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강조하는 텍스트 비평, 텍스트 비평 요소(기초) 하나는 어떤 글을 인용할 때 책 이름과 인용한 쪽 쪽수까지 밝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터 마스터스 목사님은 {영혼의 의사}에서 존 머레이 목사님 중생론을 두고 “변종”, “미혹”이라는 말로 정죄 이단시하면서 이 텍스트 비평을 따르지 않으십니다.
‘텍스트 비평 기초’조차도 지키지 않은 이런 허접한 책에, 그것도 좌충우돌 자중지란 논리 전개를 하는 책에 “미혹” 당하신 한국 교회 연중론 목사님들······. 제가 윤영상 목사님 양심을 두고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다음은 2012년 여름 {양무리 마을} 연중론 비평 토론 때 윤영상 목사님이 쓰신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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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크로소 2012.08.14. 07:38
제 페북 게시글에 올려진 덧글:
인사가 늦었습니다. 저는 조엘 비키 목사님이 계시는 퓨리탄 신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사람입니다. 제가 읽어본 마스터즈 목사님 글은 17세기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 특히 청교도 전통에서 두드러지게 말하는 중생과 회심의 견해와 일치합니다.
‘알미니안적이냐, 아니냐?’를 논할 때 관건은 중생은 물론이요, ‘회심의 과정에서 인간의 독립적인 의지가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곧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냐, 아니면 인간의 독자적인 의지의 결과냐?’하는 것이죠.
그런데 마스터즈 목사님 글을 보면 initial regeneration은 당연히 하나님의 사역이고, 그 이후에 이것이 발현되는 소위 new birth와 더 나아가서 그가 죄를 발견하고 아파하여 그리스도께로 돌아서게 되는 모든 회심의 과정이 성령님께서 설교자를 통하여 이루시는 과정으로 묘사돼 있습니다. 결국 설교자 설교는 도구요, 주체는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설교자 설교를 듣고 모든 conversion process가 진행될 수 있는 것은 바로 initial conversion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진행하신 것이 conversion process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알미니안적 요소가 없으며, 이 견해는 17세기 청교도 신학에서 공통으로 지적되는 것입니다. 마스터즈 목사님이 {영혼의 의사}에서 언급한 오웬이나 굿윈이 외에 더취 신학자였던 Mastricht는 물론이요 그의 영향을 깊게 받은 조나단 에드워즈도 정확하게 이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생각하기에 조엘 비키 목사님이 마스터즈의 런던신학교에서 강의하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대충 훑어 봤는데 elongated coversion에서 알미니안적이라고 할만한 요소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hyper-Calvinist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겠지만 전통적인 개혁주의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견해라 생각되는 그 논의가 어디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알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필요하면 조엘 비키 목사님 견해를 여쭤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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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조엘 비키 {Prepared by Grace, for Grace}’가 출판 된 뒤인 2014년 1월에 {양무리 마을}에 쓰신 윤영상 목사님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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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크로소 2014.01.14. 14:
그리고 조엘 비키 글을 오독했음이 아님은 지금 조엘 비키 수하에서 배운 분에게 다 확인을 받았으니 너무 염려 마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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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상 목사님은 이 댓글을 다음과 같이 고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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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크로소 2014.01.14. 14:51
오독 문제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다 검증이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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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엘 비키 수하에서 배운 분”은 누구이실까요? 아니, 2012년 여름 {양무리 마을} 연중론 비평 토론 때 {페북} 윤영상 목사님 담벼락 게시글에 댓글을 남긴 분은 누구이실까요? 그레이스 님이 아니셨다면 ㅡ2012년 여름 {양무리 마을} 연중론 비평 토론 때는 {페북}에서 활동하지 않았던ㅡ 저는 이분이 누구이신지, 지금까지 모를 뻔했습니다. 링크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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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그레이스 님이 올리신 글,
<조엘 비키는 연중론자가 아닙니다.>를 읽기 쉽게 고쳐 올립니다.
http://cafe.daum.net/reformedvillage/D4ux/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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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조엘 비키 교수님에게 물어봤는데, 그분은 “청교도들은 중생과 회심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청교도들)은 회심과 중생을 시간적으로 동시 사건으로 보고, 그 전에 오는 과정은 하나님께서 택자를 부르실 때 주시는 preparatory grace(준비 은혜)로 보는 것이 더욱 청교도들 견해라는 생각입니다. ≫는 2012년 8월 김효남 목사님 글······. 그러함에도 2014년 1월에 “오독 문제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다 검증이 됐으니······.” 하셨던 윤영상 목사님······. 윤영상 목사님 이 화인 맞은 양심에 따른 발버둥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요?
다음은 {페북} 윤영상 목사님 담벼락 <(개혁주의 마을은) 논지에서 벗어나지 맙시다. 초심을 잃으면 안 되지요.>라는 글에 있는 사진입니다. 어제 올리신 사진입니다.
≪자신들이 반대를 위해 만들어낸 해괴한 이론, “중생과 회심 사이 예비 과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의 기원과 출처를 입증해야 함≫이라는 윤영상 목사님, 화인 맞은 양심에 따른 “해괴”망측 억지 궤변, 충성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요? 아니, 피터 마스터스 목사님과 손성은 목사님을 절대 진리로 삼은 “초심을 잃”지 않는 지조, 참으로 순결한 지조에 따른 충성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요?
지금은 다행히 윤영상 목사님이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십니다만, {양무리 마을} 시절 광주항쟁을 두고 “북한 특수부대가 투입된 폭동”이라고 주장하시는 윤영상 목사님과 토론을 나누면서 윤영상 목사님 억지 궤변에 제가 두 손 두 발을 든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또 제가 윤영상 목사님 참으로 순결한 지조에 그만 저항하고 두 손 두 발을 들어 항복해야 하나 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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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표준들은 성령께서 율법을 통해 죄인들로 하여금 죄인됨을 확신하게 해주는 예비(준비) 작업을 하셔서 그 영혼들 토양이 믿음과 회개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신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갈아엎은 토양조차도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초자연의 씨앗을 심겨주시기 전前까지는 믿음과 회개를 생산해 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 2014년 1월 2일 {양무리 마을}에 손성은 목사님이 번역하신
‘조엘 비키 {Prepared by Grace, for Grace. (특별) 은혜를 위해 (일반) 은혜로 준비되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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