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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제자들
재무스님을 노포역에서 만나 화엄전으로 갔는데 경산 묘법사 지묘스님이 함께 큰스님을 친견하려고 기다리고 계셨다. 큰스님께 건당을 하시면서 혜림이라는 법호를 받으신 스님이었다. 지혜가 쌓이고 쌓인 이름이라고 큰스님이 말씀하셨고, 환담을 나누셨다. 지묘스님이 내려가시자 큰스님이 건당회원 수첩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지묘스님 부분을 찬찬히 읽어보셨다. 공부 잘할 것 같은 “한 칼이 있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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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고리로 달 오색실을 재무스님이 가져오셨는데 큰스님이 바로 지금 시현을 하라고 하셔서 재무스님이 그 앞에서 실을 묶는데 떨린다고 하셔서 모두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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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권의 책을 가지러 오신 보살님이 계셔서 모두들 도와주러 나간 사이, 큰스님과 둘이 있는 시간이 잠깐 있었다.
큰스님께서 지난달에 보여드린 <무비스님 이야기> 초고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큰스님의 이력을 조금 길게 열거한 정도의 짧은 책인데 “그런 내용이 가치가 있을까?” 하시면서 “그동안은 한 번도 경전 이외의 책을 내본 적이 없는데 경전이 아닌 내용으로 책을 낸다는 것이 좀 그렇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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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마치고 들어오신 재무스님께서 큰스님께 <무비스님 이야기> 책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출판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이렇게 인생을 사신 분도 계시네’ 하는 정도의 가벼운 내용으로요.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주고 싶은 책입니다.”
실을 꿸 때와는 달리 강단 있고 설득력 있게 화제가 바뀌어도 누차 책 이야기로 돌아가 허락을 구하시는 재무스님의 청을 큰스님이 별다른 반대 없이 들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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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허락을 받은 책 <무비스님 이야기>가 인쇄에 맡겨졌다.
여러 번 교정을 보느라 다섯 사람에게 먼저 보여주고 의견을 구했다. ‘무비스님이 누구신지’ 궁금해 하는 가까운 이들에게, 불교를 모르나 호의가 있는 이들에게 다 읽혀서 ‘화엄경 이근공덕을 심어주자’는 책에 대한 개인적인 목표가 쉽게 이루어졌다.
‘다 쓰지 못한 갈피갈피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래도 이 작은 이야기로도 큰스님은 정말 대단하시다는 걸 알겠다’라는 평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미리 말하지 않았어도 ‘다 쓰지 못했겠다’는 양해를 받은 것 같아서였다. 개인적으로는 교정을 하느라 읽으면 읽을수록 큰스님과 큰스님과 공부하는 화엄경과 이 세상과 그런 인연 속에 합류한 자신이 좋아졌다.
한번 흔들 때마다 예쁜 눈이 다시 쏟아져 저절로 웃음을 짓게 되는 스노우글로브 같은 이 작은 책을 많은 분들이 <2024년 큰스님 생신 선물>로 사랑스럽게 받아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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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8일 회장스님의 스승이신 동주원명스님의 팔순 기념 공연에 갔었다.
그 공력, 그 태도, 그 무대가 아름다워서 뜨거운 눈물이 났다.
동주스님 일생을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구술한 책도 단박에 읽었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 43호 보유자 동주원명스님을 처음 뵈었지만, 그렇게 살아오시고 그렇게 연마하여 오신 스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새롭게 안 것과, 제자스님들의 정성에 깊이 감사했다. 공연 말미에 정오스님이 내년 6월1에 홍원사에서 본격적인 수륙재가 펼쳐질 것이라고 예고하셨다. 공연이 깊어질수록 함께 보지 못해 미안해졌던 수많은 사람들을 그때 다시 초대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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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여전히 더웠던 날, 문수선원의 책상에는 원영스님의 <이제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책이 법공양으로 올려져 있었고, 달마다 연속해서 열리는 다실에서는 침향차를 주셨다. 귤향기도 좋아서 용학스님이 권하시길래 얼른 한 개를 까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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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카페 염화실에 <영은 현진율사대강백 전계전강 대법회> 사진이 올라왔다. 큰스님께서 2002년 10월 5일에 첫 전강식을 할 때 법제자로서 고불문을 읽었던 현진스님이었다.
“아주 전통적으로 공부했고, 점잖고 매력있는 사람이야.” 라고 하셨었다.
이번에 큰스님도 순식간에 손제자 서른 한 명이 생겼다고 즐거워하셨는데, 전강받는 스님 두 분이 더 늘어서 큰스님은 서른 세 분이나 손제자가 생기셨다.
이날 동화사 기념사진 속에서 용학스님과 원철스님, 아는 얼굴들을 뵙게 되어 친근하고 기뻤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아까도 잠시 말씀을 드렸지만 원영스님의 책 <이제서야 이해되는 반야심경>은 ‘이제 좀 이해해라’ 해서 지은 제목 같다.
제가 생각해 보니 <반야심경>을 어릴 때 잘 몰라서 강의한다고, 우리나라 책도 뒤지고 일본 책도 뒤지고, 이렇게 저렇게 보다가 한 스물서너 권의 책을 봤던 것 같다.
옛날 책을 봐도 양에 흡족하지 않았다.
원영스님의 이 반야심경 책을 보니 선어록도 더러 나오고 우리가 명작이라고 이야기하는 피카소라든지 도스토예프스키라든지 인류 역사에 일생의 흔적을 남기고 살아갔던 분들의 이야기들을 시베리아 벌판의 새 발자국만한 흔적으로 잡아서 해설을 돕고 있다. 책의 분량이 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아마 강의하시면서 이 책을 같이 심혈을 기울여서 쓰신 것 같다. ‘책을 잘 내셨다’는 생각이 든다.
저번에 “스님 몇 권 드릴까요?” 하고 물으셔서 “100권요.” 했다. 100권 공양 온 것을 ‘귀하게 공부하시는 스님들께 공양 올립니다’해서 오늘 아침에 일부러 가져와서 여러분께 공양 올렸다. 보시면 금방 읽어질 것이다.
안에 보면 신심명이라든지 여러 가지 익숙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글귀들이 나온다. 일반분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잘 써졌다. 원영스님이 저에게 “스님은 보지 마세요.” 이러셨는데 그런 것이 아니고 보니까 스님들을 위해서, 스님들이 반드시 보고 이해해야 될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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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러분께 나눠드린 과판(科判)이 있다.
여기는 다른 데보다 우리 나름으로 조금 전문적이고 고답적으로 공부하시는 분들이라 이런 과판이 필요한 것 같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할 때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라고 한다. 상대에게 맞춰서 항상 법을 설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된다는 이야기다.
이 과판에는 청량국사의 소(疏)와 감산 덕청스님의 해설, 소초(疏鈔)의 해설, 어른스님께서 제목 잡아 놓으신 것 등 여러 스님들의 다양한 견해를 모아서 정리했다.
우리가 공부하면서 ‘좌표는 좀 알고 가야되겠다. 경전의 흐름은 좀 알아야 되겠다’고 해서 만든 과표다. 그걸 보면 저는 좀 편한데 여러분들은 어떠실지 모르겠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가 지금 배우는 품은 제38번째 이세간품이다. 우리는 모두 욕심에 꽉 차 있다. 사람마다 눈에도 욕심이 꽉 차고, 생각에도 욕심이 꽉 차서, 도대체 마음에 여백이 없다. 동양화를 그릴 때 흔히 ‘여백의 미’라고 하잖는가. 여기 이세간품이야말로, 특히 우리 수행자에게 여백의 미를 일러준다.
화엄경을 실천 덕목 차원에서 딱 한 품을 꼽으라면 이세간품이다. 실천 덕목에서는 이세간품이 바로 보현행원을 가장 디테일하게 설명해 놓았다. 잔가지부터 시작해서 잎사귀 껍데기 알맹이 씨앗 뿌리까지 다 설명해 놓았다. 색성향미촉법을 총동원해서 우리 인생살이의 마음의 여백을, 욕심을 비워야 된다는 것을 강렬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세간품이다.
욕심이 가득 차면 언젠가는 쥐어 터진다. 똥이 가득 차 있다가 터져버리면 수습이 안 된다. 뭐든지 뻥 터져버리는 순간부터 는 그 뒤로는 불감당이다.
사람은 욕심이 찰 때까지 올라와서 가득해지면 터져버린다. 그래도 우리는 욕심을 줄이거나 압력을 누를 생각을 안 하고 어쨌든지 욕심이 지나칠 정도로 튕겨 오르게 만든다.
욕심이 지나칠 정도로 튕겨 올라간 것을 흔히 ‘교만’이라고 한다. 아만에서 펌프질해서 교만이 바깥으로 올라가면 그 욕심이 주체 못 하는 상태가 된다.
탐진치가 드글드글 남을 향해서, 세상을 향해서 모든 유정무정을 향해서 분심을 일으키는 것을 분기탱천(憤氣撑天)이라고 한다. 안쪽에서 아만탱천이 있어서 바깥으로 분기탱천으로 쭉 뽑아져 나온다. 거기에서 힘 빼는 연습을 하는 것이 이세간품이다. 그렇기때문에 이세간품은 읽기만 해도 기분이 굉장히 좋다.
생각을 한다고 해서 생각이 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닌데, 이세간품에서 하는 생각은 우리가 잘 아시다시피 십바라밀하고 자비희사 사무량심이다. 흔히 일러서 자비희사를 깨끗할 범(梵)자 하늘 범(梵)자 행할 행(行)자 범행(梵行)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이세간(離世間), 세간을 떠난다 하기도 하고, 자비희사라 하기도 하고, 범행이라하기도 한다.
사람은 100년 인생인데, ‘사람 다 똑같다’고 하지만 절대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종이도 다 똑같지만 일억 짜리, 백억 짜리 글씨에 따라서 가치가 다르다. 제가 수표 한 장에는 천만 원을 쓰고, 백지 수표도 주는데, 여러분에게는 똑같은 종이에 10만원을 써서 주면 어떨 것 같은가? 기분이 나쁘다.
사람도 똑같은 몸뚱이인데 동그라미 하나를 더 쳐서 백만 원 짜리 인생이 있고, 돌덩이 커다란 것 가지고 와서 금덩이 주먹덩이 만한 것과 바꾸자는 사람도 있다.
“화엄경 읽어봤나?”
“몇 번 읽어봤나?”
화엄경을 읽어봤다는 것은 화엄을 닮아가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화엄경 이세간품을 공부 안 하면 어리석은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
어쨌든지 똑같은 종이인데 거기에 이(理)가 어떻게 붙어서 사(事)를 구현하느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진다.
그 이(理)에 따라서 사(事)가 구현되는 방법이 이세간품 오늘 배우는 부분에도 자세하게 나타나 있다.
그래서 경허스님 같은 분은 어떤가? 영리한 안목을 지닌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의 행리, 살아가는 모습이 어떻든지 간에, 아무 문제 삼을 것이 없다. 도둑질을 하든지 거짓말을 하든지 간에, 안목을 갖추지 못하고 지저분하게 사는 것은 똥을 채워 사는 것과 같다. 그것은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하니까 문제가 된다.
부처님 같은 경우는 산과 같다. 그런데 저 산에 나무가 없으면 산사태가 난다. 오늘도 우리는 공덕의 숲을 가꾸며 저 산에 부처님 산에 나무를 심는 강의를, 산사태 나기 전에 한번 들어가 보자.
지난 시간에는 변입(遍入)까지 했다. 오늘은, 344페이지(민족사刊 제3권)보살의 십종해탈문이라.
공부 들어가기 전에 유인물을 한번 보겠다.
여러분께 친절하게 유인물을 나눠드렸다.
환희행 끝났고 요익행 끝났고 무위역행 끝났고 무굴요행이 끝났다. 미색으로 노리끼리하게 제가 칠해놨다.
47번부터는 약간 푸른기, 녹기가 들어간다.
10행품은 단락을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눈다.
10행품은 녹기 들어간 대목이 한 대목이 있고, 그 밑에는 회색으로 되어 있다.
빨간 데로 일이삼 단 나눠 놨는데, 10행품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 정도로 가늠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졸가리를 그렇게 세 가지로 나눠 놨다.
그리고 또 우리가 200가지의 질문 중에서 지금 대답을 해나가는 과정이잖은가.
그래서 지금 앤트리 넘버 41번부터 지난시간에 51번까지 해서 제가 친절하게 51번은 빨간색을 칠해놓았다.
지난 시간에 343페이지(민족사刊 제3권) (5)이치란행을 342페이지로 올려가야 된다고 했다. 그것부터 짚어보고 오늘 할 대목을 하겠다.
십종교밀어하육문(十種巧密語下六門) : 이치란행은 10종(種)의 열 가지의 교밀어 아래 여섯 가지문인데 이것은 어디에 속한다?
명무치란중행(明無癡亂中行) : 명(明) 밝힌다. 무치란행 중에 행을 밝힌다. 과판 2페이지 세 번째 단이다.
십종교밀어하육문(十種巧密語下六門) 10종 교밀어 아래의 여섯 대목은, 6문은 명무치란중행(明無癡亂中行)이라.
무치란행의 가운데를 밝히는데,
어중삼(於中三) : 그 가운데 세 가지로 나누는데,
초이문즉무치지행(初二門即無癡之行) : 처음에 두 문 48번, 49번은 어디에 속한다? 무치의 행에 속하고, 다음에
차이문명무란지행(次二門明無亂之行) : 차이문, 두 가지 문은 뭔가?
명무란지행(明無癡亂中行) : 무란 어지럽지 아니한 행을 밝힌다. 51번까지는 밝혔다는 말이다.
후이문쌍명이문인생공덕(後二門雙明二門引生功徳) : 후이문, 오늘 할 대목 뒤의 두 문은 쌍으로 밝힌다. 무치 무란 두 문에 대해서 밝히는데 그것은
인생공덕(引生功徳) : 인생공덕이라. 공덕을 일으키는 것을 인용해서 밝히게 되겠다.
수치란유통(雖癡亂有通) : 비록 치란(癡亂)하더라도 통하는 것이 있으니
금종별설(今從別說) : 금(今)에는 달리 별설(別說)을 따른다. 이렇게 해놨다.
좀 어지러워도 되는 것은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서, 이세돌씨가 바둑을 잘 둔다고, 금방 젖 떨어진 아이한테, 이세돌씨가 바둑을 가르친다고 되겠는가? 안 된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리처럼, 조금 복잡한 사람들끼리 하는 대목같다. 일반 사람들한테 이것을 갖다 주면 기절해 죽어버리려 한다. 경전도 어려운데 소초를 보면 더 머리에 쥐가 내린다라고 할 것이다.
보살(菩薩)의 십종해탈문(十種解脫門) : 그래서 오늘은 보살의 10종 해탈이다. 소초 한 번 보고 들어가자. 경전을 보면 좋겠지만.
왜 해탈이 나오는가?지난 시간에 ‘환희로움이 있으니까, 즐기는 사람이 있으니까 신심이 나고, 신심이 돋으니까 깊이 들어갈 수 있고, 깊이 들어가다 보니까 솜씨가 좋아진다’라는 대목이 있었잖은가.
인생의 흐름이 그렇다.
이치와 현실이 이(理)와 사(事)가 그렇게 결대로 흘러가게 된다. 해탈문이 왜 여기에 나오느냐?
해탈(解脫) :52번 해탈을 제가 빨간 글로 써놨다. 해탈은 곧 뭐냐?
즉부사의해탈(即不思議解脫) :부사의해탈이다. 말이나 생각이 미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범운비목차(梵云毘木叉) : 해탈은 범어로, 산스크리트어로 비목차(毘木叉)라고 하는데
차운승해탈(此云勝解脫) : 이쪽 말로는 수승한 해탈이라고 하고
위수승작용(謂殊勝作用) : 수승한 해탈이라고 하는 수승한 작용이라. 수승한 작용은 어디서 나올 수 있느냐?
역유의선성팔해탈(亦由依禪成八解脫) : 선정을 의지함을 말미암아서 여덟 가지의 해탈을 이룰 수 있다. 그것은 선정에 따라서 해탈이 이루어진다고 해놨다.
그다음에
신통(神通) :그 밑에 신통은 6신통을 대충 뜻은 다르지만, 열 가지 신통과 조금 좀 차이가 있지만, 이렇게 신통이라고 해놓았다.
3페이지만 읽고 오늘 본문 들어가도록 하겠다.
선현행에 보면 다른 것은 다 놔두고 여러분들께서 한문은 복잡하니까 옆에 한글로 살짝살짝 팁을 준 것이 있지 않은가? 여섯 번째, 선현행에 보면, 지혜가 밝아지면 뭐가 좋아진다? 솜씨가 야물어지게 된다.
그 밑에 보면, 제일곱 번째 무착행이 있다.
오른쪽에 가면 사람이 집착이 없으니까
(물결치는대로 바람부는대로 유연하게 흐른다) : 큰 파도가 오면 크게 타고, 작은 파도가 오면 작게 타고, 물결치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유연하게 남하고 맞춰준다는 것이다.
자기가 여기에 가든 저기에 가든 유처에 종정이라.
어디에 가든지 간에 뜻을 붙여서 잘살 수 있고, 그리고 어디에 머물든지 간에 항상 편안하다.
방안에 가둬 놓아도 편하고, 마당에 내쫓겨도 편하다.
이것이 집착 없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성이다.
집착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그렇게 물결치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유연하게 결대로 살면서 어떻게 사느냐?
(맑게 사는 것이 사무량심이다) : 맑게 살면서 자비롭게 또 희사하면서, 자비희사로 살아간다.
(원력은 아름다운 행동의 바탕이 된다) : 그러니까 여덟 번째 원력이 세워지면 난득행이 되는데 제8은 원바라밀이잖은가?
원력이 있는 사람은 행동거지가 아름답게 나타난다.
원력이 바로 행동의 바탕이 된다. 행동의 근본은 원력에 있다.
그러니까 행동이 못된 사람은 속을 안 들여다봐도 원력이 없는 사람이다. 원력이 없는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에 대해서 무조건 불만이 많다. 음식을 먹어도 ‘짜네, 맛있네, 맛없네’ 냄새를 맡으면 ‘군내가 나네, 안 나네’한다. 사람은 다 냄새가 나지 냄새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더 씻어라, 말아라’ 저나 잘 씻지 그러니까 원력이 없으면 행동할 때 꼭 나타나는 것이 있다.
(내적 양심대로 외적 발현된다) : 내적으로 양심이나 안쪽으로 마음이 정비되고 장엄이 되고, 바라밀이 집착이 없으면 바깥으로 저절로 얼굴이 환하게 웃음꽃이 핀다.
경전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다. 제가 억지를 쓴 것이 아니다.
한문으로 해놓으면 여러분이 해석하는데 시간이 들까 싶어서 한글로 팁을 조금조금 써 놨다. 보기가 좋은가?
(외풍에 흔들림이 없으면 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어느 정도 외풍에 흔들림이 없으면, 이해타산이 없으면, 목을 딱 고정시켜서 나무가 뿌리를 딱 내리고 나면 깊이깊이 그 뿌리가 심어지잖는가.
나무를 심어놓고 이 바람 저 바람에 흔들리면 결국 뿌리를 못 내리고 나무가 고사하고 말라 죽는다. 흔들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일단은 옆에서 잡아주고, 자기가 뿌리를 딱 야무지게 심은 사람들에 대해서 서장 같은데 이렇게 나온다.
사람이 활을 잘 쏘려면 뭐부터 잘해야 되는가? 발바닥에 힘을 꽉 주어라. 무술을 잘하려면 처음에 기마자세부터 배운다. 무슨 운동을 하든지, 유도를 하든지 태권도를 하든지 복싱을 하든지 스탭부터 배운다. 그 이유는 밑이 안 흔들려야 강펀치가 나오고 정확도가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보면
(이해가 깊고, 아량이 넓으면 촐랑거리지 않으므로 이상을 현실화시킨다) : 아량이 넓어지면 사람이 촐싹거리지 않는다.
이심사광(理深事廣)이라. 이치가 깊고 깊이 이해할수록 사(事) 방편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만물박사가 된다. 아무것이나 다 만들어 낼 수가 있다. 그러므로 심대심(深大心)이라. 꿈과 이상으로 가지고 있던 것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서푼어치 가지고는, 한 10만원 가지고는 빌딩을 지으려면 지을 수가 없다. 자금을 꽉 모아놔야 한다. 자금만 꽉 있으면 빌딩은 저절로 올라가 버린다.
여러분들이 여기를 참고해서 같이 배대해서 보시면 좋다.
다음에도 10회향이 나오면 과판을 짜드리겠다. 또 10지가 나오면 짜드리겠다. 이러면 전체적으로 화엄경을 보는데 좀 야무지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 菩薩의 十種解脫門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解脫門하니 何等이 爲十고所謂一身이 周徧一切世界解脫門과 於一切世界에示現無量種種色相解脫門과 以一切世界로 入一佛刹解脫門과 普加持一切衆生界解脫門과 以一切佛莊嚴身으로 充滿一切世界解脫門과 於自身中에 見一切世界解脫門과一念中에 往一切世界解脫門과 於一世界에 示現一切如來出世解脫門과 一身이 充滿一切法界解脫門과 一念中에 示現一切佛遊戱神通解脫門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解脫門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해탈문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한 몸이 모든 세계에 두루 하는 해탈문과, 모든 세계에서 한량없는 가지가지 모양을 나타내는 해탈문과, 모든 세계로써 한 세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이니라.
일체 중생계를 널리 가지(加持)하는 해탈문과, 모든 부처님의 장엄한 몸으로 모든 세계에 가득하는 해탈문과 자신의 몸 가운데서 모든 세계를 보는 해탈문과, 잠깐 동안에 모든 세계에 나아가는 해탈문이니라.
한 세계에서 모든 여래가 출세함을 나타내 보이는 해탈문과 한 몸이 모든 법계에 가득한 해탈문과, 잠깐 동안에 모든 부처님의 유희하는 신통을 나타내 보이는 해탈문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는 해탈문을 얻느니라.”
*
보살(菩薩)의 십종해탈문(十種解脫門)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해탈문(有十種解脫門)하니 : 열 가지 해탈문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 무엇이
위십(爲十)고 : 열 가지 해탈문이냐?
소위일신(所謂一身)이 :이른바 한 몸이
주변일체세계해탈문(周徧一切世界解脫門)과 :모든 세계에 두루 하는 해탈문과
어일체세계(於一切世界)에 : 모든 세계에서
시현무량종종색상해탈문(示現無量種種色相解脫門)과 : 한량없는 가지가지 모양을 나타내는 해탈문과 또
이일체세계(以一切世界)로 : 모든 세계로써
입일불찰해탈문(入一佛刹解脫門)과 : 한 세계에 들어가는 해탈문과, 여기서 아까 뭐라고 했는가? 과판을 참고해 보면,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작용무애다.
내 마음을 쓰는데 선하게 쓰든 악하게 쓰든, 맵게 쓰든 짜게 쓰든 달게 쓰든 어떤 마음의 작용을 쓰더라도 무애다. 작용무애다. 과판 2페이지 제일 밑에 보면,
차문(此門) 이 해탈문은 뭐다? 명(明) 밝힌다. 작용무애를 밝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칭해탈(故稱解脫)이라.
저 뒤 다음 장에 가서 열 가지 신통은 뭔가?
여기는 작용을 밝히는 것이고, 뒤에는 경계에 대해서 막힘이 없는 것을 밝히기 때문에 신통이라고 한다.
*
보가지일체중생계해탈문(普加持一切衆生界解脫門)과 : 일체중생계에 널리 가지하는 해탈문과
이일체불장엄신(以一切佛莊嚴身)으로: 모든 부처님의 장엄한 몸으로
충만일체세계해탈문(充滿一切世界解脫門)과 : 모든 세계에 가득하는 해탈문과, 부처님의 장엄한 몸으로 세계에 가득하는 해탈문이라.
이 정도쯤 됐으면 매미가 날개를 가지고 날아다닐 수 있는 것 같다. 자기가 굼뱅이 밖에 안 되는 게, 굼뱅이가 날려면 날 수가 있나? 못 난다.
어자신중(於自身中)에 : 내 자신의 몸 가운데에
견일체세계해탈문(見一切世界解脫門)과 : 견 본다. 일체 세계의 해탈문을 보고
일념중(一念中)에 : 잠깐 동안에도
왕일체세계해탈문(往一切世界解脫門)과 : 모든 세계에 나아가는 해탈문과
*
어일세계(於一世界)에 : 한 세계에서
시현일체여래출세해탈문(示現一切如來出世解脫門)과 : 모든 여래가 세간에 나타나는, 출현하시는 것을 보이는 해탈문과
일신(一身)이 : 한 몸이
충만일체법계해탈문(充滿一切法界解脫門)과 : 모든 법계에 가득한 해탈문과
일념중(一念中)에 : 일념 중에
시현일체불유희신통해탈문(示現一切佛遊戱神通解脫門)이 : 일체 부처님께서 유희하는, 정말 유유자적하게 가는 것처럼 신통한 해탈문이라.
마치 강이란 강에는 모든 달이 환하게 비추면서도 강물과 달이
절대 섞이는 바가 없듯이, 일념 중에 하늘의 달은 한 개인데,일념인데 시현한다. 일체 부처님이 모든 강에 다 떨어져 버린다. 일체불이 유희신통해탈문이라. 강물하고 달하고 안 섞이니까 그렇게 된다.
소동파의 여동생 싯구절인가에 그랬다.
월마은한(月磨銀漢)에 전성원(轉成圓)이라.
달빛을 은하수에 갈아서 보름달을 만들었는데
소면서광(素面舒光)이 조대천(照大千)이라.
환한 보름달 서광이 비춰서 삼천 대천 세계를 다 비춘다.
연비산산(連臂山山)에 공착영(空捉影)이라.
오백 마리 원숭이가 손에 손잡고, 연못에 비친 달을 건져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려다가 제일 위에 원숭이가 무거워서 팔을 놔서 오백 마리의 원숭이가 다 빠져 죽었다.
오백 마리의 원숭이가 다 빠져 죽었는데 어릴 때는 그냥 얘깃거리니 생각했지만, 이런 대목을 보면 화엄경의 ‘요지일체법(了知一切法) 자성무소유(自性無所有)’라는 대목과 같다.
우리가 부처님께 올릴 달을 건질 수 있다고 착각하고 이제까지 살아온 적도 있고, 깨달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살아온 적도 있었다.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얻었다고 하고, 못얻었다고 하기도 한다.
법화경에는 보면 ‘교만하고 중죄업장이 많은 중생들이 입만 뗐다하면 깨달았다 한다’고 나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법문하실 때, 오천 명이 자기도 다 안다고 퇴석해서 나가 버리잖는가.
아는데 들을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이다.
오백 마리의 원숭이가 다시 태어나서 오백 명의 도둑놈이 됐다. 원숭이가 농사도 짓지 않고 살다 보니 도둑놈이 되었다.
도둑놈이 되었다가 어느날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어떻게 법문을 듣게 되어서 그 오백 명의 도둑놈은 나한들이 되었다. 나한들을 보면 찢어지고 눈이 요래 생기고 별스럽게 생긴 사람이 다 있다. 도둑놈들이 오백나한이 됐다.
‘십육성(十六聖) 내지(乃至) 오백성(五百聖) 천이백제대아라한( 千二百諸大阿羅漢)’
업이 험할 때는 원숭이 축생으로 살다가 조금 엔간해서 진급했다 해도 사람 인간으로는 귀한 데 못 태어나고, 도둑놈으로 인도환생했다. 사람들이 도둑질을 많이 하면, ‘전생에 축생에서 왔구나’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원숭이가 되었든 도둑놈이 되었든, 거룩한 사성육범 사성의 아라한이 됐든, 거룩하든지 거룩하지 않든지 ‘범성(凡聖)이 동일법성(同一法性)이라’ 범부나 성인이나 동일법성이다.
왜그런고 하니 그 달이 본래 없었고, 원숭이도 본래 없었다. 도둑놈도 본래 없고 아라한도 본래 없다. 인연 따라서 그냥 흘러가는 한바탕의 꿈이다. 그런 정도를 가지고 우리가 지금 여기 이세간품을 본다면 더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글자에 너무 매일 필요가 없다.
원숭이도 없고, 달도 없고, 물도 없고, 싹 다 없다. 무인무법(無人無法)에 도무지(都無知)로다. 사람도 없고 법도 없고, 도무지로다.
시위십(是爲十)이니 : 이것이 열 가지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 만일 보살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 그 가운데 안주하면
즉득여래무상해탈문(則得如來無上解脫門)이니라 : 여래무상해탈문을 얻느니라.
라. 菩薩의 十種神通
佛子야 菩薩摩訶薩이 有十種神通하니 何等이 爲十고 所謂憶念宿命方便智通과 天耳無礙方便智通과 知他衆生不思議心行方便智通과 天眼觀察無有障礙方便智通과 隨衆生心하야 現不思議大神通力方便智通과 一身이 普現無量世界方便智通과一念에 徧入不可說不可說世界方便智通과 出生無量莊嚴具하야 莊嚴不思議世界方便智通과 示現不可說變化身方便智通과 隨不思議衆生心하야 於不可說世界에 現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方便智通이 是爲十이니 若諸菩薩이 安住其中하면 則得如來無上大善巧神通하야 爲一切衆生하야 種種示現하야 令其修學이니라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열 가지 신통이 있으니, 무엇이 열인가. 이른바 지난 세상에 났던 일을 기억하는 방편 지혜의 신통[宿命智通]과, 하늘귀가 걸림 없는 방편지혜의 신통[天耳智
通]과 다른 중생의 부사의한 마음과 행을 아는 방편 지혜의 신통[他心智通]과, 하늘눈으로 관찰하여 걸림이 없는 방편 지혜의 신통[天眼智通]이니라.
중생의 마음을 따라 부사의한 크게 신통한 힘을 나타내는 방편 지혜의 신통과, 한 몸이 한량없는 세계에 두루 나타나는 방편 지혜의 신통과, 한 생각에 말할 수 없이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두루 들어가는 방편 지혜의 신통과, 한량없는 장엄거리를 내어 부사의한 세계를 장엄하는 방편 지혜의 신통이니라. 말할 수 없이 변화하는 몸을 나타내는 방편 지혜의 신통과, 부사의한 중생의 마음을 따라 말할 수 없는 세계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룸을 나타내는 방편 지혜의 신통이니, 이것이 열이니라. 만일 모든 보살이 이 가운데 편안히 머물면 여래의 위없이 크게 교묘한 신통을 얻고, 일체 중생에게 가지가지로 나타내어 그로 하여금 닦아 배우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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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의 십종신통(十種神通)
*
해탈은 끝나고 신통이다. 앞에 산이 있든 바다가 있든 허공이 있든 낭떠러지가 있든 어떤 것이 있든지 그 경계에 대해서 막힘이 없는 것이 신통이다.
멀리 있어도 들리고 벽이 있어도 보이고 그런 정도가 되면 천안통, 천이통이 되는 것이다.
벽이 없는데 보는 것은 누가 못하겠는가?
벽이 있고 장애가 있는 데도 보는 사람, 꽉 막혀서 철옹성이나 은산철벽이 되었는데도 들리는 사람, 첩첩산중인데도 남의 마음을 꿰뚫어 아는 사람이 신통을 가진 사람이다.
남이 설명해 주는 것을 듣고 아는 것은 누가 못하겠는가?
여기는 신통을 이야기한다. 꽉 막혀 있는 그 어떤 경계에도 막힘이 없는 것을 신이통이라 한다. 신통이다.
*
불자(佛子)야 : 불자야
보살마하살(菩薩摩訶薩)이 : 보살마하살이
유십종신통(有十種神通)하니 : 열 가지 신통이 있으니
하등(何等)이 :어떤 것이
위십(爲十) : 열 가지인가.
소위억념숙명방편지통(所謂憶念宿命方便智通)과 :소위 억념숙명 방편지통이라. 이른바 지난 세상, 과거 세상에서 났던 일을 기억하는 방편 지혜 신통과.
선어록에 보면 오래전 것을 기억하는 스님들은 자기 태어날 때 태중에 있던 것도 기억하는 분이 있다고 한다.
금생에 와서 여러분들의 기억은 어디까지 있는가?
젖먹던 것까지는 기억한다. 젖먹던 것까지 기억을 못하는 사람은 이 화엄경을 보기가 좀 곤란한 중생일 것이다. 저는 확실히 젖먹던 것까지는 기억한다.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어떤 분이 “스님, 오랫동안 젖먹었는가 봐요?” 하신다.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사담이라서 좀 그런데 제가 출가한다고 모친이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 주셨다.
“학교는 졸업하고….”
“예, 예.”
도망가고 싶어서 막 대답했는데 그 학교는 아직도 졸업 못하고 도망 왔다.
“그리고 가면 다시 오지 말고….”
“예, 예, 예.”
가지마라는 말씀인데 대답을 너무 잘했는가, 기분이 나쁘셨는가, 모친이 한 말씀을 하셨다. 생전에 안 하시던 말씀이었다. 어릴 때 젖 뗀다고 친정에 한번 딱 갔다 오니까 젖에 손이 다시는 안 닿았다는 것이다.
“요렇게 냉정하게 떠나려고.”
보통 아이들은 젖 한번 떼려면 계속 젖 달라고 보채잖는가. 저는 안 그랬다고 한다. 희한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출가하던 날 그런 말씀을 하셨다. 이제 영 끝이다 싶으니까 모친도 ‘막말 한 번 하자’ 해서 ‘그렇게 매정하더니 이렇게 매정하게 떠난다’이 말씀을 하신 것 같다. 그 뒤로부터 제가 유심히 생각해 봤다.
‘내가 언제까지 젖을 먹었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기억이 났다. 유심히 곰곰이 살펴보니, 내가 젖이 언제 떨어지는지 몰랐는데, 맞는 건가 안 맞는 건가 가만 보니까 젖먹던 기억이 확실히 났다.
천이무애방편지통(天耳無礙方便智通)과 : 하늘귀, 천이가 걸림없는 방편의 지혜 신통 천이통 흔히 화엄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천이통 천안통은 남이 안 보이는 데, 안 들리는 데 가서 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천안통이고 천이통이다.
남이 보이는 데서도 안 도와주는데, 안 보이는 데까지 가서 보고 듣고 도와주려면 얼마나 세밀하게 중생을 향한 자비심이 가득 넘쳐야 되겠는가?
지타중생부사의심행방편지통(知他衆生不思議心行方便智通)과 : 다른 중생의 부사의한 심행을 아는 방편 지혜의 신통과
천안관찰무유장애방편지통(天眼觀察無有障礙方便智通)과 : 천안으로 관찰하여 무유 장애, 장애가 없는 방편 지혜의 신통과. 요런 것들은 철저한 사마타 수행이 되어야 얻을 수 있다. 잡되고 오염되고 악독한 것이 끊어졌을 때 우리의 본심이 나타난다. 그런 영향을 신통이라고 한다. 그것을 부처님께서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셨다.
그렇지 않고 ‘나도 좀 앉아 있으면 되겠다’ 싶으면 맹탕 나무 작대기 가지고 바짝 짜서 물을 내는 것과 비슷하다.
*
수중생심(隨衆生心)하야 :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현부사의대신통방편지통(現不思議大神通力方便智通)과 : 부사의하게 크게 신통한 힘을 나타내는 방편지신통과
일신(一身)이: 일신이
보현무량세계방편지통(普現無量世界方便智通)과 :무량 세계의 보현을 널리 나타내는 방편 지혜의 신통과
일념(一念)에 : 일념에
변입불가설불가설세계방편지통(徧入不可說不可說世界方便智通)과 : 변입 환하게 들어간다. 불가설 불가설 헤아릴 수 없고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세계에 두루 들어간다.
‘변입’ 이런 말들은 대자대비다.
우리는 일념에 한 생각도 못된 생각 일으키면, 나하고 안 친한 사람들한테는 다 끝나버리고 안 들어가 버린다.
여기 ‘두루 들어간다’고 하는 것 ‘모든 세계에 다 들어간다’는 것은 뭐 하려고 들어가겠는가? 모든 생각에 두루두루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그 모든 세계 중생을 위하는 마음이다’ 이런 말씀이다.
출생무량장엄구(出生無量莊嚴具)하야 : 출생 무량 장엄구하야, 무량한 장엄구를 뭐 하려고 출생시키는가? 한량없이 남에게 볼만한 것들, 좋은 선물을 나눠 준다는 말이다.
장엄부사의세계방편지통(莊嚴不思議世界方便智通)과 : 부사의한 세계를 장엄하는 방편 지통과.
장엄이라고 하는 것은 존중이고 존경이고 예의다. 그래서 우리는 법당의 수미단도 장엄한다. 문양으로 색깔로 음성으로도 장엄한다. 공양 올릴 때도 ‘지심정례공양’ 해서 대회참도 하고 얼마나 많이 장엄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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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불가설변화신방편지통(示現不可說變化身方便智通)과 : 말할 수 없는 변화의 몸을 나타내는 방편 지혜와.
신통과 변화하는 몸은, 중생이 ‘변덕이 죽 끓듯이 하기 때문에’ 네모난 놈, 세모난 놈이 있으면 그거 다 맞춰 줘야 된다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누진통(漏盡通)을 이야기한다. 이 누진통은 바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이루게 되는 토대가 된다.
수부사의중생심(隨不思議衆生心)하야: 중생의 부사의한 마음을 따라서
어불가설세계(於不可說世界)에 : 가히 헤아릴 수 없는 세계에
현성아뇩다라삼먁삼보리방편지통(現成阿耨多羅三藐三菩提方便智通)이 : 현 나타낸다 현성 번듯하게 성불해 버린다. 아뇩다라삼맥삼보리는 각(覺)이잖은가. 정각을 이루어 버린다.
무상정등정각을 이루는 방편지혜라.
여기서는 부사의 중생심이라고 하는 것, 중생 번뇌를 모조리 다 끊어서 누진통을 얻어버렸다.
누(漏)가 뭔가? 찔찔 새는, 색성향미촉법 따라서 찔찔 새는 욕락을, 욕심의 세계를 다해 버렸다. 누진해 버렸다.
그러니까 누진통쯤 돼 버린 분들, 부처님 같은 분들은 발우 하나 들고 다니면서도 황금 밥그릇처럼 보옥이라고 한다.
삼십삼천중(三十三天中)에 소유제천자(所有諸天子)가 공동일기식(共同一器食)이라. 화엄경에서는 그렇게 나오고 유마경에서는 일보기(一寶器)라고 나온다.
33천 모든 천자들이 하나의 보배그릇으로써 똑같이 밥을 먹는다. 그 보배그릇이 바로 우리의 일심 보기다.
동일법성 보기다. 법성 진성보기 불성 보배의 그릇이다.
그런데 그 보배그릇을 잘못 써서, 사람의 형편이 쫄딱 망해 버리면, 왕이 들고 있으면 보배그릇이 되는데, 거지가 들고 있으니까 보기(寶器)가 졸지에 거지 깡통이 돼 버린 것이다.
왜 양심이 찔리는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뭔가. 열반경에 야간(野干)이 100년을 사자 뒤를 쫓아다닌다 하더라도 사자후를 할 수는 없다고 나온다.
시위십(是爲十)이니: 시위십이니
약제보살(若諸菩薩)이 :만약에 모든 보살이
안주기중(安住其中)하면 : 그 가운데 안주하면
즉득여래무상대선교신통(則得如來無上大善巧神通)하야 : 곧바로 그 자리에서 여래 무상 대선교 신통하야 여래의 위없이 크게 교묘한 신통을 얻고
위일체중생(爲一切衆生)하야 : 일체 중생을 위하여
종종시현(種種示現)하야 : 가지가지로 나타내어서
영기수학(令其修學)이니라 : 그들로 하여금 바라밀행을 닦게 한다. 그다음 넘어가겠다.
선현행 과목 한번 보겠다.
과목을 세 단락으로 크게 나눠 놨다고 했다.
종십종부사의하구문(從十種不思議下九門) : 선현행까지가 두 단락인데 선현행은 십종부사의 아래 아홉문은
명정혜업용행(明定慧業用行) : 정혜 선정과 지혜업의 작용의 행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선현행까지가 선정과 지혜에 대해서 다루고
종십종원림하십오문(從十種園林下十五門) : 제일곱 번째는 원림 마음에 집착이 떨어져 버린 사람은 동산 원(園)자 수풀 림(林)자 원림이라 할 수가 있겠다. 아만이 좀 쏙 빠진 사람이라야 도량이 있다, 도량이 넓다고 할 수가 있겠다.
서장같은 경우, 제가 자주 강의할 때 이야기하지만 대혜 종고스님은 어떤가? 7지 보살이 화엄경 제37권 나오는가 그렇다.
‘7지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는다’라는 대목에서 아흔아홉 명이나 사람을 살상을 했던 앙굴리마라가 발우를 들고 가서 산모를 구했다고 하는 화두가 타파됐다고 나온다.
대혜 종고스님 당신 행장에 그것이 기록되어 있다.
호구사에서 열화엄이라다가 화엄경을 보시다가 화엄경 십지품을 보시다가, 십지품 중에서 제7 원행지(遠行地) 그 부분을 보다가 칠지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는다는 대목에서 활연대오했다. 대혜 서장에 보면 마지막 깨달음의 종착역을 화엄경으로 매듭지어 놓았다.
(물결치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유연하게 흐른다) : 지금하는 대목은 선현행까지가 선정과 지혜, 신통 지혜, 이와 같은 마음 작용을 다루고 그 뒤에 넘어가서는 물결치는 대로 바람부는 대로 더러 힘이 없으면 노를 젓고, 힘이 있으면 돛을 바람부는 방향에 따라서 가는 것이다.
선현행이라. 환하게 반야바라밀행이 선현행이라 한다.
선현행은 두 꼭지로 나눠 놓았다.
십종명하이문(十種明下二門) : 보살의 열 가지 환하게 밝은 것 또 10종 해탈, 조금 전에는 열 가지 해탈문이 있었다.
해탈문하고 해탈은 어떻게 다른가?
제가 이렇게 물으면 ‘말하지 말고 귀찮으니까 넘어갑시다. 골치 아프게’ 이렇게 할 것이다.
분명히 다르니까 해탈문이라고 했고, 다르니까 해탈이라고 했을 것이다. 문(門)이라고 하는 것은 하는 방법이다.
방법이 완전히 체득이 되어서 내것화 된 것은 해탈이다.
해탈문은 방편이고 방법, 법이다.
그 해탈법 문이 가장 많이 나오는 데가 화엄경 입법계품 53 선지식을 찾아가면서 ‘나는 무슨 해탈 법문을 얻었다’ 이렇게 나온다.
명선현위중행(明善現位中行) : 열 가지 명(明) 아래의 두 가지 문은 명 밝힌다 선현위중행이라.
선현행 제 여섯 번째 10행의 제 여섯 번째 선현행위 중의 행으로써
차문정현행체(此門正顯行體) : 이 문은 정현행체라.
행의 근본 바탕을 바로 밝히니 행이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간에 똑바로 행동하려면
즉시반야(卽是般若) : 반야바라밀을 의지해라.
봤냐 못 봤냐, 잘 본다고 명(明) 아니겠는가. 환하게 본다고 명이다. 즉시 반야이니
고왈지명(故曰智明) : 그러므로 가로되 지혜의 밝음이다.
봤냐? 환하게 봤다.
지명 뒤에는 2번째는 해탈이라고 해놨는데
후문명이지장(後門明離智障) : 해탈은 후문은 명이 지장이라. 지혜가 장애되는 것을 벗어난 것을 밝히는데 그러므로 지혜가 어떤 장애든지 구애받지 않고, 벗어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이름을 해서 해탈이 한다 이렇게 해놨다.
자 그럼 본문에 들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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