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이 다가오는 느낌과 유리창 밖 꽃화분 놓는 너른 목 자리에 앉아 지저귀는 새소리에 추슬러 일어섰다. 어두운 침실에서 빠져나와 환한 빛의 스며드는 거실 큰 유리창 앞에 섰다. 커튼을 제치면 황금빛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올 텐데, 그러나 잠시 멈짓~~ 겨울밤 내내 웅크리고 쉬었을 새가 염려되어 살며시 커튼 틈새로 새 자리를 훔쳐보았다. 그러나 눈치가 빠른 새는 휑하니 감나무 가지로 날아가 버렸다. 마음 놓고 커튼을 좌측으로 끝까지 제쳤다. 열기와 함께 따듯한 빛이 쏟아져 들어섰다. 나도 모르게 아 너무 좋다 하며 감탄하고 서 있었다. 광명은 참 좋은 빛이다. 유리창 안에 의자를 놓고 태양을 마주 보고 앉아 있어 보면 일광욕 뒤에 따라붙는 청결함과 함께 에너지의 충만을 경험하게 된다. 꽁꽁 싸매고 살아야 하는 동절기에 이런 호사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바로 산막이다. 내친김에 채광이 가장 좋은 방향인 카펫 위에 큰 대자로 누워 버렸다. 그렇게 20여분 오수로 충전하듯 가만히 누워 있었다.
이래서 북극인들은 햇빛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하여 자주 일광욕을 통해 신진대사를 돕는 모양이다. 비타민 D 부족을 한방에 해결한 것 같아 기분 좋은 생각으로 다시 일어서서 날아간 새를 찾아보았다. 어느새 다시 돌아와 데크 경계울타리 손스침에 앉아 졸고 있었다. 참 딱하게 느껴졌다. 이 녀석이 자신의 가족과 함께 사용하던 처마 안 둥지를 다른 새들에게 빼앗긴 녀석이다. 드나들면서 알갱이 스티로폼을 떨구고 하얀 변을 처마 아래 놓여 있는 테이블에 흔적을 남겨 성가셨지만 거처를 잃은 겨울새 처지가 딱해 보였다. 새들이 겨울나기에 사람이 살고 있는 처마처럼 좋은 곳도 없다. 옛적에는 초가지붕 끝을 쑤시고 들어가 둥지 삼아 살았지만 지금은 인공새집이나 덤불숲에 둥지를 틀고 겨울을 난다. 산막에도 여러 개의 새집을 만들어 주었는데 5월 말 까지는 만조(滿鳥)다. 알을 부화하고 난 후 자연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는 빈자리가 없다. 철새가 떠나면 그제야 빈자리가 생긴다.
겨울바람은 잠드는 법이 없는 것 같다. 수시로 공기를 밀고 일어서서 휘젓고 다닌다. 모진 바람으로 재촉하여 나뭇잎을 떨고 놓고 무엇이 아쉬운지 흙 위에서 뒹굴고 있는 낙엽들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다 낮고 외진 곳에 수북하게 쌓아 놓는다. 그러나 눈이 끝 치고 나면 세찬바람으로 쌓인 눈을 휘몰아치고 다니기도 한다. 멀리서 산등성이를 바라보면 겨울바람에 솟구쳐 오르는 눈발은 눈 휘오리를 만들어 멋진 설경을 보여준다. 바람소리에 등을 돌려 데크 손스침 나무 판재에 앉아 있는 새를 보니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휩쓸리지 않으려 꽁지를 내리고 힘을 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바람의 고약한 심술을 본 것이다. 빛이 퍼지기 시작하면 바람도 잠이 드는 곳이 산막이다. 산 정점인 정상이 북쪽 가운데 자리 잡고 양 옆으로 활대가 뻗어 있어 바람 길을 막고 서 있기 때문에 빛이 퍼지면 바람은 정상부근에서 맴돌다 사라진다.
간단하게 어제저녁 압력솥에 끓여 놓은 누룽지 밥을 꺼내고 반찬 한 가지를 놓고 조식을 챙겼다. 후식으로 녹차 한 잔을 마신 후
동안 늘어놓았던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차에 실은 후 귀경하기 전 안과 밖을 말끔하게 청소를 끝낸 후 청소기를 비롯하여 청고도구를 씻어 말릴 수 있도록 나란히 간수하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가스와 수돗물을 잠그고 보일러도 온도를 낮추었다. 그리고 배선줄을 정리하고 콘센트에 달려 있는 플러그도 정리한 후 차에 시동 건 후 반려견을 조수석에 태웠다. 그리고 천천히 산막을 중심으로 한 바구니 돌아 점검 후 문을 줄로 동여매고 언덕길을 내려서기 시작하였다. 설경도 햇빛에 녹아 설경의 의미를 지우고 있었다. 응달 커브를 돌아서는데 뒤축이 미끈거리다 악세레이터에서 발을 내려놓자 탄력으로 넘어섰다. 그리고 양지는 벌써 녹아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고속도로 상행선은 하행과 달리 한가한 편이었다. 80-90의 속도를 유지하며 스스로에게 체면을 걸었다. 서두르지 마! 그럴 필요 없어! 하면서 cd 켰다. 조수미 씨의 노래가 흐른다. 아주 오래전 두 개의 cd가 들어 있는 cd가 발매되자마자
사서 듣던 곳이 흘러나왔다.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조수미 곡 중에 좋아하던 곡이다. 이곡은: 그리스의 미키스 테오도라키스(Mikis Theodorakis)가 작곡한 곡이다. 이 곡은 당시 나치에 저항한 그리스의 한 젊은 레지스탕스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돌아올 기약 없이 카타리나로 떠난 님을 기다리는 여심(女心)이 그려져 있다. 1967년 이 음악은 그리스 전역에서 연주 금지되었고, 마침내 이 작곡가가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투옥되자 쇼스타코비치, 레너드 번스타인, 해리 벨라폰테 등 음악가들이 발 벗고 나서서 구명운동을 벌였으며 1970년 그는 석방되어 파리로 망명을 떠났다. 파란투리는 테오도라키스의 투옥에 항거하여 조국을 떠나 세계각지를 순회하며 노래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호소했다. 애수(哀愁)와 아련한 슬픔이 배어있는 음악 바로 그리스 음악이다. 애잔한 선율로 카타리니로 떠나 돌아올 줄 모르는 청년 레지스탕스 애인을 애타게 기다리며 매일 기차역으로 나가는 여인의 슬픈 사랑의 노래이다. 독재에 맞서 싸우다가 죽은 친구를 슬퍼하며 만든 곡이라 그런지 전반적으로 애상의 기운이 잔잔하게 퍼져 마음을 적셔준다. 여러 개의 cd 곡이 펼쳐진 후 동서울 관문이 다가오자 우측 마지막 차선으로 달라붙어 빠져나왔다.
여러 날 쉬면서 운동을 못했더니 둔함이 느껴졌다. 검단산 등산을 할 계획을 갖고 산막을 출발한 것이다. 현충탑 부근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반려견 사료(특식) 막대만 들고 반려견과 함께 오르기 시작하였다. 아래에서 정상을 올려다보니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차~~ 아이젠이 없지, 스틱도 수직등산을 포기하고 수평적 트레킹을 도모할까 하다 강행하기로 결심을 세웠다.
반려견 파이를 앞 세우고 낙엽송 군락지 사이사이를 걸어 오르다 일제강점기 금맥을 찾아 탄광으로 사용하던 곳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샘물로 사용하는 곳으로 오르기 위하여 직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날은 포근하고 맑았지만 미세먼지 영향으로 뿌였다. 이 길의 단점은 돌밭이라 사람도 신경 써서 걸어야 하지만 반려견은 발에 상처가 날 수 있는 길이다. 가뜩이나 웰즈코기는 다리가 짧아 복부를 다칠 염려도 많다. 다시 가파르지만 흙길이 끝까지 이어지는 계곡 길로 코스를 바꿔다. 이 길 중간을 넘어서면 고목 소나무 아래에 수량이 풍부하고 물 맛이 좋은 샘이 있는 곳이다. 샘에서 바로 0.6km 치고 올라서면 검단산 정상과 팔당댐 조망하기 좋은 작은 정상 중간으로 치고 오를 수 있어 정상으로 가기 편한 곳이다. 그러나 상당히 가파른 것이 흠이다. 물을 마시고 샘 위 지역을 살피니 적설량이 많았다. 적설량 아래 얼음이 있을 수도 있고 가파른 길을 오르다 보면 아이젠이나 스틱이 없어 고생할 것이 뻔한 일이다. 다시 우측으로 돌아 오르다 내려가면 금광 터에 있는 샘물로 오르는 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지점은 전부 흙길이라 걷기에 편한 곳이다. 그 길로 다시 올라 샘을 지나 계단으로 다가 가자 상당히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제부터는 빙판과 눈 길과 싸움이 정상까지 이어질 것이다. 지형을 이용하고 계단이 있는 곳에서는 손스침을 이용하여 올랐다. 드디어 정상에 섰다. 서쪽에 있는 서울 도심은 가시거리가 열리지 않았다. 미세먼지 영향인 것 같다. 동쪽 방향인 경기도 광주와 남양주, 양평, 홍천 방향은 그런대로 가시거리가 좋았다.
반려견에게 간식을 주고 물을 먹인 후 눈이 쌓인 산 길을 조심조심 내려왔다. 상당히 미끄러웠다. 북서쪽으로 흐르는 암릉길을 선택하여 하산하기로 하고 접어들었다. 내심 바윗길은 잡고 밟을 수 있는 홀드와 스탠스가 많아 일부러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암릉 하산 길 초반부터 문제가 생겼다. 사람은 다리를 벌리고 손으로 난간 끈을 잡고 내려서면 되는데 반려견은 그럴 수 없어 내가 먼저 트레파스를 한 후 줄에 의지한 후 반려견 앞다리를 잡아당긴 후 안고 내려가려고 하였으나 자꾸 뒷걸음치며 물러서서 잡을 수가 없었다. 아래는 낭떠러지라는 것을 눈치챈 반려견을 도저히 잡을 수 없어 포기하고 되돌아가 다른 길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암릉길 아래 등산로는 상당히 미끄러웠다. 반려견은 눈 길이 좋은지 오르락내리락하며 즐겼다. 안전을 우선으로는 하는 손과 발을 제대로 확보하며 걸으려니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4부 능선까지 상당한 고생을 하며 내려섰지만 이후 길은 눈이 없는 흙길이라 평상시 산행처럼 편안하게 걸어서 주차장까지 갈 수 있었다. 안전은 확보되어 있는가?라는 구호를 중요 시 여기는 사람이 이런 도발적인 산행을 하였다는 자체가 잘못된 산행이었다. 집으로 내려와 차 트렁크 한 구석에 스틱 한 조와 아이젠 등 동계 산악장비를 추려 작은 배낭 안에 넣은 후 묶어 놓았다. 다시는 무모한 산행을 하지 않으려는 의도에서 준비해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