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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조선에서 태어나 27살 짧은생을 살다 간 천재 여성시인 허난설
빼어난 미모.지적능력으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인으로 평가받은 사람.
동인의 거두인 초당 허엽의 딸로 태어나 남성과 대등한 글공부를 하는것이
불가능했던 시절에 동생 허균과 함께 당대의 시인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우고
여덟살의 나이에 " 백옥루 상랑문 " 을 지어 세상을 놀라게했다
그녀가 남긴 빼어난 시편들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전해져
수많은 이들을 매료시켰고 지금까지 중국과 일본에서는
" 허난설 "의 연구 학회가 이어질많큼 문학 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닫힌 땅에서 그녀의 삶은 처절한 비애의 연속이었다
그녀는 서릿발처럼 모진 시집의 냉대 자신에게
등돌인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
친정을 향한 애달픈 그리움. 어린 아들과 딸 모두 잃고
흘리는 피울음에도 원망이나 분노로
자신의 예술혼과 자존감을 흐트리지 않았다
그런 고통도 난설헌의 영혼을 마모시키지 못했다
그런 고통의 마디들은 난설헌으로 하여금
한줄의 "시어 "로 붙들게 만들었고
곡기를 끊고 눈을 감는순간까지도 그 시를 가슴에 품고 쓰려져갔다
그 광경은 억압받은 영혼이 표현할수있는 마지막 자존이며
여자 천재 시인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세가지 한이 있었다고 하였다
나에게는 여자로 태어난것...조선에서 태어난것..
남편의 아내가 된것..이라고 외쳤든 여인
허난설은 여자의 삶이 오로지 복종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했던것을 한탄하였으며
그러므로 남성들이 지배하는 조선에서는 철저히 버러진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허난설은 죽을때 자신이 쓴시를 모두 태우라고 하였다
그녀가 남긴 시는 족히 방한칸의 분량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허난설의 동생 " 혀균" 이 애석한 마음에 " 난설헌집" 을 펴냈고
그 시집이 일본과 중국으로 알려져 당대 지식인들은
그녀의 시를 사랑하게 되었으며 비로서 널리 알러지게 되었다
모든 여자의 아픔을 가슴팍에 끌어 안은체 못다한 그리움을
시로써 불태워 자신을 정화시킨 여인
여자의 재능을 혹독한 시대에 태산같은 슬픔을 이고
절벽같은 생앞에서도 꼿꼿하게 생을 밀고 간 여인
그런 고통으로부터 외로움으로부터 오로지 자신만이
자신을 구원할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스스로 그것을 글로서 시로서 보여준 여인
스물일곱살에 세상을 떠나 비운으로 살았지만..
우리 역사상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조선의 천재가 여성 시인 " 허난설 "이다
신문사설을 요약함 / 눈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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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허초희)
1563(명종 18)∼1589(선조 22).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강원도 강릉(江陵) 출생. 엽(曄)의 딸이고, 봉(燈)의 동생이며 균(筠)의 누이이다.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1589]
조선 중기 선조 때의 여류시인.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다.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고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본관 양천(陽川). 호 난설헌(蘭雪軒). 별호 경번(景樊). 본명 초희(楚姬) 명종 18년(1563년) 강릉(江陵) 에서 출생하였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누나이다.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8세 때 이미 시를 지었으며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하였다. 1577년(선조 10) 15세의 나이에 김성립(金誠立)과 결혼하였으나 원만하지 못했다고 한다. 연이어 딸과 아들을 모두 잃고 동생 허균이 귀양을 가는 등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허난설헌이 죽은 후 동생 허균이 작품 일부를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선조 22년(1589년) 27세로 요절하였으며 유고집에 《난설헌집》이 있다. 작품으로는 시에 《유선시(遊仙詩)》《빈녀음(貧女吟)》《곡자(哭子)》 <망선요(望仙謠)》《동선요(洞仙謠)》《견흥(遣興)》 등 총 142수가있고,
가사(歌辭)에 《원부사(怨婦辭)》《봉선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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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夫江莎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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燕掠斜兩兩飛 처마 밑의 제비는 쌍쌍이 날고 落花亂撲羅衣 곱은 날개 맞부딛치며 꽃잎 떨군다 洞房極目傷春意 동방에선 눈 빠지게 애가 타는데 草綠江南人末歸 강남에는 풀 푸른데 소식 없구나 |
哭子(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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去年喪愛女(거년상애녀) 지난 해는 사랑하는딸을 잃었고
今年喪愛子(금년상애자) 올해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哀哀廣陵土(애애광릉토) 애달프고 애달픈 광릉의 땅에
雙墳相對起(쌍분상대기) 두 무덤이 서로 나란히 있네
蕭蕭白楊風(소소백양풍) 백양나무 사이엔 쓸쓸한 바람
鬼火明松楸(귀화명송추) 숲속에는 밝은 도깨비불
紙錢招汝魂(지전초여혼) 지전으로 너희들 혼을 부르고
玄酒存汝丘(현주존여구) 너희들 무덤에 술을 따르네
應知第兄魂(응지제형혼) 당연히 너희 남매의 혼은
夜夜相追遊(야야상추유) 밤마다 정겹게 어울려 놀겠지
縱有服中孩(종유복중해) 비롯 뱃속에 아기가 있다 한들
安可糞長成(안가분장성) 어찌 제대로 자라기를 바라리
浪吟黃坮詞(낭음황대사) 황대 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血泣悲呑聲(혈읍비탄성) 피눈물로 슬픔을 삼키고 있네 |
빈녀음(貧女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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手把金剪刀(수파금전도) 가위로 싹둑싹둑 옷 마르느라면
夜寒十指直(야한십직지) 추운 밤에 손끝이 호호 불리네
爲人作嫁衣(위인작가의) 시집살이 길옷은 밤낮이건만
年年還獨宿(연년환독숙) 이 내 몸은 해마다 새우잠인가 |
채련곡(採蓮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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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가을의 긴 호수에 옥 같은 물 흐르는데
荷花深處係蘭舟(하화심처계난주) 연꽃 깊은 곳에 목련배 매어두고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연자)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님의 눈에 띄었을까 반나절 무안 했네. |
푸른 하늘 흰 구름은 시 노래를 / 許蘭雪軒(허난설헌)
碧空白雲作詩歌 * 벽공백운작시가 푸른 하늘 흰 구름은 시 노래를 짓고
牽牛織女繡深夜 *견우직녀수심야
견우와 직녀는 깊은 밤 수놓는데
夢中戀君何處行 * 몽중연군하처행
꿈속에 그리는 임 어디로 가셨는지
愁丘霖淚濫大河 * 수구임루남대하
근심 언덕에 장마 눈물, 큰 강을 넘치네.
추녀를 차지한 제비는 쌍쌍이 날고
떨어지는 꽃잎은 황홀이 비단옷에 부디치네
아무리 내다봐도 봄시름만 돋우는데
강남에 풀 푸른데 임은 돌아오지 않네,
채련곡
해 맑은 長湖에 벽옥이 흐르는 듯한데
연꽃 두거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물건너 임을 만나 연꽃밥을 따서주고는
혹 시나 남 봤을까 한나절 부끄러웠소,
규원(閨怨)
비단띠 비단치마 눈물흔적 쌓였음은
임그린 1년 방초의 원한의 자국
거문고 옆에끼고 강남곡을 뜯어내어
배꽃은 비에지고 낮에 문은 닫혔구나
달뜬가락 가을 꿈도 옥병풍 허전한데
서리친 갈밭에 기러기 앉네
거문고 아무리 켜도 임은 안오고
연꽃만 들 못위에 맥없이 지고있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 기대였구나
부용꽃 27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이윽고 돋은 달이 호수로 비처드니
연 캐는 조각배는 밤으로만 돌아오네
저 배야 기슭으로는 들지마라
단 잠든 원앙이 놀라 날겟다,
강물은 가을 되어 잔잔하고
구름은 석양에 막혔구나
서릿바람에 기러기 울고가니
차마차마 떠나지 못하네,
기하곡 (奇荷谷)
어두운 창가에 환한 촛불 나즈막 한데
반디불이 높은 집을 건너네
고요한 가운데 차가운 밤은 깊어가고
우수수 가을잎 떨어지네
변방에선 소식 드물고
내맘속 근심 숨길이 없구나
멀리 청련궁을 상상 하노라니,
허난설의 친필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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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전 지식을 갖고 여행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좋은 자료 제공 감사하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