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직장인 양모씨(27·남)는 최근 서울 강남의 비뇨기과를 찾았다. 정관수술을 희망하자 의사는 “혹시 나중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니 참으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양씨는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와도 아이를 갖지 않기로 이미 약속했다”며 동행한 여자친구의 ‘동의’를 내세우며 수술대에 올랐다. 양씨는 “결혼한 남자선배들이 수입의 대부분을 양육과 사교육비에 쏟으며 생활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많이 봤다”면서 “나에게는 대를 잇는 것보다는 내 인생이 훨씬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젊은 남성들 사이에 일명 ‘노키드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노키드주의는 말 그대로 ‘내 인생에 아이는 없다’는 주의. 2세를 안낳는 대신 평생 자신의 인생에만 충실하려는 철저한 자기중심주의적인 이데올로기인 셈이다. 이에 따라 비뇨기과를 두드리는 미혼남성들이 늘고 있다. 신촌 소재 K비뇨기과의 한 간호원은 “어차피 아이를 낳지 않을 바에야 일찌감치 정관수술을 해 아이 낳을 위험(?)을 줄이겠다는 이유로 병원에 찾아오는 미혼남성만도 한달에 두세명꼴”이라고 말했다.
아직 결혼도 안한 미혼남성들이 일찌감치 ‘세대잇기’ 본능을 차단하는 정관수술까지 감행하면서 ‘노키드’를 부르짖는 것은 최근 들어 사회 전반적으로 직업의 불안정성은 높아진 데 반해 육아나 교육비 부담은 가중되면서 아기를 자신의 분신이라기보다는 ‘책임져야 할 의무’로 보는 인식이 늘어났기 때문. 엔터테인먼트 분야에 종사하는 직장인 김인석씨(35)는 “요즘은 내 인생도 5년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면서 “이처럼 내 삶도 불안한 판에 아이를 낳아 잘 기를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아이 때문에 독신 아닌 독신의 삶을 살아가는 ‘기러기아빠’들이 늘어난 것도 이 같은 노키드주의의 확산에 한몫을 했다.
최근 젊은층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성적자유주의도 이 같은 노키드주의의 주요한 요인이다. 친구들 사이에 ‘잘 나가는’ 것으로 소문난 직장인 정모씨(29)는 최근 친구들 몰래 비뇨기과를 찾아 정관수술을 받았다. 아직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는 정씨는 “지금 나만의 인생을 맘껏 즐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판”이라며 “혹 성적 파트너들이 임신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다”고 실토했다. 의사의 끈질긴 만류에도 불구하고 확고한 신념을 피력해 수술을 받은 정씨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총각 때 확고한 신념으로 정관수술을 받았지만 결혼 후 부인의 동의를 얻지 못해 부인 몰래 복원수술을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비뇨기과 의사들의 설명. 성남인하병원 박원희 교수(비뇨기과)는 “혹시 복원수술을 믿고 겁없이 수술할 경우 큰 코 다치기 십상”이라고 설명했다. 복원수술의 성공률은 95% 정도지만 가임능력은 50%로 뚝 떨어진다는 것.
삼성제일병원 이유식교수(비뇨기과)는 “노키드주의는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는 ‘피터팬 증후군’의 한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그러나 2세에 대한 생각은 결혼 후에 크게 바뀔 수 있으므로 미혼 시절 정관수술은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