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에스겔 16:1-14)14.03.09.주일낮설교
한국에서 하루 평균 33명이 스스로 자살을 한다고 합니다.
이는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훨씬 많은 수치입니다.
자살 원인은 2012년 경찰통계연보에 따르면 자살 1만3천940건 중 2천618건(18.8%)이 경제생활 문제이고, 정신적 문제가 3천861건(27.7%)건, 육체적 질병문제가 2천887건(20.7%)입니다.
최근에 생활고 비관에 따른 송파구 세모녀의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으며, 이러한 생활고 비관 자살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한 일간지에서 할머니는 실직당하고 집에서 고민하는 아들에게 짐이 될까봐 자살을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실직했다고, 실연했다고, 실망했다고, 심지어 못생겼다고, 자신의 삶을 포기해 버리는 것은 그 어떤 일보다도 어리석고 나쁜 일입니다.
지금 당장 힘들다고 해서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겔 16:6)고 말씀하십니다.
1. 우리는 왜 살아야 합니까?
은혜의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 중에서 약 22년간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오늘 본문 에스겔 16:1-14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Love Story입니다.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기 전에 예루살렘에는 이방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입니다.
'헷 족속'이란 팔레스틴 주역 주민 곧 헷(Heth)이란 사람의 후손을
가리킵니다(출 3:8, 17).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모는 정통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이교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출신 성분부터 정통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더 심각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형편없는 부모 아래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갓난아기를 버렸습니다.
실제로 고대 세계에서 여자 아기가 유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부모는 그 당시에 아기가 태어났을 때 해야 하는 기본적인 일들
즉, 배꼽 줄을 자르고, 물로 씻어 정결케 하고, 방부처리를 위해서
소금을 뿌리고, 담요로 싸 주지 않았습니다(4절).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태어나던 날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한 채, 들에 버려져 죽어갑니다(5절). “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갓 태어나서 버려진 아이 곁을 지나갈 때에 피투성이(핏 덩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기에게 명령합니다. 6절입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또 다시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나님의 이 명령은 곧 하나님께서 이 아기를 살려주시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결국, 하나님 때문에 이 아기는 죽지 않고 살아납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고,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워 집니다. 성숙하여 가슴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습니다. 그러나 벌거벗었습니다(7절). "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이 아이가 자라나 매우 사랑스러워 집니다. 여호와의 옷으로 아이의 벌거벗은 것을 가려주고 맹세하여 언약합니다: “너는 내 것이 되었다” 고 하십니다(8절).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께서 벌거벗은 여자 아이를 자신의 옷으로 덮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합법적인 신부로 맞이하는 모습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시는 행동은 계속 됩니다. 여호와는 이 여자 아기를 물로 씻기고, 피를 닦아내고, 기름을 발라 주었습니다(9절).
“내가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줍니까? 하나님은 죄악으로 인해 죽었던 우리를 예수님을 보내셔서 살려주셨습니다. 비참한 자, 버려진 자, 고아와 같은 우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냥 두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하나님이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내 것이다”라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하나님의 자비와 주님의 보혈로 덮어주십니다.
우리의 죄악을 씻으시고 우리를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살아야 합니까?
핏덩이처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 인된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우리를 살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려주시고, “너는 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항상 보고 계시며, 우리 항상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1. 우리는 왜 살아야 합니까?
은혜의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셨기 때문입니다.
2.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를 살리신 은혜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여자 아이인 이스라엘에게 계속 사랑을 베푸십니다.
수놓은 옷을 입히고, 물 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감싸고,
비단으로 덧입히십니다(10절).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 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족처럼 꾸며주시는 것입니다.
수놓은 옷, 가는 베, 명주는 제사장과 성막과 관련된 재료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패물을 채우고 팔 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사슬을 목에 둘러 주시고, 코걸이, 귀고리, 화려한 면류관을 씌워줍니다(11,12절).
“패물을 채우고 팔 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이스라엘은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고, 극히 고와서 왕비의 자리에 이르렀습니다(13절).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이제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됩니다.
이스라엘의 아름다움 때문에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으니,
여호와께서 주신 영광으로 화려함이 완벽했기 때문입니다(14절).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루살렘은 피투성이 된 채 버려진 여자 아기에서 화려하고 아름다운 왕비의 지위로 신분의 변화를 경험합니다.
더욱이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과 제사장 나라가 됩니다.
에스겔 16장의 이 이야기의 주제는 하나님의 완벽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를 죽이셔서 사랑을 확증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사랑 없이는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요, 하나님의 온갖 은혜로 사는 자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사는 길입니다.
안산에 고훈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예수 믿기 전 20세 때 폐결핵으로 자살을 하려고 했답니다. 농약을 먹고 죽으려다 농약이 목으로 넘어갈 때의 고통을 상상하고 두려워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목을 매 죽으려다가 숨이 막힐 것 같아 두려워서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으려다가 바위에 두개골이 산산히 부서질 때 얼마나 아프겠는가를 상상하고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동맥을 칼로 끊으려다가 피 흘리는 고통이 끔찍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답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예수님이 자살을 ‘살자’로 바꾸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기가 힘드십니까?
절대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항암치료를 받는 이들 중에는
빨간약이라고 불리우는 아드리아마이신이 있습니다!
이 항암치료제가 왜 빨간약으로 불리우는지 아십니까?
이 항암제를 투여받는 동안 너무 고통스러워서
흐르는 눈물까지도 <빨간색>이 된다고 해서 빨간약입니다!
지금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병원에는
이런 몸부림으로 자신의 삶을 지탱하려는 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왜 멀쩡한 사람이 죽을 힘을 다해 살 생각들을 않고 죽을 생각을 먼저합니까? 안됩니다! 살아야합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살아 있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힘들어도 내가 도와 줄테니, 내가 책임 질테니 살아있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왕자고, 왕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왕자가 되고, 왕비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죽을 죄인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자녀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에서 살려주신 주님의 크신 은혜를 알고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삶에, 고민거리와 문제가 많이 있습니까?
우울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통이 있습니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서 광 교 회 는 기독교한국침례회 소속 교회입니다.
서 광 교 회 [瑞光敎會]는 상서로운 빛이 비취는 교회,
하나님의 빛이 임하는 교회입니다.
서 광 교 회 는 ‘희망이 있는 좋은 일이 일어나는 교회’입니다.
“유다 사람들에게는 서광이 비치는,
기쁘고 즐겁고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에스더 8:16, 표준새번역).
첫댓글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사람들의 가증한 죄악을 폭로하시고 망덕한 행위를 책망하신다 . 하나님께서는 피투성이라도 십자가의 보혈의 피로 살려 주셨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한데 사랑 은해 기쁨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 입니다 .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쁘게 살아야 겟다 ~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은 절망하며 낙심될때 스스로 목수을끊고 세상과 단절한다 우리 하나님은 핏덩이라도 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먹이시고 왕족으로까지 우리를 높여주신다고 하셧다 믿음으로 주님을 의지하며 말씀으로 살아야 겟다
참 귀한 복음의 말씀입니다 에스겔선지자를 기억하며 어려워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주의 일꾼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