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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04 부활해서 죄송합니다 시 118:1-2, 14-24; 행 10:34-43; 고전 15:1-11; 요 20:1-18
오늘 설교 준비를 하다 문득 십수 년 전 신학교 다닐 때 교수님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부활절 교회에 내거는 현수막 문구를 독창적으로 써보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 탄생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면서도 그 무엇으로도 유비 되지 않는 단 한 번의 사건입니다. 이 부활 때문에 기독교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핵심이 부활입니다. 대축일이고 큰 경사 중의 경사입니다. 그러고 보면 크리스마스는 세계가 즐기는 날이지만 부활은 그렇지 않음에 아쉬움을 가집니다. 교회는 이 부활의 기쁨을 알리기 위해 긴 현수막을 내겁니다. ‘예수 다시 사셨네’, ‘축 부활’ 등의 메시지를 담습니다. 문득 독창적 문구를 생각하다 오늘 설교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부활해서 죄송합니다’ 어떻게 보면 기독교의 핵심인 부활이 잘못되었다는 부정적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부활하지 않은 것이 더 좋을 뻔 했다고도 인식됩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상황을 반영한다면 이해가 갑니다. 손가락질 받는 교회, 개독교라 모욕당하는 교회, 특히나 코로나 19로 엄청나게 비난 받는 상황입니다.
예수의 부활은 희망의 희망입니다. 새 생명의 새로운 희망, 이전에 겪어 보지 못한 죽음을 이긴 신비입니다. 그래서 대축일이고 경사 중의 경사입니다. 모두가 축하해 마지않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시대 상황을 보면 교회는 엄청난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이 말인즉, 교회가 교회답지 못했다는 방증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을 예수가 그러했듯 세상의 섬김에 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독특성과 핵심을 이용해서 자기 배를 채웠습니다. 교회를 부풀리고 성장하는데, 부를 누리는 데 이용했습니다. 세상을 섬기는 대신 세상을 이용했습니다. 세상은 압니다. 희망의 교회가 더 이상 희망적이지 않고, 절망적이라는 것을 압니다. 비난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기쁨의 부활에 이런 문구를 내 보면 어떨까요? 부활해서 죄송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과 고린도 전서에 베드로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않는 분이시고, 그분을 두려워하면서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느 민족에 속해 있든지 다 받아 주시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 예고에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습니다. 그때 심한 꾸중을 들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구나” 라는 꾸중과 함께 사탄이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베드로가 믿고 따랐던 예수는 세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장차 세상의 지배자로 소위 말하는 세상의 성공에 있었습니다. 절대 힘을 가진 지배자입니다.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은 그날, 영광의 날이 되면 서로 누가 큰 자인지 힘겨루기도 했습니다. 그때 예수는 큰 자를 섬기는 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의 죽음에 끝까지 함께 한다고 호언장담 큰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십자가 앞에서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쳤습니다. 베드로의 꿈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세상의 군림자는커녕 비굴한 신세로 쥐구멍에 숨어버렸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아니었단 말인가? 지금껏 헛수고했단 말인가? 베드로가 따랐던 예수는 그렇게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예수를 만나고 전혀 다른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않는 분, 그를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다 받아 주시는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는 세상에 평화를 위한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악마에게 억눌린 사람을 고쳐 주시는 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전에는 세상의 중심이 자기에게 있었던 반면, 이제는 자기가 세상을 섬기는 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처럼 세상에 평화를 위한 자로, 세상을 치료하고 악을 물리치는 정의를 행하는 자로, 생명을 살리는 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성공 세상의 부 명예 권력 등의 외모가 아니라 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베드로에게 부활의 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 그는 사도라 부름을 받았지만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합니다. 이유가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율법을 범하라고 종용하는 무리 같습니다. 죄인을 가까이하고, 병든 자를 고쳐 주고, 소외된 자를 위로합니다. 율법은 죄인 병든 자 소외된 자와 가까이하는 그 자체를 죄라고 규정합니다. 교회가 그런 무리로 구성되어 가고 있기에 박멸해야 합니다. 바울의 입장에서 교회의 박해는 정당할 뿐 아니라 더욱 힘을 다해 소멸시켜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잡아 들이고 죽이는데 온 힘을 다했던 바울입니다.
그가 부활의 예수를 만나고 역시 새로운 눈을 가집니다. 세상의 성공 부 명예 권력 곧,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예수를 아는 고상함으로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를 아는 고상함이 무엇입니까? 죽을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자유 해방 정의 평화입니다. 바울의 이를 위해 죽을 고비를 수차례 겪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사도들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늘 입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고백합니다. 바울에게 예수의 부활은 이런 의미를 가집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부활의 의미는 예수께 직접 들어 봅니다. “이제 너는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바지, 내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내가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문자적으로는 에수의 부활이 하나님 아버지께 올라가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 의미를 살펴본다면 눈물을 훔치지 못할 만큼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모두가 등을 돌렸습니다. 누구하나 소리치지 못하고 권력 앞에 숨죽였습니다. 다시 사신 에수에게는 모두가 매신자입니다. 용서하지 못할 처참한 결과가 예상됩니다. 죽기 전에 그렇게 따라다니면서 오른팔, 왼팔 하던 자들, 서로 더 큰자가 되기 위해 힘겨루기하던 자들이 결정적 순간 모두 돌아섰습니다.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치고 숨죽였습니다. 부활의 에수는 이 모든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사랑스럽고 다정하게 품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
다 함께 따라 해볼까요?
내 형제들/ 내 형제들!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
정말 눈물을 훔치지 못할 만큼 너무나 감격적이지 않습니까? 예수의 부활,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누구든 한 형제자매로, 한 가족으로, 아버지의 자녀로, 하나님의 자녀로 맞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희망의 희망입니다. 절망을 이기고 죽음을 이긴 새 생명입니다. 전혀 다른 새로운 눈을 뜨게 합니다. 오롯이 세상의 지배자가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자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악을 몰아내고 세상을 치료하는 신비입니다.
그래서 부활은 기쁨의 대축일입니다. 경사 중의 경사입니다. 단순히 계란을 삶아 나누며 부활의 의미를 되새김보다 진심으로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겠습니다. 교회 탑을 높이기 보다 문턱을 낮추어서 함께 더불어 손잡고 위해야 겠습니다. 산밑으로 내려가 이웃을 품어야겠습니다. 부활의 증인인 교회는 응당 이러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의 시대 상황이 그렇지 못하기에 부활해서 죄송하다는 반성, 참회가 있어야겠습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예수를 따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반성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형제자매로,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는 이유일 것입니다.
함께 시편 본문을 읽으며 기도하겠습니다.
시 118:1-2, 14-24
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2 이스라엘아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여라.
14 주님은 나의 능력, 나의 노래, 나를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15 의인의 장막에서 환호하는 소리, 승리의 함성이 들린다. "주의 오른손이 승리하게 하였다. 16 주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다. 주의 오른손이 승리하게 하였다." 17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주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 18 주께서는 엄히 징계하셔도, 나를 죽게 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19 정의의 문들을 열어라. 내가 그 문들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20 이것이 주의 문이다.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 21 주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나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22 건축하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23 이것은 주님으로부터 비롯된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 24 이 날은 주님이 만드신 날, 우리 모두 2)주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행 10:34-43
34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않는 분이시고, 35 그분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느 민족에 속해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3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37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 일은, 요한의 4)세례 활동이 끝난 뒤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38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께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께서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악마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39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40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흘째 되는 날에 살리시고, 나타나 보이게 해주셨습니다. 41 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심판자로 정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하셨습니다. 43 이 예수를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하기를,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고전 15:1-11
1 1)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2)복음을 여러분에게 일깨워 드립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전해 받았으며, 또한 그 안에 서 있습니다. 2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드린 말대로, 여러분이 복음을 굳게 잡고 있으면, 또 여러분이 헛되이 믿지 않았으면, 그 복음으로 여러분도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 내가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셨다는 것과, 5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6 그 다음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1)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3)세상을 떠났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7 그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8 그런데 맨 나중에 달이 차지 못하여 태어난 자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헛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사도들 어느 누구보다도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한 것이 아니라, 내가 늘 입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한 것입니다.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다 같이 우리는 이렇게 전파하고 있으며, 여러분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요 20:1-18
1 주간의 첫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문을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2 그러므로 그 여자는 뛰어서,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로 가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 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와서, 무덤으로 갔다. 4 둘이 함께 뛰었는데,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뛰어서, 먼저 무덤에 이르렀다. 5 그는 몸을 굽혀서 고운 베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6 시몬 베드로가 그를 뒤따라와서,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고운 베가 놓여 있었고, 7 예수의 머리를 쌌던 수건은 그 고운 베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한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 8 그제서야 먼저 무덤에 다다른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9 아직도 그들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10 그 제자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11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12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13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인아,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 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14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에,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분이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15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 갔거든, 어디에다 두셨는지를 말해 주십시오. 내가 그분을 모시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1)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 (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17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너는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내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내가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18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자기가 주를 보았다는 것과, 주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