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난 뒤에 나의 바로 위의 형, 또 그 위의 형님, 그리고 나까지 삼 형제를 어머니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서 대학에 보내 주었다. 울 엄마가 늘 하던 말이 ‘이제 이 년 남았제. 이제 한 해만 지내면 끝나는구나.’ 였다. 우리 형제가 대학 공부를 끝내는 날을 맞이하는 것이 어머니의 염원이었다. 한 해만 ------, 이라는 말은 마지막 대학생인 내 앞에서 한 말이었다. 학비 감당이 버거웠던 어머니가 가장 기다린 것이 우리들의 졸업이었다. 울 엄마의 가장 큰 바람은 학비 부담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 길은 오직 하나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졸업하는 날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의 졸업을 두 해이다. 한 해만 남았다며 손가락을 꼽고 계셨다. 사실은 나도 어머니처럼 손가락을 꼽고 있었다. 수확을 끝낸 가을 날의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방문 앞에 앉아계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선하다. 나도 잠이 오지 않아서 어머니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면서 어두운 밤을 함께 하고 있었다. 그때 어머니가 말했다. 내년의 농비가 얼마이며, 내 학비는 얼마인데, 아무리 계산해도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죽은 모습으로 가만히 듣고 있었다. ‘살림을 살아보면 신기하더라. 작년에도 이랬어. 근데 이럭저럭 살아보니 빚 없이 살아지더라. 금년도 그렇게 넘어가겠지.“ 어머니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나더러 걱정하지 말라는 말인지는 가늠이 안 되지만, 나는 이 말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사는 일은 신기한 일이고, 인생을 만들어가는 일은 인간사의 일만으로는 계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이때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때의 내 생각으로는 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어머니의 걱정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마 어머니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두 해 남았제, 한 해 남았제 하였을 것이다. 학교만 끝내면 어머니를, 그리고 나를 짓누르던 걱정거리는 툴툴 털어지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끝낸 뒤에는 석가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苦‘의 세상이 끝나고 광명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드디어 나에게 끝나는 날이 왔다.
끝낸 후에는 나는 쥐꼬리보다 더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 수련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돈으로 하숙비도 내야하고, 더 난감한 일은 대학원에 적을 두었으므로 학비도 감당해야 했다. 그때의 내 생각은, 아니 우리 세대들의 생각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부모에게 손을 벌린다는 일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끝낸 후에 나는 더 곤궁한 생활을 하였다. 내가 학교를 끝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울 엄마도 농사일을 끝내고 경주 시내에 터 잡고 있는 형님네로 거처를 옮겼다. 이제는 더 이상 농사일에 파묻혀서 고생하지 말라고, 고생을 끝내라고 우리 형제들이 내린 결정이었다. 이제는 농사일로, 우리들의 학비로, 밤을 지새면 걱정한던 삶에서 벗어나서 편안한 일상을 즐기시라는 뜻이었는데, 그런데도 어머니는 오히려 시골에서 땀흘리며 농사짓던 일을 잊지 못하였다. 모여 앉아서 남의 집 며느리를 험담하고, 내 아들들을 자랑하던 시골의 이웃 친구를 그리워하였다. 어떤 날은 훌쩍 시골 동네로 떠나가서 며칠을 머물다 오곤 하였다. 시골로 떠나갔다가 돌아온 어머니를 나무라면, 하는 말이 ’밥만 묵고 하는 일 없이 놀고 있으려니 세상이 지업으서(지루해서) 못 살겠더라. 놀아보니 노는 것도 좋은 게 아니네, 그래도 너거들(너희들) 학비 걱정할 때가 좋았는기라.’ 하였다. 나는 학업이 끝나고 엄마한테 손 벌리지 않은 세상이 바로 지상의 천국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런 고난의 시절을 끝낸 후에 나는 다시 대학원의 학비로 속을 끓였다. 이제는 어머니에게 손도 벌릴 수가 없으니------, 이것이 내가 바라고 바랐던 끝난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끝난 후에 어머니는 돈의 압박과 농촌의 일에서 벗어났다. 농촌의 일이 몸에 베였다 하여 몸만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도 다스리고 있었다. 나에게 닥친 일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긴 인생에서 끝낸 일이란 있을 수 없다. 끝난 후에 내가 체험하는 것이라면, 우리의 일은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고 나서, 뒤돌아보니 나의 삶이 아주 많이 쌓여서 풍부한 경험을 만들어 주었다. 끝낸 일도 아주 많다. 대학원에 재학한 일도 그랬고, 수련의 생활도 끝을 냈다. 안동에서 종합병원에 봉직하였던 일도 끝을 냈다. 개원의 생활도 끝냈다. 끝낸 뒤에는 더 좋은 세상이 펼쳐지리라고 기대하면서 살아왔다. 분명한 것은, 끝낸 뒤라도 끝나는 일은 없고 또 다른 세계가 나를 기다리더라는 것이다. 이제 정말 끝낼 일이 하나 남아 있다. 이 세상의 삶을 끝내는 일이다. 내 가까운 친구는 이번에 끌내는 일은, 끝내고 나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무덤은 왜 만들어, 재산은 왜 남겨, 글은 왜 남겨, ---, 왜, 왜.라고 한다. 그 친구는 모든 것이 끝났을 때에는 왜 하느냐가 정답이라도 되는 듯이 말하였다. 끝낸 뒤에는, 뒤에는. 나는 답을 모르니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살아보니 그렇지 않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