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문학 탐방 편
1.봉선사와 춘원 이광수
봉선사와 춘원 이광수의 관련성은 크게 혈연, 은거지, 교육활동, 기념비로 요약됩니다.
1. 운허스님(이학수)과의 혈연
봉선사를 중흥시킨 운허스님은 이광수와 가까운 친척입니다.
봉선사 위키에는 "일제강점기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태허 스님, 운허스님이 머물렀고, 운허의 친척 형이 되는 이광수도 은거한 일이 있다. 이 때문에 이광수 기념비가 절 입구에 세워져 있다" 고 되어 있습니다.
두 사람의 촌수는 자료마다 6촌, 8촌으로 조금씩 다르게 표기됩니다. 이광수 위키에는 6촌 동생이자 승려였던 이학수의 주선으로 봉선사로 숨었다고 나오고, 봉선사 현장 취재기에는 "운허스님과는 8촌간이다. 1892년 3월 평북 정주에서 20여일 차이로 태어난 두 사람. 어려서 가난했던 춘원은 운허의 집에서 함께 생활해 두 사람은 형제 이상의 관계였다"고 설명합니다.
1946년 당시 운허스님은 봉선사 주지이자 조선불교 경기교무원장이었습니다.
2. 해방 직후 은거지
이광수는 해방 후 친일 행적 때문에 반민특위 조사를 받게 되자, 운허스님의 도움으로 봉선사로 피신합니다.
1946년 9월 2일 월요일 새벽, 이광수는 6촌 동생이자 승려였던 이학수의 주선으로 봉선사로 숨었고(봉선사 주지였던 이학수는 당시 조선불교 경기교무원장으로 있었다)
1944년 3월부터 1948년 8월까지 광릉·사릉 일대에서 농사를 지으며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고, 이 시기에 봉선사를 거점으로 불교에 귀의해 염불, 좌선하며 지냈다고 본인이 회고합니다.
3. 광동중학교 교사 활동
봉선사에 머문 뒤 운허스님의 주선으로 바로 옆에 있던 광동중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합니다.
영어, 국어, 작문 교사로 재직했고, 현제명이 작곡한 광동중학교 교가에 가사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4. 봉선사 입구의 춘원 기념비
지금 봉선사 입구에 서 있는 이광수 기념비가 두 사람의 인연을 상징합니다.
1975년 이광수의 아내 허영숙의 부탁으로 세워졌고, 1976년 5월 29일 봉선사와 광동중학교 입구에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다른 취재기에서는 "국내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춘원 이광수 기념비. 1976년 세워졌는데 운허스님과의 인연이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합니다.
비문에는 이광수를 한국문학의 선도자로 추켜세우는 내용이 적혀 있어, 2019년 경기도가 친일잔재 청산 프로젝트를 할 때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봉선사 입구에 친일파로 알려진 춘원 이광수 기념비가 있다"고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정리하면, 봉선사는 이광수에게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친척인 운허스님이 지켜준 피난처이자, 말년의 교사 생활을 시작한 곳, 그리고 사후에 기념비가 세워져 지금까지 논란과 함께 기억되는 장소입니다.
창작산맥 이호경글 퍼옴 26.8.31창작산맥 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