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 공로와 소망보다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양심의 가책을 받은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감히 청하지 못하는 은혜도 내려 주소서.
제1독서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 말라키 예언서의 말씀입니다.3,13-20ㄴ
13 너희는 나에게 무엄한 말을 하였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런데도 너희는
“저희가 당신께 무슨 무례한 말을 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14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15 오히려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16 그때에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서로 말하였다.
주님이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을 존중하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비망록에 쓰였다.
17 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나서는 날에 그들은 나의 소유가 되리라.
부모가 자기들을 섬기는 자식을 아끼듯 나도 그들을 아끼리라.
18 그러면 너희는 다시 의인과 악인을 가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이와 섬기지 않는 자를 가릴 수 있으리라.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복음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이웃을 향한 가장 무책임한 행위란?
오늘 복음은 주님의 기도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이는 마치 문을 두드리며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빵 세 개는 성령으로 구워지고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도의 목적은 성령을 청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의 기도를 마치 문을 두드리듯 끊임없이 바치면 성령을 얻게 되고 그러면 친구에게 줄 빵 세 개를 얻게 됩니다. 결국 기도하는 목적은 성령으로 빵 세 개를 얻어서 이웃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만약 빵 세 개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분명 그 사람은 칼 세 자루를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100% 피해를 보게 됩니다.
영화 ‘나이트크롤러’(2014)의 줄거리입니다. 나이트크롤러는 직업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고나 범죄 현장을 찍어 방송사에 파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주인공 루 블룸은 도둑이자 사기꾼이며 폭행도 일삼습니다. 그는 고철을 훔쳐 팔고 그를 저지하는 경비원을 폭행한 다음 시계도 빼앗아 찹니다. 그러다 나이트크롤러가 사고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 일에 뛰어듭니다. 경찰 무전을 도청하여 사건 현장에 도착해 자극적인 장면을 촬영하여 그런 영상을 원하는 방송국에 비싸게 팝니다. 돈도 많이 벌게 되어 차도 바꿉니다. 그러며 점점 더 위험하고 자극적인 영상을 얻기 위해 그는 조수를 채용합니다.
루는 절망에 빠진 젊은이 릭을 고용합니다. 그리고 위험한 총격전과 같은 상황에서는 그에게 촬영을 맡깁니다. 루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에 가택 침입이 진행 중인 곳에 도착하여 당국에 즉시 전화하는 대신, 살인자들이 떠나는 것을 촬영한 후 집에 들어가 내부의 시체를 촬영합니다. 그는 나중에 스스로 추적할 수 있도록 살인자들을 보여주는 부분을 보류하고 영상을 판매합니다. 루는 숨겨둔 영상을 사용하여 용의자를 찾아내고 경찰에게 그들의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계속되는 추격전과 총격전을 카메라에 담습니다.
추격 도중 루의 전술에 점점 불편해진 릭은 루가 살인범의 영상을 경찰에 공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더 많은 돈을 요구합니다. 용의자의 자동차가 추락하자 루는 릭을 내보냅니다. 범인들이 다 사망하였다는 거짓말과 함께. 그러나 범인 중 한 명이 아직 살아있어 릭을 쏩니다. 경찰은 총잡이를 사살하고 릭은 부상으로 사망합니다. 루가 일부러 자신의 범죄에 돈을 요구하는 릭을 죽게 한 것입니다. 루는 차에서 이 모든 장면을 찍어 매우 비싼 값에 팝니다. 경찰은 그날 밤의 사건에 대해 그에게 심문하지만, 그는 무죄한 척하고 석방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루는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 비디오 저널리스트 팀을 훈련하는 모습을 보이며 헌신과 노력이 성공의 열쇠임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지 않을만한 일은 절대로 여러분에게도 시키지 않습니다.”
릭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이익을 취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와 함께 일을 하려고 하는 릭의 운명은 처음부터 어두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기 옆에 있어 봐야 피를 빨리는 일밖에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고 쾌락을 좋아하고 교만한 사람과 있으며 이익을 보려는 생각은 어리석습니다.
우리는 또한 이웃에게 그러한 칼을 세 자루 가지고 다니며 만나지 않는지도 살펴야 합니다. 우리는 칼 세 자루를 버리고 빵 세 개를 가지고 친구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친구가 생깁니다. 루카가 말하는 빵 세 개는 성령으로 얻어지는 복음삼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루카 복음은 명확히는 밝히지 않지만, 항상 ‘삼구’(三仇) 때문에 말씀의 열매, 곧 사랑이 맺히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성령을 받으시고 광야에서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육체의 유혹,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 권세와 영예를 주겠다는 유혹, 그다음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교만의 유혹을 받으십니다. 곧 육체와 세속, 그리고 교만의 유혹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루카의 행복과 불행 선언에서는 이것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마태오 복음의 여덟 가지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닌 행복을 빼앗는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곧 부유한 사람과 배부른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 들어 높임을 받아 지금 웃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합니다. 세속과 육신, 그리고 교만이 불행을 자초한다는 말입니다. 이와 반대로 가난한 사람, 지금 굶주리는 사람, 복음 때문에 박해 받고 모욕과 중상을 당하면 행복하다고 합니다. 복음삼덕, 곧 청빈-정결-순명이 행복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루카 복음만의 고유한 전승입니다.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도 삼구가 두드러집니다. 씨는 말씀이고 열매는 사랑입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드는 사람의 마음이 길과 돌밭, 그리고 가시밭입니다. 길은 말씀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는 악마와 같은 교만한 마음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바위에 떨어진 것은 쉽게 뜨거워졌다 식었다 하며 시련을 견디지 못하는 육적인 마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시밭은 세상의 재물과 쾌락, 걱정으로 말씀의 씨를 죽이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역시 마귀-육신-세속을 말하고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성령이 필요한데, 그 성령은 주님의 기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그 해법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삼구와 싸우셔서 복음삼덕의 열매를 맺어 그 빵 세 개를 지니고 복음 전파를 시작하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기쁘게 하려고 성령으로 삼구를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날카로운 가시를 들고 이웃에게 다가갈 것인가, 아니면 빵 세 개를 들고 다가갈 것인가는 우리가 주님의 기도를 얼마나 정성스럽게, 또 얼마나 끈기 있게 바치느냐에 달렸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행위는 빵 세 개를 준비하지 않는 채 누군가를 만나러 나가는 것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어느 인기 연예인의 수필을 읽다가 이런 내용을 보았습니다. 어렸을 때, 자전거를 타다가 발등을 다치게 되었는데 제대로 관리를 안 해서인지 피부 괴사가 진행된 것입니다. 결국 수술까지 하게 되었고, 수술 결과로 발등에 흉터가 생겼습니다. 이 흉터가 정말로 싫었고, 이 흉터에 대한 남의 시선을 느끼면서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타투를 해서 흉터를 가린 것입니다.
이렇게 흉터를 가려서 사람들이 더 이상 자기의 흉터를 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피곤한 일이 더 생겼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과 관심이 쏟아지는 것입니다. “이게 뭐야? 안 아팠어? 왜 했어? 어디서 했어?” 등의 질문이 계속해서 주어졌습니다.
못난 흉터가 보이는 발등에 대해서는 아무도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타투로 꾸며진 발등에 대해서는 너무 큰 관심과 시선이 쏟아지더라는 것입니다. 결국 관심과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발등을 더 숨기고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나의 단점에 대해 다른 이는 그렇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나만 관심을 가질 뿐입니다. 사람들도 나처럼 흉하게 볼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끌게 되었던 것을 보면서, 다른 이의 시선보다 나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이의 시선을 신경 쓰기보다 주님의 시선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더욱 올바르게 살게 되면서 자기 시선에 대해서도 만족스럽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내맡기는 인내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즉, 필요한 것을 청할 때, 한결같이 신뢰하고 끈질기게 청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성령까지도 주실 것이라고 하시지요.
사람의 시선이 먼저가 아니라, 하느님의 시선이 먼저였습니다. 사람의 시선만을 따지면 계속해서 숨으려 하고 더 나아가 좌절과 절망 속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랑 가득하신 하느님의 시선에 집중할 수 있다면, 자기를 드러내고 하느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길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빵을 꾸어 달라고 간절히 청하는 친구에게 빵을 내어주는 것은 혈연이나 학연, 인맥과 화려한 경력 때문이 아니라, 청하는 이의 간절함과 진실함 때문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만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여러분에게 바라는 건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모습을 유지하고, 친절한 행동으로 세계를 계속 놀라게 하십시오(마야 안젤루).
사진설명: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