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3.
2008년 6월 30일, 월요일 저녁.
학교로 출발하기 전, 나는 휴대폰을 버렸다.
그리고 가는 길에 나타나는 공중전화로 몇 번 더 그를 개훈련시켰다.
매번 목적지에 도착할 때 마다 그는 희망이 무너지리라.
그러다 재차 공중전화를 발견한 다음, 차에서 내려 전화를 걸었다.
어느덧 시간은 저녁이 되어 있었고, 그 역시 차를 타고 학교로 향하는 중이었다.
"어떻게 하죠..? 저 이러고 싶지 않은데, 저 이러면 안 되는데.."
솔직한 나의 심정이 튀어나왔다.
말을 한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진실한 고해성사였다.
어느덧 약 기운이 떨어진 것인가..
"그래. 잘 생각했다. 내가 없던 일로 해주마? 어? 그러니 제발..!! 미정이만 무사히 보내라.. 부탁이다!"
그러자 그 역시 나를 달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문득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온 것이지..
나는 단지 행복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평범하지만 행복하게 말이다...
"네.. 보낼게요.. 그래야겠어요.. 흐윽, 도저히 안 되겠어요.."
주머니에 들어있는 마약을 흡입한 뒤.. 나는 눈물까지 흘리며 그러겠노라고 했다..
그래.. 보내주자. 똑같이 상대한다면.. 나 역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래.. 여기서 끝내자.. 이제 그..
아니다.. 내가 물러서면 도대체 누가 내 동생의 복수를 해주냐..
내 동생만 죽고 저들은 행복하게 잘산다..?
집어치워! 씨발.. 다 죽여버릴꺼야!!
"죽여서.. 죽여서 보낼께요.. 크크큭.. 그래.. 죽여야죠.. 저 개같은 년!!"
하하하..!! 웃음이 튀어 나왔다.
내가 봐도 난 미친놈같다. 정상과 약에 취한 중독자..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과 죽여야 한다고 외치는 악마..
그래.. 미쳤다. 너희들로 인해 나는 미쳐버렸다. 그러니 책임도 너희들이 줘야 한다..
억울한가? 서러운가? 나 역시 그랬다.. 나 역시 억울하고 서럽고 개같았다!!
악마를 상대하기 싫었으면.. 악마를 만들지 말았어야했다!
끼이이이익.
몇 번이나 사고가 날 뻔했다.
이놈의 약은 술보다 더 무서운 놈이다.
그렇지만 난 안전하게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고, 뒷자석에 자리잡은 가방을 꺼냈다.
겉보기에는 커보인다. 그렇지만 안에는 아주 작은 내용물이 들어있다.
바로 엄지 발가락과, 발가락이 잘린 미정이의 사진이었다..
슬퍼하지 말아라.. 곧 만나게 될 것이니.
나는 미정이의 잘린 발가락에 위로를 건넸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 창고를 향해 출발시켰고, 가는 도중 공중전화기를 발견,
차에서 내려 전화를 걸었다.
"죄송해요, 아저씨.. 미끄럼틀 뒤에 미정이가 있어요..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쓸데없는 기대를 심어준다. 희망고문이기도 하다.
분명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죽었나? 아니면 살았나? 그러나 분명히 있을 것이라 믿겠지..
하지만 그곳에는 발가락밖에 없다.
제우스의 명을 어기고 판도라가 연 상자처럼, 너에게 고통만을 선사할 것이다..
하하.. 하하하.. 하하!!
"이 입이 그랬잖아..!"
콰지지직!!
"아악, 아아아악!!!"
하아.. 하아.. 거친 호흡을 몰아쉬었다.
피의 악보와 미정이의 비명이 아름다운 곡을 만들어냈다.
크큭..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눈은 또 울고 있다..
나도 이제는 나의 마음을, 나란 놈을 모르겠다.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너무 많은 마약을 복용한 탓 같다.
뚜욱, 뚜욱.
핏물이 줄줄 흐르는 망치를 집어 던지고, 나는 미정이의 입을 수건으로 틀어막았다.
그러자 새하얀 수건이 금방 빨갛게 물든다.
빨주노초파남보.. 그 중 가장 강렬할 빨강이다.
이빨이 몇 개 부러진 탓으로 출혈이 생각보다 컸지만 나는 신경쓰지 않으며 마약을 꺼냈다.
그래도 나는 정말 착한 놈 같다.. 아픔을 잊게 해주려고 마약을 흡입하게 해주니..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말이다.
그 후, 문을 잠글까 하다가 어차피 도망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창고 문을 잠그지 않고 닫아만 둔 채 밖으로 나왔다.
밧줄에 날카로운 철사들을 감아 났기에 풀려고 한다면 손과 손목이 엉망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아직 한 번도 가지 않은 공중전화를 찾아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욕을 내뱉는다. 씹어 먹겠다고, 죽여버린다고 한다.
이봐, 이봐, 아저씨.. 그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닐텐데..?
나는 왠지 모를 희열과 슬픔을 동시에 느끼며 그에게 명령을 내렸다.
"집으로 돌아오세요.. 미정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그 말과 함께 나는 전화를 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키는 미정이가 밖으로 나올 때 가지고 있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만약을 대비해 가발과 마스크까지 착용한 다음,
cctv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올라갔다.
'이제 끝입니다..'
문앞에 서서 길게 쉼호흡을 한다.
이제 마지막이었다.. 이번 일만 무사히 끝나면,
나는 내가 바라던 복수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철커덕.
천천히 문을 연 나는 안으로 들어가 거실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가 도착할 때까지 불도 키지 않은 채 한참을 기다렸다.
아직 마약 기운이 남아 있어 머리가 빙빙 돌았다..
그런 내 머릿속에는 사랑하는 여동생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너도 기뻐하는구나.. 너의 복수를 해줌에..
나는 방긋, 미소를 지었다..
여동생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이제 최후만을 남겨 놓고 있었다.
2008년 7월 1일, 화요일 새벽.
얼마나 기다렸을까? 생각보다는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다른 이들도 같이 왔나 귀를 기울였지만..
한 명이 급하게 달려오는 소리다.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품에 준비해온 소형 망치를 꺼냈다.
그와 함께 현관문 입구에 서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곧 그의 욕설과 함께 현관문이 열리며 빛이 새어들어왔고,
그가 나를 확인하기도 전에.. 나의 손에 들린 망치가 움직였다.
퍼어어억!!
다음 회는 그레이 4입니다.
출처:『시니is눈물』
첫댓글 내일까지 어이 기다리나... 한숨만 나올뿐입니다....
^^;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루 한편 나오는건가요? 아옹.. 담주 월욜날쯤 몰아서 봐버리까..ㅡㅡ
완결까지 작업이 끝난 글이기에 지금은 하루에 한 편씩 올립니다.. 목요일날 완결나고요..^^ 감사합니다~
아직까지 왜 원수라고 하는지 이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