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재림은 곧 천지창조주 하나님의 강림이 된다
예수님의 재림은 곧 천지창조주 하나님의 강림이 된다는 이 말에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글이 좀 길어질 수밖에 없음에 양해를 구하며
먼저 창세기로 들어간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했다.
이 말은 창조주 하나님이 주신 성경의 책 제목일 뿐이다.
책 제목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미 성경전체가 압축된 하나의 문장이며
이 문장속에서 우리는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신 예수님의 초림과
예수님의 재림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할 때 "천지" 는 영어성경에서
천은 복수로서 둘이며, 지는 단수로서 하나이다.
천 둘에서 하나의 천은 최초로 이 땅에 임하신 초림주를 뜻하며
다른 하나는 두번째로 오시는 오늘의 재림주를 뜻한다.
그리고 지는 초.재림주시대에 그분들의 말씀을 듣게 되는 이 땅의
인류를 뜻한다. 이같은 천지가 성경 전체에 대한 가장 큰 대맥이 되는데,
과연 그러한지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성경전체에서 천 둘을 하나님의 두 사람으로 예표할 때ㅡ.
에덴동산의 아담은 초림주를 예표했으며, 하와는 재림주를 예표했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 중에 이스마엘은 초림주를, 이삭은 재림주를 예표했다.
다시 이삭의 두 아들 중에 에서는 초림주를, 야곱은 재림주를 예표했다.
성경전체에서 천 둘을 하나님의 두 여자로 예표할 때ㅡ.
하나님은 최초의 1이므로 알파로서 남편이라고 한다면 이땅의 인류는
두번째 2이므로 오메가로서 아내라고 하는데, 그 인류중에 초림주는
하나님께 수장격으로 처음 아내가 되며 재림주는 새 아내, 즉 새 신부가 된다.
성경전체에서 천 둘을 하나님의 두 남자로 예표할 때ㅡ.
처음의 남자는 초림주로 남편이라고 한다면 두번 째 남자는 재림주로
신랑이라고 한다. (여기서 남자 혹은 신랑이라함은 하나님의 처음 강림한 영,
혹은 두번째 강림한 영만을 뜻한다. 즉 육체를 제외시킨 말씀의 영만을
뜻하여 남자 혹은 신랑으로 표현했음)
성경전체에서 천 둘을 하나님의 두 도시로 예표할 때ㅡ.
처음의 초림주의 자리는 예루살렘으로 예표했으며, 두번째 재림주의 자리는
새 예루살렘으로 예표했다.
성경전체에서 천 둘을 하나님의 두 성전으로 예표할 때ㅡ.
모든 것은 반드시 둘이 있듯이 성전도 반드시 처음 성전과 지성소,
이렇게 둘이 있다.
초림주의 성전은 처음 성전이며, 오늘의 재림주의 성전은 지성소가 된다.
성경전체에서 천 둘을 하나님의 두 천지로 예표할 때ㅡ.
하나님이 처음 지으신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일컬어 "처음 하늘 처음 땅"
이라고 한다. 그리고 새롭게 두번째로 다시 지으시는 세상을 일컬어
"새하늘 새땅" 이라고 한다. 초림주는 처음 하늘 처음 땅으로 예표되었고,
오늘의 재림주는 새하늘 새땅으로 예표된다.
이렇게 태초에 하나님이 지으시는 천(天) 둘이 성경전체에서 가장 큰
대맥임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지(地)는 그 천 둘에 의해 하나님을 배우게
되는 인류임을 알게도 된다.
그러므로 태초의 하나님이란 무극의 하나님이라면, 초림주는 태극이 되며,
오늘의 재림주는 완성의 황극이 됨도 깨닫게 될것이다.
동시에 태초란 무극의 태초도 있고, 태극의 태초도 있고, 황극의 태초도
있는 셈이다. 무극(하나님)에서 태극이 나오고, 다시 태극(초림주)에서
황극(재림주)이 나오는 순서배열이다.
이 같은 순서배열을 반드시 알라는 뜻에서 성경에서는
"성부(일위하나님), 성자(이위초림주), 성신(삼위재림주)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라고 했던 것이다.
세례란 하나님을 알려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모르는 죄를 씻음받게
하는 것이며 이렇게 하나님을 알려주어 세례를 받게 하는 일은
자연계 창조가 아니라 심령창조가 되기 때문에 죄를 씻는 세례라는
말이 있게 된다.
성부, 성자, 성신은 삼위일체(三位一體)론이다. 삼위일체를 알아야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온전히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온전히 알아야
하나님을 모르는 죄가 사함받고 구원받기 때문에
그것을 일컬어 성부 성자 성신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 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마디 사족을 달자면,
동양학을 공부한다는 동양예언서방의 도인들은 너도나도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을 짓뭉개며 오직 동양예언서의 마지막 오시는 진인 한사람에
대해서만 갑론을박으로 쌈박질이 벌어지곤 하는데, 그런 도토리 키재기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왜냐면 창조원리를 모르는 무식깽이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상관할 바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일위무극의 하나님, 이위태극의 하나님, 삼위황극의 하나님의 창조를
간략히 설명하리라. 먼저 일위무극의 하나님의 근본 상태가 어떠했는지
창세기 1장 2절에서 살펴본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라고 했다.
성경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영적(형이상학) 이야기다. 그럼에도 그것을
감추기 위해 육적(형이하학)으로 기록했다. 즉 보이는 자연계 만물을 들어
비유로 기록했기 때문에, 높으신 영의 하나님을 하늘에 사신다고 하며
낮은 피조물은 땅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땅이라 함은 하나님이 지으실 창조대상을 일컬어
"땅" 이라고 한다. 이 땅이 어떠했는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다고 했다.
혼돈하다는 것은 지어진 것이 없어서 가즈런히 질서 있게 놓여짐이
없음을 뜻하고, 공허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비어 있음이 되기 때문에,
이는 하나님이 지으실 세계는 아직 지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창조의 때를 말하고 있다.
아직 지어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무창조의 이 때에
흑암은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했다.
산은 높이로 재고 물은 깊이로 재기 때문에 깊음은 물을 뜻한다.
따라서 흑암도 물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도 물 위(수면)에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물이란 창조되어질 소재인 "말씀" 을 뜻하기 때문에 흑암도
창조의 말씀이 되고 하나님의 신도 창조의 말씀이 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즉 창조주 하나님은 그분의 근본이 흑암도 되는 말씀도 가지고
있고 빛도 되는 말씀도 동시에 갖고 있는 흑암과 빛의 혼재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최초 하나님의 근본상태가 이러하다면 그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가
그와 같이 빛과 그림자로 나타나지 않겠는가? 그렇다! 그분이 지으신
세계는 빛과 그림자가 한테 섞여 있는 혼재의 세계였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45:7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라고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이 지으신 처음 하늘 처음 땅이다.
하나님이 지으신 처음 하늘 처음 땅이 이러할진데 내 속에도 선과 악이
함께 있는 것이다. 사랑의 마음이 있는가 하면 증오와 미움이 있다.
기쁨이 있는가 하면 비극의 눈물이 있다. 세상만사 선악간에 모두
일원론의 무극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것을 누가 부인하랴!
그런데 이것은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의 처음 하늘 처음 땅의 창조이고
저 이천년 전에 예수님이 오신 것은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심령창조를 위해 오셨으므로, 예수님은 심령창조에서 태극의 창조가 된다.
심령창조에서 태극의 창조는 이위 초림예수님이 맡으셨다.
그런데 초림예수님은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심령창조를 위해
오셨으나 액면 그대로 알려주시지 않고 말씀을 모두 비유로 감추어서
알려주셨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비유가 아니면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신구약 성경을 문자그대로 읽고 온갖 난도질로 난장판을 친다)
초림예수님이 진리의 말씀을 알려주신다는 점에서는 반드시 빛이다.
그러나 그 빛의 말씀이 감추어진 비유라는 점에서는 반드시 어두움이 된다.
이렇게 초림예수님은 빛과 그림자를 양손에 동시에 쥐고 오신 분이다.
한 손에 진리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그 진리의 말씀으로 보면 그분은
반드시 빛으로서 우리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원주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그분을 일컬어 구원주로 기록했던 것이다.
그러나 또 한 손에는 비유라는 어두움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분의 빛을
그분의 어두움으로 덮어버려서 결국은 지상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시고 말았던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이위 초림예수님은 일위무극의 하나님의 근본이 빛과 어두움이 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려주시는 심령창조였음을 밝혀주신 것이 된다.
사람들은 하나님은 처음부터 온전한 빛으로만 알고 있으나,
그것이 아니고 빛과 어둠이 함께 있는 쌍태아임을 알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근본을 먼저 알아야 하나님의 창조도 그 근본으로부터
어떤 순서를 밟아 창조가 전개되는가를 알게 되고 시작과 마침을,
즉 하나님의 알파와 오메가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초림 예수님은 인류심령창조에서 알파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아는 심령창조의 그 지식수준이 알파창조에
머물러 있었다. 알파창조는 온전한 빛이 아니고 빛과 어두움의 쌍태아
이기 때문에 빛이 어두움에 가리어 희미해서 하나님을 전혀 몰랐다.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알파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한다는 소리가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세상은 전쟁과 온갖 천재지변과 환난과 병고와
사망이 널부러져 있는지 의아해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훼방하는 소리를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는 지금까지 처음 하늘 처음 땅인 창조미완에
있는 알파이기 때문에 창조가 미완이며, 미완이기 때문에 세상은 온통
불협화음으로 얼룩져 있고 사망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구원주라는 이름표를 달고 오셨으나 사실적으로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나 후에나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이는 초림예수님이 빛으로 오셨다고는 하나, 어둠도 동시에 쥐고 오셨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소경일 뿐이고,
소경이기 때문에 오늘의 온전한 빛되신 재림 예수님과 상대적으로 볼 때,
그분은 어움이 되는 연유에서다. 이제 온전한 빛 되시며 황극이신
오늘의 재림예수님께로 넘어가기로 한다(오메가).
성경은 자연계창조의 이야기가 아니고 인간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심령창조의 기록이다. 물론 자연계 창조야말로 하나님의 창조임엔
틀림없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동산각종나무열매를 임으로 먹으라고 하신
그 열매중의 하나로 자연과학을 통해 알도록 일임하셨다.
그 외엔 모두 성경은 오로지 인류가 창조주의 천지창조론을 알아야
한다는 심령창조의 기록으로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 때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생명책이다.
구약성경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형이므로 제외하고,
실상이 되는 최초의 심령창조의 말씀은 중동 땅 초림 예수님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그 제자들을 통해 서구 구라파와 아메리카를 거쳐 오늘날
땅 끝 한국까지 와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초림 예수님은 천국복음의 말씀이 땅끝까지 전해지면 다시 오신다고 했고
이제 땅 끝, 극동 한국에 다시 오시게 되었다.
초림 예수님은 시편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마13:35 내가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을 밝히 드러내리라"
라고 하셨듯이
이제 다시 오셔서 창세기부터 비롯하여 신구약성경의 모든 비유를
풀어서 낱낱이 밝혀주시는 진정한 참 빛으로 오시게 되었다.
재림 때는 티검불하나 없는 빛밝은 빛으로 오시기 때문에 그 빛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먹여서 그동안 하나님을 모르는 죄사함도 받고, 구원도 받고
영생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 초림 예수님이 그 영(말씀, 하나님)으로 다시 오시는 환생이 되기 때문에
이름하여 재림예수라고 하지만, 오늘의 그분은 이름이 더는 예수가 아니고
"새 이름" 이라고 했다.
만일 예수님이 모든 기독인들이 믿듯이 문자 그대로 하늘에서 둥둥
구름타고 오신다면 그 이름을 새 이름이라고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초림 때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듯이 오늘의 그분도
인간의 몸에서 다시 태어나시는 것이며 새 이름으로 오신다.
새 이름으로 오시지만 그 신분을 철저히 감추는 천기로 오시기 때문에
아가서의 술람미여자가 온몸에 너울을 쓰고 가리고 있듯이 연막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연막전을 펼치고 감추어 있으나 때가 되면
영광의 몸으로 홀연히 나타내실 터이므로 재림 예수님은 도무지
찾지 말고 대언자가 주는 말씀의 양식만을 찾아서 먹으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왜?
오늘의 그분은 이렇게 철저히 감추어 있고 대언자를 통해 주시는
말씀만을 먹어야 하는가? 그분을 보지 않고 믿는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이는 어떠한 외모나 정실에 끌리지 않고 오직 말씀의 논리만을 찾아서
먹을 수 있는 밝은 이성과 정직한 자들을 찾아내기 위함이고,
이들이 곧 천년통치의 왕과 제사장반열인 첫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초림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이 임한 2위하나님이라고 하지만 아직
완성의 3위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과 외적 물리적 결합으로서
그분은 얼마든지 사람들에게 드러내셨고 그러다가 지상천국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셨으나 오늘의 재림 예수님은 확연히 다르다.
오늘의 재림 예수님이 되시는 새 이름은 완성의 삼위황극이 되기
때문에 택한자들에게 첫 열매로서 하나님을 온전히 알려주시는 빛 밝은
말씀으로 창조를 하시는가 하면, 그 분 자신이 하나님과 내적 결합으로서
혼연일체를 이루시기 때문에, 신과 인간이 이혼으로 갈라설래야 갈라설 수
없는 그야말로 변개할 수 없는 "신인합일체" 이다.
황극의 삼위 새이름은 이렇게 이혼으로 갈라설래야 갈라설 수 없는
혼연일체의 신인합일체이므로 그분이 곧 아버지하나님이 되신다.
초림예수님은 아들 하나님이었다면 재림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 되신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은 땅의 독보적 존재, 즉 새 이름과 한몸으로
신인합일하게 될 때는 혼자 오시지 않는다. 반드시 하늘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지상천국을 이루러 오신다.
하늘의 모든 소유는 영계의 천사집단이다.
천사들은 영이기 때문에 창조 첫째날에 이미 영생체로 지어졌었다.
이 영생체인 천사들과 함께 동반강림 하셔야만이 이 땅의 택한자들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으며 나아가 천년통치 끝에는 온 인류에게도
신인합일을 통해 영생을 주어서 창조를 마치고 일곱째 날에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천사들과 반드시 동반강림 하시게 된다.
영생이란 무슨 약을 먹어서 성취하는 게 아니며 인류의 과학으로
스스로 이루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진리의 새 말씀으로 단장한 자들에게 그 상급으로 주시는 선물이
영생이다.
그 영생은 이처럼 하늘의 영생체인 신들과 신인합일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즉 생노병사로 죽고 있는 내 몸에 영생하는 신이 들어와 한 몸이
되어줄 때 그게 영생이 된다.
그런데 이러한 전대미문의 창조역사는 예수님의 재림 때에 이루어진다.
무극도 아니고, 태극도 아니고, 반드시 완성의 황극에서 창조의
휘날레가 장식된다.
무극도 창조미완이요, 태극도 창조미완인데 황극에서만 창조가 완성된다.
창조의 순서가 일위무극은 이위태극(초림예수님)으로 오시고, 다시 이위태극은
오늘날 삼위황극(재림예수님. 새이름)으로 오시기 때문에 이를 일컬어
하나님은 유일신 한분으로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하는 것이다.
일위, 이위, 삼위가 결국 삼위에서 한 몸으로 만나 일체가 되는 논리이다.
오늘날 삼위하나님의 빛 밝은 말씀을 만나게 되면 결국 그분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시작에서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풀어주시는 분이므로,
창조미완의 일위하나님과 이위하나님 때까지를 모두 알게 되는 것이다.
창조미완의 일위는 천존시대라면, 이위는 지존시대이며, 삼위는 완성의
인존시대가 된다. 마지막 인존시대에서 모든 진리의 진수를 깨닫게 되며,
그리하여 영생을 받게 된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는데, 그렇다면 본 제목처럼
"예수님의 재림은 곧 천지창조주 하나님의 강림이 된다" 를 정리할 차례다.
이 점은 지금까지 상술했듯이 아주 간단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초림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로 가지고 오셨기 때문에 희미한
빛의 어두움이 되고, 그 어두움의 비유는 오늘날 예수님의 재림에 의해
명명백백히 풀어져서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로 자유함을 얻게 함과 동시에
영계의 하나님의 영생하는 천사들과 함께 동반강림하여
지상 육계가 신인합일에 의해 영생을 받게 하는 지상천국을 이룰 것이므로
예수님의 재림은 곧 천지창조주 하나님의 강림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예수님의 재림은 곧 진정한 구원의 천지창조주 하나님의 강림이
되기 때문에 둘째 성소인 구원의 지성소로 예표되었으며, 둘째 사람
생명의 어미 하와로 예표되었으며, 새로운 새 예루살렘으로 예표되었으며,
새로운 새하늘 새땅 등으로 예표되었던 것이다.
초림 예수님은 심령창조에서 첫째이며 둘째는 예수님의 재림이 되는데
재림의 둘째 성소인 구원의 지성소 그 이상은 없다.
재림의 둘째 사람인 생명의 어미 하와 그 이상은 없다.
재림의 둘째 새로운 새 예루살렘 그 이상은 없다.
재림의 둘째 새로운 새 하늘 새 땅 그 이상은 없다.
즉 창조완성으로 가는 길에 세번 째는 없는 것이다.
반드시 두번째 재림에서 창조는 마침이 된다.
예수님의 재림에서 창조는 마침표를 찍는 오메가 포인트가 되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은 곧 천지창조주 하나님의 강림이 되는 것이다.
오늘의 예수님의 재림, 즉 하나님이 강림하시면 이 땅은 지상낙원이
성취되는데 그 상태를 계시록에서 이렇게 알려주고 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기독인들이여! 지금까지 봉한 성경이 마침내 풀려진 오늘의 새 말씀을 들으라!
동양예언서 구도인들이여!
성경역사 장장 6천년을 통해 온 세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성경을 배우라!
앞으로 온 인류는 성경으로 공부하게 될것이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