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사건 파기환송심 기자회견문]
서울고등법원의 유죄 판결, 해군의 성평등한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서울고등법원이 해군 여군을 강간한 가해자 상관에 유죄를 선고했다. 성소수자 여군인 피해자는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10년 두 명의 남성해군 간부에 의해 성폭력을 겪었고, 2017년부터 법정 투쟁을 시작했다. 1심 유죄, 2심 무죄,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는 공동대책위원회와 함께 만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피해를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싸워왔다. 이번 유죄 판결은 긴 싸움 끝에 얻어낸 값진 승리이다.
지금까지 가해자들은 단 한 번도 성폭력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피해자가 왜곡된 증언을 하고 있다거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성적 호감을 품고 있었다며 거짓 주장을 일삼았고, 강제추행을 ‘묵시적 합의’에 의한 접촉이라고 주장하며 폭력의 본질을 흐렸다. 성폭력을 부인한 것은 가해자뿐만이 아니다. 고등군사법원은 군대 내부 위계의 존재, 함정 내 유일한 여군이자 성소수자였던 피해자의 위치를 고려하지 않은 채 폭행 또는 협박을 입증할 수 없고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두 명의 가해자 중 첫 번째 가해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두 번째 가해자에 대해서만 파기환송을 결정하는 반쪽짜리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이러한 지난하고 불합리한 재판의 과정은 사법정의를 무너뜨리고 피해자의 존엄을 짓밟는 시간이었다.
이번 서울고등법원의 유죄 판결은 그동안 피해자에게 고통을 안겨준 2심의 무죄판결을 뒤집고 성폭력 사실과 그로 인한 피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환영할 일이다. 사법부의 정의로운 판단은 피해자가 생존자로서 회복하고, 해군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또한 이번 판결은 군대 내의 성평등을 고대해왔던, 더 나아가 우리사회의 성평등과 법적 정의를 바래왔던 수많은 사람들의 승리이기도 하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206,477명, 대법원판결을 촉구하는 해시태그 운동에 참여한 12,066명, 대법원 파기환송 요청 탄원서에 서명한 8,666명과 1,652명, 파기환송심의 유죄 판결 요청 탄원서에 서명한 581명이 바라왔던 결과가 드디어 현실이 된 것이다. 법원이 앞으로도 성폭력 사건에 대한 상식적인 판결을 이어나가기를 고대한다.
그러나 해군 내 성평등한 변화는 이제 시작이다. 2023년 1월 26일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의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한 대처가 강화되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지금 이 시점에 유엔 인권이사회가 특별히 군대를 지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번 사건은 군대 내에서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성폭력 중 세간에 알려진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2021년 공군 내 성폭력 사건을 통해 알려졌듯이 군대조직 내부에서 많은 성폭력 사건이 은폐되고, 피해자는 그 속에서 고통받고 있다. 해군을 비롯한 국방부는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군대 내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또한 그에 앞서 성폭력 없는 성평등한 군사 문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과 같이 피해자가 오랜 시간 고통과 부정의한 법적 절차에 갇히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의롭고 성평등한 군대 문화를 위한 반성폭력 운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23. 2. 10.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및 기자회견 참여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