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나 사람이나 저마다 나름대로의 운명이 있다.
”아이고 내 자식 같은 것들이 저렇게 되다니,“ 수해를 입은 농민들이 망연자실해서 내뱉는 탄식이다. 농부에게는 그들이 생산한 농작물들이 자식이듯, 예술( 미술, 음악, 책, 도자기를 비롯한 모든 예술품)이 하나하나가 다 자식이다.
한 개인이 만들어낸 예술은 태어나자마자 저마다의 생명력을 가지고 세상이라는 너른 바다를 헤엄쳐 나가는 것인데, 특히 책이 그렇다. 원고를 탈고해서 출판사에 넘기는 순간 그 책은 양자를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고, 그 다음에는 양아버지인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관리(판매)하는 것이다.
요즘에는 북 토크, 또는 출판기념회를 통해서 저자가 직접 책을 파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책의 운명이 그렇다는 것이다.
“작가는 책이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자마자 스스로 독자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는 것에 새롭게 놀란다. 그것은 마치 곤충의 일부가 절단되면 그때부터 그것이 제 길을 가는 것과 같은 기분이다. 아마도 작가는 책에 대해서는 거의 완전히 잊고 있을 것이며, 그 책에 씌어진 견해를 초월해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할 것이며, 그 책을 생각하던 그 때 그가 타고 날아갔던 그 날개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책의 독자는 그 책을 찾아내 생명의 불을 붙이고, 기쁘게 하고, 놀라게 하며, 새 작품을 제시해 보여주고, 목적과 행위를 갖는 영혼이 된다. 간단히 말해서 그것은 정신과 영혼이 부여된 존재처럼 살면서도 인간이 아닌 것이다.
자기 내부에 있었던 만큼의 생명을 낳든가 힘을 돋우든가 계몽하든가 하는 사상과 감정은 모두 자신의 저술 속에서 삶을 계속 영위하며, 자신은 그저 묵은 잿더미에 지나지 않지만, 그 불이 도처에서 되살려져 옮겨지고 있다는 것을, 노년에 말할 수 있는 작가는 가장 행복스런 제비를 뽑은 것이다.
그런데 비단 책에서 뿐만이 나리라 인간의 모든 행위도 어떤 방법으로든 다른 행위와 결심과 사상의 원인이 된다는 것, 생성되는 것은 반드시 생성되어야 할 모든 것과 서로 단단히 뒤얽혀 있음을 고려한다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며 움직이고 있는 불멸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호박琥珀 서의 곤충처럼 모든 존재자의 총체 구속 속에 갇혀 영원화 되는 것이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책은 거의 인간화 된다.‘에 실린 글이다. 책도 ‘독자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삶을 살아간다는 말,’ 그 말은 맞다.
작가는 온 힘을 기울여서 책을 집필하여 출판사에 일종의 양자養子를 보내는 것이고, 출판사는 그 책을 자녀처럼 잘 키워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출판사의 사랑과 독자들의 사랑을 흠뻑 받고 운도 좋은 책은, 세상이라는 대양을 마음껏 헤엄치고 날아다니지만 그렇지 못한 운명의 책은 나오자마자 사람들에게 선보일 사이도 없이 사장되기도 한다.
살다가 터득한 지혜, 하나, 한 권의 책은 저자와 출판사의 의도와는 다른 저마다의 운명을 타고 난 것이라서 제 나름대로의 길을 간다는 것. 저자나 출판사가 속수무책일 때가 더 많은 것이 대부분의 책들의 운명이다.
“책도 사람의 경우와 같다. 소수小數가 큰 역할을 하고, 그 나머지는 대부분 패배한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볼테르의 <철학적 사전>에 나오는 말이다.
도대체 좋은 책이란 어떤 책을 말하고 나쁜 책은 어떤 책을 말하는 것일까?
많이 팔리는 책? 아니면 많이 팔리진 않았지만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책?
책을 낼 때마다 자식과 같은 이번 책은 어떨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것,
책(모든 예술 포함)을 쓰는 사람들의 비애다.
2024년 7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