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2일. 다윈의 날. 한국의 탄생화와 부부 사랑 / 틸란드시아(틸란시아)
♧ 2월 12일. 오늘의 역사와 기념일.
* 다윈의 날(Darwin Day). 1809년 다윈 출생.
* 1804년 -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 타계
♧ 2월 12일. 한국의 탄생화
* 다윈의 날을 맞아 가장 경이롭게 진화한 공중식물 틸란드시아 : 파인애플과 틸란드시아속 9종
* 대표탄생화 : 틸란드시아
※ 2월 12일 세계의 탄생화
쥐꼬리망초 (Justicia Procumbes) → 10월 17일 한국의 탄생화
오늘은 1809년 2월 12일 다윈의 탄생을 기념하는 [다윈의 날]입니다. 좀 생소하신 분들이 많죠? 아직까지도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 반감을 가진 분들도 많고요. 그러나 철학자의 눈으로 본 다윈은 털 없는 원숭이, 지구 유일의 지적생명체인 인류 문명의 여정에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 위대한 분이랍니다.
몇 백년 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에 의해 제기된 지동설, 천동설을 가지고 싸우던 과학과 종교는 다윈의 진화론과 창조론으로 또 한번 맞붙게 되었지요.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개신교의 교리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과학 교과서에서 진화에 대한 부분을 삭제한 교과서가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2014년 10월 28일 가톨릭의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에서 열린 교황청 과학원의 `자연의 진화개념` 회의에서 `빅뱅이론과 진화론 모두 맞는 말이며, 그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찾아야 한다`는 요지의 인터뷰 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보다 앞서 1950년에 교황 비오12세께서도 `진화는 인간의 발달에 대한 타당한 접근`이란 말씀을 남겨 진화론에 대해 인정한 바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일부 개신교계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류와 모든 생명은 자연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에 이의를 두지 않습니다.
종교가 과학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과학 문명의 발달에 따라 인류의 눈이 더 넓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진화론의 아버지 `다윈의 날`에 어울리는 식물을 오늘 한국의 탄생화로 정했는데요, [파인애플과]의 공기 정화 식물인 [틸란드시아(틸란시아)]입니다. 이름은 생소하지만 요즘 원만한 꽃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풀입니다. 보통 조그만 화분에 담아 공중에 주렁 주렁 매달아 놓습니다. 그러다보니 가늘고 긴 흰 다발뿌리들이 그대로 공중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틸란드시아]의 뿌리는 보통 식물 뿌리의 역할인 땅에 잘 서 있도록 하는 지지작용과 물과 무기양분을 흡수하는 뿌리의 고유한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야생의 틸란시드아는 높은 나무에 매달려 사는데 뿌리는 그 나무에 붙어 있는 역할만 하지 나무에서 양분을 빼앗지도 않습니다. 아마 얼마의 진화과정을 더 진행한다면 뿌리가 날개 역활을 하며 나무에서도 의지하지 않고 공중에 떠서 살아가도록 진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은 잎에서 공기 중의 습기를 흡수합니다. 바다에서 탄생한 식물이 육지를 거쳐 공중에서 살아가도록 진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다윈의 날의 탄생화로 선정될만하죠?
이런 강한 생명력으로 틸란드시아가 갖게 된 꽃말은 [불멸의 사랑]입니다.
생명 진화의 다양성과 독창적인 창의성이 놀랍습니다. 이런 다양성 안에서 생명공동체는 풍요를 만끽합니다.
어울려 산다는 것은 [서로 다름]이 [서로 이해]하고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다양성]으로 나타날 때 우리 공동체는 좀 더 풍성하고 아름다워집니다.
진화는 생명에게 다양한 [다름]을 만들어냅니다.
[다름]은 [틀림]과 다릅니다.
부부의 행복은 부부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틸란드시아에게서 [다름의 이해]를 배웁니다. 그것이 또한 결코 꺼지지 않는 [불멸의 사랑]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봅니다.
다윈과 함께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할 분은 칸트입니다. 다윈이 태어나기 5년 전인 1804년 오늘, 서양 철학의 정점에 있는 칸트는 철학의 우주로 침잠합니다. 어제 소개한 데카르트가 근대서양철학의 시작이라면 칸트는 근대철학의 완성이며 정점입니다.
그는 철학자이지만 태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았던 최초의 사람입니다. 칸트의 '성운론(星雲論)'은 무려 150년이나 지난 1940년대에 들어서 과학자들에 의해 인정받았습니다. 무엇을 특히 우주와 생명의 본질에 대하여 인류 최초로 알게 되었다는 것은 참 신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당시가 아니라 한참 후, 어떤 것은 그가 죽은 후에나 밝혀져 슬프게 합니다. 저도 우리 우주가 단지 폭발이 아니라 반작용인 수축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저의 저서 [유레카3]를 통해 이야기했는데요, 과학은 언제쯤 저의 이야기를 이해하게 될까요? 또 [한국의 탄생화]를 통해 모든 생명은 연대되어 있다는 것과 [인류 진화의 목적이 연대의 관리]라는 것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아직은 사람들 인식의 외부에서 겉돌기만 하고 있습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이라는 비판 철학을 통해 그의 사고를 세상에 내어놓습니다. 순수이성비판이 세상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에 대한 인식론의 이야기라면, 실천이성비판은 그 세상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실천론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는 두 가지 정언명령을 인류에게 제시합니다. 모세의 십계명이나, 예수님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에 비유할 수 있지요.
첫째 명령은,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 입니다. 이 말은 쉽게 말하면 내가 하려는 행동을 누가 보더라도 혹은 다른 사람이 그 같은 행동을 똑 같이 하더라도 당당한 행동만 하라는 의미입니다.
둘째 명령은,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 하라" 입니다.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로 축약되는 칸트의 이 말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인간은 수단이 아닌 목적이다.'라는 명언은 칸트가 인류에게 남긴 위대한 유산입니다. 칸트 시대에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한 것이「신분(身分)」이라면 21세기 현대에 있어서는「자본(資本)」입니다. 인간이 자본의 수단이 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칸트가 만약 지금 살아있다면 칸트는 자본의 노예가 된 인류에게 어떤 정언 명령을 내릴까 궁금합니다.
1804년 오늘 위대한 철학자가 돌아가셨고, 1809년의 오늘은 또 다른 위대한 과학자가 태어났습니다. 삶과 죽음은 일상의 일입니다. 그 일상을 특별하게 하는 것은 그대의 존재 목적을 이해하는 통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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