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마리 뱀이 꿈틀거리는 듯한, 그림 같은 붓글씨
완주 상관면 편백숲과 명필 이삼만 유적지 탐방 여행
24.12.03 14:45l최종 업데이트 24.12.03 14:46l 이완우(lwanwoo)
[출처] [2025] 네 마리 뱀이 꿈틀거리는 듯한, 그림 같은 붓글씨/명필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7)|작성자 청도
호남정맥 마루금에서 한 줄기 지맥이 완주 고덕산으로 흘러 내려온다.
이 산자락에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하다는 형세의 공기마을이 자리한다.
이 마을은 백여 년 전에 명필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이
만년에 머무르며 서도(書道)에 정진한 곳이다.
12월 초순, 공기마을의 편백숲과 이삼만 고택지를 둘러보고, 고덕산 자락의 묘소를 찾아보는 여정이었다. 공기마을에서 편백숲 오솔길로 올라가는데, 감나무 가지에 감이 매달려 초겨울 아침 냉기에 밝게 반짝였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까치밥으로 남겨진 감을 바라보고 있었다.
▲편백숲과 돌탑 ⓒ 이완우
편백숲 오솔길과 산림욕장, 치유의 숲을 차례로 걸었다. 돌탑이 많은 편백숲에 아침 햇살이 비쳐 들었다. 이곳 편백숲 기반암은 모래나 점토의 퇴적암인 셰일(shale)이었다. 이 셰일이 얇게 평행으로 부서진 평평한 조각들로 돌탑을 수없이 쌓아 올렸다.
편백숲임에도 산책로의 반환점까지는 3.5km 거리다.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숲을 마주하고 나를 돌아보기에 평안하다. 호남정맥 마루금에 자리한 한오봉이나 옥녀봉까지도 가볍게 등산하기 좋겠다.
▲울창한 편백숲 ⓒ 이완우
공기마을은 대나무가 많아 대밭뜸이라 불렸다.
이제는 50여 년 수령의 우거진 편백숲이 이 마을의 자랑거리이다.
편백은 10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 도입된 수종이다.
이곳 편백숲은 영화 '최종병기 활'(2011년)의 촬영지였다.
이 영화는 17세기 인조반정부터 병자호란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그 시대에 편백숲 자생지는 우리나라에 없었지만,
편백의 곧은줄기가 무성한 숲은 무수히 쏘아 올린 화살과 같은 이미지로 보였다.
네 마리 뱀이 꿈틀거리는 듯한, 그림 같은 붓글씨
완주 상관면 편백숲과 명필 이삼만 유적지 탐방 여행
24.12.03 14:45l최종 업데이트 24.12.03 14:46l 이완우(lwanwoo)
[출처] [2025] 네 마리 뱀이 꿈틀거리는 듯한, 그림 같은 붓글씨/명필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7)|작성자 청도
편백숲 그늘은 갈수록 짙게 드리워졌다. 하늘은 푸르고 침엽수인 편백잎 마디가 피톤치드의 향기가 응결된 결정(結晶) 같다. 초록의 향기가 땅으로, 하늘로 상쾌하게 퍼진다.
편백숲의 공기마을에서 창암 이삼만이 만년에 살았던 집터를 찾아보았다. 마을 길목의 모정 이름도 '蒼巖亭'(창암정)이었다. 그는 50세 무렵에 전주 교동에 머물며 서도(書道)에 전념했고, 만년에는 이곳 공기 마을에 정착하여 글씨만 쓰면서 청빈하게 살았다고 한다.
▲공기마을 창암정과 창암 이삼만 묘비 ⓒ 이완우
창암 이삼만은 하루에 천자씩 글씨를 썼다고 한다.
磨穿三硯 禿盡千毫 (마천삼연 독진천호).
'벼루 세 개를 갈아서 구멍을 냈고, 붓 천 개를 닳아 해지게 했다'는 의미이다.
명필 창암 이삼만이 서도에 정진했던 한 평생이 이 여덟 글자에 압축되어 있다
(관련 기사: 벼루 세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개를 닳게 썼다니 https://omn.kr/1sv9f).
이삼만이 19살 때, 그의 부친이 산에 약초를 캐러 갔다가, 뱀에게 물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삼만은 이때부터 뱀을 보는 대로 잡아 죽였단다. 이 이야기는 이삼만도 약초를 캐서 생계를 유지하며, 뱀을 수없이 보았을 곤궁했던 그의 어린 시절 삶을 짐작하게 한다.
편백숲 공기마을에서 12km 거리의 고덕산 기슭(완주 구이면 평촌리 아랫 잣골)에 있는 창암 이삼만 묘소를 찾아갔다. 그의 청빈했던 한 평생처럼 그의 묘소도 한적하고 소박하였다.
▲창암 이삼만의 '산광수색' 명필 (묘비 안내판 촬영) ⓒ 이완우
'山光水色 (산광수색)' 산은 (높이) 빛나고 물은 (맑고) 아름답다. 묘소 앞 안내판에, 이삼만의 개성적인 작품인 '행운유수(行雲流水)' 초서체의 명필이 빛나고 있었다. 기자는 '산광수색' 네 글자를 기승(起承, 선경 先景), 전결(轉結, 후정 後情)의 오언절구(五言節句)처럼 풀어서 이해하여 보았다.
산(山). 뱀이 똬리를 틀고 머물렀다.
광(光). 개구리나 벌레를 낚아채듯 날쌔게 움직인다.
수(水). 좌선의 자세로 등을 세우고 내면을 응시한다.
색(色). 뱀이 용이 되어 하늘로 힘차게 올라간다.
글씨마다 글자 모양이 다른 네 마리 뱀처럼 보이는 것도 신비롭다. 글씨마다 그 함축하는 의미도 천재다웠다. 이 '산광수색' 네 글자는, 명필 창암 이삼만이 한평생 서도에 정진하여 완성한 그의 인생 같았다. 그의 한 평생이 그림 같이 펼쳐지고 있었다.
편백숲 공기마을 창암정 옆에는 명필 이삼만의 시조가 씌어 있다.
사립문에 개 짖으니 동자 불러 너 나가 보아라.
이렇게 궁벽한 마을에 어느 벗이 나를 찾을까
아마도 소슬한 가을바람에 낙엽 소리인가 (하노라)
궁벽한 산촌에 청빈하게 살았다는 명필의 초연한 삶의 모습이 느껴졌다. 그가 독창적으로 개척한 서도(書道)의 경지에서 풍기는 향기까지 느껴지는 듯하였다.
완주 상관면 공기마을 편백숲의 피톤치드는 힐링과 치유의 향기가 진했다. 그러나 이 마을의 진정한 향기는 이삼만 명필의 묵향(墨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톤치드 향기의 결정(結晶) 같은 침엽수 편백잎 ⓒ 이완우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기사 '벼루 세 개를 구멍 내고, 붓 천 개를 닳게 썼다니'(2021.4.16)와 관련됩니다.
주요 지리정보
창암 이삼만선생묘역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평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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