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자료
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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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자료
*제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
명절마다 크리스천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 중 하나가 제사 문제다. ‘이번에 고향에 내려가면 제사를 지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 고민이 해결되지 않으면 아예 명절에 귀성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타협해 제사를 지내는 경우도 있다. 제사문제, 크리스천으로서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일까?
조상에 대한 제사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사가 우리 민족 고유의 미풍양속이니 어찌 함부로 버릴 수 있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조상에 대한 제사는 우리 민족 고유의 풍속이 아니라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다. 원래 중국에서도 죽은 왕에게만 제사하다가, 춘추전국시대에 유교의 영향으로 조상 숭배 사상이 보편화되었다. AD 1200년쯤 송나라 주자(朱子)에 의해 제사 의식이 체계화되었고, 나중에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시대에 천신(天神)에 대해 제사하는 제천의식(祭天儀式)이 있었다. 이것이 부여에 ‘영고’, 고구려에 ‘동맹’, 동예에 ‘무천’ 등 제사 의식으로 발전되어 한반도에서 오랫동안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조상에 대한 제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조상 숭배 사상이 생겨난 것은 고려 말엽 성리학이 전래되고 부터다. 이어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성리학을 국가 통치 이념으로 삼아 조상 제사는 차츰 보편화되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의 종교는 불교였기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고로 조상 제사가 우리의 고유 풍속이라는 주장은 옳지 않다. 우리나라 5,000년 역사 가운데 조상 제사를 지낸 기간은 5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죽은 사람이 예배의 대상인가
크리스천들의 신앙과 삶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성경은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 우선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만 예배하라고 가르친다. 다른 신이나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은 물론, 죽은 조상에게 절하는 것도 금하고 있다(출 20:3∼6). 우리가 아무리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의 혼백을 예배하거나 종교적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제사하는 것은 다르다. 살아 계신 어른에게 절하는 것은 존경의 표시이다. 그러나 생명이 없는 존재에 대해 절하는 것은 예배 행위로서 성경이 엄금하고 있다. 또한 인간의 영혼은 죽는 즉시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기 때문에 죽은 사람에게 제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가복음(16:19~31)에 보면 천당과 지옥 간에는 물론, 산 자와 죽은 자 간에도 교통할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죽은 자의 혼백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거나 다시 찾아와 제사 음식을 먹는다는 생각은 전적으로 미신이다. 따라서 죽은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리고 수저를 꽂아 놓거나 술을 부어 놓는 일 등은 그 자체가 미신 의식이다. 성경의 가르침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가톨릭에서는 현재 제사를 허용하고 있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영세를 받고 귀국해 시작된 천주교회는 처음에 제사를 반대해, 이로 인해 많은 천주교 신도들이 박해를 받아 죽기까지 했다. 1939년 로마 교황청은 제사를 허용하는 교서를 발표했다. 이후 제사는 조상 숭배 의식이기 때문에 종교적 행위가 아니라 하여 허용하고 있다.
추모 예배는 가족 간 화합이 주목적
크리스천으로서 조상 제사 문제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기독교는 효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죽은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효를 실천하는 바른 도리가 아니다. 돌아가신 분은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효도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집안의 어른들이나 가족들과 합의하여 제사 대신 추모 예배를 드리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추모 예배는 또 다른 형태의 제사가 아니다. 가족이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서 고인의 유덕(遺德)을 기려서 자손들이 이어 받고, 또 가족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게 주목적이다. 가족 중 믿지 않는 사람이 있어 추모 예배를 반대할 경우, 크리스천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떤 크리스천은 아예 제사에 참석하지 않은 경우를 본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제사 참석 자체를 거부할 경우, 크리스천들은 조상이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져 욕먹게 되고, 또 불신 가족을 전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추모 예배가 불가능할 경우에도 일단 제사에 참석하되, 절하지 말고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족들에게 제사의 무익함을 설득하고 부모님에게 모범적인 효를 실천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제사를 추모 예배로 바꿀 수 있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불신 가족을 주님께 인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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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제사에 대한 선교적 대응 : http://smileman.info/bbs/zboard.php?id=mis1&no=16 - 유교적 조상제사와 구원받은 성도의 입장 : http://smileman.info/bbs/zboard.php?id=mis1&no=70 - 조상제사와 추도예배 : http://smileman.info/bbs/zboard.php?id=mr1&no=25
*추석명절에 대한 성도의 자세(사44:1~2)
우리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분명합니다. 우상숭배적인 조상숭배는 그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복(福)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조상신이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유의해야 할 점은? 조상신을 섬기는 우상숭배를 배격하다 보니 조상의 정신과 선산과 그 관계 까지도 단절하려는 우려가 많이 있어서 비방과 박해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을 최고로 섬기며 그리고 부모공경을 인륜의 첫 계명으로 삼고있는 효의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유언이나 유지가 성경에서 어긋나지 않으면 잘 지켜 드리는 것이 사후 공경이 되는 것이요 조상들의 선산을 잘 보살펴 오히려 불신자들 보다 더 잘 관리하면 그 자체가 전도의 조건이 될것입니다.
옛날 제가 어렸을 때 기억이 납니다. 공동묘지가 있는데 벌초도 하지않고 소들이 묘를 파헤쳐 버리고 소먹이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묘지는 주로 그리스도인들의 묘지였습니다. 그 때 불신자들의 비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쟁쟁합니다.
추석명절이면 흩어진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좋은 기회이니 이 때를 전도의 적기로 삼아, 먼저 믿는 성도들은 물질도 투자하여 선물공세로 친척들의 마음을 산후 세계적인 추세를 들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과 복을 받고 사는 나라들은 모두가 하나님 잘 공경하는 나라요 못먹고 못살며 후진성을 면치 못한 나라와 민족들은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섬기며 특히 조상신을 섬기고 사는 나라들임을 밝힌 후 제사보다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고 조상들의 은덕을 감사하는 은덕을 감사 하는 후손이 되며, 성묘도 하면서 선산을 돌보고 산에서도 제사나 절을 하는 것보다 예배를 드리게 되면 멋진 추석명절이 되는 것입니다.
(추석 명절 감사 예배 순서) *개식사 (명절 때 조상신에게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는것은 제2계명을 범하는 죄가 되는 것이니 우리 가족은 한자리에서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며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도록 합시다)-라고 선언한다. *묵도/ 사회자가 묵도로 예배를 시작한 후 간단히 기원기도를 드린다 *찬송/ 460장. 492장. 28장 중에서 같이 부른다. *신앙고백/ 사도신경 *대표기도/ 가족중 아무나 *찬양/ 자손들 중에서 *설교 *기도/ 설교자가 *폐회/ 주기도문으로
(설교) "진정한 뿌리를 찿자" 명절 때면 고향을 찿는 것도 뿌리 찿는 운동의 일면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진정한 뿌리는 무엇입니까?
(첫째) 내 개인의 뿌리는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사44:1~2) 부모님의 몸을 빌려 하나님께서 영혼을 주셔서 나 라는 존재가 이땅 위에 태어나게 된것입니다. 또한 내 개인의 생사화복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우리 가장의 뿌리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창2:21~25) 가정의 기원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교회의 뿌리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행20:28) (넷째) 국가와 민족의 뿌리도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단2:26~43)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 그리고 민족이 되어야 겠습니다.
*조상제사의 유래와 추모예배 순서
1. 조상제사의 유래 중국에서는 현재 조상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제사를 안 지냅니다. 조상제사는 원래 중국의 주공이라는 사람이 만든 관습입니다. 원래 주공이라는 사람은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대표적인 불효자예요. 그런데 부모님 돌아가시고 난 다음 효자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상놈이 양반이 되기 위해 벼슬을 돈으로 산 것처럼 1년 동안 먹을 양식으로 돌아가신 부모에게 제사를 지냄으로 효자노릇을 한 것에서 유래되었는데 그것이 중국의 유교사상과 더불어 조선 정종 때 중국에서 제사 드리는 풍습이 들어오면서 불효자가 효자로 둔갑한 것입니다.
2. 한국의 조상제사 토착화 한국에서 조상제사를 지내게 된 유래를 보면 이러합니다. 태조 이성계가 쿠테타를 통해서 정권은 장악했지만 민심을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민심을 돌이키기 위해서 무학대사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민심은 무력으로도 안 되고 하나의 방법이 있는데 우리 민족은 전래부터 효도가 극심한 민족이고 민심을 돌이키기 위해 조상제사를 많이 지내고 간접적인 방법으로는 임금을 대표하는 대추,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상징하는 밤과 육판서를 상징하는 씨가 6개 가진 감을 놓게 하고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이상의 삼식과는 제사의 필수품인데 유래가 여기에 기인합니다. (정월초하루, 한식, 추석, 시월시사제, 기일 등)
3. (예화) 청개구리 청개구리가 부모생전에 언제나 불효하여 동쪽으로 가라면 서쪽으로 남쪽으로 가라면 북쪽으로 갔듯이, 부모의 마지막 유언에 내가 죽거든 산 위에 묻지 말고 시냇가에 묻어달라고 했을 때 청개구리는 그때 철이 들어 이제 부모에게 효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부모 유언대로 시냇가에 묻어 주었더니 비가 오면 무덤이 떠내려 갈까봐 개골개골 울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죽으면 영과 육이 분리되어 육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지상으로 다시 내려올 수가 없으며 내려와도 후손들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만약 제사를 지내주지 않으면 그 죽은 영혼이 배고파 허공에 맴돈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영혼이 1년에 한 번 차려주는 제사 밥을 먹고 1년을 견디어 냅니까? 만약 영혼이 내려온다고 가정했을 때 1년에 한 번 음식을 먹는다면 창자가 다 뒤틀릴 것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는 신이 약 800만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하루에 식사 전 세 번 제사를 지내는 분을 본 적이 있습니다. 1년에 1095번의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얼마나 번거롭겠습니까? 기독교에서는 죽은 영혼에게 번거롭게 제사를 지내거나 일본처럼 1년에 1000번 이상 제사를 드리는 번거로움 없이 기독교에서는 효성이 지극한 산 제사를 드립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추모예배라고 합니다.
4. 제사 기원과 형성 요인 제사는 인류 기원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과학 문명이 발달하지 못한 원시 시대에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자연의 변화와 천재지변에 대하여 공포를 느끼고 경외하게 되었으며 그들은 영혼 불멸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사람은 육체에 영혼이 있다고 믿었으며 육체가 죽으면 영혼은 떠돌아다니거나 다른 세계로 돌아간다고 믿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죽은 영혼을 안식처로 잘 모시면 그 후손에게 복을 주지만 그렇지 못하면 재앙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죽은 자에 대한 공포감이나 가족으로써의 친애감이 조상제사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 일반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목적은 ① 관습적임 제사제도는 선조들이 물려준 예의를 답습하는 것으로 선친이 행한 것을 그 자손이 무감각 무의식적으로 관습에 의하여 지낸다. ② 재앙을 멸하기 위한 수단 유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과 육이 갈라져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은 땅으로 내려가는데 하늘로 올라간 혼이 거쳐야 할 곳은 얻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다가 그 후손들이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면 육과 연합하여 사후에도 안정된 삶을 얻는다고 주장하며 죽은 혼이 안정을 얻지 못하면 후손들에게 재앙을 준다고 믿어 재앙을 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제사를 드렸다. ③ 효행의 연속 공자는 죽은 조상도 살아계신 것처럼 섬겨야 된다고 하면서 제사를 장려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숭유정책을 펴고 조상제사에 적극성을 띄었다. ④ 기복적임 죽은 조상을 잘 섬기면 후손이 복을 받는다는 기복사상에서 제사가 시행되었고 죽은 조상을 섬김으로 사자가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는 기복 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5. 추모예배의 자세
1) 추모예배에 대한 인식 ① 기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원칙이다. ② 제사 아닌 친지, 가족 상봉의 날로 여기자. ③ 추모예배를 통하여 가족 친지의 전도의 날로 여기자. ④ 기독교의 효의 실체성을 보여주며 살아 계신 부모님께 효를 강조하는 기회로 삼자.
2) 추모 예배시 주의할 사항 ① 추모예배도 예배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자. ② 고인을 위해서 기도해서는 안 되고 다만 둘러선 식구들을 위해서 하라. ③ 설교도 살아있는 이들에게 교훈이 되게 하자. ④ 추모예배 후 고인의 생전 사진첩, 책자, 유품 등이 있다면 볼 수 있도록 하면 좋다. ☞ 추모예배란 단어는 “죽은 사람을 그리워 함”이란 뜻이 있습니다. 즉, 추모예배는 부모가 살아 계실 때를 사모하며 생전의 발자취를 더듬고 모범적인 삶과 좋은 전통과 유전을 찾아 자손들에게 교훈하고 아직 살아 계신 부모에게 효도할 것을 교훈하며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추모예배 순서 ☞ 개 식 사 : 지금부터 하나님 앞에 부름 받은 고 ○○○성도의 ○주기 추모예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 묵 도 : 시 90:1-10 / 다같이 ☞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같이 ☞ 찬 송 : 450. 532. 534. 539. 541. 고인이 좋아하던 찬송 / 다같이 ☞ 기 도 : 맡은이 ① 예제 1 인간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슬픔과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도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고 ○○○씨를 하나님 나라로 불러 가신 그 날이어서 유족들과 고인과 관계된 모든 이들이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용서의 하나님! 우리가 고인을 통한 아버지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없어 그 뜻을 펴지 못한 우리 부족을 고백하옵니다.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 안에서 고인에게 다하지 못한 정(효도 우정 신의 등)을 생각하며 우리의 부족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여기 우리들, 죽은 이나 산 이들 모두에게 하늘에 영원한 복을 허락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고인에 삶을 영원히 이어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 널리 펴는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② 예제 2 산 자와 죽은 자의 아버지 되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 죽음과 절망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영원한 희망을 갖게 하시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언제 어떤 경우를 당하든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시오니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 고 ○○○성도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불러 가신 그 날이어서 우리가 이 날을 기념하여 모였습니다. 고인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안식을 감사드리며 유족들과 고인의 관계된 모든 이들을 이 시간까지 붙들어 주시고 이끌어 주시기를 바라오며 감사드립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고인을 통한 하나님의 큰 뜻을 헤아릴 수 없어 그 뜻을 펴지 못한 우리의 부족을 이 시간 고백합니다. 우리 각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고인에게 다하지 못한 모든 정을 생각하며 우리의 부족을 고백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여기에 우리들은 죽은 이나 산 이들 모두에게 하늘의 영원한 복을 허락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고인의 삶을 영원히 이어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널리 펴는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주옵소서. 권세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 설 교 : 맡은이 ① 예제 1 = 설교제목 : 의미 있는 삶(히 9:27)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한 세월 동안 살다가 또한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부르시면 죽음 앞에 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1. 순서가 없습니다. 세상에 올 때에는 태어나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른보다 아이가 먼저 하늘나라로 갈 수가 있습니다.
2. 죽음은 연기가 없습니다. 정한 세월 동안 살다가 수명이 다하면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는 죽음의 연기가 없습니다.
3. 죽음은 공통적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죽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영웅호걸이라도 잠시 왔다가 역사의 무대 앞에 사라졌습니다.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찾아오며 가장 공평한 것이 죽음입니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죽습니다. 권력자도 약자도 죽습니다. 이처럼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입니다.
4.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 이후에 새로운 영적 세계가 있음을 부인합니다. 그러나 죽음에는 일생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심판이 있다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둘러선 우리들도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의미 있는 삶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구원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 기 도 : 설교자 ☞ 추모의 순서 : 고인의 약력보고, 추모사, 유언과, 유품소개 / 맡은이 ☞ 찬 송 : 542, 543, 544, 545 고인이 즐겨 부르던 찬송 / 다같이 ☞ 축도 및 주기도문 : 집례자
8. 관련 성구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5-6)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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