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국제공항은 명실공히 세계최고 수준이다. 5년 연속 세계 공항 평가 1위에 오를 정도다. 해외여행이 잦은 이들은 하나같이 인천공항의 편리성과 시스템을 격찬한다. 인천공항은 그러나 90년대 초반 소위 환경운동가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었다. 당시 인천공항 개발을 반대한 이들은 서울대 김정욱 교수를 중심으로 한 초창기 환경단체들이다. 金교수가 회장을 맡았던 ‘환경과 공해연구회’를 비롯해 ‘공해추방운동연합’·‘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대한기독청년회연합회’ 등이 대표적이다.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은 생소한 단체로 들리지만 이 단체는 그 유명한 ‘환경운동연합(환경연합)’의 前身(전신)이다. 공추련은 김정욱 교수와 함께 당시 ‘영종도 신공항문제 공동대책협의회(영종도공대위)’를 만들어 인천공항 반대를 주도했다. <공추련 등 영종도공대위 출범시켜> 공추련 등 당시 운동권의 인천공항 반대활동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1992년 7월15일 ‘환경과 공해연구회(회장 김정욱 서울대 교수)’는 인천공항의 입지선정과 환경파괴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전국의 50여개 환경·시민·소비자단체에 ‘영종도 신공항 문제 대책협의회’(가칭) 구성제안서를 보냈고, 공해추방운동연합(공추련)을 비롯한 21개 환경 관련단체로 구성된 「영종도 신공항문제 공동대책협의회(영종도공대위. 의장 김정욱)」가 출범했다. ▲1992년 8월28일 영종도공대위가 서울명동 YWCA대강당에서 「영종도 신공항, 무엇이 문제인가」란 주제로 공청회를 열고 ‘인천공항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졸속으로 강행되고 있다’며 착공무기한 연기를 정부에 요구했다. ▲1992년 12월24일 공추련(의장 최열)은 ‘영종도 신공항 및 경부고속전철 착공’ 을 92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사회문제로 크게 부각됐던 10대 환경사건 중 하나로 선정, 발표했다. ▲1993년 2월3일 영종도공대위는 소위 영종도 새공항 계획이 지닌 22가지의 문제점을 파헤친 ‘영종도 신공항 건설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1993년 6월11일 영종도공대위는 소위 영종도신공항 건설사업으로 인한 국토발전의 불균형·투자의 비효율성·환경파괴 등 24가지의 문제점을 파헤친 「영종도 신공항,문제점과 대안」(하우 간)이란 보고서를 발간했다. ▲1993년 8월1일 영종도공대위 주최로 소위 영종신공항 건설에 따른 환경파괴 등 각종 문제점을 다룬 국제세미나가 영종도 현지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열렸다. <환경연합 전신 최열의 공추련, 인천공항 반대 주도> 영종도공대위 핵심단체인 공추련은 1988년 9월 군소 환경단체가 통합한 단체로서‘공해추방’과 ‘반핵평화’를 내걸었다. 환경연합의 산 증인인 최열을 비롯해 환경운동가 서진옥, 이덕희 등 3인 공동의장 체제로 34명의 지도위원이 참여했다. 지도위원으로는 고영구 변호사, 김용태 화가, 김재훈 한겨레사회연구소 이사, 김정남 평화신문 편집위원, 김재규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사무국장, 김지하 시인, 김흥식 통일학회장, 박용일 변호사, 서한태 목포녹색연구회장, 손학규 당시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송기원 실천문학사 대표, 오종우 치과의사, 원경 스님, 윤구병 충북대 철학과 교수, 이미경 한국여성단체연합 부회장, 이부영 당시 서민투련 위원장, 이수인 영남대 정외과 교수, 이애주 서울대 체육과 교수, 이오덕 아동문학가, 임진택 연출가, 전홍준 핵전쟁방지의사협의회 국제이사, 조성우 평화연구소 소장, 조영래 변화사, 조건영 건축가, 정동익 도서출판 아침 대표, 정호영 가톨릭농민회 지도신부, 장원석 단국대 농업경제학 교수, 정성헌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 최재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최동전 동광출판사 대표, 최병모 변호사, 홍근수 향린교회 목사, 황상익 서울대 의대교수 등이 참가했다. 공추련은 강령에서 소위 ‘민중민주주의’를 내걸고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이 땅의 민중에게 잠재되어 있는 거대한 변혁적 힘을 바탕으로 당면한 공해와 核(핵)의 위협으로부터 民衆(민중)의 노동과 생활을 수호하고 나아가 사회적 불평등과 자연으로부터의 소외가 극복된 眞正(진정)한 민주사회를 건설...(공추련 강령)』 현재 활동 중인 환경재단 측은 “반공해운동권이 새롭게 전열을 정비하는 뜻과 함께 학생운동과 사회운동 전반에서 부각된 反美(반미)·反核(반핵)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타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핵문제를 발판으로 운동의 외연을 크게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출처 ‘자연의 친구들’)”라 하여 당시 운동권 영향을 받아서 환경운동이 反美(반미)·反核(반핵)을 들고 나왔다고 적고 있다. 공추련은 1991년 3월 두산 낙동강 페놀 사건 폭로 등을 통해 조직이 팽창해갔고, 결국 1993년 4월2일 서울 공추련, 울산 공추련, 부산 공해추방시민운동협의회(1989년 창립), 진주 남강을지키는시민의모임, 광주 환경운동시민연합(1989년 창립), 목포 녹색연구회(1988년 창립), 마산·창원 공해추방시민운동협의회, 대구 공해추방운동협의회(1991년 창립) 등 전국 8개 환경단체가 통합해 환경연합을 탄생시켰다. <“지식인의 투명한 양심이 감지되는(?)” 김정욱 교수> 1993년 4월19일자 국민일보는 영종도공대위 김정욱 교수(당시 47·서울대 환경대학원)를 가리켜 “아는 사람들은 그를 환경문제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사람, 검소하고 성실한 그러면서 말이 없는 그저 평범한 교수라고 말한다”고 말한 뒤 “지식인의 투명한 양심이 감지된다”며 이렇게 격찬했다. “그를 깊이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이 시대에 필요한 크리스천, 양심있는 지식인이라고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철저한 기독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환경을 파괴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땅 물 공기는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에게 관리하도록 맡겨놓은 것입니다. 파괴는 있을 수 없습니다. 환경을 보호하고 지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그는 영종도신공항건설 중단을 계속 정부에 요구할 계획이다. 그리고 성서적 환경관을 확산시킬 계획이다. 『신앙은 일상생활에 그대로 나타나야 합니다. 환경보호에 기독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마땅히 나서야 합니다』그의 목소리에서 지식인의 투명한 양심이 감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