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화두를 앞에 두고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해본다.
서른 아홉해를 거슬러 올라가는 생각들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
기억들,사건들…………………………………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 말이 사무치게 나를 내리치고 간다.
미처 알지 못했음으로 행하지 못한 일들이 아닌
알면서도 행하지 못했던 일들이 많아서 이겠지…
흔히들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말을 한다.
어떤 연유로 그 세 번이라는 숫자가 정해졌는 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그 세 번이라는 숫자는 어느 시점에서
머물렀으며,또 머물 것 인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기회라는 것에 대한 환상 때문일까?
그저 그렇게 일상에서 마주치는 자그마한 일들을 기회라고
여기기에는 우리는 너무도 커다란 대박 같은 환상을 지니고 있음일까?
아니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살짝 다가와서는
눈치 조차도 채지 못하는 사이에
기다림 없이 훌쩍 떠나버리는 무심함이 기회라는 넘의 습성때문 일까?
더듬어 가는 시간들 속에 나에게 두 번이라고 여길만한 기회를
불행(?)아님 다행(?)히도 난 나의 것으로 만들지를 못 하였다.
그 첫번째가 대학 졸업 후 집안 여건상 포기해야 했던 취업인 것 같고
두 번째가 결혼 후 가진 직장에서의 어느날 던져버린 사표였던 것 같다.
내가 어린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교사라는 직업을 꿈도 못 꿀만큼
나를 기다리고 있던 졸업 무렵의 나의 일상은 새벽시장을 누비는
억척스러운 모습 이었고,그때의 나의 그런 모습을
지금 생각 하여도 후회 하지는 않는다.
그때 만큼 열심히 살았다는 기억이 별로 들지 않기에..
두 번째가 첫아이가 두 돌을 막 지날 무렵
나 나름대로의 정한 육아 방식에 따라 이제는 엄마 손이 아닌
보모의 손에서도 충분히 잘 커 나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졌던 직장 생활.
나에게 그러한 열정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 할 정도로
최선을 다 한 4년 남짓한 생활.
나의 능력이 빛을 발휘 하던 그 시절의 기억은 매사 최선을 다하는
직장인 으로서의 뿌듯한 안정감에서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했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일인 삼역의 한계는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 갈 무렵
하나 키우는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소심함과 안타까움으로
이어져서 막다른 고민 없이 결단을 내려야 하였고
이어서 가지게 된 둘 째의 예고도 없던 등장.
시나리오에도 없던 그 둘째의 탄생에서 나는 두 번째의 기회를
고스란히 가정에 반납하고서 평범이라는 타이틀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모든 일에는 드러나는 결과가 중요하겠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결과에 치우친 평가를 하는 것 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두 번의 기회들은 나의 인생에서는
다시 맛 볼 수 없는 최선을 다한 빛나는 시절이 였음을 당당히 말 할 수 있다.
남들이 볼땐 드러난 결과도 없는 기회들 이었지만
난 세 번째…마지막으로 다가올 기회들을 두려워 하지는 않는다.
그 세 번째가 마지막이라면 이번엔 기필코 나의 것으로 만들어서
아쉬움으로 마감 하지는 않을 힘을 주는 이들이 내게는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가진것 이상으로 나를 인정해 주고 믿어주는 이들이
넌 할 수 있을 거라는 끝없는 격려들을 보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방에 계신 님들도 나에겐 격려가 되는 분 들이다.
하지만 난 요즘 그 마지막 일 지도 모르는 기회를 앞에 두고
선택이라는 기로에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것들이 무엇인가?
내 남은 인생을 무엇을 하면서 보낼 것인가?
하는 깊은 생각에 빠져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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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나이라는 것이 남자의 나이와는 다를 것이다.
남자의경우 사회적인 연륜이나 경험이 축척되어 쌓여 가는 것에 비해
여자의 경우 무엇이 ‘쌓여가는’것이라기 보다는
‘잃어가는’과정쯤으로 여기기 때문에 초조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암울했던 80년대를 살아 내었던 한 시인은 그의 시에서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고 말한다.
내 나이 서른 하고도 아홉해~
과연 나의 잔치는 끝이 난 걸까?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
이쯤에서 다시 한번 심사숙고를 해야 하는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1
한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그때 그 용서할 수 없던 일들
용서할 수 있으리.
자존심만 내세우다 돌아서고 말던
미숙한 첫사랑도 이해할 수 있으리.
모란이 지고 나면 장미가 피듯
삶에는 저마다 제 철이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찬물처럼 들이키리.
한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나로 인해 상처받은 누군가를 향해
미안하단 말 한마디 건넬 수 있으리.
기쁨뒤엔 슬픔이
슬픔 뒤엔 또 기쁨이 기다리는 순환의 원리를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너에게 말해 주리.
2
한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쉬 너를 보내지 않으리.
밤새 썼다 찢어버린 그 편지를
찢지 않고 우체통에 넣으리.
사랑이 가도 남은 마음의 흔적을
상처라 부르지 않으리.
한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망설이기만 하다 포기하고 만
금지된 길들 찾아가보리.
사랑에는 결코
금지될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일깨워주리.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그때 내 마음 흔들어 놓던
너의 그 눈빛이 일러주는 길을 따라
돈에도 이름에도
그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으리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3
너를 위해 다시 한 번 살아볼 수 있다면
지키지 못한 그 약속을 지킬 수있으리.
한 톨의 씨앗 속에 나무가 숨어 있듯
절망 속에 숨어 있는 희망을 보여 주리.
다시 한 번 너를 위해 살아 볼 수 있다면
믈방울 같은 네 손톱에 물들기 위해
해마다 봉숭아를 내 가슴에 심으리.
한번쯤 다시 살아볼 수 있다면
널 기다리며 서성대던 영화관 앞을
만날 사람 없더라도 서 있어보리.
영화가 끝나면 밀려나오는 사람들 속에
네 얼굴 찾아보며 가슴 두근거리리.
한 번쯤 다시 살아 볼 수 있다면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리.
때로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모든 것 다 바쳐 너를 사랑하리
김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