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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진핑의 끝이 시작되었다… 공산당 기관지가 국가주석의 이름을 ‘시진"호"’라고 오타낸 배경 / 2/18(수) / 프레지던트 온라인
중국이 일본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평론가 미야자키 마사히로 씨는 “중국이 대외적으로 강경한 태도를 보일 때, 국내에서는 심각하고 매우 심각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시진핑 주변에서 어떤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제3회)
※ 본 글은 미야자키 마사히로의 『지옥의 중국』(와니북스) 중 일부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 중국이 다카이치 총리에게 격분하는 이유
일본의 중국 분석에는 중대한 문제이며, 본질적인 시각이 부족하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군사적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는 나라이며, 그것이 중국 정치의 본질이라는 진리를 현재 평화에 무감각한 일본인들은 잊고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정권이 출범한 이후, 일중 관계는 냉전 상태가 되었다. 중국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뭐든 잘 안 될 때, 주먹을 들어서 때리는 샌드백 대신이 필요하다. 역대 일본의 총리들은 중국에 절을 하고 조공을 바쳤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국이 “레드라인을 넘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거다”는 협박을 담담히 물리치고, “대만 사태는 일본 사태다”, 즉 “존재 위기 상황”이라고 여성 총리가 말해버렸다.
중국 황제 앞에서 ‘‘왜왕의 섭정’ 같은 것’이 주종 관계를 뒤집는 구도가 된다. 이런 역사적 감각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중국의 횡포와 지나친 일본 공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 시진핑 주변에서 발생하는 이상 현상
마치 성덕태자가 수나라 사절에게 보낸 서한에 ‘해가 지는 곳의 천자에게’라고 거만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수나라 양제가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연패하고 정치가 피폐해진 틈을 노릴 수 있다는 냉정한 상황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시진핑은 지금 그럴 여유가 없다’는 중국 내부 사정을 다카이치 정권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시점을 노릴 수 있었다. 치밀한 준비와 정보 교환이 트럼프 대통령과는 있었던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중국이 말하는 ‘레드라인’은 ‘대만’과 ‘역사 인식’이다. 이 선을 넘으면 ‘끔찍한 일이 될 것’이라며 왕이 외무장관은 시진핑의 얼굴색을 보면서 일본을 위협했다. 외부에 강경한 태도를 보일 때, 중국 내부에서는 심각하고 매우 심각한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첫 번째는 경제 불황이다. 부동산 버블의 참상에 대해서는 이미 그 상황을 언급한 바 있다. 둘째는 공산당의 선전 기관이 시진핑을 비난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인민일보』는 ‘시진핑(習近平)’을 ‘시진보(習近乎)’라고 쓰고, ‘그것은 오타였다’고 말했으며, 그뿐만 아니라 ‘최고 지도자’를 ‘마지막 지도자’라고 적었다.
‘시진핑이 발표(発表)했다’라고 써야 할 부분을 ‘발광(発狂)했다’라고 썼다.
‘인민일보’를 매일 ‘애독하고 있는’ 차이나 워처들은 이를 눈치챘다. ‘뭔가 엄청난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라고.
■ 부패는 중국의 전통 문화
2025년 10월에 개최된 사중전회에서, 안건이었던 중앙군사위원회의 3명 결원이 보충되지 않았다. 장승민(張升民)의 부주임 승격이 발표된 것뿐이다.
시진핑은 복건 파벌 군인들을 발탁해 그 중 8명을 중앙위원까지 올렸다. 그들이 자신들의 보디가드라고 생각해 온 복건벌을 이끌어 온 사람은 묘화(苗華)이다.
복건파, 즉 난징군구의 간부들이 면종복배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시진핑은 전 국방부 장관 이상복을, 그 전 국방부 장관 위봉화도 실각시켰다. 이들 중 충성파의 숙청은 마오쩌둥이 ‘친구’이자 ‘후계자’로 지목한 린표(林彪)의 숙청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중대한 사건이다.
복건파(난징군구는 대만 공격을 담당한다. 복건파는 널리 시진핑의 복건성 시절 부하들을 가리킨다)를 일제히 실각시켰지만, 그 이유가 ‘중대한 당규 위반’과 ‘부패’라는 주장은 어색하다.
왜냐하면 ‘부패는 중국 4천 년의 문화’이며, 누구나 하고 있는 일이라는 점. 충성을 맹세해 온 부하를 부패 등 이유로 물러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 국가주석에 오른 후진타오(胡錦濤)의 불우
조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이 문제를 검증해 보겠다.
시진핑이 반부패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정적’을 숙청하기 시작한 것은 장쩌민(江沢民) 원정 시절의 후진타오 파벌을 외부로 몰아낸 데서 비롯되었다. ‘후진타오의 10년’은 곱씹어 말하면 ‘장쩌민의 정치’이며, 군대도 장쩌민이 임명한 군인들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엔지니어 출신인 후진타오는 이름은 군사위원회 주석이었지만 실권은 없었고, 그의 지시를 받아 움직이는 군벌도 없었다. 군은 언제까지나 공산당에 충성을 맹세하는 구시대적인 군이 아니라 ‘국군’이어야 한다는 논의도 군 논객 일부에게서 있었다. 국가에 소속되지 않은 군대는 사군이 되어 군벌화한다. 최근에는 원세개, 장작림, 염석산을 보면 명확할 것이다.
장쩌민이 후진타오 시대에 군사위원회를 장악한 인물은 서재후와 곽백웅이었다. 장쩌민은 당소평에게 아첨하며, 이를 중심으로 꾸준히 인맥을 넓히고 군인을 부패시켜 교묘히 유인한 뒤, 이러한 작업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 '밀수선 호위'를 부업으로 한 중국 해군
장쩌민은 ‘당의 지도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받았다. 장쩌민은 뇌물을 좋아하고 권력 지향적이며 금전주의적인 관료를 등용한 것이다. 장쩌민 시대에 중국 공산당은 부패와 애인이 만연한 호색배금 시대를 맞이했다.
‘중국인민대학 위기관리연구센터’가 2012년에 실시한 조사(‘관료 이미지 위기 보고서’)에 따르면, 부패한 관료의 95%가 애인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장쩌민 자신에게도 애인이 있었으며, 유명 가수 송조영이 그 조사 보고서에 포함돼 있었다.
다만, 서재후와 곽백웅은 시진핑에게 잠재적인 정치적 적이었기 때문에 몰락했다.
2015년 4월, 군복무 부대 최고위를 맡았던 곽백웅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구속하고, 부패 혐의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 전에 곽의 아들인 곽정강·저장성 군구 부정치위원(소장)을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하고, 정강 부인인 오방방도 구속했다.
아버지가 군사위원회 부주석이던 지위를 이용해 거액의 뇌물을 받고, 승진이나 군용지의 민간 재판매 등에서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이러한 군 부패는 장쩌민이 군의 부업을 묵인하고, 오히려 장려했으며, 결국 밀수선을 해군 함정이 호위하고 세관까지 매수해 자유롭게 이용하게 만든 전례 없는 ‘하문 사건’까지 일어났다.
■ 시진핑 '부패 척결'의 실태
또한, 장쩌민은 군을 길들이기 위해 상장 임명을 무분별하게 내리며, 군의 환심을 돈으로 사들였다. 장쩌민 시절의 상장은 무려 62명에 달했으며, 그 직위를 얻는 평균 금액이 1억 엔에 이른다는 소문도 있었다.
같은 시기에 군사위원회 부주석이었던 서재후는 2014년에 당원 자격을 박탈당했으며, 2025년 3월 베이징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와 동시에 공안계를 장악하고 있던 주영강(周永康)을 구속하고, 부패 혐의로 기소했다. 전선 지휘는 왕치산(王岐山)이 맡았다. 왕치산은 부패 추방에 강력한 수단을 썼지만, 숙정의 대상은 시진핑의 정적 파벌에만 국한하고 있었다. 온가보 일가도 조사를 받았다.
처음에는 왕치산의 단속 활동에 국민들이 환호했지만, 곧 왕치산 일족의 하이난 집단이 대규모 금융 사기를 저지른 것이 드러나면서 인기를 잃었다.
시진핑 국가주석 취임 전, 최대의 정적이라 불리던 박희래(薄熙来)는 부인의 영국인 살인 사건에 연루된 형태로 실각했다.
이 박과 주영강(周永康)은 친밀한 관계로 알려져 있으며, 두 사람 모두 시진핑에게는 전제 정치의 장애가 되는 인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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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마사히로 / 평론가
1946년생. 이시카와 현 출신. 와세다 대학 중퇴. ‘일본학생신문’ 편집장, 잡지 ‘낭만’ 기획실장을 거쳐 무역 회사를 경영. 1982년, 『또 다른 자원 전쟁』(코단샤)으로 논단에 올랐다. 30년 이상에 걸친 정밀한 취재로 명성을 얻은 일본을 대표하는 중국 관찰가이며, 해외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최근 저서로는 『상식, 코먼센스로 되찾는 일본의 미래』(하트 출판), 『도요토미 형제와 이에도쿠』(이쿠호우샤), 『테크노·리버테리언의 야망』(와크), 『그 사람의 죽음 방식』 등이 있다 ‘죽는 것은 사는 것이다’(비즈니스사), ‘스텔스 드래곤의 정체’, ‘악의 스スメ’(모두 와니북스 출판) 등이다. 저서는 약 300권에 달한다. 5권이 중국어로 번역되어 있다. 또한 작가로서 『납치』, 『음모 투기』(두 작품 모두 도쿠마 서점) 등 국제 미스터리를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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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미야자키 마사히로
ついに習近平の終わりが始まった…共産党機関紙が国家主席の名前を「習近"乎"」と誤植した背景
ついに習近平の終わりが始まった…共産党機関紙が国家主席の名前を「習近"乎"」と誤植した背景 / 2/18(水) / プレジデントオンライン
中国が日本への攻撃を強めているのはなぜか。評論家の宮崎正弘さんは「中国が対外的に強硬な姿勢を演出するとき、国内では深刻で非常にまずい事態が進行している。実際習近平の周辺ではある異変が起きている」という――。(第3回)
※本稿は、宮崎正弘『地獄の中国』(ワニブックス)の一部を再編集したものです。
■ 中国が高市首相に怒り狂うワケ
日本の中国分析には重大で、本質的な視点が欠けている。最も大事なことを見逃しているのだ。中国は軍事ですべてが動く国であること、それが中国政治の本質という真理を現在の平和惚(ぼ)けの日本人は忘れている。
高市早苗政権誕生以後、日中関係は冷戦状態となった。中国がこのような状況をつくり出したのだ。
何事もうまくいかないとき、拳を挙げてぶったたくサンドバックの代わりが欲しい。歴代日本の首相は中国に拝跪(はいき)して朝貢してきた。それがこともあろうに中国の「レッドラインを越えたらひどいことになるゾ」という脅しを平然と撥ねのけ、「台湾有事は日本有事」、つまり「存立危機事態」だと女性宰相が言ってのけたのだ。
中国の皇帝を前にして「『倭王の摂政』ごとき」が主従関係をひっくり返した図式になる。こういう歴史感覚がわからないと中国の横暴さ、度を越した日本攻撃は理解できないだろう。
■ 習近平の周囲で生じる異変
あたかも聖徳太子が遣隋使へ持たせた書簡に「日没するところの天子へ」と居丈高に言い切れたのは、隋の煬帝(ようだい)が高句麗(こうくり)との戦争に連敗し、政治が疲弊している隙を突けるという冷静な情勢判断があったからだ。これは現在の状況に酷似する。
「習近平は今それどころではない」という中国の内部事情を高市政権が掌握できていたからこそ、このタイミングを狙えた。周到な準備と情報の交換がトランプ大統領との間にあったと考えるべきだろう。
中国の言う「レッドライン」とは「台湾」と「歴史認識」である。この一線を越えると「ひどいことになる」と王毅外相は習近平の顔色を見ながら日本を脅迫した。対外的に強硬な姿勢を演出するとき、中国内部では深刻で、非常にまずい事態が進行している。
第一は経済不況である。不動産バブルの惨状についてはすでにその惨状は述べてきた。第二は共産党の宣伝機関が習をからかい始めていることだ。
例えば『人民日報』は「習近平」を「習近乎」と書いて、「あれは誤植だった」と言ってのけ、そればかりか「最高指導者」を「最後の指導者」と書いた。
「習近平が発表した」と書くべき箇所を「発狂した」と書いた。
『人民日報』を毎日「愛読している」チャイナ・ウォッチャーたちは気がついたのだ。「なにかとてつもない異変が起きているのでは?」と。
■ 汚職は中国の伝統文化
2025年10月に開催された四中全会で、懸案だった中央軍事委員会の3名の欠員が補充されなかった。張升民(ちょうしょうみん)の副主任昇格が発表されただけである。
習近平は福建閥の軍人たちを抜擢し、そのなかの8名を中央委員にまで押し上げた。彼らが自分のボディガードと考えてきた福建閥を率いてきたのは苗華(びょうか)である。
福建閥、すなわち南京軍区の幹部らが面従腹背(めんじゅうふくはい)であったことに衝撃を受けた習近平は前国防相の李尚福、その前の国防相の魏鳳和も失脚させた。これら一群の忠誠組の粛正は毛沢東が「朋友」として「後継者」と指名した林彪(りんぴょう)の粛正を彷彿(ほうふつ)とさせるほどの重大事件なのだ。
福建閥(南京軍区は台湾攻撃担当。福建閥とは広く習近平の福建省時代の部下たちを指す)を一斉に失脚させたが、その理由が「重大な党規違反」「汚職」という言い分はオカシイだろう。
なぜなら「汚職は中国四千年の文化」であって誰もがやっていること。忠誠を誓ってきた部下を汚職などの理由で失脚させるはずはないではないか。
■ 国家主席に上り詰めた胡錦濤の不遇
もう少し過去に遡ってこの問題を検証しておく。
習近平が反腐敗を政治利用して「政敵」の粛正を始めたのは江沢民(こうたくみん)院政時代の胡錦濤(こきんとう)閥を圏外へ追いやることからだった。「胡錦濤の10年」というのは煎じ詰めて言えば「江沢民院政」であり、軍も江沢民が任命した軍人たちのピラミッド構造になっていた。
エンジニア出身の胡錦濤は、名前は軍事委員会主席だったが実権は何もなく、胡錦濤の指示を受けて動く軍閥はなかった。軍はいつまでも共産党に忠誠を誓う旧態依然の軍ではなく「国軍」とすべきだとする議論も軍論客の一部にはあった。国家に所属しない軍は私軍となり、軍閥化する。近年では袁世凱(えんせいがい)、張作霖(ちょうさくりん)、閻(えん)錫山(しゃくざん)をみれば明らかだろう。
江沢民から胡錦濤時代に軍事委に君臨したのは徐才厚(じょさいこう)と郭伯雄(かくはくゆう)だった。江沢民は、鄧小平に媚びへつらい、それを基軸にせっせと人脈を広げ、軍人を腐敗させて籠絡(ろうらく)し、そうした工作によって権力を掌握した。
■「密輸船護衛」を副業にした中国海軍
江沢民は「党の指導者」であったにもかかわらず、非難された。江沢民は賄賂の好きな、権力志向と拝金主義の官僚を登用したのだ。江沢民の時代、中国共産党は腐敗と愛人が蔓延する好色拝金時代を迎えた。
「中国人民大学危機管理研究センター」2012年の調査(「官僚イメージ危機報告書」)によれば、汚職官僚の95%に愛人がいたといわれる。江沢民自身にも愛人がおり、有名歌手の宋祖英がその調査報告書に含まれていた。
ただ、徐才厚と郭伯雄は、習近平にとって潜在的な政敵だったので追い落とされた。
2015年4月、軍制服組の最高位をつとめた郭伯雄・前中央軍事委員会副主席の身柄を拘束し、汚職の疑いで取り調べを始めた。その前に郭の息子、郭正鋼・浙江省軍区副政治委員(少将)を収賄容疑で立件し、正鋼夫人の呉芳芳も拘束した。
父親が軍事委副主席だった立場を利用して、多額の賄賂を受け取り、昇進や軍用地の民間転売などで便宜をはかっていたのだ。こうした軍の腐敗は江沢民が軍の副業を黙認し、というより奨励し、ついには密輸船を海軍艦艇が護衛し、税関も買収されてフリーパスするという未曾有(みぞう)の「廈門(あもい)事件」まで発生した。
■ 習近平「汚職粛清」の実態
また、江沢民は軍を手なずけるために上将辞令を乱発して、軍の歓心をカネで買った。江沢民時代の上将は実に62名にものぼり、そのポスト獲得相場は1億円とも噂された。
同じ時期に軍事委副主席だった徐才厚は2014年に党籍を剥奪され、2025年3月に北京の病院で死亡した。
ついで公安系を牛耳(ぎゅうじ)っていた周永康(しゅうえいこう)を拘束し、汚職で起訴した。陣頭指揮は王岐山(おうきざん)がとった。王岐山は汚職追放に辣腕(らつわん)を振るったが、粛正の対象は習近平の政敵の派閥だけに絞り込んでいたのである。温家宝一家も取り調べを受けた。
最初は王岐山の摘発活動に国民は喝采を送ったが、やがて王岐山一族の海南集団の大規模な金融詐欺が発覚すると、人気を失った。
習近平の国家主席就任前に最大の政敵とされた薄熙来(はくきらい)は、夫人の英国人殺害事件に連座するかたちで失脚していた。
この薄と周永康は親密な間柄とされ、いずれも習近平にとっては専制政治の障害になる人脈だったの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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宮崎 正弘(みやざき・まさひろ)
評論家
1946年生まれ。石川県出身。早稲田大学中退。「日本学生新聞」編集長、雑誌『浪曼』企画室長を経て、貿易会社を経営。1982年、『もうひとつの資源戦争』(講談社)で論壇へ。30年以上に亘る緻密な取材に定評がある日本を代表する中国ウォッチャー、海外からも注目されている。近著に、『常識 コモンセンスで取り戻す日本の未来』(ハート出版)、『豊臣兄弟と家康』(育鵬社)、『テクノ・リバタリアンの野望』(ワック)、『あの人の死にかた 死ぬことは生きることである』(ビジネス社)、『ステルス・ドラゴンの正体』『悪のススメ』(いずれもワニブックス刊)など。著作は300冊近い。5冊が中国語に翻訳されている。また作家として『拉致』『謀略投機』(共に徳間書店)などの国際ミステリーも執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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評論家 宮崎 正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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