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임병식 rbs1144@daum.net
해마다 추석이 다가오면 걱정이 앞선다. 맞이하는 추석자체로 인해 생긴게 아니라 걱정은 따로 있다. 바로 벌초 때문이다. 집 가까이, 그것도 입출입이 가능한 곳이면 상관없는데, 벌초를 해야 하는 산소는 많이 떨어져 있는데다 길도 평탄하지 않다.
그 거리는 도계(道界)를 벗어난다. 부모님의 산소가 위치한 곳은 전라북도 정읍. 전라남도, 그것도 끝자락 여수에 거주하는 나로서는 보통일이 아니다.
혼자서 해야하는 일이라면 진즉 포기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이 혈기 방장한 조카가 한 고을에 살고 있어 벌초를 할 때면 꼭 동행 한다. 이렇게 말하면 제법 한몫을 한듯해도 사실은 난 보조자에 그친다. 왜냐하면 항상 예초기를 메고 작업을 하는 사람은 조카이기 때문이다. 그저 나는 뒤에서 갈퀴를 들고 뒷정리를 하는 정도이다.
진입로에서 산소까지는 500미터 남짓이다. 가플막을 걸어 올라 벌초를 하자면 힘이 든다. 그동안은 해마다 중간에 산소를 두고 있는 동네 주민이 그곳까지 잡초 제거해 놓아 도움을 받았는데 금년은 그렇지를 못했다. 그 바람에 작업량이 훨씬 늘어났다.
그기다 산발한 잡초더미를 뚫고 모역까지 올라 벌초를 하고 나니 기분이 상쾌하다. 잠들어 계신 부모님도 웃으며 좋아하실 것 같다. 그래서인지 무더운 날씨에 저고리가 흠뻑 젖는데도 할 일을 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쁜하다. 그래도 한동안 힘을 써서인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친 나머지 상석 옆에 퍼질러 앉았다.
그나저나 생각하니 예초기가 효자이다. 이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면 놉 세사람은 빌려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나절 만에 끝냈으니 월마나 수월하게 한 것인가.
부모님 산소를 이곳에 모신 것은 순전히 아우의 때문이다. 아우는 평소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아 유명 지관들을 많이 사귀고 있었는데, 한 지관이 이곳을 추천했다. 국내 대학교수에 있던 분이 외국에 교환교수에 나가게 되면서 관리할 사람이 없어 파묘를 하여 화장 후 산분장(散粉葬)을 하고 떠난 것이다.
그 장지를 추천받아 사게 된 것이다. 묘 터가 어떤지는 모르나 이곳에 오르면 아무리 추운 겨울도 아늑하다. 다른 곳은 눈이 질펀해도 이곳만은 눈이 내린 즉시 녹아 언제나 잔디가 드러나 보인다.
그러나 언제까지 관리하며 벌초를 하게 될지는 모른다. 벌써 내 나이도 80이 가까운데 몇 차례나 이 산을 오를 수 있을까. 그렇지만 기력이 있는 한은 돌봐야 하지 않을까,
이즘 보면 장례풍속이 많이 바뀌고 있음을 본다. 차를 타고 지나다보면 봉분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여러 기의 무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무덤 앞에는 상석 하나만 갖춰져 있고 주위에 잔디가 깔렸다. 그런가 하면 어떤 곳은 벌초하기가 번거러워선지 아예 잔디 대신 잘게 깬 쇄석(碎石)을 깔아 놓은 곳도 보인다.
30여 년 전에는 잔디가 덮힌 큰 봉분 앞에 문을 달아 가족과 친척이 사망하면 화장 후 유골을 모시는 가족묘 조성이 유행했는데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외관상 좋아 보이지 않다는 이유 때문이다.
풀이 웃자라는 걸 막기 위해 한때는 봉분과 묘지주변을 콩크리트로 덮기도 했으나 번들거리는 것이 안좋아 보여 쇄석을 까는 것이 추세라고 한다. 이것은 모두 벌초하기가 힘들어 일어나는 일이다.
얼마 전에 희망 장례 유형을 묻는 설문조사 발표가 있었다. 여기에 보면 국민들은 화장후 봉안(35.2%),화장후 자연장(33.2%), 화장후 산이나 강에 뿌리는 산분장(22.6%)였고 매장(8.5%) 훨씬 낮았다. 달라진 인식의 변화를 알게 한다.
이런 추세라면 매장하는 장례법은 뭐지 않아 살아지지 않을까 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벌초의 번거로움 뿐 아니라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쓰기위해서라도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닌가 한다.
그렇더라도 기왕에 모셔진 산소는 어쩔 수 없지 않는가 한다. 파묘하여 한군데 모신다는 것도 그렇고 고인이 편히 쉬시는 유골을 함부로 손댄다는 것도 불경스럽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해서 나는 내 기력이 있는한 앞으로도 벌초는 계속할 생각이다. 손으로 꼽아보아 몇 번이나 더 하겠는가. 몸 고단 한 것 보다 마음이 편한 것을 선택하는 편이 낫지 않는가 생각한다. (2024)
첫댓글 벌써 벌초를 하고 오셨군요
정읍까지는 만만한 거리가 아닌데 해마다 벌초를 해오시는 정성이 대단하십니다 저는 부모님 산소가 지척인데도 아직 벌초를 못하고 있네요 먼길에 수고하셨습니다
해마다 벌초하기가 보통일이 아닙니다. 갈수록 힘이 들고, 앞으로 얼마나 더 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남편도 일꾼 대서 이틀을 선산 돌아다니며 벌초하고 녹초가 되었습니다.^^
벌초하는 일이 예삿일이 아닙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고 조카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