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독자적인 탄도미사일 개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으로 핵무기 개발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한 별도의 전담기구가 설치되었으며 핵무기 개발과 함께 최고 극비사항으로 분류돼 은밀히 추진됐다. 김일성 사후에도 김정일에 의해 탄도미사일 개발은 극비리에 계속 추진됐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까지도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 관련 정보는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많은 부분이 배일에 가려져 있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탄도미사일 개발에 착수한 북한은 1984년 사거리 280㎞, 탄두중량 1000㎏의 SCUD-B 최초 발사 시험에 성공했다. 1985년에는 SCUD-B 개량형 시험발사에 성공했고 1986년에는 사거리 500㎞급 양산형 SCUD-C의 최종 시험발사에도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북한은 동년 SCUD-C 양산체제를 갖추고 연간 100기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1987년 최초의 SCUD-C가 실전 배치됐고 1989년에는 기존 SCUD의 성능을 비약적으로 강화한 SCUD PIP의 개발에 들어갔다. 동년 한·미 정보당국은 노동 1호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1993년 5월 북한은 사정거리 1300㎞인 노동 1호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했으며 이를 통해 단기간 내에 강력한 탄도미사일 전력 확보에 성공하게 된다. 한·미 정보당국은 북한이 보다 성능이 개량된 대포동 1호와 대포동 2호를 개발하고 있다는 정보를 1994년 처음 식별했다. 1997년 노동 1호의 실전배치 사실을 확인했으며 대포동 지하 발사진지 건설 사실도 파악했다. 북한은 1998년 8월 대포동 1호를 시험 발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거리 3000㎞ 이상의 신형 중거리미사일(IRBM) 개발에 착수, 최근 전력화에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북한과의 협력을 통해 파키스탄이 실전배치한 샤힌(Shaheen)-I 탄도미사일은 북한 탄도미사일 기술이 상당 수준에 도달했음을 상징하는 지표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이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원치 않았던 소련의 간섭으로 초기 탄도미사일 개발에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역시 초기에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에 적극 협력했으나 미국 및 소련과의 외교관계가 회복되고 북한의 탄도미사일 개발이 빠른 속도로 진전을 보이자 기존 입장을 철회했다. 결국 소련과 중국의 간섭으로 인해 북한은 탄도미사일 개발에 있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독자적인 탄도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이란, 파키스탄 등의 국가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첫댓글 글1개 더 올리시면 등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