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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간질병 소년을 치유하신 예수님(마태복음 17:14~27)
* 본문요약
예수께서 세 명의 제자와 함께 산에서 내려오시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자기 아들이 간질로 심히 고생하나
주의 제자들이 고치지 못했다면서 자기 아이를 고쳐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고, 아이를 고쳐주십니다.
이어서 예수께서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를 하시자 제자들이 심히 근심합니다.
또 성전세를 받는 자들이 성전세를 내라고 하자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바다에서 낚시를 하여 오르는 고기의 입에서 돈 한 세겔을 얻어
베드로와 예수님의 성전세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417장(새 295) 큰 죄에 빠진 나를
397장(새 357) 주 믿는 사람 일어나
* 본문해설
1. 간질병 소년을 치유하신 예수님(14~21절)
14) 그들이 무리에게로 돌아오자 한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 꿇어 엎드려 이르되
15)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병으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속에 빠지기도 하나이다.
16) 그래서 내가 이 아이를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비뚤어진, 타락한) 세대여,
도대체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겠느냐?
내가 얼마나 더 너희를 참아야 하겠느냐? 그 아이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니라.
18) 이에 예수께서 꾸짖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때부터 나으니라.
19) 그때 제자들이 조용히(따로) 예수께 다가와서 이르되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적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에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일이 없으리라.”
21) 없음(그러나 일부 고대 사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이런 귀신들이)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15절) :
변화산 위에서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광경에 대조적으로
산 아래에서는 질병에 노예가 된 소년과 그의 아버지의 가엾은 모습이 그려집니다.
- 너희가 믿음이 적은 까닭이니라(20절) :
마가복음 9:29에서는 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이 산을 명하여 여기에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겨질 것이요(20절) :
여기에서 ‘산(山)’은 문자적인 의미의 산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커다란 문제,
난제(難題)를 뜻하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겨자씨와 같이 지극히 적은 믿음만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 사람이 할 수 없는 큰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2. 두 번째 수난 예고(22~23절)
22) 그들이 갈릴리에 모여 있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곧, 멀지 않아) 사람들에게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큰 슬픔에 잠겼더라).
- 심히 근심하더라(23절) :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께서 첫 번째로 수난 예고를 하셨을 때
베드로를 책망하셨던 것을 기억하는 제자들은 예수께 감히 묻지도 못하고,
예수께서 죽으시리라는 말씀에 근심만 합니다.
이때의 제자들의 귀에는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은 들리지 않습니다.
3. 성전세에 관하여(24~27절)
24) 그들이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에 성전세를 걷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이르되
“너의 선생은 어찌하여 반 세겔의 성전세를 내지 아니하느냐?”
25) 베드로가 이르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말씀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냐?
이 세상의 왕들이 누구로부터 관세와 국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다른 사람)에게냐?”
26) 베드로가 이르되 “타인(다른 사람)에게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실족하지 않도록(그들이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로 가서 낚시를 던져 맨 먼저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오르는 그 고기의 입을 열면 1세겔짜리 동전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갖다 주어라” 하시니라.
- 관세(25절) :
세리가 징수하는 지방세로 식민지 백성들이 내는 세금으로
본국의 백성(로마제국의 시민권을 가진 자)들은 내지 않습니다.
- 국세(25절) :
왕의 치하에 있는 모든 백성들(본국 백성들을 포함)이 모두 내는 국세로
그러나 왕의 자녀들은 내지 않습니다.
- 성전세(24~27절) :
성전의 운영비용을 충당하기 위하여 제사장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유대인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성전세를 내도록 되어 있습니다(출애굽기 30:13).
-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26절) :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27절) :
성전세를 바칠 의무가 없으나 그들이 감정을 해치고,
그들의 마음에 장애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하여 성전세를 바치리라는 것.
* 묵상 point
1. 그날의 기쁨을 위하여 지금은 고통받는 이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17:1~21에는 두 개의 특징적인 그림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에서 천국의 기쁨을 경험하는 그림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변화산에서 큰 기쁨을 경험하고 있는 동안
자기 아들이 귀신으로 인하여 극심한 질병에 걸려 고통받고 있는
한 부자(父子, 아버지와 아들)의 가엾은 현실입니다.
1) 첫 번째 그림 : 우리가 장차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천국의 모습(1~9절)
첫 번째 그림은
장차 우리가 누리고 경험하게 될 미래의 천국의 모습입니다.
이때 예수님의 모습은
마지막 날 세상을 심판하실 영광의 주님의 모습이셨습니다.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그 입으신 옷까지도 눈이 부셔 쳐다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2) 두 번째 그림 : 우리가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의 모습(14~21절)
두 번째 그림은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현재 우리가 이 땅에서 감당해야 할 우리의 사명의 모습입니다.
장차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먼저 이 땅에서 우리가 감당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믿음을 갖는 것과,
또 다른 사람들도 믿음을 가진 자가 되도록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입니다.
3) 두 그림의 의미 : 천국의 기쁨을 원하는 자들은 먼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예수님은 이 두 그림을 통해서
주님의 나라의 기쁨을 원하는 자들은
지금 이 땅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어려움 속에 있는 자들을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죄에서 신음하고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죄사함의 기쁨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난과 질병과 마음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자들에게
도움과 치료와 위로를 해 주라는 것입니다.
➠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자들은
먼저 영광의 기쁨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아픈 현실을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천국의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으나
그 나라에 대한 꿈속에서만 살아가면서 이 땅의 고통 받는 자들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주께서 그들을 주님의 나라에 합당치 않은 자들이라 여기십니다.
우리는 한편으로 천국에 대한 소망을 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천국의 소망을 품지 못한 세상 사람들의 아픈 현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한 편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할 이 세상의 문제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 묵상 : 두 개의 시선을 모두 갖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만 바라본다면서 땅의 문제를 외면하거나
반대로 땅의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의 문제를 모두 바라보는
이 두 개의 시선을 모두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신앙을 가진 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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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두 시선 중에 하나의 시선만 갖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아예 이 두 가지 시선을 모두 외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이 두 시선을 모두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려는 간절한 열망도 잃어버렸고
땅의 문제를 바라보는 자비와 긍휼의 마음도 잃어버렸습니다.
그저 내 마음 평안하게 하려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주 작은 갈등이나 문제만 생겨도
교회를 옮기거나 신앙생활을 아예 포기하기까지 합니다.
2.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17절)
왜 예수님은 산 아래에 있던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패역한 세대여…”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제자들이 간질에 걸린 아이를 고쳐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예수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질책을 받았다면
오늘날 성도들 중 이런 질책을 받지 않을 자가 어디에 있을까요?
➠ 이미 받은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하지만 본문의 질책은
단순히 그들이 병을 고치지 못했기 때문에 듣는 질책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두 명씩 짝을 지워 전도를 위하여 파송을 하시면서
귀신을 쫓아내며 각종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그런데 지금 산 아래에 있는 아홉 명의 제자들이
주께서 이미 그들에게 주신 권능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미 주신 권능을 제자들이 사용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제자들이 그 마음속에 다른 것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지금 다른 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16:19에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신다고 하시니
제자들이 이 말씀을 장차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베드로에게 중요한 직책을 주신다는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서로 자기들은 이렇게 외면당하는 것이 아닌지
온통 그 생각에 빠져 있었기에
주께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권능을 사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2)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20절)
눈에 겨우 보일만한 크기의 겨자씨와 산은 그 크기에서 큰 대조를 보입니다.
겨자씨만 한 아주 작은 믿음일지라도 계속해서 그 믿음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으면,
하나님과의 생명의 관계가 지속해서 연결되어
믿음의 주체이신 하나님께서 큰일을 행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산(山)’은 문자적인 의미의 산이 아니라,
사람의 능력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커다란 문제,
난제(難題)를 뜻하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겨자씨와 같이 지극히 적은 믿음만 있어도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 사람이 할 수 없는 큰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3)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여 주께서 주시는 그 능력을 채우는 자가 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이 세상을 향하여 선포하고 외치는 자들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할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도 선포하고 외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은 볼 수 없으니
그 대신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의 사랑의 행위로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할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일들을 통해 나타내 보여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사랑과 능력은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우리에게 부어집니다.
➠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자기들의 부와 성공에 주목하는 동안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채우는 일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일이 거의 상실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에서 사랑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자기들의 상처 난 마음을 치유해 줄 것이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철옹성같이 높아져만 가는 교회를 바라보며
세상의 기업이나 재벌들같이
오직 자기 조직만을 위한 또 하나의 이기적 집단으로 여길 뿐입니다.
이런 요즈음 세태를 향하여도 주께서 추상같이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 묵상 : 당신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이 속한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그런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당신은 그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3. 내가 누릴 자유보다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1)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려고(26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관세와 국세를 누구에게서 받느냐고 물으셨습니다.
황제의 아들에게서 받는지 다른 사람에게 받는지를 물으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황제의 아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서 받는다고 말하자
예수님은 왕의 자녀들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이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으므로
더 이상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신약의 백성들이 되었으므로
구약의 율법에 속한 성전세에 대한 의무는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그들에게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하셔서
베드로에게 낚시를 하여 첫 번째로 잡은 고기의 입에서 한 세겔을 취하여
예수님과 베드로를 위한 성전세를 바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끝까지 싸워야 할 일과 타협하고 싸우지 말아야 할 일을 분별하십시오.
지금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은 진리를 지키는 일이라면,
그 일로 사람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고 공동체가 분열 되더러도
끝까지 그 진리의 말씀을 지켜야 하지만,
성전세를 바치는 일은 이미 그 법이 바뀌었으므로
진리를 지키는 일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 되었으니
공연히 이 일로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신약의 백성이므로
성전세를 바쳐야 한다는 구약의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사람이 되었으나,
아직 구약의 율법에 매인 유대인들은 아직 그런 자유를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그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위하여 내 자유를 스스로 제한하고,
성전세를 바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 내가 누려야 할 자유만 고집하면
공동체도 분열될 수 있고, 복음 선포에도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때로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내가 누려야 할 자유를 스스로 절제하여야 합니다.
나는 음식을 먹을 자유가 있으나 내가 먹는 음식으로 누군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면
그를 위하여 나는 그 음식 먹는 것을 절제하여야 합니다.
● 묵상 : 내 자유보다 교회와 내가 속한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스도인은 “나는 이것을 할 자유가 있다”든지
“나는 이것을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하고 말하기 전에,
내가 속한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것이
나의 자유를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4. 근심거리만 들리는 제자들
1) 두 번째 수난 예고(22~23절)
예수께서 두 번째로 수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자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께서 베드로를 책망하시던 것을 기억하는 제자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속으로 근심만 합니다.
예수님은 두 차례 모두 죽으신 후에 삼일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셨으나
제자들의 귀에는 다시 살아나리라는 말씀은 들리지 않고
죽으시리라는 말씀만 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그들을 향하여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고
질책하신 이유입니다.
2) 혹시 지금 큰 근심 중에 있지 않습니까?
큰 염려와 걱정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우시리라는 말씀은 들리지 않고
눈앞에 있는 문제들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그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도 제자들과 똑같이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질책을 들어야만 할 것입니다.
● 묵상 :
눈앞에 보이는 현실보다 주님의 말씀을 더 주목하십시오.
주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도우십니다.
믿음이 없으면 주님의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 기도제목
1. 장차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서 누릴
그 영광의 기쁨을 생각하면서
오늘 이 땅에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해
힘써 일하게 하옵소서.
2. 세상의 상처 받은 영혼들을
위로하고 치유할 능력을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고 알릴 수 있게 하옵소서.
3. 내가 누릴 자유를 고집하기보다
내가 속한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일에
더 힘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4. 모든 염려와 걱정을 떨쳐버리고
오직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