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5)
그러면서 루소의 말을 생각했다.
‘국민들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주인이다.. 투표가 끝나자마자 다시 노예로 전락한다.’
또 어떤 유명한 사람의 말이 루소의 말의 대구(對句)처럼 떠올랐다.
‘정치인에게 국민이란 정권을 잡기 위한 방편이고 구호일 뿐이다.’
그 두 가지 말은 정치인들이 숱하게 저지르는 국민 기망 행위와 배신 행위를 적시한 것이었다.
(49)
“안 되지. 안 되는 건
분명한데, 그 따위 짓을 해도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잖아. 그러니까
안심하고 마음대로 일 저질러대는 거지. 그 일 벌어졌지만 지금 우리 둘이나 언급하고 있지, 그 당시에 학생들도, 교수들도, 아무도
반대하고 나서지 않았잖아. 다 잊어버린 거야. 다 무관심한
거야. 몇 년 세월이 지나니까 다들 망각의 병에 걸려버린 거라구. 이런
말 있지, 왜. ‘사람들은 남의 일은 사흘이면 잊어버린다.’ 대중 망각을 지적한 예리한 속담이야. 바로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거야. 그래서 마음 놓고 즈네들 잇속 챙기는 일 거침없이 저질러 대는 거고. 그 역사가 해방 후 장장 70년이야.”
(114)
그 자발적 조식의 집결체가 국가 권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세상을 바꾸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이루어가는 성과와 함께 후원금을 내는 시민들이 자꾸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몇천 명이던 수가 해가 바뀌고 바뀌면서 1만 5천 명을 향해 육박해 가고 있었다. 그건 기존 권력으로서는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국민이란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 정신 팔려 제각기 흩어져 있을 때가 귀엽고 예쁜
것이다. 정치인들이 많은 사람들이 뭉쳐서 외쳐대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했다. 그리되면 꼭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참여연대는 공포스럽게도
날로 그 조직이 커져 쌍룡이 되려 하고 있었다.
(183)
민변은 자발적으로 회비를 내고, 자발적으로 무료 변론을 하는 이 나라의
유일한 순수 봉사 단체였다.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시민단체와 달랐고, 국가의 지원이나 시민 모금으로 운영되는 봉사 단체와도 달랐다. 민변
회원들은 각기 개인적으로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하루 일과를 끝내고 6시부터 민변 사무실로 모여
분과별로 무표 변론 일을 해나갔다.
(185)
“육사생들이 남들이 안 듣게 자기들끼리만 뻐기는 말이 있다던데 그게
뭔지 알아?”
“에이, 그 쉬운 걸 문제라고
내?”
“쉬워? 뭔데, 말해 봐/”
“대통령 셋 배출한 것.”
“히야, 정말 머리 좋네. 그럼 우리 민변들이 내놓고 뻐겨도 되는데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건?”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 그럼
쪽팔리는 거잖아?”
“괜찮아. 말은 해야 속이
풀린대잖아.”
“대통령 둘 배출한 것.”
(194)
그때 장우진의 머리에는 가수 가인이 퍼뜩 떠올랐다.
“이런 똥차 끌고 다니면서 어떻게 미행을 따돌리고, 몸을 피하고 한다는 거야? 그러다가 시동이나 팍 꺼져봐. 그러지 말고 내 차 가지라니까. 내 차도 고물 다 돼가지만 니 것에
비하면 왕이잖아. 명색이 엔진 끝내주는 독일제니까.”
절친한 가수 가인이 만날 때마다 하는 말이었다.
(317-318)
그리고 또 한 사람,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이 내 당 사람이든 아니든 무조건 받들어 모셔야 해. 의원
노릇 아무리 조심조심한다고 해도 언제 무슨 일로 검찰 조사받고, 법정에 서게 되고 할지 몰라. 그런 때 법사위원장이 날 봐주는 사람이라면 일은 간단하게 해결되지. 왜냐! 법원, 검찰, 헌법재판소가
법사위의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피감 기관 아닌가. 그러니까 법사위원장은 법원이고 검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실세라고. 그래서 법사위원장이 국회의장보다 세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닌가.
(386-387)
“예, 그게 비중의 문제겠지요. 언론들이 연쇄 살인 사건, 대형 화재 사건, 교량 붕괴 사건, 노조 과격 투쟁 같은 것들을 서로 경쟁적으로 열심히
보도하는 것처럼 지난 30~40년 동안에 대형 기업들이 저절러온 반사회적 비리와 온갖 경제 범죄들을
불의의 소방수로서, 진실의 수호자답게 적극적으로 보도했다면 지금쯤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르게 이미 선진국에 진입했겠지요. 그러나 지난번
성화 비자금 사건 보셨죠? 성화의 힘 앞에 모든 언론들이 침묵해 버리니 비자금 4~5조 원 사건이 깨끗하게 유령 사건으로 묻혀버리잖아요. 그런 사건들이
지난 세월 동안 수없이 반복되면서 국민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알 권리를 박탈당해 가며 우매해져 갔고, 재벌들은
점점 더 큰 공룡으로 둔갑해 가면서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등장한 세계 최고의 소득 격차, 국가
위기의 양극화 나라가 되어버린 겁니다.”
(403)
그런 속에서 자신만의 힘으로 다른 기자들을 밀어붙이고 그 후보 옆에 더욱 바짝 붙어 서서 ‘그 회사는 누구 겁니까? 후보 것이 맞지 않습니까?’ 같은 질문을 계속 해댔다. 그랬더니 마침내 그 후보가 여지껏 짓고
있던 억지웃음을 내팽개치고 얼굴을 찡그리며 ‘이런 기레기 같으니라고!’하고
내쏘았다. 하필 그 장면을 어떤 텔레비전이 찍어 방송해 버리는 바람에 ‘기레기(기자 쓰레기)’는
삽시간에 세상에 퍼지는 유행어가 되고 말았다.
(407)
“……” 여전히 장우진을 응시한 채 판사의 침묵이 길어지더니 이윽고, “왜 그렇게 힘들게 삽니까?” 그 목소리가 약간 떨리는 것 같으면서
눈동자도 미세한 흔들림이 이는 것 같았다.
“예, 한 사람만이라도, 저 한 사람만이라도 똑바로 보고, 똑바로 쓰고, 똑바로 전하고 싶습니다. 그 마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