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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보
박 태 원
1
일찍 해먹는 집 굴뚝에서는 차차 저녁 연기가 오르기 시작할 무렵이다. 춘보는 소금짐을 지고 교동 병문*을 들어서 구름재(雲峴〕를 바라고 올라가며 속으로
‘오늘은 사게 되려나?……’
하였다.
밤낮 시래기죽만 먹고 지내니 가뜩이나 애를 밴 여편네가 헛헛증*도 날 것이었다.
바로 보름 전 일이다.
“참 모시조개가 나왔드군. 그것 넣구 토장을 맛나게 풀어서 냉이국 한번 끓여 먹었으면…….”
아낙이 반은 혼잣말같이 중얼거리는 것을
“순이더러 내일 산에 가 좀 해오라지그래.”
한마디 하니까 아낙은 어이없는 듯이 “모시조개두?”
한다.
집이 바로 춘생문(春生門) 곁이라 일곱 살 먹은 계집애년도 바구미 들고 나서기만 한다면 냉이야 한때 끓여 먹을 만큼은 하여 오는 게지만 모시조개는 ―― 모시조개야 물론 돈이 나가야만 한다.
본래 말수가 적은 춘보다. 당장은 그 말에 다시 대꾸를 안하였어도 아이 밴 지 여덟 달이 되는 배는 바로 맹꽁이를 연상하게 하고 주근깨가 무섭게 솟은 조막만한 얼굴에 오늘도 진종일 동넷집 빨래를 하여주었다는 아낙의 늘 먹지를 못하여 가뜩이나 퀭한 두 눈을 보고는 ‘먹구두 싶겠지. 낼이래두 돈이 생기거든…….’
하고 춘보는 속으로 은근히 그러한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부지런히 버느라고 버는 명색이 때때 쥐꼬리라 만져보는 돈으로는 언제나 쌀, 나무가 먼저 급하였고 그것도 하루 두 끼니를 또박또박 대지 못하는 형세에 무슨 수로 모시조개를 얻어볼 것이랴? 그래 아낙도 꼭 그때 한 번이오 다시는 그런 말 입 밖에 내지를 않았고 춘보도
‘오늘은…….’
‘내일은……’
하고 벼르기만 하며 그 결코 크다고 못할 아낙의 원을 풀어주지 못하였다……
오늘은 아침에도 아낙은 어제 일하여준 집에서 얻어온 찬밥 한 덩이를 두 그릇에다 별러서* 적은 것은 순이형제에게 좀 많은 것은 남편 앞으로 밀어놓으며 자기는 이제 곧 화개동(花開洞) 최선생 댁으로 떡방아를 찌어주러 갈 테니까 거기 가면 한술 얻어먹게 된다고 그렇게 말하였다.
남의 집 가서 일해주면 제 한 입 얻어먹기는 하는 게지만 누가 일도 하기 전에 밥부터 먹으라고 하랴――생각을 하면 차마 숟가락이 놀려지지를 않았으나 그래도 밖에 나가 막벌이를 하려면 염치 불고하고 한술 뜨기는 떠야만 하였다.
밥 한술――문자 그대로 한 술이었다. 숟가락을 세 번 놀리고 나니 사발전에 말라 붙은 밥풀이 댓 알 남는다. 춘보는 허리를 졸라맨 다음에 지게를 지고 나와 삼사월 긴긴 해를 다 보내고 이렇듯 저녁때나 되어서야 겨우 얻어 걸린 것이 이 소금섬이다. 그것도 다른 지게꾼들은 누가 맹현(孟峴) 마루터기까지 한 돈 오 푼에 간단 말이오? 두 돈을 준대도 싫소…… 하고 머리들을 내어젓는 것을 그나마 놓쳤다가는 빈손으로 들어갈밖에 없을 것이 안타까워 내가 가리다 하고 나서서 그래 얻은 벌이였다.
아침에 찬밥 한술 떠먹고 나온 채 온종일을 굶은 몸에 소금짐은 과시 무거웠다. 질빵*은 마른 어깻죽지를 으스러져라 억누르고 기운 없는 두 다리는 그대로 허청허청 공중에 논다. 맹현 마루터기는 물론 까마득하였다.
춘보는 왼손 편에 으리으리한 솟을대문을 곁눈으로 보고 지나며 저도 모르게 후유一 하고 한숨을 쉬었다. 등에 진 짐이 벅차기 때문만이 아니다. 서술이 푸르던 안동 김씨의 세도가 대원군이 나선 뒤로 아주 전만 못하여졌다니까 과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를 일이나 한참 당년에 혜당(惠堂) 댁 나귀는 약식(藥食)을 잘 자시고 호판(戶判) 댁 큰 말은 약과(藥果)를 아니 잡숫는다고―그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이었다.
‘제길헐……·한 돈 오 푼…….’
쌀 팔면 그만인 돈이었다.
‘약과두 말구……·약식두 말구…….’
모시조개―― 그렇다 모시조개였다.
‘술값을 달라지. 달래보아 요행 주거든――아니 안 주드래두 어떻게든 받어내서…… 정말 급하니까 가겠다구 나섰지 누가 한 돈 오 푼에……·그래 술값 얼러 아주 두 돈으루 채달래서…….’
아주 두 돈으로 채워달래서 그래 모시조개를 좀 사고――하는 그 알량한 꿍꿍이속도 그러나 미처 끝을 아물려보지 못한 채 나중에 생각하여보니 그것은 아마도
“이 자식아! 귀가 먹었냐?”
하는 소리이었던 모양이나 그때는 그저 밑도 끝도 없이
“――― 먹었냐?”
하는 소리만 마른하늘에 된벼락* 치듯 쩡! 하고 귀청을 울리며 인정사정없는 억센 손길이 어깻죽지를 와락! 떠다박질러 절로 나오는 “에쿠!” 소리와 함께 춘보는 소금짐을 진 채 지게 작대기는 저만치 내동댕이를 치고 그대로 모로 길가에가 나가떨어졌다. 나가떨어진다는 것이 하필 또 모진 돌부리가 군데군데 박혀 있는 곳이라 거기다 관자놀이를 몹시 부딪고 춘보가 그만 정신이 아찔하여 잠시는 일어날 줄도 모르고 있을 때
“에―― 라 이놈들! 물리거라 비켜라! 에―― 선 눔은 모두 앉거라!”
넓은 길을 좁아라고 벽제 소리를 연성*치며 어느 대관의 행차는 바로 호기 있게 구름재를 바라고 올라가고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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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춘보는 쌀만 팔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왔다. 모시조개는 오늘도 못 사고 만 것이다.
그래도 쌀이나마 팔 수 있은 것이 대견하다고나 할까? 대견하기는 무얼?…… 아까 소금섬 지고 떠다박질려 돌부리에 부딪친 곳들이 ―― 머리가 어깨가 옆구리가 저마다 쑤시고 결렸다. 바른편 정강이에는 시퍼렇게 멍조차 들었다. 그는 맹현서부터 집까지 사뭇 절며 온 것이다. 실없이 되게 곯은 모양이다. 그러나 문을 들어서며부터는 아픈 것을 참고 통히 그런 내색을 안하였다.
가난한 아낙은 오늘도 보채는 아이들을 달래며 문밖의 발소리만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다.
“벌이가 있었구료?”
남편이 쌀을 팔아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보자 가만한 한숨을 토하며 그는 즉시 마루에서 내려왔다.
“찬밥은 한 덩이 얻어 온 게 있지만두…… 기대려서 아주 더운밥을 자슈. 시장허우?”
시장하고 무어고 허기는 이미 지낸 지 오래다. 텅 빈 배에서는 이제는 쭈룩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춘보는 더운밥이고 찬밥이고 지금 도무지 식욕을 느끼지 않았다.
잠깐 서서 남편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그가 종시 아무 말이 없는 것을 보자 아낙은
“금방 될걸 더운밥을 자슈.”
한마디 하고 분주히 부엌으로 들어갔다.
“엄마! 밥!”
하고 다섯 살 먹은 또순이가 쪼르르 부엌문 앞으로 갔다. 일곱 살 먹은 순이는 ‘엄마’도 ‘밥’도 부르지는 않았으나 저도 동생 곁으로 가서 부엌을 들여다본다.
“오― 주지. 주지. 올러가 있거라. 찬밥 한술씩 주께.”
아낙의 말소리가 들리고
“나 찬밥 싫여. 더운밥 줘야지.”
또순이가 투정을 하는 것을
“더운밥은 아빠 먹을 꺼야. 아무거나 배고픈데 먼저 먹으면 좋지않니?”
순이가 그래도 좀 크다고 타이르는 사이에 엄마는 숟가락 두 개 꽂아 찬밥 한 사발과 아침에 먹다 남긴 멀건 된장찌개 한 뚝배기를 들고 나와 마루 끝에다 놓아주었다.
순이야 물론 두 말이 있을 턱 없지만 더운밥이라야 한다던 또순이도
“밥! 밥!”
하고 쫓아들어 마루에 올라설 사이도 없이 숟가락 하나를 덥석 쥐고 욕심껏 퍼서 한 입에 넣는다.
밤낮 배가 고파하는 아이들이다. 제대로 얻어먹지를 못하여 삐쩍 마른 것이 하릴없는 망둥이새끼였다.
춘보는 얼빠진 사람처럼 마당에가 그대로 서서 이 꼴을 멀거니 보고 있다가 생각난 듯이 마루 끝으로 가서 아이들 곁에가 걸터앉으며
‘원 제길힐…….’
하고 한숨을 쉬었다.
밤낮 먹지를 못하여 걸걸 하는 자식새끼들을 보고 한심하기 때문이 아니다. 떠다박질려 다친 데가 결리고 쑤시기 때문도 아니다. 모시조개를 못 사기 때문은 더구나 아니다. 방금 골목을 들어서며 만난 돌쇠 할아버지에게 들은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원 집이 헐릴지도 모른다니 제길헐……’
춘보는 어둠이 차차 짙어오는 마루 끝에서 눈을 끔벅거리며 풀이 죽었다.
바로 지난달에 의정부(議政府) 우물에서 무슨 비결(秘訣)이라나 하는 것을 새겼다는 돌이 나왔고 그 비결이라는 것을 좇아 쉬이* 경복궁 대궐에 큰 역사가 벌어지는데 그때에는 장안 백성들이 모두 부역을 나가야만 하리라고――그것은 춘보도 엊그저께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돌쇠 할아버지 이야기는 그 부역도 부역이려니와 한 번 역사만 시작되는 날에는 대궐 담 밑에서 사는 집들은 하나 남지 않고 모조리 헐리고 말리라는 것이었다. 놀랍고 기막힌 소식 이었다.
하기는 돌쇠 할아버지도 확실히는 모르는 모양이어서
“큰일일세 큰일이야! 대체 우리처럼 없는 눔이 예서 쫓겨나면 어딜 간단 말인가?”
괴탄*을 하고 나서
“자넨 혹시 그런 소리 못 들었나?”
하고 되묻는 것을
“못 들었는데요. 거 정말일까요?”
하니까 노인은 잠깐 춘보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뒤늦게야
“아 그럼 그럴 께 아니겠나? 허 그 참…….”
하고 한숨을 내쉬었던 것이다.
듣고 보니 춘보 생각에도 그것은 과연 그럴 성싶은 일이었다. 경복궁이 불에 탄 것은 임진란 때라지만 전각들이 모두 재가 되어버린 뒤로 이내 그냥 버려두었으니 그렇지 상감이 이제 창덕궁서 이리로 옮겨 앉으려고 새로 대궐을 짓는다는데 그 대궐 담 밑에 이 추저분한 오막살이 초가들을 그대로 두어둘 리가 없는 일이다.
‘돌쇠 할아버지 말마따나 없는 눔이 집마저 헐리고 쫓겨나면 그래 갈 데가 어딘구?…….’
춘보는 새삼스러이 집 안을 한 번 둘러보고 후유―― 한숨을 쉬었다.
3
춘보는 이튿날 벌이를 못 나갔다. 하룻밤 자고 나면 괜찮으려니 한 것이 뜻밖에 더하여 잠깐 자리에 일어나 앉는데도 몸을 좀 잘못 쓰면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무리 내색을 안하재도 이제는 하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밤에두 듣자니까 앓는 소릴 몹씨 헙디다. 어딜 대체 으떻게 다쳤기에……”
하고 아낙이 자꾸 보자는 통에 아픈 것을 이를 악물고 간신히 참고서 저고리 소매를 빼고 보니 뼈나 안 상했는지 어깨가 팅팅하게 부어오른 것이 손끝만 잠깐 닿아도 그만 펄쩍 뛰겠다.
“어이 가엾어라!…… 그래 예만 다쳤수?”
“아니, 저 정갱이두……”
이번에는 아낙의 손을 빌리지 않고 제 손으로 조심조심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고 본다. 멍 든 자리가 어제 볼 때보다도 좀더 시퍼렇다.
아낙은 제가 아픈 듯 눈살을 찌푸리다가
“원 이렇게 다치구두 그래 말이 없수?”
어이없는 듯이 남편의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다가
“짐을 진 채 그대루 떠다박질렸다며 허리 안 삔 게 다행이유.”
한다. 허리는 왜 안 삐었겠느냐? 그러나 춘보는 허리마저 결린다는 소리는 안하였다.
“천하에 몹쓸 놈두 다 있지. 그래 대신 행차 말구 바루 상감님이 거동을 허시기루 짐 지구 가는 사람 그렇게 인정사정없이 떠다박질르는 데가 어딨누?”
“…….”
“그래 이렇게 다친 걸 보구두 아무 말 없습디까?”
“누가 말이 야?”
“누군?…… 짐 임자 말이지.”
“…….”
“거 안됐다구 원 술값이래두 후허게 줘야 헐 일 아냐? 경계*가……”
“내 후헌 사람 다 보겠네.”
“후허지 않어두 그렇지.”
“…….”
“제가 안 주건 이편에서 한번 달래나볼 꺼 아니아?”
달래는 보았었다. 그랬더니 저편 말이…… 그러나 이제 아낙보고 긴 사설 늘어놓기가 춘보는 싫었다. 그래 그는 그냥 한마디 하였다.
“내 불찰루 다친 걸 그 사람에게다 떼를 쓰면 뭘 해?”
“그래두 저의 짐 날러주다 그런 거 아냐? 받구 못 받군 둘째구 원 말이나 한번 해볼 께지.”
“…….”
“임잔 너무 순해! 사람이 너무 곧아요!”
춘보는 눈을 감고 대답 대신 고개를 두어 번 끄덕끄덕하였다. 그러나 춘보는 춘보 자신이 더 잘 알았다.
‘날보구 곧으니 순허니 그러지만 내가 실상은 주변머리가 없구 사람이 좀 변변치가 못하거니…….’
하고 춘보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선 벌이가 늘 시원치 못한 것도 그 까닭이다. 사실 그는 남처럼 똑똑하고 약삭빠르지가 못하여 좋은 벌이는 많이 동간들에게 빼앗겼다. 짐이 너무 벅차거나 삯이 너무 적거나 하여 남들이 머리를 흔드는 그런 벌이나 겨우 차례에 왔다. 술값도 그렇다. 남들은 일거리만 얻어 걸리면 술값 몇 푼이야 으레 따논 당상으로 아는데 춘보는 좀처럼 말이 안 나왔고 눈치 보아가며 간신히 굼된 입을 떼어놓았다가도 저편에서 얼른 용하여주지 않으면 두 번도 졸라보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서버리는 것 이다. :
4
춘보는 그날부터 꼬박 사흘을 벌이를 못 나갔다.
‘나가보아야……나가보아야…….’
애는 타면서도 도무지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아낙은 채독* 같은 배를 안고 어제도 오늘도 동넷집으로 일을 하여 주러 나갔다. 아낙이 일은 남의 곱절한다, 그도 순하디순한 게 무련이나 사람이 곧았다. 도무지 일에 꾀라고는 필 줄을 모른다. 그래 동네서 사람을 얻으려면 으레
“순이에미 순이에미.”
하고 찾는 게지만 그들 형용마따나 일은 ‘황소처럼’ 하며 먹는 것은 늘 시원치가 않아 그의 자는 얼굴을 어째 가다 보면 마음에 애처롭고 가엾기보다 차라리 무섭고 끔찍스러웠다. 그것은 도무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불쌍한 여편네…….’
어린것들은 또 어린것대로 밖에 나가 노는 동안만 말이 없지 집에 한 발 들여만 놓으면 그저 찾느니 밥이다. 어미가 저는 배를 주리어 그래도 자식들 배고파하는 것이 애처로워 빌려서 먹이는 밥술을 철없는 것들이 무엇을 알랴? 나쁘다고 더 달라고 투정을 할 때 춘보는 왈칵! 밉고 괘씸한 생각조차 들어
“저것들이 그래 웨 생겨나서 이 성환구?…….”
하고 어떤 때는――바로 오늘 아침에도 소리를 버럭! 질러보았던 것이나 춘보는 그 즉시 뉘우친다. 생각하여보면 어린것들에게 죄는 없었다.
‘가엾은 자식들…….’
저 가엾은 자식들에게 무슨 죄가 있으랴?……그러나 죄는 자기들 부모 된 사람에게도 없었다. 만약 있다 하면 그것은 필시 전생에서일 것이다. 아니 자기들은 전생에서 죄를 많이 진 것에 틀림없을 게다. 분명히 그럴 게다. 그래 그 벌로서 이생에 쌍놈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고 무어랴?
‘모든 게 팔자소관…….’
어려운 사람들 불행한 사람들은 단념하는 것에 익숙하다. 죽도록 일을 하고 또 하여도 밤낮 굶주리고 헐벗으며 그래도 춘보는 모든 것을 팔자소관으로 돌렸다. 양반들에게 돈 가졌다는 무리들에게 갖은 압제 갖은 수모를 다 받으면서도 그도 모두 내 팔자소관이려니 한다. 춘보의 생각은 옳았다. 모두 제가 타고난 팔자다. 누가 쌍놈으로 태어나랬더냐? 원망을 하려거든 쌍놈의 집안 어렵고 천한 집안으로 점지를 하여준 삼신할머니에게나 대고 하여라.
집이 또 헐린다고 한다. 그것은 이제는 단순히 떠도는 소문이 아니다. 아무렇게도 변통수가 없는 한 개의 엄연한 사실이었다. 아낙이 어제 일을 하여주고 온 집 일가가 되는 사람이 호조서리(戶曹書吏)를 다니는데 그 사람 입에서 아낙은 직접 그 말을 들었다고 한다.
헐리겠지. 헐려도 하는 수 없다. 누가 하필 고르다 골라 대궐 담 밑에서 살랬더냐? 그래도 집이 헐리는 대신에 돈은 꼭 얼마라고는 안 하지만 주기는 준다나보다. 고마운 일이다. 나라에서 하는 일이 곤장을 쳐서 몰아낸대도 호소할 길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예서 쫓겨나면 대체 어디루 가누?·……’
돈은 준다지만 주면 얼마를 주랴?
‘망힐 눔의……’
그러나 춘보는 감히
‘―― 세상!”
하여 보지 못한다.
‘―― 신세 !”
그렇다. ‘망헐 눔의 신세’ 였다.
“엄마 왔수?”
언제 들어왔는지 마루 앞에서 또순이 목소리가 들린다. 대답이 없으니까 방문을 열어보고
“아빠 배고파!”
한다. 배는 염치도 없이 춘보 자신도 고팠다. 대답할 기력도 없어 그는 시꺼멓게 쩔은 보꾹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문득 부엌에서 그릇들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난다.
“엄만가?”
하고 또순이는 부리나케 방에서 뛰어나갔다.
‘왔나? 오늘은 퍽 일르이…….’
춘보도 저 모르게 침을 한 덩이 삼킬 때 그러나 소리를 낸 것은 아낙이 아니라 순이였던 모양으로
“뭐 있니? 뭐 있어?”
하고 또순이가 묻는 말에
“있긴 뭐 있어?”
순이의 짜증내는 소리가 나고
“그럼 너 먹는 거 뭐야?”
다시 묻는 말에는 대답이 안 들리더니
“저만 먹구! 저만 먹구!”
마침내 어엉 어엉 하고 또순이의 울음보가 터졌다.
그냥 버려둘 수가 없어 또 궁금하기도 하여
“뭐냐? 웨 그러니?”
묻고 나서 춘보는 마음이 어두웠다.
김치쪽이었다. 어제 아낙이 동네서 한 보시기 얻어온 군내가 나는 묵은 김치쪽이었다. 아침에 다 먹은 줄 알았더니 그게 어떻게 한두 쪽 남았던 모양이다.
‘내일은 나가보아야……’
춘보는 반듯이 누운 채 가만히 바른팔을 들었다 놓았다 하여보았다. 아직도 어깻죽지가 뻐근하니 아프다. 조심조심 일어나 앉아본다. 허리도 아직 결린다. 정강이 멍든 곳도 제법 가셨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손이 닿으면 역시 좀 시큰거렸다.
또순이가 그저 운다. 춘보는 마루로 나갔다.
“착허지. 참 착허지. 엄마 밥 가지고 오나 언니허구 나가봐라.”
또순이는 그대로 울기는 하면서도 그래도 그 말에 순이를 따라 나간다.
‘제길헐 먹지 않군 못 사나?…….’!
죄 많은 인간이었다. 먹을 것이 없으면서도 자꾸 먹어지라 먹어지라 하는 것이 또한 죄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날 팔아 온 쌀은 어제 저녁까지 겨우겨우 별러 먹고 오늘 아침은 그래도 아주 굶는달 수가 없어 옆집에서 쌀 두 홉을 꾸어다가 또 시래기죽을 끓여 먹었다.
‘천하 없어두 낼은 나가봐야만……’
춘보가 다시 바른팔을 위아래로 놀려보며 눈을 꿈벅꿈벅하고 있을 때 누가 밖에서
“춘보…… 춘보 있나?”
하고 찾는다.
목소리는 귀에 익으면서도 누구던가 얼른 생각이 안 나서
“누구요――? 들어오――’
하니까
“오― 있구먼.”
하고 헛기침과 함께 마당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텁석부리 신서방’이라고 춘보가 전에 한때 모군*으로 따라다닌 일이 있는 오궁골 사는 미장이였다. 오늘도 어디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인지 왼편 어깨에 연장 담은 망태기를 메고 있다.
“아― 니 웬일이슈?”
“좀 보러 왔지.”
“마루 끝에래두 좀 앉으시까?”
“아주머닌 어디 가셨나보군.”
“동네 잠깐 나갔소.”
“그런데 웬일이야? 어디 아픈가? 여러날 째 병문에두 안 나온다구…….”
“예一 저― 팔을 좀 다쳐서……”
“그 으떡허다?…….”
“예― 저……”
“그래 지금은 좀 으떤가?”
“그저 그만 허우.”
“낼이래두 일 나갈 수 있겠나?”
“웨?”
“내 일 좀 해달라구…….”
“무슨 일 이유?”
“낼 잿골 정참봉댁에 방을 놓으러 가는데…….”
“웨 데리구 댕기는 사람은?…….”
“돌석이 말인가? 그눔 아주 팔자 고쳤지.”
“팔자 고치다니?”
“무당 서방이 돼서 지금 용인 내려가 놀구 지낸다네.”
“원 그것두…….”
“일은 똑 손이 서루 맞어야만 허는 겐데 뜨내기루 이 사람 저 사람 부려보려니 짜장 화증 날 때두 많데.”
“…….”
“여보게 춘보.”
“예?”
“그러지 말구 아주 나허구 다시 일 안 댕길려나?”
“일은 밤낮 있수?”
“아 일이야 있다마다. 언제구 손이 무자라 야단이지.”
춘보도 잘 알거니와 신서방은 발이 꽤 넓은 미장이다. 전에도 보면 별루 노는 날이 없었다. 그를 쫓아다니는 것이 일은 좀 세차지만 벌이가 나을 것이었다. 춘보는 두말 않고 응낙하였다.
“그럼 내일 새벽에 내가 부르러 음세.”
하고 신서방은 돌아갔다.
그를 보내논 뒤에 춘보의 마음은 좀 명랑하여졌다. 아까 응낙을 할 때는 신서방 쫓아다니는 것이 그저 지게벌 이보다는 나으려니 하였던 것이다. 다시 잘 생각하여보니 일은 좀 세차거나 어쩌거나 지게 모양 뜨내기일과 달라 그날그날 벌이가 확실한 것이 얼마란 말이냐?
‘신서방 따라다녀 굶지는 않겠지……굶지는 않겠지…….’
굶지 않으리라는 것이 춘보 마음에 대견하기 짝이 없어 그래 다른 때 같으면 좋은 일이고 언짢은 일이고 별로 말이 없는 그로서도 그날 밤에는 아이들을 재워놓고 아낙이 자리에 눕기를 기다리어
“참 오늘 저녁 때 신서방이 다녀갔지.”
하고 내일부터 다시 그와 함께 일을 다니기로 되었다는 말을 하였다.
“그 잘됐구료.”
물론 아내도 함께 기뻐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래 다친 덴 이제 아무렇지두 않수?”
하고 염려스러이 그의 얼굴을 바라본다.
“응 괜찮어.”
“그래두 몸을 좀 사려요. 혹시 도지기나 허면 큰일이니…….”
“뭐 이젠……”
잠깐 동안 두 사람 사이에 말이 끊겼다가
“참 여보.”
하고 아낙은 생각난 듯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맹서방이 포두청에 잽혀갔다는구료?”
“맹서방?”
“왜 우리 느릿굴 살 제 앞뒷집 이 격장해* 지내든 사람 있지 않수?”
“생각이 안 나는데……”
“아아니 왜 사람이 어찌 얌전허구 순헌지 동네서들 샌님 맹꽁이라구 허든…… 왜 저—— 사동 김판서 댁에 드나들든…….”
“오—라 맹서방 맹서방·……그 기집이 어느 눔하구 배가 맞어 야반도주를 했다는…….”
“그래 그 맹서방 말이야. 기집 잃구 한때는 아주 실성을 허다시피 돼서 그 과부어머니가 조옴 애를 태구 지냈수?”
“참 그랬지…… 그런데 그 사람이 대체 이번에 무슨 일을 저질렀기에……”
아무 다른 일이 아니었다. 단지 술 먹고 입 한 번 잘못 놀린 탓이었다.
지난 삼월달 경복궁 앞 의정부를 수리하는 중에 우물 속에서 나왔다는
“계말갑원(癸末甲元). 신왕수등(新王雖登). 국사우절(國嗣又絶). 가불구재 (可不懼哉). 경복궁전(景福宮殿). 갱위창건(更爲創建). 보좌이정(寶座移定). 성자신손(聖子神孫). 계계승승(繼繼承承). 국조경연(國祚更延). 인민부성(人民富盛).”
이라는 소위 ‘동방노인비결(東方老人秘訣)’이라는 것을 비웃은 죄였다.
그것이 대원군의 비계(秘計)로 하여 생겨난다는 것쯤 이 나라 백성치고 아마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그것을 맹서방은
“눈 감구 아옹두 분수가 있지 그 속에 넣어둔 게 어딜 가? 우물 치면 도루 나올 거야 정헌 이치 아닌가?”
그 신기하기도 아무렇지도 않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소리를 술김에 한마디 하고 그대로 좌포청으로 붙들려 간 것이었다.
붙들려 가서 싸다. 입 있다고 무슨 말이나 함부로 하는 것이냐? 그러나 붙들려 간 놈은 원 지은 죄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도 하겠지만 단지 아들 하나 의지하고 살아오던 과부 어미의 신세가 그게 무엇이란 말이냐?
며칠씩 좌포청 앞에가 장을 대구 서서 그저 관원들이 드나들 때마다 부디 내 자식 내놔달라고 얼굴이라도 한 번 보게 하여달라고 비두발괄*을 하다가 이 가엾은 늙은이는 시끄럽다고 뺨도 여러 번 얻어맞았고 성가시게 왜 이러느냐고 발길에도 수없이 걷어채었다.
“원 그런…… 그래 도부지 일가붙이라군 없나?”
“아마 없다나 봅디다.”
“어디 연줄루 청 넣어볼 데두 없구?”
그러지 않아도 무슨 그런 수가 있을까 하여 오늘 그처럼 삼청동 막바지까지 찾아 올라온 그였다. 암만을 포도청 앞에가 지켜 서본댔자 아무 뾰족한 수가 없다고 깨달았을 때 그는 그제야 전에 아들과 함께 사동 김판서 댁에를 드나들었다는 사람이 여기 복주우물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낸 것이다.
‘오ㅡ 라 참 맹서방이 김판서 댁엘 드나들었댔지? 그럼 됐구먼. 진작 그 생각을 할 께지…….’
춘보는 그 불쌍한 늙은 어머니가 한때 그렇게 믿었던 것처럼 자기도 맹서방이 곧 내일이라도 백방*이 되어 나올 듯이 마음에 좋았다.
그러나 아낙의 말은―—아니 그 아들의 친구 된다는 자의 말은 참으로 뜻밖이 었다.
발뺌을 하느라 하는 수작인지는 몰라도 이번 경복궁 대궐 역사하는 데 원체 세상에 말들이 많아 그래 운현대감이 포도청에 분부를 내리고 이러니저러니 주둥아리를 놀리는 놈은 한 놈도 용서를 말랬으니까 여간한 청 가지고는 도무지 어림이 없는 일이요, 또 김판서 대감으로만 하더라도 그게 다 전에 말이지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아무 권세가 없는 터이라고,
“원 으쩌다 그런 말을……아무리 취중이기루서니……”
하고 그러한 말만 몇 번씩 뇔 뿐이오. 아무리 소용이 없는 일이라도 괜찮으니 김판서 댁에를 같이만 가달라고 대감께 말씀은 이 늙은이가 드릴게 그저 잠깐 만나뵙게만 하여달라고 암만 졸라도 그는 끝끝내 들어주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춘보는 포도청으로 끌려들어가 갖은 욕 다 보고 있을 맹서방과 거의 실성을 하여 거리로 갈팡질팡하고 있는 그의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고 그 마음이 한껏 어두웠다.
긴 이야기를 마치고 아낙은 반은 혼잣말같이
“아까 밥그릇 갖다주러 나갔다 우물 앞에서 그 할머니를 만나 으찌나 가엾은지 나두 같이 붙들구 우느라…….”
하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춘보 편으로 고개를 돌리며
“참 임자두 제발 조심해요.”
한다.
“나야 어딜 가면 무슨 말이…….”
“아암 맑은 정신으루야 그렇지만 똑 술이 취하면 아주 딴 사람이 돼버리니까 그래 말이지. 정말이지 조심해요.”
“…….”
“참 신서방이 그이가 술이 아주 고랜데…… 그이 따러 댕기는 것두 생걱허면 걱정이유. 부디 술 많이 먹지 말어요.”
“아 염려 없대두……”
춘보는 하품을 한 번 하고 바람벽으로 향하여 돌아 들어 누우며 속으로
‘참 술 먹어본 지도 오랜걸?…….’
하였다.
5
그 이튿날 저녁때 춘보는 오라를 지고 키가 구 척 같은 포교에게 등덜미를 잡혀 좌포청으로 끌려갔다. 아낙이 그처럼 몇 번씩이나 당부를 하였건만 그것을 저버리고 입을 마구 놀리다가 마침내 이렇듯 포도군사에게 걸린 춘보가 딱하다.
역시 술 탓이었다. 잿골 정참봉 집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러지 않아도 춘보 자신 오래간만에 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였던 터이다. 신서방이 이끄는 대로 골목 안 용수* 달린 집을 찾아든 것이 애당초 잘못이다. 그것도 막걸리나 두어 사발 들이켜고 돌아섰다면 아무 일 없을 것을 주인이 썩 좋은 소주가 있다는 통에 문제는 커진 것이다.
사실 소주는 좋았다. 춘보도 술은 제법 하는 편이지만 신서방은 그야말로 고래다.
“어서 들게. 오늘은 우리 어디 한번 취하도록 먹 어보세나.”
“좋은 말이유 우리가 살면 몇백 년을 살겠수? 제길헐 놈의 것!”
그래 그저 권커니 작커니 두 사람은 자꾸 퍼부었다.
신서방이야 평시에도 좀 수다스러운 편이라 말할 것도 없지만 춘보는 그의 아낙의 말마따나 술만 취하면 아주 딴 사람이 된다. 평소에 도무지 말이라고는 없는 위인이 도리어 그렇기 때문에 한번 술만 들어가고 보면 된 소리 안된 소리 지질더분하게 늘어놓는 사설이 참말 가관이었다.
요사이 가뜩이나 벌이가 시원치 못한데 부역을 나가면 그동안은 뭘 먹고 지내느냐는 사정·…… 며칠 안 있어 집이 그에 헐리고 말 모양이니 그렇게 되면 어디로 가느냐는 걱정—―거기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그래 동관 대궐이면 족하지 나라에 둔두 없다며 원납전(庇頁納錢)입네 부역입네 허구 만백성의 등골을 뽑아가며 경복궁 대궐은 또 뭣하러 짓는 게야?”
그 말에서 끝끝내 동티가 났다.
한창 기가 나서 늘어놓는데 난데없이 등 뒤에서
“이눔아! 아가리 좀 그만 닥쳐!”
하고 벽력같은 소리가 나기에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이제까지 어깨를 맞부비고 술을 먹으며 그뿐인가 가끔 자기 말에 맞장구까지 치고 하던 ‘딱부리눈’이 그가 좌포청 포교일 줄이야 누가 뜻하였으랴?
그러나 춘보는 제 자신이 생각을 하여도 괴이하도록 겁은 조금도 안 났다. 오직 울화만 복받쳤다. 그는 어느 틈에 두 손이 오랏줄에 잔뜩 묶인 것도 깨닫지 못하고
“뭐라구? 이눔아…… 그래 내가 글른 소리 했니? 난 바른 소리 밖에 안했다! 운현대감이 아무리 상감님 아버지래두 잘못허는 거야 잘못헌다지 그럼 뭐래야 네 직성이 풀리겠니? 그걸 이눔아! 니가 중뿔나게 나설 게 뭬 있느냐 그 말이다!”
눈을 딱! 부릅뜨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니까 ‘딱부리눈’도 하 기가 차던지
“이 자식이 죽질 못해 몸살이 난 게야!”
하고 껄껄 웃으며 문득 옆을 돌아보고
“여기 동관 그 자식 우는 소리 그만 듣구 어서 데리구 가세!”
한다.
그제야 춘보가 깨닫고 그 편을 보니 곁에 포교 한 놈이 또 서 있는데 그놈 앞에가 텁석부리 신서방이 오라를 진 채 털버덕 땅에가 주저앉아
“제발 살려줍쇼! 전 암 말 안했습니다! 전 정말이지 아무 죄도 없습니다!”
하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아주 울가망이 되어 빌고 있는 것이다.
‘원 고작 해야 죽기밖에 더하랴? 그것두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춘보는 신서방의 그렇듯이나 변변치 못한 꼴이 보기에 더럽고 밉살스러워
“에ㅡ 끼 이……”
하고 욕을 하려다 ‘딱부리눈’에게 등을 떠다밀려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보니 그곳이 바로 파자교(芭子橋)라 좌포청에 끌려들어가기 꼭 좋은 곳에서 술을 먹은 폭이었다.
춘보는 포청으로 끌려들어가자 곧 남간(南間)*에가 갇히는 바 되었다. 워낙 중한 죄인이라 대원위대감이 이제 몸소 나와서 문초를 받으리라는 것이다.
‘그럼 그래두 좋다! 직접 대구 할 말이나 다 해보자!…….’
그는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간 속은 코를 베어가도 모.르게 어두웠다. 그 어둠 속에 다만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듣기에 애처로운 신음소리만이 들려왔다. 춘보는 부질없이 몇 번인가 그 안을 두리번거려보다가 문득 생각해내고
“맹서방”
하고 둘러보았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다시 한 번
“맹서방!”
하였다. 그러나 맹서방은 대답이 없고
“아빠 우리 여깄수!”
하는 소리는 뜻밖에도 큰딸 순이의 음성이다.
“순이냐? 또순이도 게 있니?”
하고 물으니까
“웅. 엄마두……”
한다.
어찌된 영문을 몰라서 춘보는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오― 라 집이 헐리게 됐으니까 모두 이리루들 왔구나! 아무 데서나 살면 그만이지…….’
그렇게 생각을 하려니까 온몸이 긴장이 일시에 풀어져서 춘보가 아무렇게나 그곳에가 쓰러져 마악 잠이 들려는데
“일어나라 일어나! 이눔아! 무슨 잠이야?”
하고 누군지 어깨를 막 잡아 흔든다.’
―— 깨어보니 꿈이었다.
“원 무슨 잠을 그렇게 자우? 신서방 올 때 됐수. 어서 일어나우.”
아낙은 그가 눈을 뜨는 것을 보자 일어나 다시 밖으로 나갔다. 춘보는 어인 까닭도 없이 머리를 긁고 찝 입맛을 다셨다……
신서방이 찾아온 것은 마침 춘보가 죽 한 그릇을 다 먹고 막 숟가락을 놓았을 때다.
“예 ㅡ 나가요.”
하고 춘보가 마루 구멍에 들어간 짚신짝을 찾아 신으려니까 아낙은 마루 끝에가 서서 물끄러미 그의 모양을 지켜보고 있다가 딴 때 없이 은근한 목소리로
“제발 조심해요.”
한다.
무슨 뜻인지를 얼른 모르겠어서 춘보는 잠깐 어리둥절한 채 아낙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술 먹지 말고 일즈거니 들어오. 먹게 되드래두 많인 먹지 말구…….”
춘보는 그제 야
“응,응!”
고개를 끄덕이고
“염려말어!”
한마디 덧붙인 다음에 밖으로 나가려다 문득 다시 고개를 돌렸다.
“순이야. 너 오늘 산에 가서 냉이 좀 많이 해오너라.”
춘보는 오늘은 기어코 모시조개를 사가지고 들어올 결심이었던 것이다.
『신문학』 3호(194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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