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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하는 자와 미혹을 당하는 자
[1] 미혹하는 자의 유래와 그의 왕국
사람을 미혹하는자는 피조물로서 본래 아름답고 지혜도 있었으며 완비하고 힘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했기 때문에 죄를 범하여 타락했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사 12:13-14). 그가 그의 '나'를 높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벧후 2:4) 지키게 하셨다. 사람을 미혹하는 자는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는 죄를 범하여 타락했기 때문에 사람을 미혹할 때도 그는 '하나님과 등등하게 됨'을 그의 낚시의 미끼로 삼는다(창 3:5-7).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교만해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딤전 3:6) 두렵다. 여기서는 양쪽 곧 마귀와 우리가 함께 있다. 만약 우리가 그와 나뉜다면 그는 그이고 우리는 우리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자원하여 그리스도를 '나'로 삼아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는 의지를 사용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한다. 만일 '옛' 나를 삼는다면 나는 그리스도와 둘로 나누어진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있을 수록 사람을 미혹하는 자의 일을 더욱 이해하게 된다. 이제 그에 관한 다음 항목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그의 이름
요한계시록 12장 9절에 그에 대한 네 가지 이름이 있다. '큰 용'은 그의 '잔인함'을 말하고 '옛 뱀'은 그의 '속임수'를 말하며 '마귀'는 그의 '유혹'을 말하고 사탄은 그의 '원수 됨'을 말한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 있는 세상 신은 그가 '세상 종교의 우두머리'라는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 14장 30절에 있는 '세상임금'은 그가 '세상 권세들의 머리'라는 것을 말한다. 에베소서 2장 2절의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머리'라는 말은 그가 '흉악한 신의 왕' 이라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12장 10절은 그가 '형제들을 참소하는 자'라고 말하며, 9장 11절은 그가 '무저갱의 사자'라고 말한다. 그는 '깨어 있지 않고 조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우는 사자'(벧전 5;8)와 같지만 깨어 있는 믿는 이들에게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후 11:13-15).
(2) 그의 왕국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 5:19)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천하 만국 … 모든 권세와 그 영광 …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눅 4:5-6)라고 한 말은 모두 헛된 말이 아님을 볼 수 있다. 누가복음 11장 14절부터 18절까지와 20절 부터 24절까지에서 우리는 사람도 마귀의 왕국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그의 정부와 졸개들
요한계시록 2장 13절을 읽는다면 그의 거처가 거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베소서 6장 12절을 읽어볼 때 어떤 것들이 그의 군대인지를 알 수 있으며, 다니엘 10장 13절과 20절에서 그의 졸개들의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는 그의 종들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다.
(4) 그의 종교
사탄도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 종교는 혼잡한 영으로 하나님을 경배한다. 요한계시록 2장 9절은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탄의 회당에서 그들이 말한 것은 훼방의 말이요, 시비를 다투는 말에 불과하다. 아! 오늘날 사탄의 회당이 얼마나 많은지! 비평과 의심과 조롱과 훼방이 가득한 것이 바로사탄에 속한 종교이다. 고린도전서 10장 20절과 21절에서 귀신에게 제사하고 귀신의 잔을 마시는 것에 대해 말한대로 우리는 사탄의 종교 안에도 제사와 교통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디모데전서 4장 1절부터 4절까지에서 '귀신의 가르침'에 대해 말한다. 이 네 구절을 자세히 읽어 본다면 우리는 최근의 배도와 배교의 상황이 성경 말씀에 부합되고 오늘 이 세대가 참으로 말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귀의 교리를 믿는 사람은 귀신의 가르침인 줄 모르는 채 그것을 전파한다. 이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① 사탄이 사람의 마음속에서 조종하지만 사람사람들은 이것을 모른다.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악령이라"(엡 2:2, 원문 참조).
②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한다.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고후 4:4).
③ 거짓된 안전을 준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지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눅 11:21). - 사탄의 권세 아래 복종하는 사람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 안전은 아무 일 없는 안전일 뿐 그리스도의 참된 안전과 복락이 아니다.
④ 사람들에게 은밀한 가운데 진리를 반대하게 한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 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 2:25-26). - 오늘날 진리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적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은 사실상 마귀에게 미혹된 것이요 마귀의 올무에 떨어진 것이다!
[2] 미혹하는 자와 미혹을 이긴 자
(1) 이긴 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미혹하는 자를 이긴 다른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요일 3:8). "여자의 후손은 네(뱀-사탄)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 - 그리스도는 승리자로서 마귀의 일을 멸하셨고 뱀의 머리를 깨뜨리셨다. 그리스도는 이미 승리하셨다. 항상 이 사실을 시인하고 자신을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지속적으로 이기게 된다. 자주 입의 증언하는 말로 사탄에게 증언하라(계 12:11). 그리스도를 승리자로 여기는 것을 사탄은 가장 두려워한다. 이러한 간증은 그를 도망가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승리하셨다(막 1:24, 27, 3:11). 할렐루야! 주님을 찬미하자!
(2) 승리의 장소
골고다 외에 사탄을 이긴 또 다른 장소가 있는가? 골고다의 십자가는 사탄과 그의 권세를 궤멸한 장소이다. 골고다의 승리는 오늘날에도 그 위력이 여전하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4-15).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시 2:14). 대부분 사람들은 주 예수님의 못 박히심을 그분의 실패로 보지만 그곳에 바로 그분께서 승리한 장소일 줄이야! 양쪽 군대가 맞서 싸우지 않고 승패를 결정할 수 있는 전쟁은 없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뿐 아니라 또한 죽음에서 부활하셨다. 그분은 죽음에 들어가서 사망과 싸워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다. 이로써 승리의 큰 업적은 완성되었다. 만약 주님께서 죽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사탄을 패배시켰다고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죽음은 사망의 권세 잡은 사탄과의 싸움이었고 이 싸움을 통해 그분은 사망의 권세 잡은 사탄을 이기셨다. 주님의 부활은 바로 그분의 승리의 근거이다. 그리스도께서 골고다를 향해 나가실 때 그분은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은 이미 골고다에서 패배당했다. 다른 곳에서 사탄과 싸운다면 모두 실패하고 말것이다. 그는 오직 골고다에서만 실패했고 또 영원히 골고다에서 실패할 것이다. 그러므로 골고다의 어린양과 연합하여 골고다의 승리의 기초 위에 서 있는 사람 - 다시 새롭게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유일한 승리를 현재의 싸움에 나타나게 하는 것임 - 은 모두 승리할 것이다. 실패는 자기를 의지한데서 비롯된다. 승리는 골고다 위에 서 있을 때 얻어진다. 골고다는 승리의 장소이다! 골고다는 우리의 집이다! 우리가 더 이상 무엇을 두려워 하겠는가?
(3) 사자가 전파하는 전사
우리는 주님의 사자로서 골고다의 승리를 전파하고 그리스도를 승리자로 전파한다.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행 26:17-18). 골고다의 승리는 오늘날에도 그 효능이 여전하다. 우리 구주 예수는 승리자이시다. 사탄은 패배자로서 더 이상 내게 권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4) 감금된 자가 해방됨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그리스도는 이미 승리하셨고 지금도 그분은 승리하고 계신다. 지금 그분의 나라 안에 있는 우리들은 이미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어 졌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확실히 믿는다면 흑암의 권세는 당신에게 임하지 않는다. 무시로 믿음과 의지로 이 위치를 선포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이 위치에 있도록 우리를 보호하는 좋은 방법이다.
(5) 그리스도인의 승리
그리스도는 승리자이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면 우리도 역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매일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눅 10:19-20)한다고 말씀하셨고 우리가 '그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 때문이다'(막 16:17, 행 16:18, 19:15).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리가 항상 주님 안에 거하고 범사에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다면 사탄은 언제나 패배할 것이다.
[3] 미휵하는 자의 궤계
비록 사탄의 궤계가 많을지라도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고후 2:11)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궤계에는 어떤 용도가 있는가? 안타까운 것은 우리 중 그의 궤계를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그것을 경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셩령을 통하여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사탄의 궤계는 하나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힘을 의지하여 사탄의 궤계를 무효화해야 한다.
(1)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 대한 모략
만일 여기에 설교를 아주 좋아하는 아직 구원받지 않은 한 무리가 있다 하자. 사탄은 그의 도적 행위로 그 말씀을 훔치려고 한다. 성경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라고 말한다(눅 8:12). 마귀가 두려워하는 것은 말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전파할 때 우리는 무분별하게 말해서는 안 되며 영적 능력을 잃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마귀가 말씀을 본 즉시 가져가기 때문이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과 장래에 구원받으리라고 믿는 사람과 말씀에 대해 흥미가 조금도 없는 사람들의 생각은 이미 마귀에 의해 혼미케 된 것이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고후 4:4).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마음의 눈이 열려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말씀이 자라고 열매를 맺도록 기도해야 한다.
(2) 이미 구원받은 사람에 대한 궤계
ⓐ 그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지 못하게 함(행 5:3)
하나님은 시기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분께 온전히 드리기를 원하시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이 자기를 위하지 않으며 그분께 드릴 것을 자신을 위해 어떤 것도 남겨 두지 않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사탄은 사람이 완전히 다 드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럴 때 사탄은 그가 일할 여지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이 부부는 그들 마음에 사탄이 가득했기 때문에 얼마를 감추었으면서도 완전히 다 드렸다고 말했다. 오늘날 많은 믿는 이들은 헌금하지 않는 것은 합당치 않은 일로 여기지만 다 드리자니 대가가 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때로 사람들은 자기를 속이고 남을 속여 자신을 위해 얼마를 숨겨 놓는다. 그들은 나머지를 하나님께 드리면서도 완전히 드렸다는 이름을 얻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마음속에 이미 사탄이 가득한 것을 모르고 있다! 이 메시지를 읽는 믿는 이들은 자기 자신을 온전히 드렸는지를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 그들이 더러운 옷을 벗는 것을 저지함(슥 3:1-3) 탕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가 그에게 입혀 주라고 했다(눅 15:22). 이 탕자는 아버지의 집에 왔을 때 더 이상 걸인의 옷을 입을 수 없었다. 의복은 의(義)를 나타낸다. 마귀는 사람들이 낡은 의를 벗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는 종종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 이 외에 다른 의를 세우게 한다(롬 10:3). 우리는 오늘날 대부분의 도덕가들이 주장하는 희생적인 의를 벗어 버리고 주 예수님을 의로 옷 입어야 한다. "사탄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슥 3:1-3) 사탄은 우리가 '이전에' 가졌던 의를 벗어 버리는 것을 싫어한다. 주 예수님의 의를 의지하여 구원을 받았을지라도, 믿는 이들은 그들이 '이전에 '가졌던 의를 제하기를 원치 않는다. 천연적으로 더러운 의복도 의복이다. 또한 의가 더러울지라도 의는 여전히 의인 것이다. 사탄은 믿는 이들이 자아의 힘으로 선을 행하게 하고 이전에 가졌던 의로운 행실을 부추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의 칭찬을 얻게 한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낡은 의복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형편없이 더러운지를 모른다! 우리의 의로운 행실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사탄은 우리가 혼을 사용하여 영의 요구를 실행하게 한다. 우리는 이것을 조심해야 한다.
ⓒ 혈기의 시기와 다툼 안에서 일하게 함(약 3:14-15) 사탄은 그리스도인이 하나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제자 두 사람이 하나 되려고 할 때에 사탄은 그들을 꼭 둘로 나눈다. 제자 셋이 상합하려고 하면 그는 그들을 이간한다. 더 많이 상합하려고 하면 할 수록 더더욱 흩어놓으려고 애를 쓴다. 그는 믿는 이들이 협력하여 일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마음에 시기와 분쟁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육체에 속한 일뿐 아니라 영에 속한 일들에서도 믿는 이들이 서로 시기하고 분쟁하게 만든다. 당신의 영성이 나보다 낫다거나, 당신의 설교가 나보다 더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다거나 교리에 있어서 의견을 서로 다르게 함으로써 시기와 분쟁을 야기한다. 고통스럽고 독이 들어 있는 이 분쟁은 사람 속에 있는 것이다. 밖으로는 이것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이것은 얼마나 위험스러운 것인지!
ⓓ 그들을 이용해서 십자가에 가지 못하게 저지함(마 16:22-23)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당신을 불쌍히 여기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2_23). 마귀가 패배한 곳은 바로 십자가이다. 그러므로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이 십자가로 가서 골고다의 승리를 얻는 것이다. 여기서 사탄은 감히 우리 주 예수님을 시험하여 그분께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마 16:23). 마귀가 사람을 십자가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는 데에 곧잘 사용하는 것은 인정(人精)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 길은 너무 어렵고 고되며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를 긍휼히 여기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면 결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수 없다. 자기를 긍휼히 여기는 것이든 남을 생각해 주는 것이든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손상을 입힌다. 사람이 성공할 때 사탄은 그 사람 속에 아주 쉽게 자신의 것을 불어 넣는다. 자애, 자기 존중, 자기 연민은 모두 십자가와 등을 지는 것이다. 주저함, 동정함, 두려워함 등은 골고다와 모두 상반된 것들이다. 자기를 연민하는 것과 인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사람이 십자가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사탄의 방법이다. 사탄은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음에서 부활(마 16:21)하는 것을 두려워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십자가로 가는 것을 애써 저지한다. 그러나 십자가 외에 다른 길들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정하신 바가 아니다(살전 3:3). 오늘 당신은 대체 어떤 길을 가고 있는가?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보고 그 주위를 맴돌며 못 박히기를 원치 않는다.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난을 면하고 안락에는 처했을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상실되었다! 만일 그들이 실제로 죽는다면, 그들은 실제로 부활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사탄은 설 땅이 없을 것이다. 마귀는 이것을 가장 증오한다. 사탄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죽고, 또 그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우리는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신뢰하며 자신을 죽음에 넘겨야 한다.
ⓔ 우는 사자같이 그들을 위협함(벧전 5:8) 마귀는 흑암 가운데서 사람을 미혹할 뿐 아니라 근신하지 않거나 깨어 있지 있은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을 삼키려고 한다. 마르틴 루터의 임종시 사탄은 그의 죄들을 책으로 써서 그가 구원받은 것을 의심하도록 그를 위협했었다. 그러나 루터는 결국 주님의 은혜로 사탄을 이겼다. 이런 것을 통해 우리는 사탄이 자주 우리가 가장 나약해 보일 때 위협하고 삼키려고 한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사탄이 하는 큰일들 중의 하나이다. 사탄의 계획은 먼저 소리로 사람을 탈취하는 것이다. 사자가 우는 소리로 짐승들을 위협한 다음 삼키듯이 사탄도 믿는 이들을 위협하여 두려워하게 하고 실패하게 한다. 많은 때에 그는 위협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의 모든 것이 위협에 불과하다는 것을 본 사람은 그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위협에 떠는 사람은 대개 그 위협에 속게 된다. 우리는 자주 헛되게 놀라지 않는가? 그럴진데 우리가 왜 그를 두려워하는가?
ⓕ 그들을 교만하게 함(딤전 3:6) "교만해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을 믿은 후 영성에 진보도 갖고 일에 열매도 있게 된다. 이때 사탄은 기회를 잡아 공격하는데, 곧 그를 교만하게 하여 넘어지게 한다. 이따금 전쟁에 능한 장군, 대부흥가도 이러한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는 것을 본다. 이것은 바로 사탄이 자주 사용하는 궤계이다. 사탄은 자주 하나님의 은혜를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약간의 은혜가 임할 때. 사탄은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게 하고 자신을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생각을 주입한다! 자신이 남보다 좀 특별해졌다고 생각하게 한다! 교만이 그의 본성이기 때문에 그는 사람을 교만하게 만드는 데 능하다.
ⓖ 그들이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 일하게 함(대상 21:1, 삼하 24:1) "사탄이 …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대상 21:1). 하나님은 다윗에게 인수를 계수하라고 명한 적이 없으시다. 그러나 사탄은 믿는 이들이 자기와 함께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다윗을 격동시켜 하나님의 뜻보다 앞서 일을 하게 했다. 그는 믿는 이들의 진보를 저지하거나 아니면 너무 지나치도록 그들을 밀어 댄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조심성이 부족하므로 모든 감동이 성령에게서 비롯된다고 생각할 뿐 사탄도 믿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수를 계수하는 것은 죄가 아닌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가게 할 때 마귀의 궤계가 이루어진다. '영적인 판단력'이 없는 믿는 이들은 때때로 어떤 격동이 있을 때 악한 일이 아니면 그 감동이 필시 성령이 감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일인가 악한 일인가를 보기 보다는 누가 준 감동인가를 보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결정된 것인가를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간 것들도 좋은 일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함(창 3:1) 창세기 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사람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창 3:1)라고 했다. 모든 성경은 모두 사탄을 공격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사탄은 이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의심하게 한다. 성경을 의심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이방인들이 아닌 소위 믿는 이들이라는 점은 정말 우리를 놀라게 한다! 마귀는 사람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게 한 다음, 마귀의 말을 믿게 하여, 결국 죄에 빠지게 한다(창 3). 이러한 일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도 계속 끊이지 않고 있다.
ⓘ 그들을 억압하여 질병을 앓게 함(행 10:38) 마귀의 궤계는 다양하다. 만일 그가 영성에 있어서 당신을 넘어뜨리지 못한다면 즉시 당신의 몸에 손을 대어 당신을 압제하고 병들게 하여 부활 생명을 누리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의 원대로 육신을 불안하게 하여 영의 견고함과 깨어 있음을 상실하게 만든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이 일시적인 부주의로 질병에 걸리는 것을 종종 본다. 마귀는 그리스도인이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을 멈추도록 병에 걸리기를 바란다.
(3)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사람에 대한 궤계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욥 1:8).
ⓐ 불화살을 쏨(엡 6:16)
강건한 그리스도인, 즉 주 예수님의 가장 우수한 군인들에 대하여 사탄은 쉽게 숨어서 유혹하지 못하고 정면에 맞서서 위협하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부류의 믿는 이들은 매우 강건하여 사탄과 힘 있게 싸울 수 있기 때문에 사탄은 그의 흉악하고 살인하는 본성(요 8:44)을 따라 불화살로 공격한다. 그 목적은 믿는 이들을 죽이고 온전히 해를 입혀서 다시 얼어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불화살을 제거하고 멸할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신실함을 믿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엡6:16)하는 것이다. 이것은 몸에 해를 입은 후에 믿음을 집게 삼아 맞은 화전을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방패삼아 화전을 막고 멸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원수와 나 사이에 방패가 있듯이, 마귀와 나 사이에 믿음의 방패를 두는 것이다. 그럴 때 원수가 방패를 지닌 사람을 상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방패를 통과해야만 한다. 만일 방패가 견고하다면 원수의 무기는 당신의 몸에 닿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과 싸울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믿음의 방패로 삼아야 한다. 사탄의 불타는 화살이 우리의 믿음의 방패에 닿을 때, 그 불은 꺼질 것이고 우리를 상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이 방패를 지닌 자는 전후좌우에서 오는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자신의 보호로서 신뢰하고 조금도 소홀하지 않는다면 마귀는 그의 계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 그의 올무를 침(딤전 3:7)
믿는 이들은 배회하지 말고 앞을 향해 신속히 달려가야 한다(빌 3:14). 마귀는 믿는 이들이 신속히 전진하는 것을 미워하기 때문에 은밀히 올무를 쳐서 그들을 넘어뜨린다. 달리는 사람은 무언가에 부딪힐 때 가장 쉽게 넘어지며 이렇게 넘어질 때 받는 상처는 다른 때보다 훨씬 심하다. 사탄이 간교한 올무를 도처에 둔 목적은 믿는 이들의 영성을 분궤(紛潰)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승리의 방법은 시편 25편 15절에 있다.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앙망함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처음 이 구절을 읽는 사람은 아주 특별하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올무가 가득한 땅 위를 달려갈 때는 올무를 주목하여 피해가야 하는데 여기서는 오히려 하늘의 여호와를 앙망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달려갈 때 지면에 쳐진 올무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우리는 마귀가 친 올무가 반드시 물질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이 어디에 설치되었는지도 쉽게 알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가 그 올무들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해도 그 올무를 벗어나려고 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앞을 향해 달려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하나님은 올무의 소재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발을 지켜주시고 푯대에 이를 때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우리를 보살펴 주실 것이다.
ⓒ 그의 궤계를 꾸밈(엡 6:11)
만일 사람이 그리스도를 선택하고 언제나 그분 안에 거한다면 마귀는 독소를 주입할 수 없다. 그러나 그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먼저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위치에서 나오게 한 다음 그리스도를 떠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에베소서 6장 11절 말씀을 사용할 수 있다. "능히 (마귀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믿는 이를 참소함(계 12:10)
사탄은 당신의 일거일동을 매우 주목한다. 그는 항상 우리가 자기와 함께 형벌을 받게 하기 위해 기회를 틈타서 당신을 참소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땅히 "어린양의 피로"(계 12:11) 저를 이겨야 한다. "그(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현재시제) 것이요"(요일 1:7). 예수의 피는 오늘날에도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 주님의 피가 우리의 속전일진대 사탄의 참소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만약 믿는 이가 뜻하지 않게 죄를 범하고 주님의 보혈로 새롭게 씻어 달라고 이미 구했다면, 그는 그 죄 때문에 사탄에게 참소할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
ⓔ 믿음을 부패하게 함(고후 11:3)
그리스도에 대해 우리는 마땅히 순결한 처녀가 남편을 대하듯 그러한 순결함과 청결함을 지녀야 한다. 마귀는 우리들을 더럽힘으로써 우리가 그리스도께 충성을 다하지 못하게하고 오히려 죄에 떨여지게 한다. 우리는 요한일서 2장 14절의 말씀을 사용하여 악한 자를 이길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이다(엡 6:17). 만일 우리가 성령의 검을 사용하여 마귀의 유혹을 반격한다면 그는 상처를 입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실 때 그분은 성경 말씀으로 사탄을 이기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자를 이기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해야 한다. 시험이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우리가 적절한 성경 말씀을 즉시 기억하고 온전한 마음으로 그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다면 원수는 패배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를 이긴다는 뜻이다.
ⓕ 광명의 천사로 가장함(고후 11:4) 만일 사탄이 깨어 있는 믿는 이들 앞에 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그들은 반드시 그가 사탄인 줄 알고 그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탄은 부지불식간에 사악한 미혹에 빠지도록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믿는 이들을 미혹한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과 성령의 인도를 가장하여 주님의 뜻을 행하는 데 열심을 품는 믿는 이들에게 그것을 주님의 뜻으로 착각하게 하고 서둘러 행하게 한다. 또한 그는 영접하도록 진리(옳은 것 같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음)로 가장한다. 이 점을 이기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성경은, "영들 … 시험하라 …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 4:1-4)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성령을 의지하여 거짓 영들을 이길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인도에 대해 그것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인지를 판정할 수 없다면 먼저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고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합당하다. "하나님, 당신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내가 행하겠고 사탄에게서 나온 것은 거절하겠습니다. 이 인도가 누구에게서 나왔는지를 증명해 주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주님은 반드시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 주실 것이다. 만약 우리가 언제나 이렇게 행한다면 우리는 강건한 영적 생활을 갖게 될 것이다.
ⓖ 힘을 다해 핍박함(계 2:10).
마귀의 간계는 모든 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믿는 이들의 전진을 저지하기 위해 각종 계략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가 성도의 영적 노정의 진보를 저지할 수 없을 때에는 투옥되게 하고 일을 하지 못하게 한다. 또한 그는 이것을 통해 그 믿는 이를 실족하게 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을 모두 사탄의 적수가 아니다. 왜냐하면 사탄이 치명적인 압박으로 그들을 위협할 때 그들이 그를 대적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님께 충성스러운 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록 도처에 사슬과 환난이 있고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거나 죽음 자체에 이를지라도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다면"(계 12:11) 결국 사탄을 이길 것이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사슬이 어찌 우리의 마음을 요동하게 할 수 있겠는가?
ⓗ 성도의 기도응답을 저지함(단 10:12-13)
"다니엘아 … 네가 …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을 들으신바 되었으므로"(단 10:12). 다니엘이 기도를 마치기도 전에 벌써 응답이 임했다. "그런데 바사국 군이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여기서 사탄이 성도의 기도응답을 어떻게 저지하는지를 볼 수 있다. 기도응답을 받기 전에 다니엘이 이십일 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해야 했다. 다니엘에게 너무 견디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오늘날 사탄은 믿는 이가 낙심하도록 바로 이렇게 믿는 이의 기도응답을 저지한다. 우리는 누가복음 18장 1절 말씀을 적용하여 이것을 이길 수 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 구하는 것을 끝까지 굳게 붙잡을 때 결국은 이기게 된다. 어떤 사람은 기도할 때에 믿음이 있다면 한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놓치지 않고 꼭 붙잡는 기도도 크나큰 믿음이 요구된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응답이 이미 나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바로 그때 큰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낙심치 말고 기도해야 한다. 도리어 하나님께 '마귀의 일을 없이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과녁을 맞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응답받지 않는 한 포기하지 않겠다는 태도로 굳게 붙잡고 기도한다면 원수가 저지하려고 할지라도 하늘의 사자들은 우리를 위해 싸울 것이다!
[4] 어떻게 미혹하는 자를 이길 수 있는가?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계 21:7).
(1) 이 싸움이 우리와 마귀와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마귀의 싸움 임을 인식해야 함
마귀는 자연계를 초월해 있고 우리는 자연계 안에 있다. 게다가 우리는 혈과 육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흑암의 권세 잡은 자와 싸우는 것이다. 자연계 안에 있는 사람이 초자연계에 있는 영적인 능력과 싸울 때, 패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그와 싸우시도록 간구하는 싸움이고 하나님의 전능하신 힘을 나의 힘으로 삼는 싸움이다. 전투가 있을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과 마귀의 전투임을 인정해야 한다. 단지 우리는 의지속에서 하나님의 승리를 택하고 사탄이 이익을 취하는 큰 힘으로 사탄을 공격한다면 사탄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로마서 16장 20절은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라고 말한다. 사탄은 주 예수님의 발아래 있다. 만일 우리가 주님과 연합했다면 사탄은 역시 우리 발아래 상하게 하실 분은 평강의 하나님이시다.
(2) 정죄를 피하기 위해 항상 예수의 보혈 아래 머무름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보혈이다. 주님께서 피를 흘리심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머리가 부서졌다(창 3:15, 원문 참조). 믿는 이들이 주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로마서 6장 11절의 태도를 취할 때 사탄은 곧 패배한다.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로 … 인하여 저(사탄)를 이기었으니"(계 12:11). 우리의 모든 승리는 주님의 피로 말미암는다. 믿는 이들이 원수의 공격과 참소를 받는 이유는 대부분 그들의 죄를 위한 여지를 남겨 두어 사탄에게 참소할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사탄이 우리를 공격하는 근거는 우리의 죄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사탄에게 지위를 내어 줄 수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원수의 참소와 참소 후에 있는 공격을 중지시키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격을 피하기 위해 마땅히 지속적으로 보혈 아래 머물러야 한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또한 우리에게는 죄를 속량한 보혈이 있다. 주님께 감사드린다. 그분의 보혈은 나를 구원받게 하였을 뿐 아니라 더욱이 나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원히 승리 가운데 있게 하였다.
(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적셔 질 때 곧 승리하게 됨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요일 2:14). 하나님의 말씀은 곧 성령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속에 거하게 한다면 일이 생기거나 위험이 닥칠 때 성령은 한두 구절의 성경 말씀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 그 성경 말씀은 그때 우리의 피난처로 변할 것이다. 우리가 그 안에 숨어서 그 말씀의 능력을 의지할 때 원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성령은 우리에게 능력과 담력을 더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성경 말씀을 생각나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능력이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속에 거하게 하고 충만하게 해야만 사탄은 손실을 입고 패배할 것이다.
(4) 우리의 의지로 그를 대적함
우리 속에는 의지가 있는데 이 의지는 배의 키와 같다. 만일 우리가 마귀에게, "나는 네가 내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권리를 네게 주지 않겠다"라고 말한다면 마귀는 반드시 물러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이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이러한 의지를 가지지 않았을 때 그 결과는 상반될 것이다. 우리가 한 면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다른 면으로 마귀를 대적할 때, 마귀가 비로소 우리를 떠나 멀리 도망가게 된다(약 4:7). 예를 들어 어떤 장사꾼이 당신에게 왔을 때 당신이 사기를 원치 않고 그 사람을 거절하는 의지를 가진다면 그는 자연히 떠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와 가격을 흥정하며 좀 싸게 사려고 한다면 결국 당신은 그 사람의 물건을 사게 된다. 오늘날 굳은 의지를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되는지! 마귀와 함께 가격을 흥정하며 싸게 해 달라고 할 때 당신은 즉시 마귀의 궤계에 넘어간다. 우리가 마귀를 대적하되 그에게 "너를 이긴 주 예수의 전능하신 이름으로 너를 대적하노라"라고 말해야 한다. 만일 이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믿음의 태도를 취하여 이미 사탄을 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하나님께서 필히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탄을 도망하게 할 것을 믿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사탄은 이미 도망갔고, 당신은 주님을 사랑함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사탄이 주님을 시험할 때 주님은 사탄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고 즉시 그를 대적하고 책망하셨다(마 16:23). 당신도 사탄에 대해 이렇게 예민한 느낌을 가져야 하고 대적하는 말도 이와 같이 강해야 한다.
(5) 하나님께 간 구하고 마귀와 협의하지 말아야 함
"미가엘이 …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 9). 많은 믿는 이들은 사탄의 활동이 시작될 때 즉시 하나님께서 그를 꾸짖으시도록 간구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들은 그의 그의 계책을 듣게 됨으로써 그를 대항하려 해도 이미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다. 사탄이 입을 열면 즉시 하나님께서 그를 꾸짖으시어 그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도록 그분께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즉시 그에게 꾸지람을 하신다면 그가 꾸지람을 듣고 격렬한 태도를 취할지라도 우리를 더 이상 어렵게 할 수 없음을 믿어야 한다. 전에 어떤 믿는 이가 "내가 보기에, 사탄이 하고 싶은 말을 하게 하고, 그런 다음에 들어봐야지 어떻게 대답할지를 알죠"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마귀에게 답변할 필요가 없고, 마귀가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도 허락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와처럼 될 것이다. 그녀는 사탄의 말을 들었고 그에게 대답했다. 그 결과 많은 고뇌와 죄악을 낳게 되었다. 우리는 사탄과 감정이 깨지고 그를 너무 잔인하게 대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사탄이 올 때 그를 꾸짖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항상 주 안에서 이기게 된다.
(6) 작은 일에서도 사탄에게 기회를 주어서는 안 됨
나는 많은 때 큰 일에 있어서는 사탄이 그의 궤계를 이루지 못하도록 조심할 줄 알지만 작은 일에 있어서는 대개 깨어 있지 않아 자주 실패하곤 한다. 혹 어떤 생각이나 말 한 마디 때문에 마귀의 궤계에 넘어간다.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큰 일에서도 충성되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7)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라"(딤전 5:14). 마귀에게 제조공장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는 결코 죄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만일 우리 마음이 그에게 조금이라도 틈을 준다면 그는 작은 틈일지라도 그곳에서 죄를 만들어 낸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부주의해서는 안된다. 마귀는 작은 일들을 통해서 사람의 온 존재를 공격한다. 마귀에게 틈을 준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우리의 불의와 마음속에 있는 그에 대한 두려움(즉 그를 대적하려는 적극적인 의지가 없고 도리어 그의 노를 격동케 할까 봐 두려워함이다, 이러한 여지를 없애지 않는다면 마귀는 절대로 우리 안에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다음 이야기가 기억난다. "어느 여행자가 들판에 장막 하나를 쳤다. 매우 추운 날씨에 밖에 있던 나귀는 먼저 자기의 머리를 장막 안에 넣게 해달라고 주인에게 부탁했다. 얼마 후 나귀는 또 자기 목 부분을 장막 안에 넣을 수 있도록 주인에게 부탁했다. 또 얼마 후 두 다리를 장막 안에 넣게 해 달라고 했다. 결국 나귀의 전신이 장막 안에 있게 되었고 여행자는 몸 둘 곳이 없게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나귀를 그 안에 두고 그 여행자는 장막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오늘날 믿는 이들이 작은 일들을 살피지 않을 때 적은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게 한다. 마귀는 틈만 있으면 공격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힘을 의지하여 우리 속에서의 그의 거점을 훼파해야 한다.
(7)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짐
"너희가 …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 이는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후 2:10-11). 남을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대개 마귀에게 틈을 내어 준다. 남을 용서하지 않는 영은 사탄에게 일한 문을 열어 주는 것과 다름없다. 만일 믿는 이가 영적 세계 안에 있는 일을 안다면 그는 남을 사랑하지 않거나 남을 용서하지 않는 일을 멈출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학대와 핍박이 사람들이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모든 말과 오해하게 하는 모든 말과 모든 강요 뒤에는 언제나 악한 영의 활동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사탄을 책망하고 그의 일을 파괴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은 우리로 넉넉히 이기게 한다.
(8) 특별히 말을 조심함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마 5:37). 마귀는 사람이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기를 원치 않고, 옳은 것을 아니라고 여기고 아닌 것을 옳다고 여기기를 원한다. 예전에 열심히 믿는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생각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옳은 것을 아니라고 여기고 아닌 것을 옳다고 여긴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결심도 해 보지만 결국은 안된다."주님을 믿기 전에 믿는 이들의 생각은 마귀에 의해 혼미하게 되었었다(고후 4:4). 그러나 믿은 직후 성령께서 그의 영 안에 들어오셔서 그를 비춤으로 그의 생각 속에 감춰진 것들이 점차적으로 제거된다(왜냐하면 주님을 믿지마자 모든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없기 때문임). 이러한 생각이 성령께 복종되고 드려진 후 사람의 생각은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게 된다(롬 12:2).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될 때(엡 4:22-23) 비로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다(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함). 설령 믿는 이들이 좋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생각 속에는 자주 부정한 사상과 진리에 순종하지 않는 뜻이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악한 영들이 밖에서 악한 생각들을 믿는 이의 생각 속에 주입하고 그 안에 거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때로는 악한 영들이 그의 생각을 미혹하여 중심에 있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고 아닌 것을 옳다 하며 옳은 것을 아니라고 말하게 한다. 오직 기도와 성령을 통해 온 몸을 다스릴 때만이 이러한 질병이 치료될 수 있다.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완전한 사람이다.
(9) 다른 사람을 접촉할 때 깨어 있음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갈 6:1).사람을 바로잡아 주기는 쉽지만 사람을 바로잡아 줄 때 생각속에서 말하지 않고 행위가 악한 자에게 치우치지 않기는 쉽지 않다. 많은 믿는 이들은 다른 사람을 이끌어 주다가 오히려 자기 자신이 그에게 끌려간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려다가 그 사람 자신이 오히려 그의 죄에 이끌릴 수 있다. 그러므로 주님의 일꾼들은 어디서나 사탄의 궤계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왜나햐면 감히 우리가 이미 위험한 위치에서 벗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단 하루도 없기 때문이다.
(10) 원수는 내 다스림 하에 있음을 항상 시인하라
"내가 너희에게 …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 원수가 가지고 있는 것은 '능력'이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권세'이다. 비록 우리 개인의 '능력'은 그보다 크지 못하지만, 주님에게서 받은 '권세'는 원수를 우리에게 복종하게 한다. 우리는 그와 '능력'을 가지고 싸울 것이 아니라 '권세'로 그에게 다만 명령하기만 하면 된다. '능력'은 '권세'를 이기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주님의 죽음과 연합하여 이 권세를 얻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순간순간 믿음으로 이 권세를 사용하여 사탄을 이기고 모든 흑암의 능력을 제어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어떤 상태도 제어하여 이길 수있다.
[5] 미혹하는 자가 받은 제한들
(1) 그 누구도 믿는이를 유혹치 못함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욥 1:12). "시몬아 … 사탄이 … 너희를 청구하였으나"(원문에는 획득하겠다고 묻는 뜻이 들어 있음. 눅 22:31). 매번 시험을 받을 때마다 우리는 모든 시험이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것이요, 그 시험 뒤에는 하나님의 손이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사탄이 직접 어떤 일을 우리에게 할 수 없으며 아버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사탄이 결코 자기 마음대로 우리에게 무엇을 더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믿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2) 하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
만일 우리에게 시험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을 신뢰할 것이다. 베드로가 마귀에게 밀과 같이 까부름을 당하기 전에는 자신을 아주 강하게 신뢰했었다. 그러나 밀 까부르듯 함을 당한 후에는 그는 자신의 무능함을 깨달았고 더 큰일 하기 위해서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자기 아버지와 함께 가다가 아버지를 따라가기가 싫어져서 아버지를 떠나 지기 마음대로 갔다 하자. 길을 가다가 뱀을 만나 상처를 입었다면 그는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가 아버지의 보호를 받으려 할 것이다. 만약 믿는 이들에게 시험이 없다면 그는 기꺼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가까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생명이 미성숙한 믿는 이들의 경우이다. 만일 우리가 도처에 우리를 유혹하고 해치는 영적 세계의 악한 영을 감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기를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할 것이다.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고후 12:7)라고 말한다. 우리 육체 안에는 선한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중 이 사실을 의식하고 시인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은 원수가 우리를 시험하도록 허락하신다. 때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고 자신을 신뢰하지 않도록 우리에게 실패를 허락하신다. 이것이 바로 욥의 체험이다. 게다가 이러한 시험이 없다면 우리는 체험에서 골고다의 승리를 실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시험이 있기 때문에 승리의 기회가 주어지고 골고다의 승리를 실천할 필요성과 가능성이 있게 된다. 우리가 시험의 참 의미를 알고 불가피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시험받도록 허락하신다. 고린도전서 5장 5절과 욥기 2장 3절을 읽어 보면, 이러한 시험을 주시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시험 자체는 죄가 아니지만 시험에 굴복하는 것은 죄이다(히 4:15).
(3) 유혹(시험)의 한계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서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진 10:13). 이 성경구절에서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일곱가지 요점이 있다.
ⓐ. 시험은 사람에게 일반적인 일이다.
- 어떤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환경과 위치에 처해 있으며 자신이 받은 시험 역시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이 시험이 사람에게 일반적인 것임을 모른다.
ⓑ. "하나님은 미쁘사"라는 말씀을 기억하라.
- 만일 하나님께서 실패하신다면 우리도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미쁘시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분을 신뢰하고 실패하지 말아야 한다.
ⓒ. 모든 시험은 다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 "사람이 감당할 시험" 곧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험은 그리크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의 때에 우리는 마귀가 임의대로 행하게 수동적인 위치에 서지 말아야 한다.
ⓓ. 모든 시험에는 길을 내시기 때문에 언제나 승리할 수 있다.
ⓔ. 만일 길이 없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길을 내실 것이다.'
ⓕ. 때때로 인내하는 것이 바로 그 피할 길이다. "능히 견디게(감당하게) 하시느니라."
ⓖ. 시험은 죄가 아니고 시험에 굴복하는 것이 죄이다.
(4) 하나님의 전능하신 보호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라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3). 우리는 주님안에서 강건해야 하고 주님께서 능히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주님께 의탁하며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 그럴 때 주님은 반드시 이루신다. 그분의 보호를 이미 받은 것처럼 믿고 행해야 한다.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된다.
(5) 기도
"아버지여 … 악한 자에게서 구하옵소서"(마 6:9, 13 원문참조). 기도할 때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과 하나님만을 기억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사탄 곧 그 악한 자를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 악한 자의 궤계와 속임수와 다스림과 영향력과 공격과 위협에서부터 우리를 건져 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악한 자에게서 구하옵소서" 왜 이렇게 구해야 하는가? 이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그분의 것이지 사탄의 것이 아니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응답이 없을리가 없다. 만일 하나님께서 악한 자에게서 우리를 구하시지 않는다면 그분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손상을 받게 된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원수의 것이 아닐진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의 공격과 압제와 잔해를 받아야 하는가?
(6) 하늘에 계신 대제사장의 중보기도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 현재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고 계신 대제사장께서 계시는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는가? 우리는 마땅히 주 예수님의 중보기도가 효력이 있음을 언제나 믿어야 한다. 은밀한 중에 기도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악한 자에게서 보호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위험한 일을 당하게 된다는 악한 자의 말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마땅히 우리 대제사장의 중보기도를 신뢰해야 하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가 악한 자의 해를 만나지 않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7) 원수의 종말
원수의 사탄은 장래 하늘에서 땅으로 내쫓길 것이고(계 12:7-9) 천사에 의해 사슬에 결박되어 무저갱으로 던져질 것이다(계 20:1-3). 그리스도께서 천년 동안 왕노릇 하는 기간이 찰 때 잠시 플려나 그는 땅 사방의 열국을 미혹할 것이고 하나님을 공격할 것이다. 결국 그는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질 것이다(계 20:7-9). 원수는 결국 실패하게 될진데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일어나 전진하지 못하는가? 그가 패배하는 것이 예정된 종말이라면 우리는 더 담대하고 용맹을 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순간순간 로마서 16장 11절에 서서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을 향하여는 사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과 정욕과 마귀를 이기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병사로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마귀의 견고한 진을 파하며 사람들의 마음과 뜻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 우리는 다만 온전히 보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마귀와 싸울 수 있도록 강한 기도를 하는 전사가 되어 천만의 악한 영들의 그의 궤계를 이룰 수 없게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와 동행하고 동역하여 오늘날에는 승리하고 내세에는 권세를 잡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