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앞둔 청보리밭
초여름에 들어선 요즘 우리는 재래시장을 찾아 보리쌀과 햇감자를 자주 사는 편이다. 이때가 되면 입에 밴 구수한 보리밥과 찐 햇감자 맛이 더 그리워지기 때문이다. 숭덩숭덩 썬 햇감자와 많은 대파를 넣어 얼큰하게 끓인 육개장에 구수한 보리밥과 함께 먹는 맛이 그리워서이다.
지난 5일 연휴 이틀째를 맞은 날 전 날 서울에서 내려온 녀석이 육개장에 보리밥을 곁들여 점심을 하며 고창 청보리밭 이야기를 하더니 내일 오후에는 올라가야 한다며 오늘 청보리밭 구경을 다녀오자며 시동을 걸었다.
오후 1시반경 유성TG를 통과 호남고속도로에 들어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대부분의 논이 모내기를 거의 끝내고 빠른 논에서는 벌써 땅 냄새를 맡은 모가 검푸르게 자란 모습을 보여줬다.
처음 들어간 이서 휴게소 한 지붕 아래에서는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에 있는 어린 딸의 치료비 마련에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40대 남자의 애잔한 기타 연주와 노래에 한 젊은 주부가 냉커피 한잔을 놓고 목례를 하며 지나는 모습이 클로즈업되었다.
차 안 CD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반주에 바이올린 연주로 봉선화 등 가곡들을 즐기며 달릴 때 정읍녹두장군휴게소 진입을 알리는 입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어 정읍IC를 지나 정읍TG를 통과한 시간은 오후 2시45분, 출발해서 1시간 15분간 달린 셈이다.
다음 눈앞에 우뚝 나타난 것은 고창 복분자 푸드페스티벌이 6월10일부터 12일까지 열리는 것을 알리는 꽃과 같은 천연색입간판. 고창읍에 들어서는 길 양옆 가로수는 적당한 키로 싱싱하게 자란 조선소나무 가로수들이 눈길을 끌며‘맛과 멋, 풍류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고창’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자아냈다.
오후 3시15분 고창읍성 주차장에 도착. 고창군립미술관과 세계무형문화유산 판소리박물관을 거쳐 유비무환의 살아있는 상징! 고창읍성에 닿았다. 입구 오른 쪽에는 작은 돌 하나씩을 머리에 이고 성을 도는 세 부녀들의 검은 돌 석상이 서 있다.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를 돌면 극락 승천한다는 전설을 가슴에 품고.
고창읍성 안에 들어섰을 때 읍성 높푸른 하늘위에 날던 행글라이더의 모습은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조선 단종 원년 1453년에 전라도민들이 합심, 유비무환의 슬기로 축성한 자연석 고창읍성성곽이 지닌 자랑스러운 참뜻을 보훈의 달 6월에 되살리자는 몸짓과도 같았다.
읍성에서 나와 좁고 양장과도 같은 초행 좁은 밭두렁 길을 네비의 안내로 30여분 달렸을 때 저만치 마치 첫 서리 맞아 누렇게 물든 넓은 잔디밭 같은 들판이 펼쳐졌다. 이 누런 들판이 지난 봄 싱그러운 초록의 드넓은 청보리밭을 이뤄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았던 바로 고창읍 공음면에 자리한 바로 그 고창청보리밭의 초여름 오늘 뒷모습이었다.
내려쬐는 유월 따가운 햇볕 아래 하늘과 맞닿은 30여만 평의 넓은 보리밭 사이사이에 내놓은 길에는 연휴 이틀째를 맞은 가족들, 연인들, 사진작가들, 자전거하이킹을 즐기는 사람들이 메워 누렇게 익어 곧 수확을 앞둔 보리가 서걱거리며 추는 보리들의 군무와 노래를 함께 즐기고 있었다.
보리밭 곳곳에 연결되어있는 앰프에서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등으로 연주되는 엘리제를 위하여 등 귀에 익은 노래들이 계속 흘러나와 보리밭을 찾은 사람, 찾아온 사람을 구경하는 보리도 함께 즐겁게 했다.
황금보리밭과 한 시간 남짓 즐기고 석양 놀이 물들기 시작하는 고창청보리밭 입간판 앞에서 황금보리밭과 석양을 배경삼아 빙빙 도는 청홍바람개비도 넣어 기념촬영을 하고 소금을 뿌려놓은 듯 새하얀 메밀꽃이 출렁일 가을철에 다시 한 번 찾아오기를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대한민국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소문난 고창읍내 한정식전문식당 **관에 들러 정갈한 저녁을 맛있게 들었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고속도를 달리는 차안에는 **관에 은은하게 울려 퍼지던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이 거문고 타고 흐르는 청아한 소리가 다시 흐르는 환청에 빠졌다. (2011. 6. 8 .)
첫댓글 어린시절의 여름 들녁은 당연이 보리가 물결치는 곳이었다. 지금은 보리밭이 관광지로 볼거리의 하나라고,
참으로 격세지감이 있다.
고창엔 특산물이 많기도하군. 청보리밭...상상만해도 굽이치는 모습이 멋져 보여요...
농촌의 풍요로운 정취가 물씬 풍겨오는 한편의 그림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