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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사례를 작성하시는 분의 기본 정보를 작성해주세요.
· 연령 : 39세
· 성별 : 여
· 직업 : 주부· 통증부위 : 두통, 오른쪽고관절
· 통증 원인 : 거북목, 나쁜자세, 하이힐
· 병명/수술여부 : -· 처음 SNPE하게 된 계기 : 지도자과정· 운동 참여 기간 : 4개월
· 1주 평균 운동횟수(일) : 6일· 운동목표 : 통증 완화 및 삶의 질 개선
· 사진 첨부 시, 촬영 날짜와 간단한 설명 부탁 드립니다.· 신체적&심리적 효과를 구체적으로 기술해주세요.· 효과가 나타난 시기를 명시 해주시기 바랍니다.(본 체험사례는 한국바른자세연구원에서 SNPE 효과 검증 관련 연구에 활용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체험사례 시작
1. 직업을 찾아서..
1)무용
저는 한국무용 전공자로 무용을 했습니다. 무용과 졸업후 대학원을 다니며 공연 연습을 하던 어느날, 수업을 가는길에 왼쪽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진단받은 바로는, 복숭아뼈 아래의 나오지 말아야 할 뼈가 복숭아뼈보다 돌출되어 신경을 누르고 있어, 더이상 무용을 하면 안된다는 청천벽력같은 말을 듣게됩니다. 이때 제가 의심하던 원인 중 하나는, 저는 한번도 운동화를 신어본적이 없이 항상 10센치의 하이힐을 신고 다녔는데 아마도 그 원인인듯 합니다.
하여 무용을 못하게 되어 진로를 고민하던 중에, 마침 다니고 있는 대학원이 체육교육 대학원이고 중등학교 교사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과정이어서 일반 중고등학교 무용교사가 되기로 진로를 변경하였습니다. 그러나 체육과목안에 무용수업이 가능하여야 하므로, 체육교사를 위한 임용을 봐야했고, 운동을 전혀 못하는 저로써는 말그대로 임용실기시험이라는 넘사벽앞에 다시 무릎을 꿇게 됩니다.
그럼 무용말고 필라테스를 해보자 시작하였지만, 그시절에는 기구없이 매트에서 하는 필라테스가 전부였는데 어느날 push-up 동작을 하다 오른쪽 팔목이 시큰거리더니 동작을 할 수 없을정도로 아팠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물혹이 있어 제거 수술을 해야한다고했고, 수술 이후 저는 팔목이 전혀 1도도 움직이지 않는 수술후유증을 겪게됩니다. 팔목은 재활로 현재 가동범위가 생기긴 했으나, 원래 팔목의 각도는 나오지 않으며, 많은 운동동작 (특히 push-up)에서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무용,필라테스 등 전공은 했으나 몸으로 할 수 있는 직업군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SNPE 공부를 하며 생각된 바로는 제가 목상태가 안좋아 팔목에 영향이 갔던것 같습니다. 목을 먼져 고쳤으면 괜찮아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안타까웠습니다.
2)화장품브랜드매니져
방황하던 저는 미국으로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그 이후 배운 영어로 좋은 기회에 해외 화장품 브랜드 매니져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화장품을 수입하고 런칭시키는 일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무용이라는 작은 세상에서 나오니 이렇게 재미있고 멋진 세상이 많구나 실감하며 무용을 못하게 된것이 하나도 아깝지 않을만큼 즐겁게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부터 시작한 두통과 안구통은 너무도 심해져서 컴퓨터를 단 1시간 이상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9시간 이상을 컴퓨터 작업을 해야하는 저로써는 더이상 업무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현재도 심할땐 핸드폰을 보고 5분도 되지 않아 바로 두통,안구통,구토 증상이 있습니다.
그 이후 그동안 일한 커리어로 컴퓨터 작업보다 현장 작업이 더 많은 광고회사로 이직하게 됩니다. 그러나 광고회사의 특성상 스트레스가 많은 업무 환경으로 저는 제 인생 최대 지병인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심해져서 정말 심한날은 업무중 13번의 화장실을 다녀올정도였습니다. 업무보다 화장실 가는 시간이 더 많고, 하루종일 허벅지가 저린듯한 느낌의 통증은 저를 우울하고 예민하게 만들어 그시기의 저는 회색으로 기억됩니다.
4)결혼
이렇게 발목의 이상증상, 두통과 안구통,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어느 직업군도 갖지 못하고 방
황하던중에 인연이 닿아 지금의 신랑과 결혼을 하여 현재 8년째 결혼생활 중입니다.
결혼을 한 후, 아이를 낳고 저는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왜냐면 발목, 두통,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있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게 엄마였고. 어렸을때부터 열심히하는것에는 자신있던 저는 열심히해도 몸이 아프지 않는다는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정말 열심히 아이들을 키웠습니다. 주위에서 특히 일을 하다가 육아로 일을 못하는 엄마들이 육아우울증에 걸릴때에, 저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엄마라는것에 그 자체로 너무나 만족했고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두통,안구통,과민성대장증후군이 제 삶을 괴롭히지 않은건 아니었습니다.
2.두통과 안구통
2009년 두통으로 대학병원에 방문하였으나, 그때가 마침 광고회사 다니던 시절이라 제 정신건강이 좋지 않아던 이유로 우울증 진단과 신경안정제를 처방받습니다. 우울증으로 오는 두통이라는 말도 안되는 진단으로 더이상 병원은 가지 않았습니다. 결혼 후 육아관련 블로거 활동을 틈틈히 했으나, 점점 블로그가 활성화되면서 수익이 나고, 그로인해 컴퓨터를 사용하는 시간이 많아지는만큼 두통과 안구통이 심해져 결국 블로그 활동도 포기하게 됩니다. 난 정말 다시는 경제활동을 할 수 없나보다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안과에서 안구건조증이 너무 심하여 두통이 온다는 진단을 받고 고액의 검사 및 안구건조와 안구피지(?)제거술을 받았습니다. 물론 효과는 없었습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아도, 심지도 맞는 중에도 맞고 나서도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잠자는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3.과민성대장증후군
일단 결론먼저 말씀드리면, SNPE 생식 2주째인 현재 완치되었습니다. 2주만에 완치라고 말하는것이 섣부르다고 생각하실지 모르나, 저는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제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글로 쓰려면 책을 한권으로도 모자랄 정도입니다.
그중 제일 큰 사건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때, 아직 29주밖에 안된 상태에서 과민성대장증후군으로 설사증상 이후 배뭉침이 생겨 병원에 가보니 아이가 곧 나올 것 같다며 대학병원으로 이송됩니다. 설사를 하며 자궁벽에 영향을 받았다고했습니다. 다행히 조산기의 고비를 넘기고 퇴원했지만, 그 이후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침대에서만 생활을 하게되고, 그 이후 33주에 한번 더 설사와 함께 두번째 조산기로 다시 입원을 합니다. 그때의 두려움은 말도 못해요. 감사하게도 이번에도 고비를 넘기고 집에서 정말 누워만 지내다 정상분만 하루를 앞둔 37주 5일에 그날도 역시 설사로 인해 세번째 조산기 배뭉침이 와 결국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제가 화장실에서 1-2시간을 못나오고 있으면 한창 껌딱지일 때의 우리 아이들은 하염없이 엄마를 불러대며 1-2시간을 내리 울어야 했던적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ㅠㅠ 불과 몇주전까지도요. 차타고 가다가 급하게 상가 화장실에 들어가 1시간을 못나오고 있으면 아이들은 또 차안에서 엄마를 찾으며 웁니다. 쓰다보니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저는 아침에 꼭 밥코팅을 해야 하루를 그나마 무사히 넘길 수 있습니다. 남들처럼 베이글, 시리얼, 에그베네딕트 뭐 이런거 꿈도 못꾸고, 아침엔 꼭 흰밥에 나물정도 먹어야 다급하게 화장실가는 상황이 오지 않습니다. 친구들을 만날때는 당연히 제 장상태에 따라 메뉴가 정해져야해서, 밥코팅 했는지 물어봅니다.;; 어쩔땐 밥에 나물만 먹었는데도 설사를 합니다.
예전 무용할때는, 공연하는날엔 무조건 굶어야 했습니다. 행여나 속이 안좋으면 대회도 공연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직도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아침부터 그냥 굶습니다. 그럼 정말 힘이 너무 없어 힘듭니다.
★선식 그 빛이 내게 오다.★
3개월전 SNPE 선식을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지도자과정 수업중에 알게 되었고, 물을 최대한 적게 뻑뻑하게 먹어야 좋다는 말에 그렇게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효과는 전혀 없었고, 오히려 두통과 어지럼증때문에 3일을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그럼그렇지. 이게 어떤병인데 이런걸로 고쳐질리가 있나."하고 남은 선식은 신랑을 타주었습니다. 평생 이것때문에 안해본게 없는데. 이게 이렇게 쉽게 나을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2주전. 어떤 이유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물을 많이 타서 먹어볼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 물을 꽤 많이 넣고 타마셨습니다. 그런데 어지럼증도 없고 괜찮아서 그렇게 하루더 하루더 마시게 되었는데. 현재 2주가 넘은 오늘까지 한번도 설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ㅠㅠ 제 생에 3일을 넘어서 설사를 안한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게다가 어제는 무조건 설사직행열차인 곱창, 그리고 오늘은 짜장면과 탕수육을 먹었는데. 여전히 제 속은 너무도 편안합니다. 며칠전엔 절대 먹으면 안되는 유제품도 먹었지만 괜찮았습니다. 의심많은 우리 신랑도 현재 매우 당황해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있을수 없는 일이 벌어진것 같습니다. 먹고싶은걸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있다는걸 요즘 실감하며. 음식때문에 너무 행복합니다.ㅠㅠ 화장실 갈 각오로 먹지 않아도 된다니. 정말 꿈만 같습니다. 의료계에서도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치료법이 없는걸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렇게 있는데 말입니다.!!
선식을 판매해주시는 SNPE.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발 쭈~욱 생산해주세요!!
선식 관련하여서는 추후에 다시 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4.SNPE
사실 저는 무용을 전공했지만 세상 뻗뻗한 몸을 가졌고, 심지어 SNPE 기본동작도 되지 않습니다. 처음엔 두통과 고관절이 너무 아파 시작한 지도자과정이었지만, 공부를 하다보니 내가 SNPE 강사가 되고 싶다는 꿈까지 갖기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혀 되지 않는 구르기 동작으로 용기와 좌절을 하루에도 수백번씩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 무용을 시작한 중학교때, 무용선생님께서는 저는 타고나길 몸이 발레같은 유연한 동작을 하기엔 불가능한 몸이라며 한국무용을 권하셨고, 정말 대학교 졸업때까지 매일 무용을 10시간을 넘게해도 스트레칭만은 되지 않았습니다. 무용을 하며 재즈댄스도 함께 했었는데, 그때도 스트레칭은 당연히 되지 않았고, SNPE 구르기와 비슷한 동작들을 하면 구토증상이 생기며 바로 몸살이 나서 재즈댄스 무용단을 그만둔 일도 있었습니다.
과거의 일도 있고, 모두가 다 되는 구르기가 나는 되지 않는것을 보며, 역시나 난...또 안되나보다. 하며 강사의 길은 포기하는게 나을거라고 생각할때쯤. 선식을 먹고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나아지자 저는 몸이 건강해져서 그런지 맘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평생 절대 낫지 않을것 같던 내 과민성대장증후군이 나았으니. 무용선생님도 절대 안된다고 했던 나의 몸도 변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히 3일전. 저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5.내몸의 변화
1)SNPE 하기전 저의 몸은 마르기만했지, 엉덩이밑에 엉덩이가 한줄 더 있었고, 골반전방경사, 뱃살, 날개뼈돌출되어 참 보기좋지 않은 몸이었습니다.
2)그리고 무엇보다 꼬리뼈와 고관절 통증이 너무나 심했는데, 공부를 하다보니 이상근증후군이라는 병명을 알게되었고, 매일 2시간 이상씩 4구롤러와 왕도깨비로 요추~꼬리뼈~고관절 부위의 통증부위(트리거포인트)를 찾아 지압을 시켜주었습니다. 통증부위는 요추부터 고관절까지 없는부위가 없었고, 통증강도는 비명을 지를만큼의 통증들이었지만, 나중엔 그 통증들을 즐기는(?) 수준이 될 정도로 미친사람처럼 통증을 찾아 쑤셔댔습니다. 그 결과 걸을때마다 괴로웠던 꼬리뼈와 고관절 통증은 굉장히 완화되었고, 꼬리뼈 변색된 부위의 흰색 반점(통증중 제일 아팠던 부분)은 제거되었습니다.
3)고관절 다음으로 큰 숙제인 저의 척추입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린 이유로 아이들을 재우고 난 이후, 빠르면 10시부터 수련을 시작할 수 있는데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 몸을 시간 제약을 받으며 수련하려니 마음이 많이 급했습니다. 수업 첫날 웨이브배게위에 누웠던날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바늘배게에 누운것 같은데 거기서 운동을 하라니. 주위를 보니 그냥 누워만 있는 사람은 저뿐이 없었던것 같았습니다. 한달동안은 웨이브배게에 1-2시간씩 세로로 해놓고, 극돌기위에 그냥 누워만 있었습니다. 위의 사진이 누워만 있을때의 사진입니다. 너무나 마른 몸에 변형된 척추 그대로 자국이 남았습니다. 남들은 구르기를 해야 몸에 상처가 난다는데 저는 누워만 있어도 자국이 나고 움푹 패였으며, 외관상이 중요한게 아니라 여전히 바늘위에 누워있는 고통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30분정도 웨이브배게에 누워있은 후의 사진입니다. 아마도 저는 저 통증들이 없어지면 구르기가 될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하여 3일전부터는 저만의 T무브를 시작하였는데, 통증이 너무 심하여 T무브 동작 한번을 아주아주 천천히 척추 뼈 하나하나씩 들고 내려놓으며 거의 1분을 소요하게 운동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척추마다 통증강도가 많이 다르고, 통증 강도가 센만큼 더 오래 유지하는식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 통증이 없어지고 구르기가 되면 아마도 저 지저분한 등도 깨끗해질거라 생각합니다.^^
4)저는 아마도 태어나서부터라고 생각하는데, 왼손의 4번째 손가락의 손톱이 매우 울퉁불퉁했습니다. 사진이 없어서 무지 아쉬운데, 울퉁불퉁한 정도가 거의 낙타등처럼 2회이상의 높낮이가 있을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출산이후 그 울퉁불퉁한 손톱이 엄지로 옮겨갔습니다. 네번째 손톱은 펴지고 엄지가 낙타등처럼 울퉁불퉁했는데. 며칠전 우연히 본 제 손톱이 너무나 평평해진것입니다.!!! 위의 사진은 현재 손톱사진인데 울퉁불퉁한것이 아주 미세하게만 남았고 펴져있는 손톱!!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손톱도 과민성대장증후군만큼 제 평생 지병같은거였는데 이렇게 쉽게 나아지다니요.ㅠㅠ 이제 부끄럽지 않게 네일케어 받으러 갈 수 있게 되었어요.^^ 분명 어디가 안좋아서 울퉁불퉁했을건데, 펴졌으니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좋아졌다는 뜻이겠죠. SNPE는 정말 만병에 좋은 운동인게 확실합니다!!
5)제가 두통과 안구통때문에 못하게 된게 두가지가 있는데 바로 귀걸이와 마스카라입니다. 여자분들은 다들 아시죠.. 귀걸이와 마스카라가 없으면 그냥 여자사람이라는거.ㅠㅠ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산지가 몇년째인데.SNPE 한 이후로 다시 귀걸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개무량.ㅠㅠ 젊었을때는 맨귀에, 맨눈으로는 절대 외출도 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는데. 두통과 안구통 이후로는 할수가 없었어요. 요즘 귀걸이와 선식 덕분인지 얼굴이 환해보인다~ 꾸미니 예쁘다라는 말까지 듣게되네요. ㅎㅎㅎ 이제 아이들 촌스러운 엄마로만 살게될줄 알았는데. SNPE가 저에게 다시' 나'라는 사람으로. 그리고 여자로써 살 기회를 주었네요. 감사해요. ㅠㅠ
6)동작 BEFORE-AFTER
제가 SNPE를 한번도 해보지 않고 지도자과정을 먼저 듣게 되었어요. 동작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걸 모른체 자기소개를 하면서 호기롭게 무용전공자라고 말을 했죠. 그리고 첫 실기수업이후, 쥐구멍 있음 내가 먼저 들어가고 싶을만큼 창피했고, 무용과라고 말을 말것을하며 엄청나게 후회가 밀려왔죠. 그러면 그만큼 더 많이 수련을 해야하는데,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겨우 두시간정도 수련을 할 수 있었어요. 그마저도 아픈 고관절부위 지압하며 푸느라 시간을 다 써야했답니다. 혹여나 아이가 깨서 저를 찾으면 수련은 못하게 되는날도 있구요. 며칠은 더 열심히 하고픈마음에 잠안자고 새벽 4시까지 수련을 하다 잤는데, 오히려 컨디션이 안좋아지고 졸리니 가족들에게 감정적으로 피해를 주고 제몸은 더 굳어지더라구요. 그래서 제 상황에 맞춰 저만의 속도로 점진적으로 수련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본동작은 거의 못하고 아픈부위를 푸는데 집중하기만했는데, 그것만으로도 동작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몸이 굳어서, 통증부위로 인해 동작이 불가능했던것을 알게된 후, 저는 더 집중적으로 아픈 부위를 쫓아 SNPE 거의 모든 도구로 온몸을 마구마구 쑤셔댔습니다.
6.꼭 하고싶은 말.
저는 말씀드렸다시피 직업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리기 조심스럽지만 저희 어머니는 위암으로 제가 23살때 돌아가셨는데, 저는 4년동안 엄마가 어떻게 투병하시는지 겪으면서 건강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 현재 술은 마시지 않고 있으며, 가공식품은 되도록 먹지 않고, 과자 조차도 먹을때마다 엄마처럼 아프게 될까 죄책감으로 먹습니다. 심지도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어도 설사를 하는 저는. 엄마처럼 우리 아이들을 두고 먼저 떠나게 될까 큰 두려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SNPE를 만나고, 특히 SNPE선식으로 죽음의 두려움까지 갖게한 과민성대장증후군이 고쳐진후 저는 삶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고. 최중기 교수님께 마음 깊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약 SNPE를 엄마가 살아계셨을때 알게 되었더라면. 이라고... 생각해봅니다.
SNPE는 생명입니다. SNPE 선식은 치료제입니다. 저는 감히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병은 무지에서 온다는 교수님 말씀은 진리입니다. 우리는 항상 배워야 하고 사랑하고 소중한 우리 가족들 친구들에게 꼭 알려주어야 합니다.
7.SNPE는 나의 꽃길이다.
SNPE는 나에게 건강을 주었고, 자존감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꿈을 주었습니다.
현재 저는 4시간째 컴퓨터를 하고있지만 눈이 약간 뻐근한 정도이지 아직 두통과 안구통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정도라면 제가 포기했던 많은 꿈들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이 보입니다. 사실 정말 이루고싶은 꿈은 SNPE 강사입니다. 그러나 아직 너무도 부족한 동작들과 여전히 바늘위에 있는 통증들로 많이 멀어보이지만. 거북이라도 한걸음한걸음 천천히 가다보면 결승점에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오히려 느리게 가느라 느리게 가는 사람들의 상태를 더 잘 지도하고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SNPE강사로 글을 쓰게 되는 날을 꿈꾸며 매일 열심히 엉금엉금 쉬지않고 기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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