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사
임진왜란 때 의병(義兵)과 의승군(義僧軍)이 활동했던 사찰 가산사(佳山寺)
가산사는 신라시대 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사찰로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곳이 병자호란 이후에야 마을이 형성될 정도로 오지였고, 그 규모 또한 크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기록을 볼 때 가산사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고, 사세도 미약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가산사는 임진왜란 당시 풍전등화와 같은 민족을 구하기 위해 많은 의승군과 의병이 훈련했던 호국정신이 깃들어 있는 사찰이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의병장들로는 곽재우, 고경명, 정문부, 조헌 등이 있고, 의승군으로는 서산, 사명, 영규, 처영, 신열, 법정스님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영규대사는 서산대사가 승군의 총책임을 맡기 전 자발적으로 승군을 조직한 최초의 승장(僧將)이시다.
이곳 가산사 일대는 이러한 영규대사와 조헌선생이 의승군과 의병을 훈련하고 군영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그 역사적 의의가 큰 곳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분은 청주성 탈환에 큰 공헌을 하였고, 금산의 연곤평 전투에서 순절했는데 국가에서는 그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가산사를 호국사찰로 지정하고 진영을 봉안하여 제향(祭香)을 올리게 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의 중심지가 될 것을 염려한 조선총독부는 그간 전해오던 두 의병장의 영정을 강제로 빼앗아 가버렸고, 불온사찰이라 지목하여 가산사를 탄압하기도 했다.
오늘날 옥천군에서는 국난극복에 앞장섰던 충의열사들을 위해 해마다 가산사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또한 순절한 의승군과 의병을 위한‘순국충혼위령탑’건립을 발원하며 호국의 성지를 새롭게 가꾸어 나가고 있다.
가산사 오르는 길
가산사 입구
가산사 전경
가산사 요사채
가산사 극락전
1992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94년 새로 중건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식 팔작지붕으로 겹처마를 이루고 있다. 원래의 극락전은 맞배지붕으로 조선중기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었으며 정면 기둥은 싸리나무를 사용했다고 한다.
정면에는 극락전(極樂殿)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며, 정면을 제외한 3면벽에는 십우도를 그려 장엄하였다.
안에는 탁자를 뒷면 벽에 붙여 설치하고 그 위에 금동아미타여래좌상과 금동지장보살좌상, 그리고 2000년에 조성한 석가모니후불탱, 지장시왕탱, 신중탱, 극락구품도 등을 봉안하였다.
1992년 화재가 나기 전 이 극락전에는 충북유형문화재 제77호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불상에서는 조성시기를 알려주는 복장기와 묘법연화경 등의 경전이 나왔는데, 복장기에 의하면 1624년(인조 2) 조성하여 논산의 쌍계사 북암에 봉안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함께 나온 묘법연화경은 1477년(성종 8) 간행된 것으로 조선초기에 간행된 목판본 경전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가산사 극락전 벽화 심우도
가산사 극락전앞 석조물
가산사 극락전 삼존불
가산사 극락전내 신중단
가산사 극락전내 지장보살상
가산사 극락전내 동종
가산사 산신각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기단부는 자연석으로 외벌대 기단을 마련하고 원형기둥 위에 공포와 지붕을 올린 것이다. 정면에는 띠살문을 두었고, 뻘목 부분은 봉황의 모습으로 장식하였다.
안에는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다. 1992년 옆에 있던 극락전이 불탔을 때 화를 모면한 적이 있는데, 이를 두고 채운산 산신이 영험함을 보인 것이라고 전한다.
이 산신각은 규모는 작지만 부재의 상태와 가구수법으로 보아 영정각과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현재 영정각과 함께 충북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되어 있다.
가산사 산신각내 산신탱화
가산사 영정각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기단부는 자연석으로 외벌대를 마련하였으며, 그 위에 초석을 놓았다. 정면에는 처마부를 밖으로 길게 빼서 특이하게 원형의 변주(邊柱)를 세워 평면을 내진과 외진으로 명확하게 구분하였다. 내진 기둥은 사각기둥을 세워 제향각으로서의 의미를 상징화하고 있다. 그리고 창방이나 도리의 뻘목을 길게 빼어 측면으로도 지붕부를 확장한 특이한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건물의 내부는 뒤편으로 좁은 단을 만들어 위패와 제물을 올릴 수 있도록 하였다. 원래 이 영정각에는 숙종대(1674~1720)에 영규대사와 조헌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진영을 봉안하였으나, 일제시대 때 조선총독부에서 강탈해 갔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는 영규대사와 조헌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가산사 영정각내
가산사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옥천IC를 나와 37번 국도를 따라 보은 쪽으로 가다보면 안내면 소재지 조금 못미처 현리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502번 도로를 따라 3km가면 575번 도로와 나뉘는 오천식품 앞 삼거리가 나온다. 그러면 회남 쪽으로 좌회전 하여 1.9km 가면 다시 회남과 청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3.8km정도 가다보면 답양리 버스정류장이 나오고, 다시 300m 가면 답양3교가 나온다. 답양3교를 지나 200m 가면 왼쪽에 가산사 표지판이 있는데, 여기서 좌회전하여 500m 정도 산길을 따라 가면 가산사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