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2월 13일(목)■
(예레미야 15장)
10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를 강하게 할 것이요 너에게 복을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진실로 네 원수로 재앙과 환난의 때에 네게 간구하게 하리라
12 누가 능히 철 곧 북방의 철과 놋을 꺾으리요
13 그러나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14 네 원수와 함께 네가 알지 못하는 땅에 이르게 하리니 이는 나의 진노의 맹렬한 불이 너희를 사르려 함이라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17 내가 기뻐하는 자의 모임 가운데 앉지 아니하며 즐거워하지도 아니하고 주의 손에 붙들려 홀로 앉았사오니 이는 주께서 분노로 내게 채우셨음이니이다
18 나의 고통이 계속하며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아니함은 어찌 됨이니이까 주께서는 내게 대하여 물이 말라서 속이는 시내 같으시리이까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20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 내가 너를 악한 자의 손에서 건지며 무서운 자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묵상) ◇ 백성의 저주와 하나님의 복
백성들은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10) 예레미야의 하소연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좋은 말을 전하는 자가 아니라 파멸과 심판을 전하는 선지자였다. 12절부터 14절은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전해야 하는 소식이다. "네 모든 죄로 말미암아 네 국경 안의 모든 재산과 보물로 값 없이 탈취를 당하게 할 것이며" 이런 소식을 전하는 예레미야가 백성들에게 인기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그는 모든 백성으로부터 저주를 받았다. 모든 사람이 예레미야를 싫어했다. 이런 것을 보면 선지자가 된다는 것이 멋지고 영화가 가득한 길이 아니라, 욕 먹고 매맞으며 모든 백성에게 배척받는 길이 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온 백성이 이구동성으로 저주를 해도 소용이 없다. 그들의 저주는 임하지 않는다. 복과 저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복을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레미야에게 와서 복을 빌어달라고 부탁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11). 이렇게 하나님 한분만 내 편이면 된다.
예레미야는 나쁜 소식 곧 파멸을 백성에게 전해야 하는 사명을 맡았지만,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좋은 소식 곧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았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 좌절에 빠진 예레미야
18절에서 예레미야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데, 예레미야가 앓고 있었던 고통이 무엇일까? 하나님의 함께 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약속(1:8)만 믿고 나섰고, 혹시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지만, 예레미야에게 돌아온 것은 백성들의 저주와 핍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향해 '속이는 시내'(18)같이 되실 것인가라는 막말을 한다. 이것은 망령된 말처럼 보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치 고통에 칭얼대는 어린아이와 같이 그를 받아주신다. 우리는 예레미야를 인간적인 면에서 충분히 이해한다. 우리도 아마 그렇게 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예레미야를 본받으면 안될 것이다.
◇ 예레미야가 돌아올 것을 촉구하심
예레미야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길래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돌아올 것을 말씀하시는가? 예레미야가 잠시 타락했는가? 유다 땅에 유일하게 남은 선지자마저 넘어져있는가?
이것은 아마도 예레미야가 갈등과 우울 속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기를 주저하는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레미야는 20장에서 자기 속에 있는 큰 고통과 갈등을 솔직하게 밝힌다.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렘 20:8-10)
모든 사람이 예레미야를 조롱하며 저주하고 있다. 그리고 예레미야가 유혹에 넘어지길 바라고 있다. 모든 사람이 트집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은 예레미야로 집에 쳐박혀서 두문불출하게 만든 것 같다.
여기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힘내고 일어설 것을 촉구하신다. 돌아오라는 말씀은 곧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나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레미야를 "견고한 놋성벽"이 되게 해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놋 성벽이란 공격받지 않는 성벽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성벽이다. 비록 온 백성이 예레미야를 대적할지라도 무너지지 않게 해주시겠다는 것이다. 공격은 피할 수 없다. 우리의 삶도 영적 전쟁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는 놋성벽이 되게 해주신다면 해볼만 한 전쟁이다.
◇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다수에게 끌려가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 단 한명 대 온 백성이라는 줄다리기 구조 속에서 예레미야에게 그들에게 끌려가지 말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는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들이 예레미야에게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신다. 이것이 위대한 승리다.
이것은 오늘날 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교훈이다. 민주사회가 모두 '다수'에 의해서 결정되다보니, 우리는 다수에 매우 민감하다. 그들의 눈치를 보며 살아남기를 모색한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 확고히 붙잡힌다면, 다수가 아니라 모두가 달려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서게 될 것이다.
오! 주님 이런 확고한 믿음을 허락해주십시오. 종종 예레미야처럼 좌절에 빠져있을 때에 주님께서 오셔서 격려와 위로를 해주시고, 다시 일어서게 해주십시오. 놋 성벽이 되게 해주셔서 전쟁을 두려워하지 말고, 승리하게 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