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김밥에 종이가 깔리는 까닭
충무김밥 그릇에는 종이가 깔린다.
그릇에 그냥 담으면 될 것인데 굳이 종이를 깐다.
이런다고 설거지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종이 아래로 국물이 스며 어차피 이 그릇은 씻어야 한다.
종이를 깔고 버려야 하는 번거로움만 생긴다.
음식이 더 맛나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종이의 질이 좋지 않으면 역한 냄새가 음식에 배기도 한다.
그럼에도 종이를 까는 까닭이 있다.
충무김밥은 원래 배 위에서 먹던 음식이다.
점심 무렵 통영항에 여객선이 들어오면 충무김밥 할매들이 배 위에 올라가 이 음식을 팔았다.
'다라'에 김밥과 오징어 홍합 꼴뚜기 반찬에 무김치까지 담았으나 그릇까지 챙기기는 어려웠다.
승객의 손에다 음식을 올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종이로 그릇을 대신하였다.
그때에는 누런 비료포대 종이를 썼다.
질기고 두꺼워 반찬과 김치의 국물이 바닥까지 스미지 않는다.
승객들은 이 재생 종이에 불만이 없었다.
그때의 위생 관념이 그랬다.
김밥 할매들이 가게를 차리면서 이 종이의 버릇 혹은 전통을 버리지 않았다.
그릇에 담아낼 수 있음에도 그릇 위에 종이를 깔았다.
비료포대 종이는 민망하니 이를 흰 종이로 대체하였다.
1980년대 초반의 일이다.
충무김밥이 식당의 음식으로 변모하였지만 배 위에서 먹던 음식이라는 기억을 이 종이로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종이 왜 깔아요?" 하고 물으면 "옛날부터 그랬어" 하는 답이 돌아올 뿐이다.
옛날부터 그랬던, 배 위에서의 그 힘겨웠던 행상의 일이라 하여도 그때의 그 삶을, 추억하고
나아가 당당히 여기겠다는 심중이 그 종이 한 장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페친이 올린 충무김밥 사진에 종이가 없었다.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보니 근래에 개업한 충무김밥집의 것들이 대체로 종이를 깔지 않고 있다.
비닐을 깐 집도 있다.
그게 보기에도 좋고, 형광물질의 종이보다 더 위생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충무김밥의 강력한 문화적 요소 하나가 식탁에서 제거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관광객이 통영 가서 충무김밥 먹으며 이 음식의 유래며 그때 그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할 것인데
그때의 상황을 강력히 환기시켜주는 것으로 이 종이 한 장만큼 효과적인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릇이 있어 이제 필요없는 것이 아니라 그릇이 있어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이 종이라 할 수 있다.
종이의 질은 분명 문제가 있다.
대부분 음식에 닿으면 별로 좋지 않을 종이를 쓰고 있다.
이런 일에 나서라고 지방정부가 있는 것이다.
향토음식 스토리 개발과 마케팅, 홍보에 드는 예산사업으로 이 일을 진행하면 된다.
적절한 질의 종이를 선택하고 여기에 충무김밥이 왜 종이 위에 놓이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설명
하는 문구를 인쇄하여 통영의 충무김밥 식당들에 배포하면서 이 종이를 쓰게 유도하면 된다.
관광객들은 그 종이의 글을 읽으며 충무김밥을 더 의미 있게 먹을 것이며, 또 디카로 열심히
찍어 인터넷으로 퍼뜨릴 것이다.
그 일에 많은 예산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지방정부들이 향토음식 스토리 개발과 마케팅, 홍보에 노력하고 있다.
가서 보면, 그 음식에 담긴 지역민의 삶과 무관하게 삼국시대니, 조선궁중이니, 진상이니 하며
'근거 없는 조작'에만 열심이다.
음식이 왜 문화인지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한 탓이다.
늦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제부터라도 공부하면 된다.
글/황교익
첫댓글 충무 에피소드
친정 아버지는 경남의 곳곳을 발령받아 다니셨다
엄마 말로는
아버지가 똑똑한 척해서
감당하기 힘든 상사들이
그런다는 거였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아버지는 충무로 가셨고
우리집은 부산의 집말고도
충무에도 집이 생겼다
지금은 통영이고 도로로 편하게 몇시간 안걸리면 갈 수 있는 그 곳을 배를 타고 가서 며칠 동안 아버지랑 지내다가
돌아오곤 했다
엄마는 따로 우리 간식을 안챙겨 오셨는데
배안에서 다들 흰종이에 먼가를 먹는게 신기해서
먹고 싶어 떼쓰다가
기념주화밖에 없던 엄마의
소장품은 우리들 간식으로
충무김밥 사는데 들어 갔다
아버지께는 비밀이었다
미안하고도
맛있었다
까마득한어린시절
국민학교때벌써
충무김밥을맛보다니
세련된어린시절부러버
나는달라요
70년대중반인가 여성잡지에실린충무김밥
그림만귀깅하고
별시럽다라고생각하며
그맛이그맛이겠지라고
짐작만하다가
60나이에야맛봤슈
충무미륵산등산때
충무에서점심용으로 사서!!
흐흐
역시그맛이그맛!!
미륵산을
등산하시며
그 김밥을 사드셨다면
같이 가시는 일행들이
서광이나 명화같은
산꾼들은 아니었나 봅니다
ㅎ ㅎ ㅎ
지금은
젓갈냄새가 나는 오징어 무침과
납작하게 빚은듯이 썰은 깍뚜기가 새콤 익은 맛을 낯설어 하지 않지만
어린시절
추억의 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