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포크너>
(1897-1962)
1897년 미시시피 주 뉴올버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미국 남부의 명문가로서 선조들은 멕시코 전쟁과 남북 전쟁에서 활약했다. 어릴 때 가족이 미시시피 주 옥스퍼드로 이사를 간 후 그곳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가 성장한 옥스퍼드는 그의 소설에서 가상의 지역인 요크나파토파 군 제퍼슨 읍으로 탈바꿈한다.
포크너는 특히 남북 전쟁 이후 남부 오지의 쇠퇴상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소설은 남북 전쟁과 재건기 동안 남부의 전통적 가치와 삶의 방식이 파괴되면서 남부 귀족 사회가 급격히 몰락하고 스놉스 가문으로 대변되는 속물적인 신흥 계급이 대두하는 과정을 정묘하게 그린다. 그중에서도 특히 출판업자마저 출판을 꺼릴 만큼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으로 당시 미국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성역』을 통해 포크너는 대중적인 인기와 부를 함께 얻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의 실험적인 문체였다. 그는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개척자로서 전통적인 소설 형식을 파괴하고 소설 문법에 혁신을 가져왔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용해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를 묘사하며, 소설 구성에서 연대기적 서술 기법을 탈피하고, 현재 시제와 과거 시제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불가능할 정도로 길고 복잡한 문장을 구사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작품 세계 때문에 모더니즘 소설의 선구자로 인정받았다. 포크너의 후대 소설가에게 수많은 실험적 글쓰기의 발판을 만들어주었다고 평한다. 내셔널 북 어워드, 퓰리처상,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62년에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미시시피 주 뉴올버니에서 남부 명문가의 장남으로 ㅌ어났다. 선대들은 맥시코 전쟁, 남부전쟁, 철도 건설에 관여한 유명인이 많다. 대표적인 인물이 증조부인 포크너 대령으로 ‘멤피스의 백장미’라는 소설도 남길 만큼 예술적 재능도 있었다. 포크너도 큰 영향을 받았다.
포크너가 한 창작의 대부분은 그의 고향인 미시시피를 무대로 하고 있고, 그는 미국 남부 문학에서 마크 트웨인, 플래너리 오코너, 그리고 테네시 윌리엄스와 함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 1920년대 중반에 그의 책이 정기적으로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현재 그는 미국 역사 전체에 걸쳐 위대한 작가로 여겨지고 있다.[1]
남북 전쟁 후에 계속하여 쇠락의 길을 걷는 남부 귀족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졌다. 유년시절에 몇 번의 이사를 다녔고, 카운티 옥스퍼드에 이사를 했다. 이곳이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그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그는 ‘스스로 갈등을 겪는 인간의 마음’을 소설에 담으려 했다.
그는 옥스퍼드 고등학교 중퇴와 미시시피 대학을 2년 간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이다. 이 시기에 시를 쓰면서 그의 문학 인생은 시작했다. 그후 뉴올린언스에 가서 소설가 셔우드 엔드슨을 만난 후에 소설쓰기로 마음을 굳혔다.
1925년 7월에 유럽의 여러나라를 여행하고 12월에 돌아왔다. 전쟁을 끝낸 유럽의 인상이 그의 소설에 영향을 주었다.
세 번 째 소설 ‘사토리스’를 시작으로 그의 고향은 그의 소설에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한다. 이때 쓴 소설 ‘내 죽으며 누워 있을 때’와 ‘소리와 분노’는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많이 활용하여 썼다. 인간 내면의 여러 심리적 문제 들을 다루었고, ‘압살롬 압살롬’은 남부의 쇠퇴를 불러온 도덕적 위기를 다루었다.
포크너의 대표작으로는 ‘소리와 분노’를 꼽는다. 이 작품에서는 명문가 콥슨가의 몰락을 통해서 전통적 가치로부터 유리된 체 타락하고 있는 남부의 귀족을 보여준다.
1950년 대에는 ‘성역’의 속편 격인 ‘어느 소녀를 위한 진혼곡’을 희곡으로 발표했다.
그의 문학적 업적은 두 번의 플리처 상(1955, 1963)과 노벨 문학상(1949)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