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식물 키우기
사람들은 화초와 나무를 심고, 가꾸고, 키운다.
예쁜 꽃이 피고, 시원한 이파리들이 넉넉한 평화를 드리우고, 탐스런 열매가 열리면 더 좋아한다.
꽃이나 나무의 빼어난 자태는 사진이나 화폭으로 옮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도 한다.
우리 사회의 여러 곳에서는 인간식물들이 산다.
아무래도 병원에 제일 많겠지만,
침침한 골방, 혹은 여유가 있는 집 같으면 괜찮은 양지쪽 큰 방에서, 갖은 설비들을 갖추고 키울 것이다.
인간식물들은 그 가족들에게만 사랑스럽게 보인다.
어지간한 '테레사 수녀의 마음'을 가지지 않은 보통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식물을 보거나 가까이 하는 것을 기피한다.
인간식물이 피울 수 있는 꽃이나 열매는 없다.
어쩌다 전에 없던 새로운 신경기능을 반짝 보일 때는, 그 가족의 눈에는 일년에 한번 잠깐 피는 선인장 꽃 보다도 더 기쁨을 주긴 하지만...
요즈음은 애완동물들도 부쩍 많이 키운다.
온갖 호사스런 장식도 해 보고, 악세사리로 안고 다닌다.
그렇게 귀여워하다가도,
병이 나거나 말을 안듣고 집안만 어지럽히면 내버린다.
굶어죽든, 덤프트럭에 오징어가 되든 상관 않는다.
생각짧거나 무지한 인간들 중, 더러
"엄청난 돈과 정력을 들이면서 저런 식물을 왜 키우냐? 내버려라!"
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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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목 남자
34세. 남자. 중환자실입원 35일째.
무슨 사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자살 목적으로 농약을 딥다 마신 것을 가족들이 대학병원으로 데리고 갔었다.
치료 도중에 심정지(=소위 심장마비)가 왔었고, 심폐소생술 후 목숨은 건졌으나,
심정지 상태가 상당 시간(소생술 시간이 아마도 20분을 넘겼던 듯) 지속되는 동안 뇌의 많은 부분이 저산소증에 의해 손상을 받았던 모양이다.
대학병원에서 기계호흡에 의존하다가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 아래 우리 병원으로 옮겨 온 것이 35일 전이었다.
처음 며칠간은 "과연 생명이 유지될 수 있을까?"란 생각으로, 가족이 원하면 인공호흡기를 떼어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아버지는 이미 체념한 표정이면서도 차마 그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만 2주일이 지나면서 환자 상태는 안정되기 시작했고,
1주일 전에는 조심스럽게 위닝 (weaning = "젖을 떼다"란 말이지만, 병원에서는 호흡기 등 어떤 치료기계를 점진적으로 떼내면서 생명을 유지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을 시작하여,
4일 전 부터는 산소공급도 않고, 뚫어진 목의 기관을 통해서 숨을 잘 쉬고 있다.
아직 맥박수가 너무 빠르다.
맥박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가래 양이 더 적어지면, 아직도 들어가고 있는 항생제 주사도 끊을 수 있을텐데......
그것이 성공하고나서 한두달 후면 뚫어진 목의 구멍(=기관절개술 받은 것)도 점차 막아버릴 수 있을지???
어쨌든 식물인간 중에서도 거의 고사목에 가까운 심한 상태이다.
이렇게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항상 정답을 모르는 채, 내 일만 할 수 밖에 없는,
나 자신도 하나의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