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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13
$#1. 복도 (아침)
NS 회진팀, 병실에서 나오고..
$#2. 비상 계단
우르르 내려가는 회진팀을 뒤따르며 가던 상도, 한숨을 한번 쉬어보곤 난간에
기댄다.
이때, 상도의 허리춤에서 울리는 삐삐.
상도 허재봉 선생.
재봉, 뒤돌아보면.
상도 응급실 한번 가봐라.
재봉 네.
이미 비상문이 닫혀진 채 상도, 홀로 서있다.
상도, 계단에 앉는다.
힘겨운 듯 다리를 주물러보곤, 어금니를 질끔 물며 일어선다.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오프 사운드로 들린다.
$#3. 응급실 앞
너덧 대의 앰뷸런스가 응급실 앞을 메우고, 다급히 환자를 실어 나르는 의사들
의 물결.
$#4. 응급실 안
외상 환자들로 분주한 응급실 내부.
외과 계통의 의료진들이 분주하게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고.
제 각각의 부위가 피로 물든 환자들의 고통스런 모습.
머리가 피로 물든 한복차림의 시골 노인 앞에 선 현우와 재봉.
재봉, 간단한 드레싱을 하고있고
현우가 노인의 상태를 살핀다.
노인의 주변엔 가벼운 부상을 입은 노인의 가족들이 둘러서 있다.
가족 뭔 일이야?
혼삿날이 제삿날이 될 뻔했네.
노인 혼사를 치를 날이 있고, 말아야 될 날이 있다고 내가 몇 번을
일렀는지 몰라. 말을 안 들어, 젊은것들이..
현우 신랑신부 가족 되세요?
가족 아니오. 저흰 신랑네 옆집 살아요... 고속도로가 그냥 빙판이더
라구요.
재봉 신혼부부가 하객들하고 같은 버스를 타고 갔던 겁니까?
노인 아, 우리랑 왜 같은 버슬 타? 즈이는 부산으로 신혼여행 가고,
우린 수원으로 가는 길이라 나란히 달렸지, 고속도로를...
가족 아부지, 부산이 아니라 경주래요.
노인 부산이라 그러든데, 무슨 경주야? 경주에 뭐 볼 게 있다고...
가족 에이, 거 부산이야 여름에나 가는 거지. 해수욕장 거기... 부산
보다야 경주가 신혼여행 하긴 낫죠.
노인 낫긴 뭐가 나? 맨 무덤이랑 절빽이 없는 델...
그나저나 눈 밑으로 이렇게 피가 철철 떨어지는데 피 다 빠져
나가는 거 아니유? 어지러워 죽겄어.
현우 허 선생. 사진은?
재봉 지금 가지고 오겠습니다.
재봉이 뛰어나가는 곳을 따라 침대 한켠에 누운 예복차림의 젊은 여환 경선.
고운 예복도 차량 전복을 말하듯 찢겨지고 더럽혀져 있고 흐트러진 머리칼과
가늘게 긁힌 얼굴,
하경과 인찬이 서있고 여자는 계속 울먹인다.
경선 우리 남편이요, 고성수씨요. 안 죽었죠, 안 죽었죠? 네?
인찬 맞은 편에서 치료받고 있으니가, 염려마세요.
경선 어디요? (몸을 일으키려다 인상을 쓴다)
하경 (제지하며) 움직이지 마세요. 대절 버스에 하객들하고 같이 타
셨어요?
경선 아니요, 버스는 우리 뒤따라오다가...
인찬 고속도로가 빙판길이었답니다, 삼중 추돌이었구요.
경선 우리 성수씨 좀 보여주세요.
하경이 고개를 돌리는 곳에 수연의 뒷모습이 보인다.
수연이 경선의 남편, 성수를 진료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눈을 뜬 채, 수연을 바라보는 성수.
그 옆에서 초조하게 수연을 보고 잇는 한복차림의 성수 모.
성수모는 한쪽팔에 이미 보조대를 차고 있다.
수연 (허벅지를 꼬집는다) 아프세요?
계속 수연을 바라보는 성수.
성수 모 얘, 말해봐, 아퍼?
수연 안 아프세요?
성수 (눈을 한번 깜빡인다)
수연 (성수를 바라보다 겨드랑이를 꼬집는다) 여기는요?
성수 (눈을 고정)
성수 모 어? 얘가 왜 이래? 말을 해. 벙어리처럼 왜 그래, 이 녀석아.
수연 ...아프세요?
성수 (그대로 눈을 뜨고 있고)
수연 안 아프세요?
성수 (눈을 깜박)
상희가 다가온다.
수연 운동기능, 감각기능이 전혀 없습니다. 의식은 있구요.
상희 Brain stem(뇌간)에 문제가 있는 거 같다.
수연 Syringobulbia(뇌간 공동증)로 추측 진단할 수 있을까요, 선생
님?
상희 그래.
성수 모 못 움직여요, 우리 애?
상희 현재 상태론 그렇습니다.
성수 모 왜요? 기억 상실증인가 그런 건가요?
상희 아닙니다, 의식엔 문제없습니다. 진료를 더해봐야 할 겁니다.
(약품지시)
수연 네.
성수 모 선생님.
수연 좀 더 세밀한 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
성수 모 (성수를 빤히 바라본다, 어둡게) 내가 뭐래냐? 남편 잡아먹을
상이랬지, 저 기집애? 니 아버지까지... (고개를 돌리며) 성수
아버지.
그리곤, 성수모가 걸어와 선 곳엔 성수부가 누워있다.
그 옆에서 무의식의 성수부를 진료 중인 남준과 상도.
성수 모 (남편 앞에 서며) 성수 아버지. (남준에게) 선생님?
남준 아직 의식이 없습니다. 사진을 봐야 알겠지만 두부에 손상을
입은 것 같습니다.
성수 모 선생님, 살려주세요. 우리 집 끝장나요.
이때 형광판 앞의 재봉 소리.
재봉 선생님, 사진 나왔어요.
형광판에 몰려드는 신경외과 이ㅡ료진.
재봉이 사진을 꽂는다.
이때 의료진 뒤에 서는 성수 모.
하경 신부 사진이야?
재봉 네.
남준 척수 손상이 좀 넓다.
하경 (인찬에게) 수술 퍼미션 준비해라.
인찬 네, 선생님.
남준 다음 거 걸어봐. 이건 누구야? 신랑이야?
재봉 아닙니다, 이웃집 사람이랍니다.
현우 외상 빼곤 괜찮네.
남준 신랑은 어딨어?
상도 신경과에서 진료 중입니다.
남준 아버지 사진은? 아직 안 나왔어?
재봉 (건다) 이겁니다.
남준 두부손상이 보통이 아니네. (상도에게) 당장 하자, 수술.
상도 네.
뿔뿔히 흩어지는 의료진들.
인찬 (성수 모를 향해) 두분, 수술하셔야 합니다. 수술동의서에 보호
자가 사인해 주셔야 됩니다.
성수 모 우리 애하고 애 아빠하고 다요?
인찬 아드님은 아직 수술여부를 더 두고봐야 합니다. 부군하고 며느
님.
성수 모 ...그럼 한명이요. 둘이 아니고 한명이요.
인찬, 성난 눈빛의 성수 모를 바라보다 멀리 경선 앞에 선 하경과 눈이 마주친
다.
하경 (경선을 본다) 손쓸 수 있겠어요?
(고개를 끄덕이는 경선을 보곤 인찬에게) 퍼미션 용지 여기 한
장 줘.
노인 앞에 선 현우와 재봉
현우 (노인 앞에 서며 재봉에게) 드레싱하고 봉합해 드려라.
재봉 네, 선생님.
성수와 눈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수연의 곁을 지나치는 현우.
현우 (수연의 곁으로 와서는) 신랑이야?
수연 네, 선생님.
현우 근데 왜 그러고 서 있냐, 한선생은?
수연 진료 중입니다.
계속 눈을 맞추는 수연.
$#5. 수술실
다급히 수술실로 옮겨지는 성수 부.
성수 부를 뒤따르던 성수 모가 그 앞에 서서 중얼댄다.
성수 모 그 기집애가 재수가 없었어. 내가 그랬잖아.
$#6. 병실
침대 책상을 올리고 컴퓨터 두드리고 있는 50대 가량의 영훈.
준서가 들어선다.
준서 뭐하십니까, 교수님?
영훈 (웃으며) 아고, 들켰네. (컴퓨터를 종료하기 시작한다) 어? 오
늘은 왜 선생님 혼자 오세요? 다른 선생님들은 회진 안 돕니
까?
준서 응급환자 때문에요. (컴퓨터 보며) 이렇게 무리하시면 안 되는
데요. 게다가 오후엔 수술도 받으셔야 되구요.
영훈 처 (원망스레0 진짜 말 안 들어요. 이 사람, 안 된다는데 얼마나
고집을 피는지 몰라요. 선생님이 야단 좀 치세요.
영훈 그냥, 오락 한판 한걸...
준서 (영훈 처에게) 컴퓨터 댁으로 가져가세요.
영훈 심심해서 카드놀이 그거, 했다니까... (영훈 처, 컴퓨터를 치우
려하자, 짜증스레) 좀 놔두라니까.. (준서에게) 안 할 테니까,
그냥 옆에 두기만 할게요.
준서 오락 중독 되셨어요?
영훈 처 오락 안 해요, 이이.
연구 논문 마저 정리한다고 저러잖아요...
영훈 별 걸 다 이르네. (웃으며) 하참, 논문이나 마무리하고 입원을
했어야 하는데... 나, 이건 꼭 마무리해야 돼요. 꽤 오래 준비한
겁니다.
영훈 처 계속 픽픽 쓰러지는 사람이.
준서 교수님, 만약 수술시기 놓쳐서 입원하셨다면 논문 완성은 진짜
로 못 하셨을 겁니다. 수술 끝나고 좀 쉬다가 다시 시작하세
요.
영훈 근데, 왜 이렇게 마음이 급하지? 수술 받기 전에 이걸 완성해
야 하는 것 같어. 뇌수술 받고 나면 괜히 바보될 거 같구 그래
요. 나, 바보되면 안 됩니다.
그럼 살아있으나 마나지.
난 공부하려구 하는 사람이지, 살려구 사는 사람 아니 거든요.
차라리 수술 안 하고 말지, 바보 되면...
영훈 처 진짜 말 안 들어.
영훈 거참, 말 버릇.
교수 와이프란 사람이...
아 안 할게, 안 할게. 컴퓨터 갖구가.
영훈 처 진작에 그러지.
영훈, 베게에 등을 기대며 옆켠의 서적 한권을 들어 표지를 넘긴다.
영훈 처 독서는 되지요?
$#7. 병실 앞
준서를 따라나오는 영훈 처.
영훈 처 선생님.
준서 네.
영훈 처 (무겁게) 종양이란 말은 안 했어요. 뇌졸중 정도로만 일러놨거
든요.
준서 환자 분도 아셔야 될 겁니다. 종양부위가... 교수님 연구 활동
엔 치명적인 부위가... 솔직히, 논문 끝내시기 어렵습니다.
영훈 처 (관조적으로) 그 사실 알면, 저 사람 절대 수술 안 합니다.
준서 ...물론 약간의 절제로 인지기능 저하를 최소화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궁극적인 수술은 아닙니다.
종양을 최대한 제거해야 생명이 연장이 되니까요.
영훈 처 ...그냥 살려만 주세요.. (허탈하게 허공을 본다) 얻는 게 있으
면 잃는 게 있는 거지요. 생명을 얻는데 뭘 더 바랍니까?
영훈 처, 쓸쓸히 병실 안으로 들어간다.
영훈 처를 바라보는 준서.
$#8. 수술실
형광판 앞에서 뇌사진을 바라보고 선 남준.
남준 출혈도 심하고..
(의자에 앉으며) 아들내미는 어떻대?
상도 아들은 브레인 스템에 문제가 있습니다.
남준 이런... 부자가 동시에 이게 뭔 일이냐? 며느린 척수 손상이고..
풍비박산이 났구만. 죽느니만도 못하지, 이거...
상도 죽는 것보다 못한 게 어딨습니까, 과장님?
남준 ..너, 치프 딱지 뗄 때 되니까 막 기어오른다, 응?
상도 그러니까 과장님이 타의 모범이 돼야지요.
남준 ..윤태동 없다 싶어. 안도를 했는데, 그 자리에 강적이 버티고
섰네. 메스나 줘.
상도 네. (메스를 준다)
남준 (메스를 건네며) 드릴.
상도, 드릴을 건네 받다가 바닥에 놓친다.
남준 (소리친다) 무슨 짓이야?
상도 죄송합니다, 과장님. (간호사에게) 드릴 좀...
간호사 네.
간호사가 다급히 나가고...
남준 (여전히 화가 나서) 넙죽넙죽 말 받아치는 실력으로 손놀림이
나 확실히 해, 너.
간호사가 급히 가지고 온 드릴.
상도가 잡다가 다시 바닥에 떨어뜨린다.
남준 (소리친다) 임마, 너 왜 이래?
상도, 떨리는 손.
상도 죄송합니다, 과장님. (건너편에 있는 인턴에게) 야, 니가 대신
좀 서라. (물러선다)
남준 하다 말고 어디 가, 이놈아.
상도 (나가며 우울하게) 화장실요.
남준 뭐?
상도, 나간다.
$#9. 수술실 복도
손을 주무르며 굳은 표정으로 걸어가는 상도.
$#10. 복도
링겔걸이를 밀며 복도를 왔다갔다하는 진아.
복도로 이동침대를 밀며 가는 수연과 간호사.
진아와 눈이 마주치는 수연.
진아 (퉁명스레) 환자가 넘치는 판에 왜 나까지 걸구 넘어지나 몰
라. (환자가 눈을 뜬 채 자신을 바라보자) 뭘 봐요? (말이 없
는 환자가 짜증스러운 듯) 벙어린가?
수연 (병실 안으로 들이밀며) 입 닥치래.
$#11. 병실
성수의 침상을 정리하곤 간호사에게 투약지시를 마치는 수연.
나가려다 성수를 바라본다.
수연 참, 그게 궁금하시죠? 아버님하고 부인되시는 분은 지금 신경
외과 치료를 받고 있어요. 어먼님은 아버님 곁에 계시구요. 그
게 궁금하셨죠?
성수 (눈 깜빡)
수연 부인 되시는 분, 참 미인이세요.
성수 (두번 눈을 깜빡)
수연 ...(웃으며) 기분 좋으세요?
성수 (깜빡)
미소짓는 수연.
$#12. 병실 앞
여전히 복도를 왔다갔다 돌아다니는 진아.
현우가 걸어온다.
현우 왜 복도는 왔다갔다해?
진아 (퉁명스레) 담배 피고 싶어서요. (멀찍이 간다)
병실에서 나오는 수연.
현우 (수연에게) 쟤, 괜찮냐?
수연 환자가 괜찮기야 하겠어요... 좀이 쑤실 거예요, 놔두세요.
걸어가는 수연과 현우.
현우 저렇게 데려다 놓으니까 마음이 놓이냐?
수연 네. 약물치료는 계속 하는데... 모르겠어요.
현우 그래도 너한테 고마운가부다. 도망 안 가고 저렇게 어슬렁대는
거 보면...
수연 도망가기 전에 빨리 낫기나 했으면 좋겠어요.
목사님 오실 때가 됐는데?
현우 언제 오는데?
수연 왜요? 도망가시게요?
현우 당연하지.
수연 매일 이맘때쯤 들리세요.
스테이션 쪽으로 가는 수연.
수연 가세요, 선생님. (차트를 기록하다가 계속 서있는 현우를 보면)
왜 그러고 계세요?
현우 밥 먹자.
수연 저, 밥 먹었어요.
현우 12시도 안 돼서 밥을 먹냐, 넌?
수연 좀 일찍 가야 식당이 안 붐비죠?
현우 평소에 몇 시에 먹는데?
수연 11시 30분에서 12시 사이요.
현우 알았다. (돌아선다)
수연 왜요?
현우 조금씩 알아야하잖아, 너.
수연 (웃으며) 선생님, 고작 저에 대해 알아야 될 게 그거에요?
현우 왠만한 건 다 안다, 벌써.
무시한 표정으로 복도 끝으로 걸어가는 현우.
미소짓는 수연.
$#13. 수술실 2
척수손상 수술 중인 하경
옆에서 인찬이 어시스트를 하고 있다.
하경 손상부위가 넓긴한데 심하진 않다.
인찬 다행이네요.
하경 다행이 아닐걸?
인찬 네?
하경 시아버지, 남편 상태가 그 모양이 됐는데 뭐가 다행이니? 사는
게 아닐 거다, 앞으로도...
인찬 ...뭐, 같이 치료받아서 같이 좋아지면 되죠.
하경 (인찬을 본다) 넌 세상이 아름답지?
인찬 네?
하경 (다시 수술을 한다) 허구헌날 피 묻히고 사는 애가 세상이 아
름답다 그러는 거... 참 신기해. 좋겠다, 넌.
인찬 제가 언제 그랬어요, 선생님?
하경 너, 수녀님한테 수시로 전화한다며? 종미 어떠냐구?
인찬 누가 그래요?
하경 상도가 그러드라. 의국에 가면 의례 글루 전화한다고.
인찬 ..환자잖아요.
하경 ..그래, 환자나 좋아해라. 괜히 연애한다고 상처받지 말고...
인찬 ...
하경 그러다 보면 나처럼 돼, 고약해져.
인찬 ..좋은 걸 어쩝니까?
인찬을 바라보는 하경을 외면하며, 어시스트에 열중하는 인찬.
$#14. 정신과 진료실
문이 열리고 순영이 들어온다.
순영의 주치의가 앉아있다.
주치의 문순영씨? 어서 들어오세요.
순영 간만이네요, 선생님.
주치의 요즘도 그래요?
순영 뭐가요?
주치의 침대 밑에서 누가 차력한다면서요?
순영 (주치의 이마를 만지며) 열은 없네. 선생님 괜찮으세요?
주치의 뭐가요?
순영 그 좁은데서 어떻게 차력을 해요?
주치의 구경 가려 그랬는데? (의미 있는 눈빛) 인제 차력사 없어요,
문순영씨?
순영 침대 밑에 차력사는 없어요. 다른 게 있어요.
주치의 (실망스러운 듯 웃는다) 이런. 이번엔 또 뭐가 있습니까?
순영 ..이번엔 믿어주셔야 돼요.
주치의 언젠 안 믿었습니까, 내가? 뭔데요?
순영 ..(빤히 바라보며) 먼지요.
주치의 (놀란 듯 순영을 가만히 바라본다) 문순영씨, (미소지으며 갑
자기 손을 덥썩 잡는다) 문순영씨.
순영 (손을 빼며) 에그머니, 왜 이러시나.
주치의 퇴원하세요.
순영 ...
주치의 갑작스럽죠, 순영씨? 인제 슬슬 준비하세요.
순영 선생님.
주치의 네?
순영 침대 밑에 먼지가 있으면 퇴원해도 되는 건가요?
주치의 그럼요, 순영씨 머릿속 병균이 침대 밑의 먼지만큼 떨어져 나
간 겁니다. (순영의 팔을 톡 치며) 축하합니다.
순영 ...의학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안 될까요, 선생님? 그 편이 이해
하기가 더 쉽거든요.
주치의 (역시나 반갑게) 진짜루 퇴원해도 되겠어요, 문순영씨.
$#15. 스텝의국
현우, 컴퓨터 파일을 정리하고 있으면 간호사가 우편물을 가지고 들어온다.
간단한 목례를 하곤 우편물을 나누려는 듯 이름을 확인하는데...
현우 됐어요. 내가 할게.
간호사 네, 선생님.
간호사 나가고 현우가 우편물을 나눈다.
그러다 문득 준서의 편지봉투를 한참 뚫어져라 바라본다.
이때 들어서는 준서.
현우, 준서를 언뜻 바라보곤 한쪽에 나뉘어진 준서의 우편물을 집어 아무 말 없
이 내민다.
그리곤 하경의 책상 위에 하경몫의 우편물을 올리곤 자신의 책상 앞으로 와 우
편물을 뜯기 시작한다.
준서도 자신의 책상 앞에 와서 앉아 우편물을 뜯는다.
둘, 아무 말 없이.
종이 뜯는 소리, 종이 낱장소리만 둘 사이에 오고간다.
현우 (대뜸) 하경이랑 언제 결혼하냐?
준서 (고개를 든다)...아는 점집 있냐? 좋은 날을 받아야 될 텐데 말
이다.
현우 궁합부터 봐라. 봐봐야 별루겠지만...
준서 ..넌 하경이 만날 때 궁합보고 사겼냐?
현우 응.
준서 그럼 궁합 좋아서 만난 거니?
현우 아니, 나빴어. 그래서 이렇게 됐잖냐?
준서 ...(픽 웃는다)
현우 ...이왕 좋아할 거면 정성껏 해라. 내 맘 흔들리지 않게...
준서 아마, 남몰래 기울인 정성이라면 내가 너만 못하진 않을 거다.
현우 ...내 마음 흔들리지만 않게.. 그러면 된다.
준서 ..
현우 ... 그리고 너, 동석이 민사소송 어떻게 할거냐?
준서 ...(의아한 듯, 그러다 우편물을 보곤 법원에서 보내온 소송우
편을 들어 보이며) 내 우편물 검사도 하냐?
현우 소송 받아들일 거야?
준서 ...물론이다. 형소 승소했으면 민소는 거저 먹는 거 아닌가?
근데, 그걸 내가 왜 포기하냐?
현우 포기해.
준서 내 변호사라도 되냐, 니가?
현우 내가 니 변호사가 되면 내 말 들을래?
준서 그래. 너 사법고시 붙고, 그 때 보자. 그러면 니가 하라는 대로
한다.
현우 그럼 그 동안엔 소송 포기해야겠네. 그럼 좋다, 기다려.
준서 (벌떡 일어선다) 어떻게든 날 밟아버리고 싶어 죽겠냐, 너?
현우 내가 밟으면 넌 밟혔어,
예전엔... 순해빠진 놈. 답답하고 재미없는 놈.
근데, 인제 넌... 나쁜 놈처럼 보여.
준서 ...나쁜 놈이야, 나.
나도 몰랐는데, 니가 아주 잘... 내 근성을 끄집어냈어. 장해,
너. (나가려할 때)
현우 돌아와라, 하준서.
준서 ...
현우 예전에 니 모습, 글루 돌아와라. 그 모습이.. 난 참 좋았다. 답
답하고 재미없긴 했지만...
준서 싫다, 더 이상 니 발에 밟히는 거...
준서, 싸늘한 뒷모습을 남기며 나간다.
$#16. MRI실
환자가 누워있는.
밖에서 재봉이 MRI기사와 컴퓨터 단면을 보고 있다.
재봉 (뇌의 횡단면의 그림을 가리키며) 요 부윈데... 요기서부터 요
기까지 좀 더 나눠주세요.
기사가 컴퓨터를 조작하는 사이 노크소리.
기사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영
놀라는 재봉.
재봉 자기야, 이런데 오면 안돼.
순영 (재봉의 품에 안긴다) 자기야.
재봉 (놀라며) 왜 이래?
기사, 입을 벌리고 얼싸안고 있는 둘을 본다.
재봉 (기사의 눈치를 보며) 얘가 제정신이 아니라... (이내 걱정스레)
왜 또? 집에 가고 싶어?
순영 (재봉 보며 간절히) 아니, 가기 싫어.
$#17. 폐쇄병동
레지에게 순영의 상태를 따지는 재봉.
그 옆에서 재봉을 바라보고 있는 순영.
재봉 (레지에게) 니가 보기엔 얘가 제 정신인 거 같니?
레지 담당의가 그렇다잖아.
재봉 무슨 담당의가 침대 밑에 먼지 있다고 환자를 퇴원 시키냐고,
응?
레지 (순영을 보며) 문순영씨, 잠깐만 절루 가 계세요.
순영 왜?
레지 의사들끼리 좀 할 얘기가 있어요.
순영 지들이 곧 죽어도 의사라고...
재봉 (인상을 쓰며) 어허? 의사지, 그럼. 얼른 가 있어.
순영이 저만치 가 선다.
레지 완전한 건 아니야.
근데, 저 정돈 통원치료 받으면 돼.
재봉 아니, 내가 보기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니까...
레지 니가 뭘 볼 줄이나 아냐?
재봉 아, 내가 쟤를 누구보다 잘 알잖아?
아마, 만난 횟수를 보면 너 빼곤 내가 다음일 거다.
전문의보다 내가 더 많이 관찰을 했다는 거지.
레지 임마, 니가 섭섭해하는 거 이해는 하는데... 정상적인 사람이
정신병동에 있으면 그것도 위험해.
재봉 ...쟤는 절대 정상이 아닌데?
레지 (스테이션을 벗어나며) 니 상태로 뭘 알겠냐?
재봉 내 상태가 뭐?
레지 사랑은 가슴에만 묻어둬라.
재봉 이 자식, 근데...
레지가 가고 순영이 다가와 선다.
순영 뭐래?
재봉 인제, 자기 머리가 좋아졌대.
순영 ...
재봉 좋아져야지. 그러자고 입원했는데...
순영 ...
재봉 (울먹인다) 에이, 또 울려구 그러지?
순영 누구세요?
재봉 (웃는다) 어? 아직 아니네. (레지 쪽을 보며) 야, 임마, 아니잖
아. (그러다 문득 순영을 바라본다. 빤히 바라보다 미소짓는다)
됐어, 문순영. 그만해.
순영, 실망스레 몸을 돌리고 복도 끝으로 힘없이 걸어간다.
재봉, 한숨을 내쉰다.
$#18. 마취과 식당
태동이 식사를 하고 있다.
이때,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정형치프와 레지.
정형치프 (태동에게 인사를 한다) 식사하세요, 선생님?
태동 보면 몰라?
식판을 앞에 두고 태동 앞에 앉는 정형치프
태동 꼭 여기 앉아야 되냐?
정형치프 (인상을 쓰며) 왜요?
태동 아니야, 니네가 오니까 왜 이렇게 떨리냐?
정형치프 (인상을 긁으며) 편히 드십시오.
아무 말 없이 무게를 잡으며 식사만 하는 정형치프.
태동 (레지에게) 얘, 왜 이러냐?
정형레지 기분이 나쁘세요.
태동 왜?
정형치프 (레지에게) 아가야, 이 국이 왜 이렇게 짜냐?
정형레지 내가 안 그랬는데?
정형치프 누가 너더러 그랬대? 아가야, 조기 가서 온수 좀 떠와라.
정형레지 네.
물을 떠오면 국에 물을 붓고 밥을 말아 우걱우걱 씹는다.
그러다 레지를 꼬나본다.
레지 왜요, 선생님?
정형치프 국이 싱거워졌잖아, 너무. 누가 물을 그렇게 많이 떠오래?
태동 너, 변태냐? 니 국을 얘더러 어쩌라구?
레지 선생님 건들지 마세요, 지금은...
태동 왜 그래? 수술 잘못됐어?
정형치프 (우울하게) 아가야, 소금 좀 가져와라.
태동 상도가 뭐? 또 환자 뺏겼냐, 너? 고상도한테?
정형치프 (벌떡 일어선다) 에이, 밥맛없어. (식판 들고 나간다)
태동 뭐 임마?
일어서려는 태동을 잡아 앉히는 레지.
레지 선생님, 선생님한테 그러는 거 아니라. 진짜로 밥맛이 없으신
거예요
태동 근데 왜 하필이면 내 앞에서 밥맛없다 그러는데?(이내 보챈다)
쟤, 왜 저러는데에?
레지 우리 치프 선생님, 무지 좋아하거든요.
태동 (눈을 똥그랗게 뜬다)
레지 모르셨죠?
태동 (은밀하게) 몰랐지, 난..(호기심에) 언제부터 저렇게 됐는데?
레지 저렇게 되다뇨?
태동 호모라며, 니네 치프...
레지 에.
$#19. 병동 스테이션
스테이션 앞에서 기웃대는 상도.
순덕 또, 보러 오셨구만.
상도 아, 이은주 보러온 거 아니에요.
순덕 보러 왔다손 펴도, 이은주는 없어?
상도 (놀라며) 그만뒀어요? (중얼댄다) 아, 이건 아닌데...
이은주, 집 전화번호 알죠?
아니, 집이 어디예요?
순덕 독감 때문에 오늘 집에서 쉰답니다. 고 하루 못 본다고 그렇게
난리냐?
상도 내일은 나오구?
순덕 내일까지 안 나오면 그냥 짤리는 거지, 뭐.
상도 (순덕의 손을 덥썩 잡는다) 그러지 마, 아줌...
순덕 설마, 또 아줌마라곤 않겠죠, 고 선생?
상도 ...누나.
순덕 못 말려.
상도 은주... 잘 좀 돌봐줘요, 응?
순덕 뭔 소리야, 갑자기?
상도 그냥 들어둬, 누나.
$#20. 의국
전화기 앞에서 망설이는 상도.
쪽지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며 버튼을 누른다.
수화기를 통해 들리는 송신음.
은주 모(E) 여보세요?
상도 ...저, 여긴 병원인데요.
은주 모(E) 아, 예. 우리 은주요.
죄송합니다, 선생님.
애가 몸살기가 있는지 통....
불성실하고, 그런 애 아니거든요.
혹시... 결근하고 그래서, 병원에서 못마땅해하고 그러는 거 아
니죠?
죄송해요, 선생님.
원래 그런 애 아니니까...
상도 아닙니다. 근무태도며 행동이며, 얼마나 반듯한 간호산데요.
일 잘하기로 소문난 간호삽니다.
아프다기에 걱정이 돼서...
은주 모(E) (반색을 하며) 그런가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바꿔 드릴게요.
상도 아닙니다. 그냥... 모두가 걱정하고 있다고...
몸조리 잘 하라고 전해주세요.
은주 모(E) 고맙습니다, 선생님.
근데, 선생님 성함이...
상도 예? 아, 박순덕이라고...
은주 모(E) 예? 박순덕이요?
상도 예. 그럼 안녕히 계세요.
전화를 끊는 상도.
이때 상도가 몸을 젖히면 어느새 상도뒤에 정형치프가 서있다.
상도 아, 깜짝이야. (쿠션으로 치프의 머리를 치며) 임마, 누가 남의
전화 엿들으래?
놀래라.
치프 상도야, 나 안다.
상도 그래. 이은주네 집이다.
뭐? 난 박순덕이고...
치프 박상희한테 얘기 들었다.
근전도실 기사한테도 얘기 들었고...
상도 ...
치프 상도야.
상도 에이, 사생활이 없어 어떻게...
치프 상도야.
상도 고만해, 임마.
치프 (주머니에서 새 담배 한 갑을 꺼내 내민다)
상도 뭐야, 임마.
치프 가져.
상도, 얼떨결에 받으면
치프, 그대로 우울하게 나간다.
나가는 치프의 뒷모습을 보며 쓸쓸히 웃는다.
담배갑을 뜯는 상도.
$#21. 판독실
남준과 스탭들만 둘러 앉아있다.
판독실 앞엔 사진들이 걸려있고...
하경 유경선 환자, 척추손상 포스트 오핀데요.
손상상태가 생각보단 경미했습니다.
남준 그 시아버진 영 안 좋다.
준서, 너 수술할 환자는...
준서 (사진을 걸며) 종양부위가 전두염에 작게, 측두엽의 중앙부분
에 그 보다는 다소 넓게 퍼져있습니다. 전두엽 종양은 절제하
는데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남준 측두엽 종양도 그렇게 크진 않잖아.
준서 기능적인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기억력 및 학습장애가 우려돼서요.
그래서.. 제 생각엔 측두엽은 좀 지켜보고...
현우 그것 때문에 뻔히 떼내야 될 종양을 그대로 둬?
준서 직업이 교순데... 바보같이 살 거라면 차라리 죽겠단다.
현우 하선생, 니가 의사지. 문학가냐?
준서 의사가 뭔데?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게 의사냐?
현우 뻔히 죽게 생긴 환자, 그대로 놔두는 것도 의사는 아니지.
남준 (현우에게) 인제, 니 싸움 대상이 바꼈냐? (준서에게) 너랑 최
하경이랑 바톤터치 할거야?
현우 ....
준서 ....
남준 둘 다 틀린 말 아니야.
니들 각자의 소신, 환자의 입장, 보호자의 입장, 다 고려해보고
그리고 판단해. 어쨌건 최종판단은 담당의 하준서꺼다.
남준 나간다.
준서, 일어서서 사진을 뽑는다.
현우 저걸 그냥 두겠다고...
준서 그래.
현우 그럼, 넌 전두엽만 제거해.
내가 측두엽은 맡을게.
하경 장현우, 말이 되는 소릴 해라.
그리고 준서야.
준서 니말은 들으나마나지, 현우랑 같은 입장일테니까...
준서 나간다.
현우 당연해, 하준서 생각은 말이 안 되니까.
하경 왜 말이 안돼?
현우 신경외과의사가 수술을 왜 하는데? 사람 살리자고 하는 거지.
하경 어떻게 살릴 건가를 고민하는 건 신경외과의사가 하면 안 되
는 거니?
현우 재활의학과란 전문분야가 엄연히 있거든.
하경 일 다 치른 다음에 그 과가 알아서 해라, 그러면 된다고?
현우 우린 살리고, 다른 과에선 필요한 치료하고...
그게 전문화의 장점이다, 최하경.
하경 왜 살리는데? 환자를 고통과 공포에서 구출해내는 거, 그래서
새로운 희망과 행복의 바다로 내보내는 거, 그게 의사가 해야
될 보편적 덕목이란 거다, 장현우.
현우 ...죽고 나면 소용없잖아.
하경 그래, 아마 나도 너처럼 이것 저것 따질 필요없이, 무조건 살
리는 수술을 할 거다.
우린 늘 입장이 같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살아있다는 게 죽는 것만 못한 환자들에 대해
골치 아픈 고민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니니?
너한텐 그래서 하준서가 어리석어 보이겠지만, 나한텐 하준서
의 그런 모습이 감미로운 거다. (일어선다)
현우 ...죽고 나면 소용없어, 잘 살고, 못 살고 할 기회조차 없으니
까... 난 그걸 알아.
멍하니 형광판을 바라보는 현우.
$#22. 중환자실
성수 부가 잠들어 있는 침상 앞에서 상도가 카테타를 정리하고 있다.
그 옆에 서있는 성수 모.
문득 옆 침상으로 와 선다.
옆 침상엔 경선이 자는 듯 누워있고 인찬이 경선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성수 모 아직도 안 깼어요, 얘?
인찬 네, 예후는 좋습니다.
성수 모 빨리 깨워주세요.
인찬 너무 걱정 마세요.
성수 모 깨어나는 대로 알려주세요. 귀싸대기를 올려붙이게...
성수 모, 파리한 눈빛으로 나간다.
마주보는 상도와 인찬.
상도, 혀를 찬다.
상도 (성수 부를 보며) 아저씨, 이게 그냥 아저씨 인생인데 누구 탓
을 합니까?
그러면 안 됩니다. 오히려 사랑할 날이 짧아졌는데 누굴 미워
할 시간이 어딨습니까?
인찬 선생님, 이제 득도를 하신 거 같네요.
상도 죽을 때가 됐나부다, 내가...
그나저나, 저 여잔 신혼 첫날도 못 치르고 안 됐다, 야. (나가
며) 내가 죽을 때가 되긴 했나부다.
왜 이렇게 다, 안 됐냐?
인찬, 경선의 모습을 본다.
$#23. 병실
성수의 IV관으로 투약을 하는 간호사.
그 옆에서 상희에게 약품 노티파이를 하는 수연.
상희 멘탈은 꽤 좋다.
수연 네, 선생님.
잠도 안 자고 계속 저러고 계시네요.
상희 가족들 면회 오면 말조심시키고...
혹시 못 알아듣는다고 함부로 떠들어댈지도 모르니까..
수연 네, 선생님.
상희 (나가려다 말고) 오 진아는 어떠니?
수연 아직 더 기다려봐야죠. 뇌허혈 증상은 많이 완화가 됐습니다.
상희 ...쏟은 정성은 있는데, 뭐.. 잘 되겠지.
수연 ..
상희, 문 앞에 설 때
수연 선생님.
상희 왜?
수연 인제, 저한테 화, 안 내세요?
상희 ..안 내.
수연 ..고맙습니다, 선생님.
상희 고마울 거 없다. 지쳤거든, 너한테.. 그리고, 권선생한테..
나가려다 바삐 들어오는 인찬과 부딪치는 상희.
수연을 힐끔 보곤 나간다.
인찬 (당황스레) 아니, 선생님. 안 나가셔도 됩니다. 사실은...
상희 신경과 컨설트 문제라면 한수연하고 얘기하세요.
나가는 상희.
수연 ..선생님 뭐?
인찬 저기, 저 옆 침상, 빈 겁니까?
성수 옆에 비워진 침상을 바라보는 인찬.
$#24. 로비
나란히 걸어가는 인찬과 수연.
인찬 저희 과장님한테 한번 허락을 받아볼 테니까 수연씨도 신경과
선생님들과 의논해 보세요.
수연 (웃으며) 선생님, 참 기특해요.
인찬 (벙찐 듯) 기특하다구요?
수연 네, 기특해요. 난 이 다음에 아들 낳으면 선생님 같이 키울
거예요.
인찬 ..굳이 내가 아들로써만 좋은 건 뭡니까?
수연 자식한테 해줄 게 많잖아요.
근데... 선생님 같은 분이 남편이나 애인이라면, 더 이상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인찬 뭘 해주고 싶은데요?
수연 나쁜 걸 고쳐주고, 아픈 걸 어루만져주고...
선생님은 고칠 게 없잖아요.
인찬 수연씨한테 잘 보이려면, 망나니처럼 굴어야 되는 건가요?
수연 (웃으며) 아마 그럴걸요?
근데, 선생님은 그러다가 지쳐서, 스스로 제 자리로 돌아오실
분이거든요. 누구의 도움 없이도... 고아처럼 자라서 그런지, 난
사랑 받는 것보단 사랑을 주는 게 더 편해요.
선생님도 늘 주는 쪽이죠?
그래서 어려워요.
인찬 ...수연씨 마음이 어떻든. 아직은 수연씨 뒤에서 물러서기가 힘
듭니다. 내가 수연씨 등뒤에 있다는 걸... 너무 부담스러워 하
진 말아 주세요. 다른 건 바라지 않습니다. (과장실 쪽으로 몸
을 돌린다)
수연 선생님.
인찬 ...
수연 박상희, 선생님.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거 느끼세요?
인찬 ...
수연 그런 거 같아요, 사랑한다는 게...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달라져 가는 거..
수연, 신경과 진료실 안으로 들어간다.
$#25. 마취과 앞 보호자 대기소 (저녁)
영훈 처가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그리곤 무릎에 놓인 노트북 가방을 연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손때묻은 노트북을 어루만져보는 영훈 처.
$#26. 수술실
재봉의 어시스트를 받으며 집도 중인 준서.
재봉 금방 끝났네요, 선생님.
준서 전두엽은 별로 큰 종양이 아니야.
재봉 (물러선다)
준서 어디가?
재봉 치프 선생님 오시래야죠. 두개골 닫으실 거죠?
준서 그래. (물러서려 할 때) 아니다. 측두엽도 손대자.
재봉 전두엽만 하신다고...
준서 어떻게 보고도 놔두냐, 종양을...
메스.
$#27. 복도
이동침상을 밀고가는 인찬과 간호사.
그 뒤를 따르는 하경.
하경 짜식.
인찬 ...왜요, 선생님?
하경 이뻐서. 하는 짓마다 이쁘냐, 넌?
신혼방 꾸밀 생각을 하냐.
결혼도 안 해본 게? 응큼한 건가?
인찬 (경선을 보며) 어? 깨어나셨네.
경선 여기가...
하경 신방 가는 겁니다, 유경선씨.
$#28. 과장실
상도가 남준에게 사진을 보여준다.
상도 지난번 하준서 선생님 네비게이션 수술 환잔데요.
일반병동으로 오늘 옮깁니다.
남준 전이된 거 없지?
상도 네. 5주짼데 상태는 좋습니다.
남준 그대로만 가면 좋겠다.
허겁지겁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태동.
태동 (인상을 쓰며) 상도야
상도 (절뚝이며 뒤로 물러난다) 왜요?
남준 왜그래, 쟤 또?
야, 무시하고 너 일봐.
그리고 임마, 너 다리 치료 빨리 안 해?
일이 제대로 안 되잖아.
망치로 두들겨 맞추든지 아니면 어따 갖다버리고 의족을 달든
지...
상도 네. 그렇게라도 하겠습니다.
태동 (책상을 내리친다) 어떻게 그런 잔인한 말씀을 하십니까, 과장
님은?
상도 아, 얘 왜 이러냐, 정신 사납게...
태동 신경외과가 그렇게 신경이 무디면 그게 무슨 신경외과야?
상도 왜 그러세요?
태동 나, 근전도실 갔다왔어. (남준에게) 과장님 ALS라는 병이 그렇
게 무서운 병이라는데요.
남준 근데?
태동 보고해 임마. 왜 그러고 있어.
상도 (무신하게)... 그게요... 접니다.
(태동을 째려보며) 맨날 이르고 난리야. (남준 보며) 과장님,
그럼 바빠서 이만...
(태동을 꼬집는다) 고자질쟁이.
상도다운 발랄함을 유지한 채 과장실 문을 나선다.
남준 (얼빠진 모습으로) 뭔 소릴 하는 거냐, 지금?
태도 그게요, 과장님. 난 쟤가 호몬줄 알았는데요...
남준 갑자기 호몬 또 뭐야?
태동 그러니까 정형외과 치프랑... 그러니까 밥을 먹는데...
아, 왜 이렇게 정리가 안 되냐?
(갑자기 소리친다)
어쨌든 과장님이 그렇게 무심해도 됩니까?
에이, 상도녀석...
계속 눈만 껌벅이는 태동
$#29. 복도
터덜터덜 다리를 절며 걸어가는 상도의 쓸쓸한 뒷모습.
$#30. 성수의 병실
하경과 수연, 인찬이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선 병실 안.
침상이 붙여져 있고 경선이 성수의 손등을 어루만지고 있다.
흐르는 눈물.
성수의 눈에서도 눈물이 맺혀 흐른다.
하경 권인찬.
인찬 네, 선생님.
인찬이 나간다.
수연 원래 신혼여행 가면 샴페인이나 와인 같은 거 마실텐데.
맞죠, 선생님.
하경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너, 내가 결혼한 적 있다고 생각하지? 그지?
수연 어머... 잠깐 그랬던 거 같애요 선생님.
하경 나이 좀 많은 거 빼곤 너랑 다른 거 없다, 나.
이때, 입구의 하경과 수연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성수 모.
경선의 손을 성수의 손등에서 걷어낸다.
성수 모 어딜 만져, 나쁜 년.
술집 년 주제에 순진한 내 아들 꼬셔서...
속이 시원하냐?
우리 집 남자들 한꺼번에 잡아먹어서 속이 시원하냐? 여우같
은 년.
경선 어머니.
성수 모 너 일어나기만 해.
내가 그날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너 일어나는 대로 나한테 어떻게 시달릴지 기대해라, 이년아.
수연 (성수 모를 제지하며) 아드님이 괴로워하십니다.
성수 모 (성수를 바라본다) 니가 괴로워해야 될 건 니 아버지하고 너
다. 이년 때문에...
하경 이 환자 때문이 아니라 보호자 때문일 수도 있죠.
이 정도로 드센 분이라면 결혼식 자체가 그리 편친 않았을 거
같은데...
축복 받아야 될 결혼식에 저주의 마음이 하늘과 통했나 보네
요. 그래서 벌 받은 거 같은데요.
수연 선생님, 그런 말씀은...
하경 아니야.
이런 분한텐 별의 별 말을 다 해도 돼.
제가 보기엔 이 환자 탓이 아니라 보호자 탓인 거 같아요, 느
낌상. 보호자도 느낌상 그런 거죠, 이 환자분 때문이란 거?
경선 제 탓이에요. (흐느낀다) 그러지 마세요.
하경 (경선에게) 그런 식으로 평생을 살겠네요, 유경선씨.
성수 모 임신만 안 했어도 결혼 안 시켰어, 난.
수연 임신 중이세요? (하경에게) 괜찮은 건가요, 선생님?
하경 괜찮아. 면회시간 끝났는데 나가주세요.
성수 모 난 못 나가. 이년이나 내보내.
하경 한 선생, 루틴 끝났니?
난 업무 끝났어.
내가 지킬게, 한 선생은 일 봐.
수연 저도 끝났어요, 선생님.
하경 그래, 같이 지키자. 무슨 보호자가 저러니?
자식이 저렇게 괴로워하는 것도 모르고...
참 이상한 보호자다.
수연 제가 보기도 그러네요.
경선 (구슬피 운다) 제가 잘못했어요.
경선을 다독이는 수연.
하경 ...저, 두 사람. 눈길이라도 한번 맞춰보세요.
뭘 원하는지...
성수모, 경선을 바라보다 성수를 본다.
성수의 흐르는 눈물.
성수 모 (몸을 돌려 나가며 어둡게) 이게 끝이 아닌 줄 알아둬요. 누가
뭐래도 다 저년 때문이야.
병실문을 나서는 성수 모.
잠시 서있던 하경.
하경 (문을 나서며) 분위기 봐서 화촉 밝혀드려라.
$#31. 복도
엘리베이터 앞에서는 하경을 향해 달려오는 수연.
수연 선생님.
하경 (돌아선다) 왜?
수연 업무 진짜루 끝나셨어요?
하경 아니. 의국 가서 처리할 거 있어.
수연 그거 금방 끝나나요?
하경 응.
수연 그럼 끝나고 저랑 떡볶이 먹으러 가실래요?
하경 ...(웃는다) 그래.
미소짓는 둘.
$#32. 복도
인찬이 양초를 들고 가다가 상희와 부딪친다.
상희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인찬 나중에요. 저, 고 성수씨 병실에 볼일이 있어서...
상희 그러면 걸어가면서 들으세요.
고상도 선생님, 루게릭입니다.
인찬 네?
상희 이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그리곤 총총히 걸어가는 상희의 팔을 잡더니 양초를 준다.
인찬 이거 좀 수연씨한테 전해주시겠습니까?
상희 (물끄러미 바라본다) 네, 그러죠.
인찬, 복도를 뛰어간다.
$#33. 마취과 보호자 대기실 (밤)
수술가운을 입고 앉아있는 준서.
그 옆에서 컴퓨터만 만지작대고 있는 영훈 처.
준서 (바닥만 보며) 교수님, 살려만 놨습니다.
영훈 처 ...잘 하셨어요.
영훈 처, 컴퓨터만 만지작댄다.
$#34. 의국
상도, 침대 밑에 납작 엎드려서 긴 막대로 열심히 뭔가를 찾고 있다.
막대로 굴러나오는 먼지 낀 아령.
상도 아, 드러워서...
이런 걸 사다놓으면 뭘해?
짜식들, 운동 좀 하라고 그렇게 그랬는데...
이때 들어오는 수술가운을 입은 채로 들어오는 재봉.
재봉 어? 뭐해, 형?
상도 임마, 이것도 돈인데 그냥 아무데나 굴러다니게..
닦아와.
재봉 아, 또 왜 갑자기 그러는데?
상도 빨랑 안 움직여?
재봉 아씨, 쌓여. 형, 대체 언제 치프 그만두는 거야, 응?
상도 임마, 너 놔두고 내가 그냥 갈 거 같어?
나, 중간에 짤려서 일년 꿇을 거야.
그리고 다시 치프할 거야.
재봉 (걸레로 아령을 닦으며) 치프가 전문과가 되겠다, 그러다가?
상도 그럼, 임마. (주섬주섬 열쇠를 찾는다) 이거 너 가져.
재봉 이게 뭔데?
상도 고거 특실 열쇤데...
재봉 특실 열쇠?
상도 쉿. 누가 들어.
엔간해선 특실 빈 적이 많으니까..
요령껏 잘 활용해?
가끔 내가 취침실로 사용하는 곳이다.
잠자리가 편해야 가정도 편안하니까...
거기 진짜 편해.
재봉 오? 형. 형, 치프 끝날 때 되니까 너무 좋다.
상도 (웃으며) 좋으냐?
재봉 응.
상도 (재봉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지만 내 마음은 아프다. (뒷통
수를 치며) 야, 아령 줘봐.
재봉이 내미는 아령을 두손으로 받는 상도.
상도 어우, 무겁다. (한손으로 잡으려다가 떨어뜨린다)
재봉 왜 그래, 형. 이딴걸...
재봉이 집으려 하자 발로 아령을 툭 찬다.
상도 무거워, 임마.
재봉 뭐가 무거워?
다시 집으려 하자 다른 발로 툭 찬다.
재봉 에이씨, 나나 하게 좀 놔둬.
상도 됐어, 임마.
재봉 에이, 진짜. (상도의 발을 꺾는다)
상도 아아.
이때 헐레벌떡 들어오는 인찬.
인찬 (재봉에게 소리친다) 그만해, 임마.
상도 (놀라서) 임마, 왜 얘한테 화는 내고 그래.
장난 좀 치는 걸...
재봉 그르게...
인찬 형이 얘기해줘야 되는 거 아니에요. 우리한텐?
상도 뭐가?
재봉 뭐가?
인찬 박상희 선생이 알려주더군요.
상도 ...
재봉 뭐가?
인찬 나, 허재봉.
형한테 아무 것도 아닙니까?
상도 인찬아...
재봉 뭐가?
상도 아, 거참. 왜들 난리냐. 좀 조용히 살고 싶다.
인찬 난..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형이에요.
근데 형은...
우리, 같이 문제 풀고, 나누고 그러는 사람들 아닙니까?
아니에요, 형?
상도 (우울하게) 어떻게 해결할 건데?
알았다니 얘기 좀 들어보자.
어떻게 해결해 줄래?
인찬 ...
재봉 (소리친다) 뭐가? 답답해 죽겠네.
상도 해결 가능한 거라야 같이 나누지, 임마. (나가며) 그냥 조용히
놔두면 될 걸 왜들 그러냐?
한숨을 쉬고 나가는 상도
고개숙인 인찬.
재봉 (짜증을 낸다) 아, 진짜 왜그래?
상도형 사고쳤어, 응?
과장님이 아셔?
(문득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다) 이거, 걸렸어? 응?
아무 말도 없이 고개숙인 인찬.
$#35. 정형의국
상도가 들어선다.
아무도 없다.
뒤적뒤적 주머니를 뒤지면 빈 담배갑만 나온다.
이때, 담배 한 갑을 내미는 정형치프
정형치프 가져.
상도 담배가게 냈냐, 임마?
나란히 앉아 담배를 나누어 핀다.
아무 말도 없이 담배만 피는 둘.
$#36. 스탭의국
옷을 갈아입는 하경.
현우가 들어선다.
현우 준서도 안 왔는데 그냥 퇴근하냐?
하경 말 참 이상하게 한다.
질투나냐, 너?
현우 ...하경아.
하경 왜?
현우 잘해라, 이번엔.
하경 ...
현우 나두 이번엔 잘해볼려구 그런다.
하경 ..(고개를 돌리며) 그래, 한수연.
현우 이제부터 좋아하기로 했다, 걔.
그럴만한 애니까...
하경 ..이제부터가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시작했다, 너.
걔 좋아하는 거.
이때 들어오는 준서, 신경질적으로 가운을 벗는다.
하경 어, 준서야.
준서 성공적으로 수술했다, 나.
하경 응?
준서 장현우를 거부하기가 왜 이렇게 힘드냐?
현우와 하경, 준서를 바라본다.
준서 (외투를 입으며 바삐 나간다) 왜 니 뜻대로만 되는 거냐?
하경 (준서를 따라나가며) 준서야.
홀로 남은 현우, 잠시 그대로 앉았다가 일어선다.
가운을 벗으려 할 때 울리는 전화벨.
$#37. 로비
부랴부랴 달려가는 현우.
$#38. 응급실
응급실 문을 들어서자 멀찍이 침상에서 훌쩍이며 서있는 현준 처.
현준 처를 향해 뛰어가는 현우.
누워있는 현준 앞에 둘러 서있는 상도와 인찬.
현준 처 도련님.
현우 무슨 일입니까?
현준 처 쓰러지셨어요.
현우 뭐야, 뇌졸증이야?
상도 아닙니다, 혈관질환입니다.
현우 형, 왜 그래?
현준, 현우를 보곤 말을 하려는데 마치 뇌성마비 환자처럼 하악근육이 일그러지
고 말이 꼬인다.
현준 현우야, 괜찮아...
현우 (속삭이듯) 안돼, 형.
현준의 손을 잡는 현우 모습, 포즈.
제 13 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