을 설명하고 있으니 와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전쟁 초기에 발생한, 이 심각한 상황은 그 후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낳았다. 이라크 국민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바그다드를 안전하게 유지하지 못함으로 우리가 이라크 국민들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첫번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조지 워커 부시 회고록, 결정의 순간들 323~324 페이지.
상황이 이랬다.(...) 이 난관을 뚫고 바그다드에 들어간 ORHA는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근무했다. 그들에겐 침낭 말고 어떤 취사, 취침 도구도 주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전화도 없었고 기본적 생활이 가능한 본부란게 없었다. 원래 ORHA는 숙소로 호텔을 수리해서 쓰려고 했다. 후세인궁에 미국인들이 들어가는 것은 미국인들을 점령군으로 보이게 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대안으로 군기지에 숙소를 잡으려 했으나 그러려면 출근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결국 후세인궁에 숙소를 잡아야 했다. 하지만 고난은 계속되었다. 열악한 치안과 미적지근한 군의 태도 때문에 ORHA 직원들은 자신의 부서에 출입도 할 수 없었다. 호위병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들은 궁전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게다가 미군은 부서 건물이 어딨는지도 몰랐다.(...) 결국 카니가 돈 주고 산 바그다드 여행자 지도가 그들의 구세주가 되었다. 아니나다를까 뒤늦게 찾은 건물들은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아시리아 유적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폭격보다도 약탈 때문에 이라크는 통제 불능이었다. 그린존의 저자 라지브 찬드라카세란의 운전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라지브 씨, 민주주의란 참 좋은 거네요. 이제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가 있어요."
본인 심정.JPG
추신으로 미군의 이라크 초기 점령정책과 과정은 다음화로 끝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미군정의 한국통치는 저런거랑 비교가 안되게 잘 돌아간 것입니다만.
미친개가 날뛴다!~
ㅋㅋㅋㅋㅋㅋㅋ 나치 독일의 '통치'가 차라리 봐줄만 하네요. 그건 잔악하긴 했어도 일단 의도대로 뭔가 돌아갔는데, 이건 뭐......
미군이 이라크 포기하고 철군한 이유를 알겠네요..
... 갈수록 가관이군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핳
"자유란 참 좋은 것이네요!" 아하하하핳
역시 다스 럼스펠드...
...
ㅂㅅ짓도 참....
해방정국의.미군정은 졸라 유눙한거였군요 ㅋㅋㅋㅋ하하하하.
거대한 조직이라는 점이 오히려 악영향을 주는 전형적인 예인듯 싶네요. 부처끼리 손발도 안 맞고.. 자기들 이해관계에 따라 행동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