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79장(구 40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본문의 중심 내용 : 하나님은 자연세계에서 동물의 세계로 시선을 옮겨 당신의 지혜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이러한 질문들 앞에서 욥은 더는 할 말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성경보기]
39네가 사자를 위하여 먹이를 사냥하겠느냐 젊은 사자의 식욕을 채우겠느냐 40그것들이 굴에 엎드리며 숲에 앉아 숨어 기다리느니라 41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허우적거릴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는 이가 누구냐
39:1산 염소가 새끼 치는 때를 네가 아느냐 암사슴이 새끼 낳는 것을 네가 본 적이 있느냐 2그것이 몇 달 만에 만삭되는지 아느냐 그 낳을 때를 아느냐 3그것들은 몸을 구푸리고 새끼를 낳으니 그 괴로움이 지나가고 4그 새끼는 강하여져서 빈 들에서 크다가 나간 후에는 다시 돌아오지 아니하느니라
5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6내가 들을 그것의 집으로, 소금 땅을 그것이 사는 처소로 삼았느니라 7들나귀는 성읍에서 지껄이는 소리를 비웃나니 나귀 치는 사람이 지르는 소리는 그것에게 들리지 아니하며 8초장 언덕으로 두루 다니며 여러 가지 푸른 풀을 찾느니라 9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 10네가 능히 줄로 매어 들소가 이랑을 갈게 하겠느냐 그것이 어찌 골짜기에서 너를 따라 써레를 끌겠느냐 11그것이 힘이 세다고 네가 그것을 의지하겠느냐 네 수고를 그것에게 맡기겠느냐 12그것이 네 곡식을 집으로 실어 오며 네 타작 마당에 곡식 모으기를 그것에게 의탁하겠느냐
13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14그것이 알을 땅에 버려두어 흙에서 더워지게 하고 15발에 깨어질 것이나 들짐승에게 밟힐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16그 새끼에게 모질게 대함이 제 새끼가 아닌 것처럼 하며 그 고생한 것이 헛되게 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나니 17이는 하나님이 지혜를 베풀지 아니하셨고 총명을 주지 아니함이라 18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19말의 힘을 네가 주었느냐 그 목에 흩날리는 갈기를 네가 입혔느냐 20네가 그것으로 메뚜기처럼 뛰게 하였느냐 그 위엄스러운 콧소리가 두려우니라 21그것이 골짜기에서 발굽질하고 힘 있음을 기뻐하며 앞으로 나아가서 군사들을 맞되 22두려움을 모르고 겁내지 아니하며 칼을 대할지라도 물러나지 아니하니 23그의 머리 위에서는 화살통과 빛나는 창과 투창이 번쩍이며 24땅을 삼킬 듯이 맹렬히 성내며 나팔 소리에 머물러 서지 아니하고 25나팔 소리가 날 때마다 힝힝 울며 멀리서 싸움 냄새를 맡고 지휘관들의 호령과 외치는 소리를 듣느니라
26매가 떠올라서 날개를 펼쳐 남쪽으로 향하는 것이 어찌 네 지혜로 말미암음이냐 27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28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29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30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메시지]
우리가 읽지는 않았지만, 욥기 38장 39절부터 시작해서 오늘 읽은 39장 1절부터 30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동물에 관한 말씀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사자, 까마귀, 산염소, 암사슴, 들나귀, 들소, 타조, 말, 매와 독수리 등입니다. 이중 어떤 동물들은 사람들이 길들여 가축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인간에게 잘 알려지고 가축으로 유용한 동물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용하고 신비스럽거나 인간에게 적대적인 동물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동물들 역시 하나님의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창조하실 때 자신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아셨습니다. 야생동물들이 그러한 것처럼 인간에게 닥치는 고난들은 불가해하고 해를 끼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또한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질서의 일부분입니다.
사자나 까마귀는 사냥에 성공해야 먹고 살 수 있는데, 그 사냥을 성공으로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욥 38:39-41). 사람은 까마귀와 사자의 생존에 아무런 지혜도 보태지 못합니다. 까마귀의 문제에조차 무지한 욥이 고난의 문제에 대해 정답을 제시하고, 하나님의 뜻이 그 정답에서 벗어났다며 억울해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릴 수 없으므로 항상 불확실 속에 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헤아릴 수 없는 데까지 하나님의 돌보심이 미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는 그 주인공으로 산염소, 들나귀, 타조, 말, 매와 같은 야생짐승들입니다. 이런 짐승들은 사람의 손을 전혀 거치지 않고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따라서 잘 살아갑니다. 1절-4절에 나오는 산 염소나 산양은 새끼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빈 들에서 크다가 독립합니다. 동물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도, 그 새끼가 튼튼히 자라나게 하시는 것도 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아래 있습니다.
5절에서 12절에 나오는 들나귀나 들소는 황량한 들판이 집이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소금땅에서 잘 살아갑니다. 사람의 간섭을 비웃으며 자유롭게 푸른 초장을 찾아다니며 그렇게 살아갑니다. 척박한 땅에서 야성과 자유로움으로 누비고 다니는 것도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풀어놓으신 동물들을 사람의 힘으로 제어하거나 길들이기 어렵습니다.
13절부터 18절까지 타조를 말씀합니다. 타조에게는 빠르게 달릴 수 있는 힘을 주셨지만 새끼를 돌볼 총명은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타조가 달음질할 때는 말보다도 빠르게 달린다고 말합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총명이 없는 것같은 짐승도 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빚어진 동물입니다. 저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고유의 특성을 갖도록 완벽히 설계되었습니다.
19절에서 25절은 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말에게는 전쟁터에서 장애물을 뛰어넘고 적을 향해 돌진하는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특히 멋진 갈기를 흩날리며 거대한 콧김을 내뿜고 앞발로 땅을 차며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말의 신비로운 모습은 인간의 지혜로 다다를 수 없는 신비의 영역입니다.
26절-30절은 매를 말씀합니다. 매나 독수리가 높이 날면서 먹이를 찾거나, 낭떠러지나 험준한 바위 끝에 집을 짓는 것도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런 동물의 세계는 인간의 지혜로 헤아리기에는 지극히 복잡하고 다양하며, 때로는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창조주의 지혜로 조화롭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난받는 의인과 번영하는 악인이 섞여 사는 복잡한 인간 세상도,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통치의 손길 아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고난에 대해서도 욥은 ‘인과응보’의 지혜만 가지고 있을 뿐, 원인과 결과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선한 계획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지혜에는 조금도 닿지 못합니다. 이 복잡한 인간 세상에서도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통치의 손 길이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기도
1.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기 원합니다. 나도 그 세심한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도 우리 교회와 이 사회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