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21(목) 맑음
오후에 기마자세를 하고 기공체조를 하다. 일몰관(日沒觀)을 하다. 지는 해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서산에 해가 지는 순간까지 주시를 계속했다. 떨어지는 해를 끝까지 지켜본다는 것은 황홀하다. 4조 도신(道信)선사가 일상관(日相觀)을 했다고 전해지는 데, 일몰관은 참으로 묘한 공부이다. 몸과 마음을 함께 닦을 수 있어서 좋다. 매일 해봐야겠다. <놓아버리기>를 읽다. 수행에 힘을 더해 주는 지혜의 영양분이 들어있다. 과거를 놓아버려라. 그러면 너는 새로 태어난다. 미래를 놓아버려라. 너는 텅 빈 무한자재이다. 현재는 얼마나 신비한가.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여기에 없다. 오직 있는 건 현재. 그리고 현재는 진행 중. 너는 현재 진행 중.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자유이다. 뭐가 문제인가.
무엇을 성취해야겠다는 마음이 가벼워져서 편안하게 정진할 수 있다.
2013.11.22(금) 맑음
어느 사이에 하루가 지나갔다. 그냥 손가락 사이로 새나가는 물 같이 흘러 가버린다. 기마자세와 일몰관을 하다. 샤워를 하고 눕다. 기분이 그런대로 괜찮다. 아잔브람 스님의 선정수행은 상카라의 영향이 없는 수행자에게는 지극히 효과가 있지만, 상카라의 소멸(dissolution of formations)이 심하게 요동치는 수행자에게 제시되어야 할 해결책이 빠져있다. 아마 아잔브람 스님 자신은 전생에 많이 닦아서 기맥의 순환이 순조로워 선정으로 바로 들어갔나 보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에는 <아름다운 호흡단계>에서 상카라의 요동 때문에 니밋타도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정밀한 수준의 고요함을 얻을 수 없다. 결국에는 상카라의 적멸을 봐야 한다. 상카라의 적멸을 열반이라 묘사하기도 한다. Visankhara. 그렇게 된다면 곧 아잔브람 스님이 말씀하신 니밋타의 찬란한 중심으로 직입하여 본삼매로 들어가는 것이다. 필요한 경우 이 방법 저 방법을 다 적용한다. 나는 수행방법에 대해서는 순수주의, 정통주의를 고수하지 않는다. 절충주의랄까(Syncretism), 실용주의적(Pragmatic) 태도이다. 소위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을 지향한다. 열반으로만 갈 수 있다면 한국 화두선이든, 묵조선이든, 염불선이든, 티베트밀교이든, 마하시 방법이든, 순룬 사야도 방법이든, 아잔 차(아잔브람 스님은 아잔 차 방식을 더 실용적으로 체계화시켰다) 방식이든 무슨 상관이랴. 쥐만 잡으면 되지, 고양이 털 색깔이 까맣든지 희든지 무슨 상관인가. 고양이의 할 일은 쥐만 잡으면 되는 것이다. 어떤 수행방법에 무슨 특별한 비방이 있는 게 아니다. 수행자의 개인적인 성향에 맞는 것, 수행의 과정상 단계 단계마다 필요한 것을 갖다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다양한 수행방법에 대한 정보가 없거나 어떤 경우에 어떤 수행방법이 유효할지 누가 판단해줄 수 있을까? 그래서 수행 상담가나 수행코디네이터(Coordinator)가 필요한 것이다. 인터넷에 다양한 수행방법에 대한 정보가 흘러넘치는 시대가 왔다. 몸과 마음의 평화를 찾아서 수행에 관심이 증대되고 있다. 이럴 때 다양한 전통에 대한 전반적인 전망을 갖추고 수행경험이 있는 수행지도자가 요구된다. 내가 그런 수행지도자, 영적인 가이드(Spiritual guide), 수행선생님(Meditation teacher)이 될 수 있을까?
2013.11.23(토) 맑음
어젯밤 9시에서 새벽 3시까지 정진했다.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다. 피곤하지 않고 오히려 기운이 난다. 새벽 3시에서 아침 7시까지 잠을 잤다.
상카라의 진행이 순조롭다. 그러면 니밋타가 푸른빛을 내면서 오른쪽으로 나선형을 그리며 중심으로 수렴한다. 그러면 니밋타의 중심은 ‘제 삼의 눈’처럼 동그란 푸른 눈이 된다. 그러다가는 다시 상카라가 발동하면서 니밋타가 흩어진다. 아쉬운 생각이 든다. 그 중심으로 더 깊이 들어가 고요한 비상을 이루어야 하는데. 어쨌든 오늘 수행에 만족한다. 현재까지 모든 것이 순조롭다. 몸과 마음도 편안하고 경쾌하다. 소화도 아무 문제 없다. 운동도 부족하지 않다. 요가 아사나도 잘 된다. 몸이 훨씬 유연해졌다. 갈수록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2013.11.24(일) 바람 분다
오늘 하루 좋은 날이다. 의자에 앉아서도 정진이 잘 되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상카라를 탓할 것이 아니라 상카라의 진행을 정밀하게 추적하면 된다. 결국에는 니밋타의 중심으로 수렴된다. 수행대상을 싫어하거나 지겨워하지 말라. 이것이 다섯 가지 장애의 두 번째인 Byapada(惡意)를 극복하는 길이다. 수행을 사랑하라. 수행대상을 갓 태어난 어린 아기 보듯이 사랑스레 보아라. 아잔브람 스님의 말씀이시다. 사랑에 빠진 연인이 자꾸만 임을 보고 싶어 그리워하는 것처럼 그렇게 수행하라. 연애하듯 수행하라.
꿈을 꾸다.
흑인여성이 모로 누워있다. 검은 피부의 여신(Black Goddess) 같다. 내 몸을 잘라 컵(Chalice)에 넣어 즙(Juice)으로 만들어 봉헌하라(Consecrate). 이런 일은 자주 해봐서 별로 걱정되지는 않는데, 잘해 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