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별교향곡>처럼 우리들의 삶도 조금씩 사라져 간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1978년 2월 군대에서 제대하고 3월에 <이어도>라는 이상향을 쫓아서 제주도에 갔다. 하지만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낯선 도시에서 정착하여 신 제주 개발사업의 역군으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만 제외하고 매일 ‘죽기 살기’로 노동에 전념했는데, 단 하나 탈출구가 있었다, 토요일 저녁과 일요일은 가능한 한 쉬는 것이었다. 군대 생활에서 몸에 밴 주일 개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토요일 저녁, 서점에 나가 몇 권의 책을 사고 지금은 사라진 이도 백화점에 나가 클래식 음반을 사는 것이었다. 그곳에 없는 음반은 주문을 해서 그 다음 토요일에 사는 재미, 그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그때 모은 음반이 약 600여장 되었을까? 브람스의 음반을 가장 많이 모았고, 베토벤이나 멘델스존, 그리고 그 당시 출시되었던 레퀘엠은 거의 다 모았을 것이다.
모차르트의 레퀘엠, 브람스의 독일진혼곡, 포레의 레퀘엠, 베르디의 레퀘엠,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교향곡의 제 2악장 장송 행진곡, 슈베르트 현악 4중주곡 <죽음과 소녀> 쇼팽의 장송 소나타 등 등,
매일 새벽에 일어나 일 나가기 전까지 들었던 그 레퀘엠과 장송곡, 그 음악들을 듣다가 보면 소용돌이치던 감정들이 어느 사이 잔물결처럼 잔잔해졌던 기억들,
지금도 그 음률들을 기억하는 것은 “육신이 흐느적, 흐느적 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銀貨처럼 맑소.”라고 이상이 <날개>의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그 당시 내 영혼이 이슬처럼 맑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때 나는 현암사에서 발행한 책을 통하여 음악들을 선별했고, 그때 접했던 음악 중의 한 곡이 바로 하이든의 <고별 고향곡>이었다.
“1772년이었다. 에스테르하찌 공작은 해마다의 습관대로 풍광이 수려한 노으지트러 호수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이는 별장궁으로 악단원을 이끌고 피서를 떠났다. 그러나 예정된 피서 기간이 지났는데도 공작은 이곳이 편한 탓인지 좀처럼 본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자를 남겨두고 온 악단원은 차츰 가족이 그리워져 애를 태웠으나 공작은 전혀 그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이든은 악단원의 소원을 새 교향곡에 담아 공작에게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드디어 연주회의 밤이 왔다. 18세기에는 지금 같은 전등이 없어서 연주회 때 보면대譜面臺에 불을 켜야 했다. 공작은 하이든이 어떤 곡을 작곡했는가? 궁금하여 많은 신하를 거느리고 연주회장에 나왔다.
교향곡이 시작되어 서주가 붙은 경쾌한 1악장, 느리고 조용한 제 2악장, 그리고 우아한 제3악장으로 이어졌다. 하이든이 색다른 교향곡을 만들었다고 장담했는데, 지금까지의 그의 교향곡과 다른 점이 없지 않느냐 하고 공작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졌다.
교향곡 제45번은 당시로서는 드문 F 샤프 단조의 조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윽고 제 4악장에 이르자 갑자기 쓸쓸해지며 하이든의 경쾌함은 그림자도 없었다. 속도를 늦추면서 제 1오보에와 제 2 호른이 악보를 닫고 촛불을 끈 뒤 악기를 안은 채 무대 뒤로 사라졌다.
공작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깜짝 놀랐다.
자세히 보니 악단원이 모두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은가? 이번에는 바쑨 주자가 어느새 사라지고 이어 제 2 오보에와 제 1 호른 그리고는 콘트라베이스가 나가버려 무대가 휑하니 비어 버렸다.
그 다음 첼로가 나가고 바이올린, 비올라가 모습을 감춘 뒤 드디어 끝으로 제 1바이올린 둘만이 남아 조용히 연주를 마치고는 촛불을 끄고 무대를 내려갔다.
이렇듯 야릇한 음악을 처음 들은 공작 일행은 한동안 어리둥절한 채 박수까지 잊고 있었다. 그러나 현명한 공작은 그 음악의 뜻을 알아차렸다. 이튿날 즉각 휴가 명령이 내려 악단원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제 4악장의 내용과 에피소드 때문에 <고별> 이라는 부제가 붙었으며, 또한 하이든의 전기前期를 장식하는 걸작으로 꼽히게 되었다“
현암사에서 간행한 <이 한 장의 명반>에 실린 <고별 교향곡>에 얽힌 내용이다.
술판이 대개 그렇다. 처음에는 왁자지껄 판이 벌어지다가 2차 3차를 가다가 보면 한 사람, 한 사람 빠져 나가고 마지막엔 제일 취한 사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가 있고, 마찬가지로 사람들 모임들이 대부분 다 그렇다.
온 산천을 수놓았던 온갖 농작물들이 다 빠져나가고, 11월의 들판에는 긴긴 겨울을 나면서 봄을 준비하게 될 보리와 채소가 조금씩 보이고 텅 빈다.
우리들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나도 당신도 어느 날 이 지상에서 가지고 놀았던 모든 것들을 다 내려놓고 돌아갈 것이다.
마치 <고별교향곡>에서 하나둘 악기가 빠져나가고 적막만 남듯이
문득 <고별교향곡>의 음률이 내 서늘한 가슴 속으로 한 올 한 올 내려앉고 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이 아침의 서늘함 속에서 스며나오는 음률을 받아들이고 있는지,
2024년 7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