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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大邱)의 지명을 풀어보면 큰언덕이라는 뜻.
이름에 걸맞게 사방이 산으로 언덕을 쌓고 있다.
북쪽 가산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팔공산, 환성산,대덕산과 앞산,서쪽으로는 와룡산과 마천산 줄기가 둥그렇게 대구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산으로 둘러쌓여 분지를 이루고 있으니 겨울엔 춥고,여름엔 덥다.
가산에서 시작하여 한티재를 거쳐 팔공산 신령재에서 남으로 'ㄱ'자를 그리며 가지를 치는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은 갓바위(관봉852m)와 장군바위를 지나 능성고개에 내려섰다가 다시 남으로 솟은 산이 환성산(環城山·807.2m)이다.
환성산에서 더 남진하는 능선은 낙타봉(658m)과 초례봉(636.7m)을 지나 금호강으로 스며든다.
소위 4산 잇기코스인 '가팔환초'(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로 장장 40여㎞의 코스.
환성산(環城山)은 동쪽 골짜기에 있는 환성사(環城寺)의 절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곳 토박이 주민들은 이 산을 고리 환(環)자를 풀어 ‘고리성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 정상을 이루는 바위가 마치 감투처럼 생겨서 ‘감투봉’으로도 부른다.
산행 중 선답한 무학산(舞鶴山)은 말 그대로 학(鶴)이 춤추는(舞) 형상이라서 붙여진 이름.
더 이전엔 무락산(無落山)이었으니,산에서 내려앉아 쉬지 않고 춤추고 있다는 뜻일까?
들머리에서 만나는 천년고찰 불굴사(佛窟寺)는 원효대사가 발심해 처음으로 수행을 한 장소로 신라 화랑 김유신 역시 이곳에서 수련을 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리탑으로 영험 가득한 기도도량.
약사보전의 족두리 쓴 약사여래불과 갓바위 부처님은 서로 부부라는 설화가 있다.
108계단으로 오르는 석굴 홍주암(紅珠庵)의 홍주(紅珠)는 붉은 구슬이란 뜻의 ‘태양’을 의미하는 말로 불굴사 경내에서 가장 먼저 태양을 볼 수 있는 장소.
보물 제429호인 불굴사삼층석탑(佛窟寺三層石塔)과 문화재자료인 불굴사석조입불상(佛窟寺石造立佛像)이 있다.
날머리의 환성사(環城寺)는 신라 흥덕왕 10년(835)에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했다.
신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으나 연못인 용연(龍淵)을 메우고나자 금송아지 한 마리가 구슬프게 울며 팔공산 동화사 쪽으로 날아갔다고 한다. 이 후 온 절에 화재가 나서 대웅전과 수월관(水月觀)만 빼고 나머지 건물들은 모두 소실되었다. 대웅전 건물이 보물 제5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산행코스: A) 불골사(홍주암)-무학산-645갈림길-환성사갈림길-675갈림길-고개(환성사갈림길)-환성산-환성산동릉-(송림능선)-임도-산길-환성사(4시간30분) B) 불굴사-홍주암-홍주암 위 능선-645갈림길-환성사갈림길-- 상 동 -- 또는 환성사계곡-환성사-극락교 (3시간 30분) C) 불굴사-홍주암-홍주암 위 능선-645갈림길-환성사갈림길-성전암-환성사-극락교(1시간 30분) * 아래 개념도는 참고용 며칠 전부터 오늘의 날씨는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고 한다. 한 술 더 떠서 대구의 일기예보는 100% 비. 동래에서 달랑 3명을 태우고 덕천동에 도착하였지만 전체 참여인원은 꼴랑 15명. 널널하게 출발하는 버스의 광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온천을 가자는 둥 희망사항은 제각각이지만 그래도 버스는 빗속을 뚫고 목적지로 달린다. 불굴사(해발 약320m) 주차장에 차가 멈춘다. 아직도 궂은 비는 내리고 있다. 다행인 것은 1시간 후엔 비가 그친다는 일기예보. A,B팀 모두 차에서 내려 기념으로 단체사진을 찍은 후 불굴사와 홍주암을 탐방하고 따로따로 산을 오를 계획. A팀의 무학산코스는 사찰 돌담 좌측으로 열려있지만 홍주암을 탐방키 위하여 계단을 올라간다. 돌계단과 돌담이 잘 쌓여진 계단을 올라서면... 좌측에 종각이 있고... 정면엔 적멸보궁(寂滅寶宮)과 3층석탑이 있고,좌측엔 약사보전(藥師寶殿)이 있다. 적멸보궁은 법당 안에 단(壇.戒壇)만 있고 속이 텅 비었으며 법당 밖 뒤편에는 사리탑을 봉안하여 놓은 곳으로 보궁이라고도 한다. 불굴사는 신라 신문왕 10년(690)에 창건되었고,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50여채의 건물과 12암자 등을 갖춘 큰 절이었다고 한다. 보물 제429호인 '불굴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7.43m. 탑은 절 안의 법당 앞에 세워져 있다. 이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쌓아올린 형식으로 신라석탑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다. 탑 옆엔 규모가 큰 맷돌과 석조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적멸보궁의 뒷편엔 사리탑이 덩그러니 서 있고,주련의 글씨는 이색적인 한글체. 약사보전안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1호로 지정된 석조입불상인 약사여래불이 보존되고 있다. 불굴사 석불 입상은 갓바위 약사여래불과 같은 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되며 갓바위 약사불은 갓을 쓴 남성상의 모습이며 불굴사 약사불은 쪽두리를 쓴 여성상의 모습을 하고있어 부부라는 설화도 있다. 불굴사쪽은 음지이며, 갓바위쪽은 양지인것으로 보아 음양의 이치에 맞춰 조성했음을 알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불굴사의 약사여래불은 갓바위의 두꺼운 느낌에 비해 둥글고 선이 한층 부드럽다. 약사보전의 편액 족두리 쓴 불굴사석조입불상(佛窟寺石造立佛像). 서 있는 모습의 이 불상은 머리부분이 몸에 비해 다소 크게 조각되어 있다. 머리에는 굵고 둥근 육계가 솟아있고, 머리모양은 별 장식이 없는 민머리 형태이나 얼굴과의 경계는 뚜렷하게 구분지었다. 얼굴의 입, 눈, 코, 귀는 훼손되어 큼직한 얼굴에 맞게 다시 새겼고, 굵은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으며 양어깨에 걸쳐 입은 옷이 발목까지 덮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손은 손바닥이 앞으로 향한 모습이나 왼손은 없어져서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다. 지금은 수리하여 보주를 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불상의 뒷면에도 옷주름이 뚜렷하게 표현되었고, 목 아래쪽과 머리쪽에 큰 구멍이 있어 광배를 부착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땅 위에 있는 화강암의 바위에 받침대를 조각하고 그 위에 불상을 세운 형태이다. 받침대는 2단으로 되어 있는데, 아랫단은 네모난 형태이며 각면에 안상을 새겨 놓았고, 윗단은 둥근 형태로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았다. 이 석불입상의 규모는 전체높이 233㎝, 어깨폭 75㎝, 머리높이 53㎝이다. .적멸보궁 우측의 요사채를 돌면 홍주암가는길 안내판과 홍주암 굴법당이 150m 우측에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요사채 앞마당을 우로 돌아... 홍주암 108계단 공덕비와... 홍주암의 내력과 설화를 새긴 안내판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노라니... 우측으로 높다란 바위 벼랑이 올려다 보인다. 불굴(佛窟)이 있는 곳이다. 돌계단에서 철계단으로 바꿔 가파르게 오르면 붉은 글씨의 홍주암 각자가 나타난다. 굴안엔 부처님이 계시고... 삼라(森羅)를 굽어보고 계신다. 새긴 연도는 그리 오래돼 보이지는 않지만 깎아지른 절벽 숨은 굴속에 원효와 김유신의 설화도 함께 깃들어 있다. 반라의 몸에 천의를 두르고 팔을 들어 왕성한 힘을 강조하는 모습의 인왕상(仁王像)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굴안의 약수는 원효와 김유신도 수도 중에 마셨다고 한다. 더 위로 철계단을 오르면 굽은 소나무가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하니,홍주암 오르는 길은 자기를 낮추지 않으면 오를 수 없는 길. 좁은 철계단을 마지막으로 올라서면... 독성전(獨聖殿)이 나온다. 독성(獨聖)을 나반(那畔)존자라 부른다. 홀로 깨닫기는 하였으나 독거수행자(獨居修行者)일 뿐 적극적으로 타인을 설법 교화하지 않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수행의 모습. 한편 독성을 단군으로 보는 견해는 민간 신앙의 대상이었던 산신이나 칠성을 산신각이나 칠성각에 모시는 것처럼 독성각에 안치된 독성은 민간 신앙의 대상이었던 단군이라는 이야기다. 불교와 민간 신앙의 결합으로 보면 되겠다. 독성전에선 이제 더이상 오를 곳은 없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마침 날씨는 개였고,반듯한 건물은 '강남요양병원'건물. B팀을 올려보내기 위해 기웃거려 보았지만 위로는 길이 없다. 다시 철계단을 타고 내려와서... 철계단이 끝난 지점의 우측으로 열려있다. (사진은 내려서서 돌아본 모습) A팀들은 무학산을 오르기 위해 홍주암을 내려서면서 무학산 오름길을 살핀다.(하얀 동그라미의 입불상이 보인다.) 당겨본 모습. 다시 불굴사 절마당을 들어와 적멸보궁과 약사보전 앞마당을 가로질러 불굴사 좌측 화살표방향으로 오른다. 승용차 몇 대가 대있는 작은 주차장에서 올려다 보면 보이는 들머리. 돌아본 불굴사. 철문이 열려있는 직진길은 폐암자가 된 듯 아래의 녹슨 간판(백설암 600m)이 붙어 있다. . 간혹 만나는 기암을 지나... 아까 아래에서 본 석불을 지난다. 싸리버섯이 특이하게도 살아있는 소나무에 붙어있다. (미옥씨 수확품) 에게게?? 이걸 송이라고~~ㅉㅉ . (현자씨의 엉터리 ㅇㅇ품) 갈림길에선 능선을 고집한다. 이제 비는 멎었고,산길엔 안개만이 자욱히 깔렸다. 능선에 올라섰더니 무학산 갈림길이다. 일행들이 가는 길은 무학산 방향이고,오른쪽 길은 환성산 가는 길. 딱 30분만에 무학산 정상에 섰다. 엄산과... 교대를 하며 기념촬영을 하고... 무학산 표석을 살핀다. 표석의 뒷면 벌써 가을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무학산 정상의 억새. 억새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포도송이 같은 식물은 외래종이 아닌 순수 토종이라던데... 무학산 정상에서 U턴을 하여 아가 올랐던 갈림길에 돌아왔다. 또다른 불굴사 갈림길 안내판. 그 새 비는 멎어 있다. 솔숲으로 이루어진 융단같은 산길. 마사토로 이루어진 산길은 비만 멎으면 까실까실 걷기 좋은 길. 홍주암 갈림길을 오르기 전에 안부에 내려섰다가... 한 차례 힘을 쓰면 B팀이 올라온 홍주암갈림길(645봉)에 닿는다. 홍주암 갈림길의 푯말. 645봉엔 '송이버섯 지킴이'들의 쓰레기와 텐트가 나뒹굴고 있다. 조금 아래의 기막힌 전망대 너럭바위에서 막 식사를 끝낸 B팀들과 해후한다. 식사를 마치고 산하를 더듬어 보지만 조망은 꽝. 10여분만에 C팀이 내려간 환성사 갈림길을 만나고... 환성사 푯말이... 두 개나 붙어 있고... 우리는 일렬로 줄지어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평이한 산길을 타박타박 걷는다. 622암봉에 오르자 '백하수오'님도 만나... 우리는 또 간다. 순간 팔공산에 구름이 걷히는 줄 알았더니 다시 몰려오고... 히프바위도 지나고... 송이버섯바위도 지나며... 쪼개진 수박바위도 지난다. 그리고 만난 갓바위(능성고개)갈림길. 좌로 90도 꺾어지는 갓바위갈림길의 이정표와... 무학산,환성산 푯말. 고개를 내려서면 환성사계곡으로 내려가는 십자로를 만나고, '백하수오'님은 여기서 탈출.(직진은 환성산 정상,좌측으론 환성사계곡,우측으론 도림사,) 다른 각도에서... 환성산을 향하다 능선에 올라서 우측으로 살짝 비켜선 전망바위에 서서 혹시나 하였지만 역시나였고... 시설물이 있는 환성산에 올랐다. B팀으로 올라와 A팀에 합류한 최회장님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였다. 감투를 닮아 감투봉으로도 불리는 환성산에서 기념. 그리고 감투바위로 올라 봤지만 아쉬움만 커지고... 내려서서 다시 돌아 보지만 쉽게 열어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의 작은 스카이뷰. 환성사를 가리키는 방향의 능선길은 송림능선. 우측으로 지난날 답사한 초례봉이 안개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편안한 송림길을.. 걸을 때는 전화기를 잠시 끄놓으셔도 좋습니다. 룰룰랄라 가벼운 발걸음이... 경쾌하고... 사뿐이 날아갈 듯 가볍다. 첫 임도에 내려서서... 20m 지점에서 다시 좌측 산속으로 내려서면 작은 계곡을 끼고 내려서는 길. 다시 임도로 내려서면... 임도 우측으로 '송이버섯 지킴이' 텐트인 듯하고... 아스팔트포장 도로를 조금 걸으면... 극락교 앞에 우리 버스가 대 있다. 일행들께 손을 함 흔들어 주고,우리는 환성사를 향하여 극락교를 건넌다. 환성사입구 표석. 극락교에서 계곡을 내려다 보니 마침 내린 비로 수량이 풍부해졌다. 넓은 부지의 황량한 환성사와 특이한 일주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환성사 일주문의 특이한 돌기둥. 일자로 나란히 세워진 석주(石柱)는 동래 범어사와 닮았다는데... 환성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835년(흥덕왕 10) 심지왕사가 창건한 절로 고려말 화재로 소실된 것을 그뒤 중창했다. 1635년(인조 13) 신감대사가 중건하고, 1898년 긍월대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월루 밑을 지나면 석탑이 있는 안마당에 이르는데 정면에는 마당보다 한 단 높은 터 위에 대웅전(보물 제562호)이 세워져 있으며, 서쪽에는 심검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이 있고, 맞은편에는 요사채가 있다. 이밖에 성전암과 산신각이 있다. 일주문을 돌아 보아도 앞뒤 쪽 어느 곳에도 편액이 걸려있지 않다. 우측으로 보이는 웅덩이는 용이 산다는 용연(龍淵) 용연 각자는 무상거사가 최근에 썼다. 고목을 지나며 돌계단 위를 바라보니 2층 누각인 수월관(水月觀)이 올려다 보인다. 물 위로 두둥실 떠있는 아름다운 달빛을 바라본다하여 이름 붙여진 환성사의 수월관은 정면 다섯 칸짜리 팔작지붕의 다락집으로 누각을 겸한 절의 문루다. 1층 문루를 지나면... 날아갈 듯 사뿐한 팔작지붕의 대웅전이 버티고 섰다. 보물 제562호인 환성사대웅전은 앞면 5칸, 옆면 4칸으로 막돌로 쌓은 석대 위에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앞면의 기둥 사이에는 정자살 분합을 달았고 양 옆면의 첫 칸에만 정자살 문을 달았는데, 현재 우측은 문틀을 그대로 둔 채 토벽으로 처리했다. 공포는 평방 위에 주두를 놓고 외삼출목·내사출목의 포작으로 된 다포계 양식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서까래의 치목기법은 끝을 훑었는데 마구리가 타원형이고 부연은 운두보다 폭이 넓으며, 평교대와 착고막이는 하나의 나무로 되어 있는 고식이다. 환성사삼층석탑은 기단 부분은 전형적 통일신라시대의 모습이지만 삼층석탑의 아랫부분이 없어진 상태로 보이고, 그 앞엔 석등의 받침인 듯. 안내판 강당건물인 '환성사심검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4호)· 모든 번뇌를 베어 버릴 수 있는 지혜의 보검을 찾는다는 심검당(尋劒堂)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맞배지붕 건물.
공포는 외목(外目)이 있는 주삼포계(柱三包系)로서 전면의 처마는 겹처마이고, 후면은 홑처마로 되어 있다.
심검당 현판에 ‘도광4년갑신추파서(道光四年甲申秋波書)’라 쓰여 있는데, 도광 4년은 조선 순조 24(1824)년이다. 그러나 창건 당시의 현판은 아니다.
성화연간(成化年間, 1465∼1487)에 건립된 개심사심검당(開心寺尋劍堂)과 유사하며 은해사거조암영산전(銀海寺居祖庵靈山殿, 국보 제14호)보다
1세기경 뒤진 것이므로 조선 전기의 건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은 1976년 해체, 중수되었다.<자료인용>
절마당 한복판에 덩그러니 서있는 석물.
이것은 절에서 각종 야간 행사를 할 때 어둠을 밝히기 위해 장작불을 올려놓기 위해 만든 돌로 정료대(廷燎臺)또는노주대(爐柱臺)라고한다
법당 내부의 가구는 매우 장중하며 천장은 우물천장이다.
뒷벽 천장에는 운궁을 장치하고 그 아래에 불단을 설치했는데, 불단의 목공예적 장식이 매우 아름답다.
불단을 수미단(須彌壇)이라고 하는데,나무나 금석 또는 돌로써 수미산 형태의 단을 만들고 그 위에 불상을 안치하는 대좌를 말한다.
사찰의 법당 내부 정면에 안치하게 된다.
수미단의 디테일한 면을 가까이 잡아보면 각종 꽃나무 아래에 온갖 동물들의 모습을 새겼다.
옛사람들의 섬세한 손길이...
세밀한 부분까지 미치고 있고,
조각의 형태는 아주 난해한 추상화를 보는 것 같다. 합장하고 살며시 물러나...
명부전과...
사찰 경내를 둘러본다.
수월관 문루에서 내려다보는 용연과 고목.
환성사 넓은 부지 중앙에 모여있는 부도와 비석(유공비)들을 보며...
다가가보면...
이끼낀 석불 한 기와...
'하양현서팔공산환성사유공비'라고 시작하는 비석엔 '가선대부'란 벼슬이 나오고 '오십여답3두'등 구체적 물품들도 나온다.
뒷면엔 좌측에 '숭정기원101년세사무신'이라 적혔는데,숭정(崇禎) 101년이면 1728년 무신년을 말한다.
환성사 서쪽 방향 임도의 연못엔 연이 자라고 있고,차량통제 휀스를 넘어 조금 위로 오르면 성전암으로 오르는 들머리가 있다.
극락교 아래의 환성사계곡으로 내려선다.
상류쪽은 선녀탕이므로 나는 극락교 하류쪽에서 옷보따리를 풀었다. 오전까지 내린 비로 인하여 계곡수량은 불어 있다.
심신을 정화한 후 의관을 챙겼다.
그리고 차량이 주차된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느긋한 뒷풀이를 즐긴다.
<펌> 여기에서 2km를 나가면 갈림길에 하마비(下馬碑)와 함께 '사이동(四而洞)'이란 비석이 있다.
지금은 옮겨진 '금호서원'과 관련된 것으로 당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으며 지었다는 지명이다.
두타산에서 의식주에 연연하지 않는 두타(頭陀)의 진리를 살폈고,사이동(四而洞)에서 천국(天國)을 만난다.
ㅇ일출이작(日出而作): 해가 뜨면 일하러 가고,
ㅇ일입이식(日入而息): 해가 지면 편히 쉬며,
ㅇ착정이음(鑿井而飮): 샘을 파서 물마시고,
ㅇ경전이식(耕田而食): 밭을 갈아 밥을 먹는다.
너무나 아름다운 글귀를 대하고 필부(匹夫)의 본(本)을 삼으러 한다.
해뜨면 일어나 일하러 가고,해지면 집에 와 한 잔 술에 밥말아 먹을 수 있다면 천국이 따로 있을까?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을 배고 누웠으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지 아니한가?
비 개인 오후 문뜩 바라본 파아란 하늘과 새하얀 새털구름이 너무 아름답다.
예를 들자면 말여 <최 재 경>
쑥국새가 울다가 슬며시 사라졌다면 말여
속앓이하던 깨구락지 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말여
어지간히 여름이 시작되었다는 얘기여
나절 가웃 자빠져서 민기작거리다가 뻔뻔하게시리
점심상 내오라고 성질부터 내는 꼬락서니 하고는
싸그랑 비가 내리다 말고
쨍볕이 내려 흐지부지 하루가 간다면
여름이 말여 솔찬히 익었다는 얘기여
찬물을 끼얹고도 끈적거리기는 매한가진디
옆댕이에 착 붙어서 수작을 부리는 거 하구
햇무리 구름이 뭉개졌다 새털처럼 흐트러지고
달개비가 피어나 어쩌자고 자꾸 피어나서
대추 같은 다래가 들큰하게 익어 간다면
이제 여름도 어쩌지를 못하고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여
억척으로 살다가도 걸핏하면 종일을 울거나
몇 날 며칠을 악을 쓰고 울다가
빈 껍질로 사라지는 매미 같다는 얘기여
예를 들자면 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