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본향당 당신의 이름은 "보름웃도(바람웃도, 보르웃도)"이다. 서귀본향당은 1770년대 송일홍씨가 지산국 "보름웃도"를 당신으로 모셨다. 9형제의 한라산신 중 두번째로서 서귀마을을 관장하는 수호신으로써 서홍, 동홍마을과 함께 신당의 연원과 동질성을 갖는 신당이다. 설문대할망의 아들들인 한라산신(漢拏山神)들은 제주도(濟州道)전역에 흩어져 마을의 수호신이 되었다. 한라산신은 모두 9형제였는데 큰 아들 울뤠마루하로산도는 성산(城山)읍 수산(水山)리를 차지했으며 둘째 보름(바람)웃도는 서귀포(西歸浦)를 차지했다. 서귀포(西歸浦) 호근동의 「서천밭하로산[漢拏山]도는 세째였으며 중문(中文)동의 도람쥐궤당의 신은 네째, 색달(穡達)동의 하로산도는 다섯째, 예래(猊來)동의 하로산도는 여섯째, 안덕(安德)면 창천(倉川)리의 신은 일곱번째, 감산(柑山)리의 신은 여덟째, 성산(城山)읍 난산(蘭山)리의 산신은 막내라고 한다. 또 애월(涯月)읍 수산(水山)리와 대정(大靜)읍 일과(日果)리의 「제석천왕하로산도」가 같은 형제들이라고도 한다.
둘째 보름웃도는 중국(中國)까지 가서 부인을 맞아왔다고 한다. 보름웃도가 중국(中國)으로 유람을 갔을 때였다. 양반의 몸으로 아무데나 잘 수가 없어서 조정 대신의 집에서 묵고 있었다. 하루는 주인 대감과 바둑을 두다가 변이 마려워 변소에 가던 중 아리따운 아가씨가 보여 한 눈에 반하고 말았다. 하인들에게 물어보니 주인집 딸이라는 게 아닌가. 보름웃도는 아가씨의 모습이 눈에 삼삼하여 바둑판이 보이질 않았다. 그 자리에서 딸을 달라고 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것 같아서 주인이 자리를 비운 틈에 편지 한 장을 써서 바둑판밑에 놓아두고 집을 나왔다. 사흘만에 들어왔더니 대감이 말했다. 『장부가 왜 입으로 말을 못하고 편지로 합니까』 『나그네가 함부로 말하기 힘들어 그랬습니다』 『어찌 대갓집 딸을 쉽게 내줄수 있소. 바둑이나 두어보고 이기면 내 주겠소』
보름웃도가 바둑으로는 한 수가 위여서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됐다. 선선히 허락한 대감집에서는 성대하게 잔치를 열어 결혼식을 올렸다. 옛날 결혼식에서는 너울로 가려서 신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날밤 밤이 깊어 너울을 걷고 누워 자려고 보니 얼굴에 곰보가 져서 바가지상이었다. 『아이쿠, 처음 본 얼굴이 아니구나』 보름웃도는 질겁을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차마 한 자리에서 자지 못한 보름웃도는 책상에 앉아 글만 읽으며 밤을 새웠다. 날이 새어 하인이 밥상을 들여오니 넌지시 물어봤다. 『거기 있게. 이 집에 처녀가 둘이더냐』
『예 둘입니다』 『나와 결혼한 처녀는 몇 째냐』 『큰 딸입니다』 『내가 본 처녀는 둘째딸이었구나』 그 때야 진상을 눈치 챈 보름웃도는 세숫물을 떠와도 세수를 안하고 밥상을 가져와도 식사를 안하다가 드디어 처제와 눈이 맞아 고향인 제주도(濟州島)로 같이 도망쳐 버렸다. 큰 부인 고산국은 뒷날 보름웃도가 안보이자 천기운간의 별자리를 보고 둘이 도망친 것을 알았다. 화가 난 고산국은 남자의 복장을 하고 옥황에 축원을 하고 대축기를 올렸다. 대축기는 제주도(濟州島)를 향하여 펄럭였다. 축지법에 능한 고산국은 천근짜리 무쇠활에 백근짜리 화살을 들고 백리길을 오리로 잡아당기며 좇아왔다. 풍운조화에 능한 보름웃도는 안개를 불러 섬을 덮어버렸다. 고산국이 제주(濟州)에 도착하고 보니 안개가 자욱하여 어데가 어덴지 알 수가 없었다. 한참만에 정신이 들어보니 층암절벽끝에 서 있었다. 마침 닭의 모양을 한 말라죽은 구상나무가 있어서 땅에 꼽아놓았다. 새벽이 되어 이 닭이 목을 들어 울고 날개를 치는 통에 안개가 모두 걷혀 섬 한 구석에 숨어 있던 보름웃도와 둘째딸이 들키고 말았다. 고산국의 무용에 질린 두 사람은 한 번만 살려달라고 빌었다. 쫓아올때는 단칼에 베어죽일 요량이었지만 막상 얼굴을 보니 그것도 못할 노릇이었다. 『아무리 못난들 내 남편인데 어찌 죽이랴』 고산국은 차마 활을 쏘지 못하고 참고 말았다. 『우리 이대로 고향에 돌아가면 남 부끄러운 일이니 여기서 살되 동생은 아버지 성을 쓰지 말고 어머니성을 쓰면 한 번은 살려주마』 동생은 어머니 성을 따라 지씨가 되니 「지산국」이라고 불리게 됐다. 고산국이 활을 쏘니 "혹담"에 떨어져 서홍(西洪)동을 차지했다. 남편 보름웃도는 활을 쏘니 서귀포(西歸浦)앞바다 문섬으로 떨어져 하서귀(下西歸)를 차지하고 지산국은 나머지 동홍(東洪)동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세 지역이 땅가르고 물가르게 되었는데 이후 동·서홍(東·西洪)동 간에는 시집, 장가도 못가고 밭을 서로 팔고 사지도 못하며 말이나 소도 바꿀 수가 없게 됐다. 제일은 음력 1월 1일, 2월 13일, 7월 13일, 12월 13일 네번이다.
서귀본향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