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라 (사6:1-7)
여러분!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우리의 영혼이 일어나 빛을 발하기 시작하고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어둠이 물러가고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히브리어로 ‘쉐키나’(Shekinah)라고 하는데 쉐키나는 영광, 혹은 현현을 의미합니다. 요11:40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토미 테니는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왜 하나님의 손이 아닌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은 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해야 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얼굴 즉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가 장인 이드로와 함께 양 떼를 이끌고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아니하는 이상한 떨기나무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 임재하신 것입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3:5)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라”(출3:10)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출애굽한 이후에도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의 구름 가운데 임재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그 영광의 구름 가운데서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회막의 구름 가운데서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면하여 교제했습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던 사람입니다. (출33:10-11) 하나님의 임재 속에는 친밀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을 구하기 전에 하나님의 얼굴(임재,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1.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가 본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말씀입니다.
1절-3절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재임기간 중 영토를 확장하고 여러 성을 건축하고 군사력을 증강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성전에서의 분향을 왕의 권력으로 집행 하다가 하나님이 내리신 징계로 문둥병이 생겨서 말년에 왕궁에서 살지도 못하고 별궁 생활을 하다가 죽은 왕입니다. 그래도 그가 살아서 통치하던 시대에는 나라가 평안했습니다.
그런데 웃시야의 아들인 요담이 대를 이어 왕이 되었는데 그는 아버지와 달리 성전을 멀리했습니다. 그래서 점점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강팍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정과 불의가 판을 치고 하나님의 율법은 무시되고, 다시 우상숭배가 성행하고, 정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이방 나라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의존하고 있던 그런 때였습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음에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더욱 우상숭배가 성행하고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백성들의 마음이 점점 하나님께로 멀어져 갈 때에 이사야선지자는 성전에 들어가 안타까운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영광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을 보았습니다. 또 2-3절에는 이사야선지가 본 하나님의 영광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천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기 2절에 나오는 스랍은 성결의 의미를 지닌 천사를 말합니다. 그 스랍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우고 두 날개로는 그 발을 가리우고 또 두 날개로는 날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면서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런 표현은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분이신가 또 천사라 할지라도 얼굴을 가리우고 발을 가리울 정도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움과 그분의 거룩성이 얼마나 지고한 것인지를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카도쉬, 카도쉬, 카도쉬) 삼중 거룩송으로 서로 창화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찬양하였습니다(계4:8). 여호와의 거룩하심은 모든 세속적인 부정으로부터 성별된 거룩으로서, 나머지 모든 피조물들과의 구별됨을 강조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죄 없는 천사도 하나님의 얼굴을 뵐 수 없어서 두 날개로 발을 가리우고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울 수 밖에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악에서 떠나 계십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보기를 원하는 자는 거룩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1절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1절).
이사야 선지자가 환상 중에 보았던 것처럼 하나님이 계신 성전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4절). 하나님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없다면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이 아닙니다. 즉,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거룩송의 찬양이 돌려지자 하나님의 임재가 시작되어 갑자기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했습니다.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4절)
예를 들어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산에 구름이 빽빽하고 연기가 충만하고 뇌성과 벼락이 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음성이 불꽃 가운데서 들려왔습니다. 행4:31절에도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언제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해졌습니까?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이 임재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시는 분(시22:3)이십니다. 바울과 실라가 깊은 감옥에서 기도하며 찬양할 때 그곳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습니다.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졌습니다. 그리고 간수의 가정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그곳에 열려지고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하나님의 성전에 가득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3.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교회가 있는가 하면 아무런 힘과 능력도 상실해 버린 있으나마나한 교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왕에 신앙생활 하는 것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신앙생활하시기 바랍니다.
토미 테니는 「하나님 당신을 갈망합니다」 책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진 오늘의 교회 모습을 빵 집에 빵이 없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은 히브리어로 ‘빵집’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룻기서에 보면 기근으로 인하여 그 베들레헴에 빵이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는 자기 남편과 두 아들을 데리고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이주하였습니다. 왜 그들이 고향을 떠났습니까? 그것은 빵집에 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오늘의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지 아십니까? 빵이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성소에는 진설병이라는 빵이 있었습니다. 진설이란 보여 준다는 뜻이므로 ‘보여주는 빵’ 또는 히브리어 의미 그대로 ‘얼굴 빵’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맞습니다. 그러니까 그 진설병은 바로 하나님 자신의 진정한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하나님의 얼굴을 상징하는 빵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에는 빵이 있다’고 홍보를 했는데 막상 와서 보니 먹을 빵이 없는 것입니다. 빵을 놓아두었던 진열장은 텅텅 비어 있고 빵을 굽는 오븐은 먼지가 쌓여 있고 사무실에는 빵 제조법 책자만 가득하고 하나님의 전에는 전에 있던 빵 찌꺼기 즉 사라진 하나님의 영광의 잔영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왔다가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사람들만 보고 돌아갑니다. 피흘려 값주고 세우신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임재)이 없으면 이렇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 당신이 피 흘려 값 주고 세우신 교회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6절“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는 천사들의 찬양처럼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시기를 원하십니다. 3절에 ‘여호와의 옷자락은 하늘의 성전에 가득 덮였는데, 천사들은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층만하다‘고 노래하였습니다.
4. 여러분 ! 하나님의 영광(임재)가 없는 것을 상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의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에 최대의 저주는 하나님의 영광(임재)이 떠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제사장에게서 연상되는 단어는 '이가봇'입니다. '이가봇'은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은 겉 모습만 제사장일 뿐, 외식을 넘어 패륜아의 삶을 살았습니다.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부랑아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엘리의 두 아들은 불량자라고 했고,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더라고 했습니다(삼상2:12). 더 나아가 이 소년들의 죄가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삼상2:17).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기까지 했습니다(삼상2:21). 결국 이들은 전쟁에서 죽고 이 소식을 들은 아버지 엘리도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맙니다(삼상 4:11,18).이런 상황에서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남편의 소문을 듣고 고통 중에 해산하게 되었는데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여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삼상4:21)하였습니다. 엘리는 구별된 제사장의 가문이었지만 제사장의 직무를 다하지 못하고 외도의 길을 걷다가 망한 견본입니다. '이가봇' 즉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5.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교회와 가정이 있는가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가정과 교회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더 하나님의 영광(임재)을 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갈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갈급한 자들을 찾으십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목마른 자들을 찾으십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의 얼굴을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주님의 옷자락을 볼 수 있기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전의 뜰에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지성소로 들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당신의 얼굴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고 주린 영혼을 채워 주십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임재)을 보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